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며 살아가는 ‘시민’을 기다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직 대통령의 역할에 주목해온 희망제작소(이사장 김창국)는 2월19일 오전 10시, 2층 세미나실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 퇴임대통령 : 그 역할과 과제는”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은 망명, 시해, 구속 등 파란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역할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군사정부가 물러나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집권한 대통령들이 생겨나면서 그들의 퇴임 이후 역할에 대해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성이 생겼다.

[##_1C|1326019110.jpg|width=”570″ height=”378″ alt=”?”|퇴임 대통령 역할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박나은)_##]

“대통령의 ‘벌거벗은 힘’(나력, 裸力)을 보고 싶다”며 말머리를 연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희망제작소 상임고문)는 “권력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했던 직위에서 순수한 사인(私人)으로 돌아오는 대통령도 그 영향력을 부인할 순 없지”만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범적 시민으로 돌아와 모범적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교수는 “재임당시 결정하고 집행했던 정책이 왜 잘됐는지, 왜 잘못됐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또 실패했던 정책들은 그 원인을 밝혀 우를 번복하지 않도록 조언해야 한다.”며 “자찬하는 정책 평가로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받는 존중에 비해 자신을 낮추고, 나력을 갖추어야 재임 때의 위용을 유지하고 더욱 더 존중 받고, 존경받는 인물로 남을 것이다”라며 인사말을 맺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들이 이제 점점 더 많이 나오게 될 텐데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퇴임 대통령에 대한 주목과 고민이 없다.”며, “외국의 사례를 보면 퇴임 대통령들의 왕성한 활동을 볼 수 있다”고 말문을 연 뒤 “(노무현) 대통령도 퇴임 이후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의지만 보여도 주변에서 함께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날 발제자로 나선 안병진 교수(경희대학교)는 ‘성공적 전직 대통령의 조건’이라는 발제문에서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한 대통령제 하의 많은 대통령들이 대통령의 업무영역과 동원자원, 역할과 지위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준비 없이 임기를 시작한다”며, “퇴임 이후 즉, ‘대통령제 후의 전직 대통령의 활동’에 대해서 퇴임대통령 본인도, 시민사회도 준비가 부족한 채 퇴임을 맞이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빌 클린턴의 “정해진 전직 대통령의 업무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인용하면서 시대의 변화 추세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퇴임 대통령의 활동 영역이 저술, 강연, 대통령 도서관 건립, 현직 대통령 자문, 국내 중요한 정치 아젠다의 통합적 원로, 지구적 대사, 공적 정책 지도자, 스태프의 자원, 정치적 지원, 직접 정치 활동, 혹은 기타 사적 이윤 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설명하고 그것들이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넓은 분야임을 역설하였다.

그는 63세의 나이에 퇴임하는 노대통령은 미국의 클린턴, 카터가 처했던 조건과도 비슷하다며 인권, 평화의 분야에서 카터와 기질적으로 유사한 김대중 대통령에 비해 미래적 아젠다 및 혁신 추구 성향 등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기질적으로 유사하다고 정의했다. 또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자세로 학문적, 역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균형감 있는 저술, 초당적인 정치적 역할, 현 정부에 대한 따뜻한 조언, 마지막으로 퇴임 지역 발전에의 봉사를 요청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은 법적 지위와 국정경험, 사회적 영향력과 외교적 경험을 토대로 개인활동, 기념사업 활동, 정치활동, 봉사, 자선활동 등에 힘써줄 것을 요청하면서 “바람직한 한국의 전임 대통령은 현직의 성패에 구애받지 않고 현직에서의 과오가 오히려 퇴직 이후 활동의 원동력으로서 작용할 수 있지만 정치적 활동은 되도록 지양하고 자선활동이나 미래이슈 등을 국제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신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퇴직 이후 활동을 되짚으며,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활동 영역과 한계를 논하였고, 권율 국제개발협력팀장(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퇴임대통영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며, 절대빈곤과 기아퇴치, 양성평등과 여성능력 고양, 아동사망률 감소 등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와 역할을 이용한 밀레니엄 개발목표에 의한 활동을 주문했다.

정윤재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각 대통령들에 대한 간략한 평가와 함께 퇴임 이후의 활동에 대해 ‘처세와 자금력에만 집중하는’, ‘나홀로 생활을 즐기고 있는’, ‘계파 보스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판적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러한 양상의 활동을 보여주지 말기를 바랐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퇴임 후 활동에 대해 논의 한 바 있는 이화영 대통합민주당 국회의원은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건전한 비판 문화를 확산해 나가는데 큰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노 대통령이 제기하고자 하는 비판문화는 현실정치에서 벗어나 있는 만큼 미래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은 주제를 중심으로 제기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은 남북관계 문제에 관심이 많고, 특히 북한의 경제개발 및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북한아동들의 빈곤상황 퇴치를 위한 모금운동, 국제적 펀드 모집 등의 구체적 계획을 처음으로 밝히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퇴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라며, 초당적 접근을 통한 상호신뢰 구축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한 차기 정부가 전직 대통령을 활용하기 위한 연구와 방안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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