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시골’…방법 없을까요?

<박원순의 희망탐사 40>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다. 한 지역의 문화를 살려낼 수도 있고, 문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며, 이를 후대에 전수할 수도 있다. 충남 예산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역사교사 천경석 씨는 일일이 모든 마을을 찾아다니며 마을의 의미와 사연을 한 권의 자서전에 담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고, 한 학교의 교사이기도 하고, 많은 학생들의 선생인 그는 수많은 마을주민들의 이야기 창구이기도 하다.

“골골마다 마을마다 사람마다 나무마다, 저마다의 의미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천 교사가 충남 곳곳을 일일이 발로 찾아다니고, 마을 주민들을 만나는 이유다. 그의 활동은 마을의 역사와 이야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을의 문화를 살리는 일도, 또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일도 그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지역문화 축제를 기획했으며, 특색 있는 마을을 만드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천경석 교사를 통해 들어본다.

마을을 탐구한다
[##_1C|1082843044.jpg|width=”531″ height=”352″ alt=”?”|▲ 아산향토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천경석 선생. ⓒ희망제작소_##] “다들 떠나는 곳이라고 하는데, 저는 시골이 좋아요. 원래 농촌 출신이어서 그런지 시골에 사는 게 행복합니다. 처음에 전교조 활동하다가 고향인 온양에 10여 년 전 들어왔어요. 돌아와서 처음 시작한 게 풍물, 답사, 아산지역 안의 문화재 탐방 등이었고 그 내용을 지역신문에 게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5년쯤 지나니 같은 일을 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오랜 객지생활은 고향에 대한 애정을 키운다. 천 교사는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고향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었다. 역사교사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고향 땅 곳곳에 숨어있는 문화유적을 찾아다니는 역사문화탐방을 시작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답사 및 향토사 연구모임 ‘우리누리’라는 단체는 지난 95년부터 매주 한 차례 지역사람들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문화유적을 찾아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모인 자료들을 그들 스스로 익히고, 이를 다시 주민들에게 설명한다.

지역에 어떤 문화유적이 있는지 지역주민들조차 알지 못하기 일쑤였기에 이를 먼저 주민들이 알 수 있도록 알렸고 이를 통해 고향사람들의 문화적 역량을 키울 수도 있었다. 문화유적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주민들의 한숨과 땀이 묻어나는 마을 곳곳을 돌며, 마을의 이야기도 연구하고 있다. 조상들이 어떻게 이 땅에 정착했으며, 땅과 주민들은 어떻게 하나가 되어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굴곡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를 위해 노인 등 마을 주민들을 찾아 일일이 마을의 대소사를 물어 정리하고 있다. 정리를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고 해도 마을 일을 상세히 알고 있지는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잊힐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 십 여 개의 마을들을 돌아다보니 이제는 어르신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졌고, 그렇게 몇 시간씩을 보내게 되더군요.”

이렇게 해서 나온 결실이 책 ‘송암마을들 사람 사는 이야기’와 ‘외암마을 사람 사는 이야기’ 이다[##_1L|1121826728.jpg|width=”339″ height=”506″ alt=”?”|▲ 천경석 선생이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묶은 ” 외암마을 사람사는 이야기.” ⓒ희망제작소 _##]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보자고 하여 ‘마을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아산 YMCA의 인터넷신문인 NGO아산뉴스에 게재했어요. 거기에는 쓰지 못했던 자료들, 예컨대 어느 마을 산신제의 축문 같은 것은 별도로 정리하고요. 시골도 너무 많이 변하니까 더 변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정리해두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소소한 골짜기의 이름부터, 길과 역사, 사람들 사는 이야기까지 내 나름대로 이런 자료를 정리하고 싶었죠.

시골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상은 너무 빠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성장중심, 경쟁중심이어서 부담스럽고, 사람들이 불편한 것과 지저분한 것, 뒤떨어진 것을 너무 못 견뎌하는 하는 것들이 안타까워요. 요즘 눈으로 보면 좀 지저분하고 뒤떨어질 수도 있는데 이것들이 시골마을에서는 남아있죠. 경쟁 때문에 이것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담아두고 싶어요.”

천 교사는 교사생활을 하다 보니 충분히 시간을 내서 다니지 못하고, 주말을 이용하다보니 시간도 꽤 걸려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도 나름대로 만족해한다. 유행과 경쟁이나 돈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편한 것이 시골이어서 이 정도 활동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골에도 돈의 논리가 유입되고 공동체 의식이 점차 희박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 지역화폐운동도 생각하게 됐다.

“당위적으로 좋겠다고 해서 반드시 실천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화폐운동에 적합한 곳이 어딜 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환경농업에 주목하고 있지만 당장 그렇게 농사를 지어서 유통망을 확보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닙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죠.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약 2년 전쯤 이 동네도 정보화마을이 됐다는 거죠. 당장 효과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짚풀문화제 – 돈주고 통제하려는 지방정부

마을과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천경석 교사는 지역과 지역사람들을 알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YMCA활동도 그 중 하나고, 먼저 나서서 지역축제와 예술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단오제와 짚풀문화제가 그것인데 짚풀문화제는 인근의 외암민속마을에서 개최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생각에서의 시작이었다.

짚풀축제는 매년 10월 추수 후에 주민들과 지역시민단체가 함께 만드는 축제로 추수 후의 짚풀로 초가지붕을 해이고 미투리, 망태기 등을 짜는 등 농촌생활용구를 준비하고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갔던 문화를 재현한다. 이에 전통혼례나 상여행렬, 초가지붕해잇기 등의 재현행사와 여러 전시행사, 체험행사 등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참여형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관 중심의 축제를 벗어나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모델을 만들어보고자 300만 원을 모아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3회 정도 지나면서 시에서 자금이 들어오고 관여의 폭도 커지면서 변질되기도 했다.

“원래는 수준이 낮더라도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주민들이 함께 소박하게 만들자고 기획한 거였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져 고민 중입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 등을 통제하려 하기도 했고, 또 사람들이 많이 오는 문제에만 너무 관심을 가지니까 시에서는 행사를 키우고자 해서 마을 사람들은 좀 부담스러워하고 고민하고 있죠.”

천경석 교사는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실력을 발휘해 축제가 벌어지는 외암민속마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외암민속마을은 설화산에 등을 기대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작은 내가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세입니다. 이곳에는 약 500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 이 씨 일가가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돌담장 길이가 500m나 되는 이끼 낀 돌담을 돌다보면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짐작할 수 있죠. 돌담 너머로 집집마다 뜰 안에 심어놓은 감나무, 살구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등이 들여다보여서 정취가 더해요.

전체 가구수가 60여 호인 외암리 민속마을에는 마을 입구의 장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초가지붕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대부분 초가집이고 그 외 기와집은 10여 채가 되는데 대개 100년~200년씩 되는 집들입니다. 그 때문에 1988년 정부에서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지정되었다가 2000년 1월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326호로 지정 보존중이죠. 외암리 민속마을 내 고택은 사유지로 본래 출입이 불가하지만 집 주인의 양해를 얻어 관람할 수도 있어요.

외암리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고풍스런 돌담이 오밀조밀한 골목길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지는데 총 길이가 무려 5km에 이릅니다. 한 번은 이 마을을 처음 찾아온 엿장수가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반나절 내내 같은 길만 ‘뱅뱅’ 돌았다고 할 정도였죠. 하지만 이 돌담들은 결코 위압적이지 않아서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박하고 편안한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줍니다.”
[##_1C|1153154311.jpg|width=”539″ height=”353″ alt=”?”|▲ 외암민속마을의 외암민속관. ⓒ희망제작소_##]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가보지도 않은 외암민속마을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역시 그는 마을의 사연을 담아내는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외암민속마을을 정비한 것은 좋지만, 그 기본 취지가 의심스럽기도 하다는 게 천 교사의 설명이다.

이 마을을 정비한 것은 아산시와 문화재청인데 마을사람들 중에는 소수만이 보존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생활의 불편함을 들어 반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이 정비된 것은 전통보존에 대한 생각보다는 ‘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는 것이 불편한 원인 중 하나다. 또 집집마다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똑같은 기둥이 들어선 집들을 보자니 오히려 정체성이 훼손되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된다.

시골에 살 근거를 제시하고 싶다.

이렇게 시골을 좋아하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그이지만 외지인들에게 시골로 돌아오라고 강하게 권유하지는 못한다. 시골에 살면서 이곳이 얼마나 살만한 곳인지 증명하고 싶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다. 서울에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그저 별장개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다.
[##_1L|1124547981.jpg|width=”446″ height=”294″ alt=”?”|▲ 외암민속마을의 고즈넉한 돌담길. ⓒ희망제작소 _##] “송악감리교회에 이종명 목사님 등 몇 분과 함께 시골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지만 찾지 못하고 있어요. 아이들 교육도 중요하니까 송남중학교를 거산초등학교 아이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중학교로 만들어볼 수 없는지도 고민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필요한데 솔직히 아이들을 키울만한 소득을 창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팜스테이 등의 경우에도 한 달에 일정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정기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없죠. 무엇을 해야 소득창출이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조금씩 사라지는 시골의 정취를 담아두고자 애쓰는 천경석 교사, 달라지는 세태를 어찌해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그 모습이 안쓰럽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이라도 그의 손을 통해 그 마을의 이야기가 담겨지고, 전해지고 있으며 마을의 다양한 문화제를 기획해 문화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본의 논리와 극심한 경쟁이 한 겨울 찬바람처럼 차갑기만 하지만, 천경석 교사와 같은 이들의 뜨거운 열정이 따뜻한 봄바람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는 것이다.

면담일시: 2006년 5월 30일

면담장소: 아산시 송악면 궁평리 자택

면담인사: 천경석(예산여자고교 교사)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