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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8>

“문화관광부의 2005년도 공연예술분야 국고지원사업 평가에서 거창국제연극제가 최우수로 선정된 것은 서울로 대변되는 중앙 집중적인 문화예술계의 흐름을 깨고 작은 지역에서도 예술축제를 선도할 수 있다는 선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일대 사건입니다. 수승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옛 서원, 대나무 숲, 350년 된 은행나무, 허름한 정자, 화강암을 드러낸 거북바위, 하천의 제방 등 거창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을 무대로 그 어떤 축제보다 관객들에게 풍성하고 이채로운 체험을 선사한 게 주요했다고 판단해요.”

이 일대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 이종일(53) 거창국제연극제 연출가를 만났다. 희끗한 머리에 그럴듯한 콧수염이 영락없는 예술가. 그러나 그는 안정된 삶이 가능한 교사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학교를 떠나 척박한 산골 지방 거창 땅에서 극단을 만들고 나아가 세계적인 연극제를 일구어냈다.
”?”경남 거창은 지리산과 덕유산의 기슭에 있는 고장이다. 굽이진 산과 계곡 등 아름다운 자연을 가졌다. 그 중에서도 수승대라는 탁월하고 수려한 공간을 연극의 무대로 정해 자연과 함께 하는 예술을 선보인 것이 바로 ‘거창국제연극제’다. 이는 교사라는 안정적 직업을 버리고 연출가가 된 이종일 연출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가인상을 거스르는 연봉과 그것도 모자라 축제의 적자를 자신의 봉급에서 메우면서도 다음 축제를 준비하는 그가 있어 거창국제연극제의 오늘이 있었다.

지방별로 특색 없는 축제들이 넘치는 가운데 성년식을 앞에 둔 거창국제연극제는 이제 어느 정도 수지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성공했다. 그로부터 거창국제연극제의 성공비결과 어려움, 앞으로의 과제를 들어본다.

작은 연극제가 전국을 넘어 세계로…

1989년 10월 아무런 외부의 지원도 받지 않고 경남의 작은 극단 5개가 모여 ‘시월 연극제’를 했다. 소극장에서 2~3년간 하다가 호남, 영남의 극단을 초청해 전국으로 확장했고, 이는 다시 세계로 뻗어나갔다. ‘시월 연극제’는 4회 때부터 ‘전국 거창 소극장 연극제’로 확대됐고 93년부터 외국 극단들이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연극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참가규모는 변변치 않았다. 거창국제연극제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 씨가 96년 7월 배낭여행으로 프랑스 아비뇽 국제연극제를 본 후의 일이다.

프랑스 아비뇽은 인구 10만이 안 되는 도시로 세계적인 연극 도시다. 말로만 듣던 아비뇽 연극제를 실제로 보니 더욱 찬란했다. 세계 각지 100여 곳에서 온 500여 개의 극단들이 오래된 성벽과 건물을 배경으로 야외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작은 연극이 열렸다.

귀국하자마자 이종일 연출가는 거창국제연극제의 야외연극을 추진했다. 거창의 최대 명승지인 위천 수승대라는 그럴싸한 무대는 이미 자연이 마련해놓았다.
”?”그러나 문화재급 유산에서 연극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끈질긴 설득을 통해 1998년 제 10회 때 처음으로 수승대 경내에 야외무대 2곳을 마련해 첫 야외연극제를 개최했다. 국외 5개팀, 국내 13개팀이 참가했다. 한번 트인 물꼬는 더욱 거센 물결을 낳았다. 이때부터 거창군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행정 지원이 뒷받침되자 거창국제연극제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돼 2005년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 루마니아, 브라질, 페루, 우크라이나 등 해외 8개국 10개 극단과 국내 35개 극단 등 총 9개국 45개 극단이 199회를 공연하기에 이르렀다. 연극제 관람객도 크게 늘어 이제 한 해 17만의 사람들이 거창연극제를 찾는다.

“지난 해 경남발전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 따르면 딱 20일 간의 연극제로 인해 거창지역에 60억 원의 직접 효과, 133억 원의 간접효과, 그리고 고용창출효과 161명이라는 실로 거창한 결과를 거뒀다고 분석하더군요.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예산은 다 합쳐도 8억여 원인데 그것으로 이렇게 커다란 효과를 내고 있다니 처음을 생각하면 성공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죠. 게다가 지난해 여름 제18회 연극제를 열었으니 곧 20년이 다가와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축제 중 하나죠. 하지만 아비뇽이 60회를 넘기고 있고 100여 곳의 극단이 이곳을 찾는다는 걸 생각하면 아직 많이 부족해요.”
”?” 먼 길을 걸어온 이종일 연출가는 그보다 더 많이 남은,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가 누구도 이루지 못할 꿈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거창과 연극을 연결지어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수많은 지역축제들이 지정학적 특징이나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거창과 연극을 묶었고 이를 국제연극제로 이끌어냈다. 서울이나 중앙만을 바라보지 않고 지역이 독자적 발전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그것만으로 그는 이미 남들이 내딛지 못하는 한걸음을 더 내디뎠다.

거창국제연극제의 더 큰 성장을 위해

거창국제연극제는 한 고비를 넘어 드넓은 언덕 위에 섰다. 하지만 더 험난한 고비, 넘어야 할 산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민관프로그램에 따른 협력과 유동성의 문제다. 행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정산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단다. 그만큼 관과의 협력에 따른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일은 깐깐해야 한다. 하지만 그 깐깐함이 일의 발목을 잡는 방향이어서는 안 된다.

“정산이 힘들어서 지원을 못 받겠다는 푸념이 문화예술계에 널리 퍼져 있어요. 예산은 당연히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얼마나 피 같은 예산인데, 우리도 조심스럽게 쓸 수밖에 없고요. 신뢰가 쌓이지 못해 그렇겠지만 너무 비경제적이에요.”

이종일 씨의 말에서 어려움이 꽤 묻어나지만 “그나마 거창국제연극제는 협력이 잘되는 편이라서 타 지역의 축제보다 더 성황리에 축제를 마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민이 시작한 사업이라서 관의 간섭이 적은 편인데다가 협조도 잘되고 있는 편이에요. 관계도 좋은 편이고. 다만 아쉬운 건 담당자가 너무 자주 바뀐다는 거죠. 이 행사를 한두 번 치르고 담당자가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그 과정을 밟아나가야 하는데 이도 비효율적이죠. 5년 쯤이라도 임기가 지속되면 좋겠는데 진급해야하니깐 어쩔 수 없는 모양이더라고요.”

거창국제연극제가 넘어야 할 두 번째 산은 지방 축제들과의 유사성이다. 거창국제연극제가 펼치지는 경남에만 밀양국제연극제, 마산국제연극제를 포함해 3개의 국제연극제가 있다.

“경남에 3개의 연극제가 있고 경남 밖에도 포항바다연극제, 부산 국제연극제가 있고 여수와 춘천, 그리고 수원과 전주에도 연극제가 있어요. 좁은 땅인데 각 도별로 그리고 각 도에서도 몇 개씩이나 연극제가 있으니 너무 많죠. 하지만 또 반대로 결국 경쟁과 시장의 논리를 통해 더욱 성장하고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거창국제연극제가 그러한 산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종일 씨가 가진 바람 또한 크다. 연극을 할 수 있는 극장이 거창 전역에 분포되어 연극 관람객이 거창에 대한 애정 또한 품고 돌아갈 수 있길 바라고 숙박문제나 외국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도 확충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 문제들이 항상 예산으로 귀결되기에 섣불리 나서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예산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어서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지자체 차원에서 문화브랜드가 된 이 국제연극제를 활성화시키려는 마인드를 가지고 지원주면 좋겠어요. 우리가 연극만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토대가 마련된다면 상승효과를 내지 않겠어요? 결국 축제가 잘 되면 지역 자체가 다시 살아나게 되고 문화적 형상도 중앙과 지역에 골고루 나눠지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지원이 왜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일회적인 지원이 아니라 지원방식도 몇 년차의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대한 평가는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좋겠다. 단기적인 지원에 단기적 성과로만 평가한다니 너무 답답했다.”?”거창국제연극제를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을 보다

지역은 중앙을 해바라기한다. 돈이 중앙으로 모이고 사람이 중앙으로 모인다. 어느 게 먼저 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도 모이고 돈도 모이니 모든 것들이 중앙을 향한다. 지방의 문화예술도 그 지역의 색을 찾기보다 중앙 바라기가 많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지역에서 서울을 통하지 않고 바로 세계로 통한 경우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더 힘들기도 했지만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솔직히 별 수 없는 부분이 있죠. 모든 것이 중앙으로 향하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 지역 모두가 하나의 중앙이 되어야 해요. 서울을 거치지 않고 지역에서 바로 세계로 향해야 하죠.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지자체의 자부심이 생겨나면서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자긍심을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지역의 독특한 특징을 살리면서 공연예술의 세련미와 전문성을 함께 가져가는 데에는 공부가 더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서울과 지역의 교류는 필요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중앙만 너무 집중해서 지원하지 말고 지역을 균형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이종일 씨는 지역에 대한 균형적 지원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실 지방이고 중앙이고 국가 전체적으로 문화 쪽 예산이 많지 않다”고 덧붙인다. 전 예산의 1%도 못되던 것이 노무현 정권 들면서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산과 더불어 그가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다. 예산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이다. 그래서 그 또한 사람 키우기에 나서려 한다.

“폐교를 하나 빌려 사람을 키울 계획입니다. 대학원대학을 하나 만들 생각인데 이론 중심이 아니라 실기 중심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연기, 연출, 조명, 음향, 분장, 무대장치 등의 분야에서 소수정예로 키울 예정입니다. 우리는 연극에만 주력해 가르치는 거죠.”

결국 연극을 만드는 것도, 하는 것도 사람이다. 전통장르 양식으로는 날로 변화하는 관객을 모으기 어렵다. 변화하는 사람에 맞춰 새로운 변화가 일어야 한다. 포스트모던 정신으로 해체도 되고 퓨전도 되고 그러한 다양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실험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예술계는 연구기구라 할까 그런 모임이 필요해요. 그러한 공부를 통해 주먹구구식 기획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기획과 독창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어요. 특히 거창국제연극제와 같은 축제를 기획한다거나 경영 또는 행정하려는 기획자, 감독들은 회사의 CEO처럼 많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고 예산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그런 그이기에 스스로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자극을 받고 새로운 연극축제를 기획한다. 그런 그의 연봉이 2500만 원이란다. 교사를 했다면 그보다 많은 연봉을 받았을 그다. 하지만 그는 연봉보다 많은 행복과 만족감, 자신감을 받는다.

“교사를 쭉 했다면 조금은 더 안정적으로 살았겠죠. 하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그러나 재미있게 살 수 있었을까요? 연극을 하기 전에는 그냥 평범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해본 연극이 너무 좋아서 대학 다니면서, 교사를 하면서 연극 활동을 조금씩 했었는데 결국 그게 주가 됐고 너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누구보다 풍족하니까.”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정말 뿌듯하다. 지방에서 서울만 해바라기하지 않고 지방에서 세계를 뚫었다. 필자가 지역을 탐사하는 건 이러한 희망의 근거들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희망의 근거를 눈으로 귀로 확인하는 건 너무 즐거운 일이다. 우리에게 이종일 연출가와 같은 지역의 일꾼들이 있기 때문에 지역에 희망은 있다.

면담일시 – 2007년 1월 7일 오후 5시

면담장소 –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수승대

면담인사 – 이종일(거창국제연극제 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