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의 힘

세계화(globalization) 바람이 한바탕 지나간 뒤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화로 국가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국가’가 아닌 ‘지방’이 정치, 경제, 문화의 실천적인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희망제작소는 고양시와 함께 12회에 걸쳐 주목할만한 해외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려합니다.


(3) 스페인 빌바오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빌바오(Bilbao)는 면적 41.3㎢, 인구 약 35만 명(2007년 기준)의 도시로 바스크 지역의 중심도시이다. 주변지역을 포함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의 인구는 약 100만명으로, 인구규모로는 스페인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다.

[##_1C|1077408717.jpg|width=”400″ height=”25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빌바오 전경. 하단 금색 건물이 구겐하임 미술관이다_##]
빌바오는 영국, 프랑스와의 교역 항구였고,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철강 및 제철, 조선산업의 발달로 20세기 초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했던 항구공업도시였다. 그러나 철강자원의 고갈과 1970년대 이후 중공업 위축으로(아시아 신흥경제국의 부상으로 철강과 조선산업이 아시아로 이전됨), 1980년대 이후 산업이 침체되고 실업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지역경제가 악화되었다. 더구나 그간의 산업활동으로 네르비온 강과 주변 환경은 오염되었으며, 공장이 있던 지역은 버려진 땅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빌바오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장기적인 계획 하에 도시를 개조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1. 도시재생을 위한 종합전략을 수립하다

1989년 바스크 정부는 빌바오 대도시권의 재생을 위한 종합전략을 구상하고 단계적 계획을 추진한다. ‘Ria 2000 종합계획’으로 불리는 계획은 네르비온 강 주변의 낡은 산업시설 등의 재개발 계획을 담고 있다. 강을 중심으로 문화, 경제활동이 전개 될 수 있도록 산업이 쇠퇴한 자리에 문화시설을 설치하였으며, 제철소가 있던 지역에 전차와 녹도를 건설하였다.

미래 도시는 환경친화적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이 네르비온 강 수질 개선과 강 주변에 대한 계획이었다. 강의 수질개선을 위해 막대한 공공투자를 유치하였고, 각종 산업용수, 생활용수 정화시설을 확충하였다. 환경문제 해결은 문화도시 건설의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도시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도시 경제력과 경쟁력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한다.

2. 핵심사업은 문화와 환경!

●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우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1997년 10월 개관하였다. 미국인 건축가 프랑크 게리의 설계로 7년 만에 완공되었는데, 건물은 네르비온 강에 정박한 선박 형상이라고 한다. 비행기 외장재인 티타늄 3만 3천 장이 미술관 외부를 덮고 있는데, 날씨에 따라 흐린 날에는 은빛, 맑은 날에는 금빛을 띠어 메탈 플라워라는 애칭이 있다.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극찬을 얻기도 하였다.

구겐하임 미술관 개발의 세가지 컨셉은 문화를 통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국제사회에서 예술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 통신?대학 등 산업요소와도 연결할 수 있는 총체적 시설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런 계획 중 많은 부분이 달성되었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성과는 눈에 띄게 높다. 구겐하임 건설에 총 1억 3천 5백만 유로가 투자되었는데, 건물공사에만 8천 400만 유로가 사용되었다. 이중 바스크 주정부의 투자금은 3천 600만 유로였으며, 1억 2천만 유로를 미국으로부터 빌려왔다.

[##_1C|1336042782.jpg|width=”260″ height=”182″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구겐하임 미술관_##]
1991년 당시 추정하기로 투자금 회수를 위해 연 40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해야 했는데, 당시 빌바오 현대미술관 관람객수가 연 10만 명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당시 빌바오의 계획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매년 약 105만 명의 관람객이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고 있으며, 결국 개관 3년만에 건설비를 회수했고, 5년 만에 세금을 포함한 모든 투자금이 회수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제적 성공은 지역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져,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고 10년 만에 이 지역 호텔수가 10배 이상 증가했고,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일자리가 약 4천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수치는 과거 70년대 빌바오 항구 산업 종사자 수와 같다고 하니 참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빌바오의 취업률은 약 65%로 다른 지역(55% 정도)보다 높다.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는 <정오의 죽음>에서 빌바오를 “무덥고 추한 광산도시”라고 묘사했는데, 지금의 빌바오는 문화와 환경의 도시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 공공디자인의 도입

도시에 미술관만 하나 있다고 관광객이 올까? 도시 전체가 아름다울 필요가 있다는 점에 빌바오는 주목했다.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 이외에 공공디자인을 고려하는 다양한 시설을 계획했다. 1995년 영국의 공공디자이너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빌바오 지하철(유럽 건축대상 수상), 스페인 출신 유명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빌바오 공항 터미널, 세자르 펠리에 의한 수변공간 개발 등이 그것이다. 또한 Coll-Barreau Arquitectos가 설계한 빌바오 위생성 건물도 유명하다.

[##_1C|1166888730.jpg|width=”265″ height=”19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위생성 건물. 종이접기식 입면으로 시각적 효과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성도 추구한다._##]


● 대중교통을 중심에


교통계획은 자가용 보다 대중교통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지하철(Metro Bilbao), 트램(Tram), 보행자길(Pedestrian Street, 녹도로 구성된 구간이 많음)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하철(Metro Bilbao)은 구도심과 도심 외곽을 연결하고 있으며, 구도심 재생사업 일환으로 구중심부와 강변의 주요 신개발지를 연결하는 트램(Tram)이 새롭게 도입되었다.

[##_1C|1360777317.jpg|width=”400″ height=”24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빌바오의 트램_##]
보행자길(Pedestrian Street)은 빌바오 문화회관,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구도심 주변의 주요 성당과 유적지를 연결하고 있다. 또한 수변공간을 따라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보행자 전용 다리(주비주리)도 건설하였다. 과거 공업도시 시절에는 배가 강을 따라 철광석을 운송해야 했기에, 다리조차 제대로 놓지 못했다. 이제는 강을 따라 아름다운 다리를 놓고 있다

● 강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네르비온 강을 따라 추진되었다. 과거 공업도시로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강을 사용해 왔기에 강은 오염되었고, 강 주변지역은 문을 닫은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특히 네르비온 강은 오염이 심해 죽음의 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강을 살리기 위해 약 15년간 구겐하임 미술관 건설비의 6배에 달하는 8억 유로가 투자되었다. 이를 통해 수질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시 당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투자해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수질을 만들겠다고 한다.

[##_1C|1300381667.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시민들에게 되돌려진 네르비온 강_##]강이 살아나자 강 주변 수변지역에 여러 혁신적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구겐하임 미술관과 같은 문화시설, 주거ㆍ상업ㆍ업무 공간이 어우러진 국제적 복합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20만㎡ 면적의 공원과 오픈스페이스가 조성되었는데, 이 지역의 공원화 비율은 70%가 넘는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되돌려진 네르비온 강구겐하임 미술관 옆 놀이터  관광객보다 지역주민을 생각하는 시설이 곳곳에 있다.

3. 또 하나의 성공요인, 거버넌스

빌바오 성공의 두 주역은 ‘빌바오 리아 2000’과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이다. ‘빌바오 리아 2000’은 재개발사업을 직접 실행하는 공공기관이고,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은 빌바오 도시 재생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싱크탱크이다.

● 빌바오 리아 2000 (Bilbao Ria 2000)

1992년 스페인 중앙정부와 바스크 주 정부가 절반씩 투자해 세운 개발공사이다. 공공부문이 소유하고 있는 도시의 버려진 땅을 호텔이나 주택단지로 개발해 민간에 분양하고, 분양으로 생기는 수익금으로 재개발 지역 주민을 위한 공원이나 시민운동장, 다리, 전철과 같은 기반시설을 만드는 비용으로 사용한다.

● 빌바오 메트로폴리 30

1991년 결성된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은 바스크 지역 130여 개 공기업과 민간기업으로 구성된 민관협력체이다. 시 정부, 대학, 은행, 미술관, 정유회사, 철강회사, 철도공사, 건설회사, 항공사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800여 명의 학자와 전문가가 소속되어 있다.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질 향상 없이 도시의 미래는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130개의 공-사 기업과 전문가가 합심해 ‘도시재생 비전’을 연구하고 있다.

● 빌바오의 새로운 도전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로 대표되던 빌바오의 성공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요구받고 있다. 빌바오는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을 듯하다. ‘Reflections on Strategy, Bilbao 2010’에서 빌바오는 새로운 전략으로 사람, 지식, 혁신을 말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과 도시혁명을 거쳐, 이제는 지식혁명의 시대라고 말하면서 이를 예측하고 실현하겠다고 선포하는 빌바오의 미래가 기대된다.

4. 우리의 교훈은 어디에

해외사례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교훈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례를 냉정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빛과 그늘을 함께 보아야 하며, 그들의 문화적 특수성과 주변 여건을 함께 관찰해야 한다. 빌바오 사례는 그 자체로 매혹적인 성공사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례를 그대로 우리에게 이식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구겐하임 미술관을 우리가 유치한다면

성공과 실패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의해 보아야 할 점은, 유럽의 특수성을 봐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인들의 높은 소득수준과 문화수요, 비행기로 2시간 이내 근거리에 유럽 대도시들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유럽 여행객들의 높은 문화적 욕구를 보아야 한다. 이것은 유럽의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의 방문객 수로 나타난다. 스페인 최고 미술관인 마드리드 소재의 프라도 미술관에는 연 200만 명이 방문하고 있으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연 600만 명이 방문한다. 또한 스페인의 문화관광객수는 연간 400만 명에 달하며, 프랑스, 이태리, 독일의 문화관광객수는 매년 1,400만 명에 이른다. 이와 같은 주변 여건과 문화소비의 기초 체력이 있었기에 빌바오 미술관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빌바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사업은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라기보다 네르비온 강의 정화 사업이었다. 사업비도 구겐하임 건설비의 8배가 들었으니, 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유는 당연했다.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가 아니라면 문화관광산업은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을 위한 계획이었다

계획의 근간은 관광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것이었다. 시민의 주거지를 개선하고, 구도심과 도심 외곽을 연결하는 대중교통을 확충하고 개선했으며, 작은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도시 내에서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도 시민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또한 주민을 위한 많은 공원과 보행자길, 어린이 놀이터에서도 시민을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전체를, 함께 그렸다

유명한 현대 미술관 유치만이 아닌, 도시 전체의 그림을 함께 그려가면서 도시재생 작업을 진행했다. 주거지 재생, 공업용지의 문화용지로의 전환, 교통개선 및 대중교통 확충, 환경정화사업, 공공디자인 사업 등 문화와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이 과정을 공공과 민간기업, 전문가, 시민이 함께 그리고 만들어 갔다는 점이 인상 깊다.

개발비용은 어떻게?

‘빌바오 리아 2000’의 사업모델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업시설이 쇠락하면서 버려졌던 땅(공공부문의 땅)을 재개발하여 수익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수익으로 도시의 새로운 기반시설을 정비해 갔다. 공공부문의 땅을 재개발 하였으니, 토지 매입비가 적었고, 개발을 통해 비교적 쉽게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목이 우리가 빌바오 사례를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지점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렵다. 모든 토지의 가격이 오를 만큼 올라 있고, 공공부문에서 소유하고 있는 여유 부지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너무 높아진 부동산 가격 때문에 아무 것도(경제 생산활동, 저렴한 주택공급 등) 할 수 없다는 어떤 전문가의 푸념이 정말 현실이 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미래 어느 시점에 우리나라 토지문제와 토지제도 개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진지한 고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빌바오는 좋은 사례이다. 이만큼 극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드물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모델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사례를 잘 참조하여, 우리의 현실(문화특성, 시민특성, 소득수준,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가의 문화와 소비 패턴 등)을 잘 파악한 우리만의 특성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 참고자료

[#M_ more.. | less.. | – 환경친화적 수도권택지개발 적정화 방안 연구 해외답사 출장보고서, 국토학회?시민단체
– 빌바오, 이영범(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 진화하는 경제ㆍ문화도시 빌바오, 김태환(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BILBAO 2010. REFLECTIONS ON STRATEGY, 2009.5
http://www.bilbaoexposhanghai2010.com
http://www.bm30.es
http://www.bilbaoria2000.org/ria2000/index.aspx
http://www.bilbao.net
_M#]


글_ 홍선 (희망제작소 뿌리센터장, theresa@makehope.org)
                                                  
월간 고양소식 6월호에 실린 글을 편집해 게재했습니다.  

● 연재목록
1.  세계의 중심은 어디인가 – 연재를 시작하며
2. ‘은하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  일본 삿포로 사회혁신 클러스터 
3. 빌바오의 힘  –  스페인 빌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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