베드타운에 들어온 이상한 예술가들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18) 베드타운에 들어온 이상한 예술가들

도쿄 도심에서 열차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지바현 마쓰도(松?市)시에 도착한다. 최근 2~3년간 젊은 예술가, 창작가, 운동 선수, 나아가 사회 공헌에 뜻을 둔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이 도쿄 도심을 탈피해 이곳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그리하여 마쓰도역 반경 500m 구역을 스스로 ‘매드시티(MAD City)’라 이름 짓고, 창의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간다.

인구 50만 명인 마쓰도는 수도권 베드타운 중 하나다. 마쓰도역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역을 둘러싼 5~7층 빌딩가에 빈 사무실이 있는 것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고령화되는 주민, 쇠락해가는 상권 등 도쿄 근교 여느 베드타운 도시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시가지를 조금 걷다 보니 전면 유리창에 ‘MAD City’ ‘탈(脫)도쿄 부동산’이라고 쓰인 작은 창고가 나온다. 이곳에서 데라이 모토카즈 씨(35)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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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이 씨는 일본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청년 사회적 기업가다. 25세에 비영리법인 ‘컴포지션(Composition)’을 설립한 그는 도쿄 도심 시부야에서 공원과 빌딩 관리를 위탁받아 이들 공간을 청년 예술가를 위한 그래피티 캠퍼스와 거리 농구장으로 개방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랬던 그가 2010년 왜 지방 도시 마쓰도로 활동의 거점을 옮겼는지 궁금했다. “도쿄 도심은 돈 없는 젊은 예술가에게는 제한과 규제가 너무 많았다. 거리 예술 같은 활동을 좀 더 자유롭게 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때마침 지인의 소개로 마쓰도 시를 알게 됐다는 것. 도쿄에서 접근하기 편리하고 역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에도가와 강이 나타나는 마쓰도 시는 비어 있는 사무실과 낡은 건물로 인해 적적함까지 감돌았다. 그러나 “그 적적함이 내게는 오히려 자유로 다가왔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날 이후 그는 셔터를 내린 낡은 점포와 오래된 민가, 빈방투성이인 낡은 아파트를 찾아 나섰다. 임대료가 싼 만큼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공간으로 자유롭게 DIY(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씀)하고 개조할 수 있으며, 이웃과 시끌벅적한 파티를 열거나 워크숍·전시회 등 이벤트를 벌이는 일도 가능했다. 데라이 씨에 따르면, 이런 매력에 이끌려 지난 3년간 이곳으로 이주한 청년만 약 70명에 이른다.

그와 함께 매드시티 투어에 나섰다. 이면도로에 있는 건물에 그려진 큰 벽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난 동일본 대지진 당시 벽에 균열이 생겨서 보수할 때 함께 이주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RE 씨가 그려준 벽화라고 한다. 매드시티 공동 아틀리에 1호라는 ‘옛 하라다 쌀집’에도 들렀다. 고층 아파트 사이에 홀로 남아 있던 100년 넘은 이 민가는 오늘날 영상작가·화가·사운드 디렉터 등 현대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 12명이 입주한 공동 작업실로 변모했다. 1층 가게에 입주한 아트디렉터 스즈키 미호 씨는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지역 아동들에게 예술교실을 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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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자치조직을 재건하는 게 시작

다음에 들른 곳은 매드시티 제1호 맨션이다. 지은 지 40년 된 이 맨션은 데라이 씨가 보러 왔을 당시 20호 중 11호가 비어 있었다고 한다. 주인에게 관리를 위탁받은 이 맨션은 복고풍의 커뮤니티 하우스로 재탄생했다. 매드시티에 둥지를 튼 아티스트 등 다채로운 사람들이 입주하면서 지금은 만실이 되었다. 방 한 개는 커뮤니티룸으로 개조해 입주자들이 홈파티 등 이벤트를 벌이는 장소로 쓴다.

역 앞 광장에 위치한 빈 빌딩 7층에 ‘팬클럽(FANCLUB)’이라는 이벤트장도 개장했다. 평일에는 양초 작가 노나카 켄이치 씨가 공방 겸 카페로 사용하고, 주말에는 매드시티 입주자들과 주민들이, 마을만들기 워크숍, 라이브 공연, DJ클럽, 영화 상영 등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브라질과 에콰도르에서 유기농 커피를 공정 무역으로 수입하는 친환경 커뮤니티 카페 ‘슬로우 커피(Slow coffee)’의 개업 1주년 파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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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활기를 띠면서 주민들도 달라졌다. 지난해 6월에는 매드시티 주변 11개 마을 자치회장과 지역 청년, 아티스트들이 모여 ‘마쓰도 마을만들기 회의’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역 앞 중앙공원에서 라이브 연주회를 열거나 빛 축제의 일종인 ‘101인 라이트 드로잉’ 행사를 벌이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험한다. NPO법인 H.O.W의 지원을 받아 에도가와강 하천 부지에서 주민들의 야외 결혼식을 열고, 역 앞 식당가 도로의 차량 출입을 막고 연회를 벌였다. 다양한 예술활동과 생활 이벤트가 개최되어 역 인근 공원과 하천을 찾는 주민도 갈수록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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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이 씨는 지난 3년의 경험을 통해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외적 요소보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먼저 눈을 돌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커뮤니티 붕괴로 방치돼 있던 공공시설과 자치조직을 주민들이 다시 공유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마을 만들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토착 주민들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젊은 이주자들의 예술과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주민들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모아가고자 한다. 이를 통해 마쓰도 또한 주민의 삶에 뿌리내린 예술 도시로 재탄생할 것이다.” 앞으로 마쓰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배드타운에 들어온 예술가들과 지역주민들의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 본 글은 시사인 30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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