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운동과 평생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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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기획기사의 2013년도 두 번째 주제는 주민운동 교육훈련입니다.

주민 스스로 행동하고 지역을 변화시켜 나가는 조직적인 운동인 주민운동의 중심에 있는 교육훈련은 주민이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찾고 성장하도록 촉진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민조직가가 주민의 조직화 가능성을 찾아 활동하도록 촉진하기도 합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주민운동교육이 무엇인지 그 역사와 내용을 알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민운동교육 사례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학습 초점] 스스로 말하게 하라 (5) 주민운동과 평생학습

이 글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뉴스를 통해 군산의 한 서점 이야기를 접했다.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8월 군산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고, 이 지역에 한 서점이 물에 잠겼다. 그러자 이 서점을 복구하는 일에 연인원 2,500명의 지역주민들이 함께 나섰고(공무원들도 함께 했다고 한다.) 이런 힘이 모여 서점이 다시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이 서점에는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 생기는 등 개인이 아닌 지역사회를 위한 서점으로 되살아났다.

[##_2C|1157415290.jpg|width=”340″ height=”1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1079637534.jpg|width=”340″ height=”22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440㎜가 넘는 집중호우의 피해를 입었던 군산 한길문고가 지난 10월 시민들의 힘으로 재개장했다.
  (출처: 연합뉴스 ‘폭후 피해’ 군산 한길문고, 시민 도움으로 재기 2013.03.29)

‘평생학습과 주민운동’이라는 주제 앞에서 이 사례가 의미 있게 다가온 이유는, 아마도 이  주제가 갖는 복잡성, 또는 중층적인 의미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학습과 주민운동’이라는 주제에는 지역에서 주민들이 맞닥뜨리는 삶의 문제와 주민으로서 또는 주민지도자로서 자기 성장을 경험해야 하는 학습의 문제가 교차한다. 교육의 목적과 운동의 목적은 때로는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르기도 하다. 교육의 가치가 인간의 성장에 있다면, 주민운동의 목적은 문제 해결에 있다. 이 두 가지 목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무엇을 우선적인 것으로 두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비판적 교육학에서 오랜 세월 이루어진 ‘교육’과 ‘조직화’의 논쟁은 이런 교육과 운동의 목적이 갖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직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집합적 행위로 사회운동은 주민의 성장과 임파워먼트를 목적으로 할 때도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공동의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한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교육장치들이 요청되고, 조직화된 주민들의 역량이 필요하게 된다. 주민의 성장은 운동을 통해 나타난 부차적인 성과이거나 문제해결을 위해 요청되는 부분이 된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운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민의 성장보다는 문제 해결이 우선 된다. 당장의 문제 해결에 주민의 학습이 걸림돌이 될 경우, 그런 학습은 거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거부된 학습이 보다 근본적 변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교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제 해결을 위한 집합적 노력도 참여자들이 성장하는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면, 즉 운동이 지향하던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면 집합행위로서 사회운동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공동체적인 역량이 강화되었다면 의미 있는 교육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민운동에서는 무엇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문제 해결일까? 아니면 주민의 성장일까?  아니면 둘 사이의 조화는 불가능할까?

이런 논쟁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다. 미국의 성인교육기관인 하이랜더(Highlander)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장인 마일즈 호튼(Myles Horton)은 한 노조의 요청으로 노동조합의 교육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한 공장을 방문하였다. 호튼은 교육자로서도 잘 알려진 사람이기도 했지만, 조직가로서도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호튼이 교육자로서 도움을 주고 있던 때 마침 경찰이 투입되어 노조가 위기 사항에 놓였다. 다급해진 노조 간부들은 호튼에게 찾아 와서 빨리 전문가로서의 답을 달라고 요구했다. 어떤 이는 호튼의 머리에 총을 겨누기도 했다. 그러나 호튼은 끝까지 답하기를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역할은 ‘조직가’가 아니라 ‘교육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호튼은 이 시기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나는 위협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전문가로서의 내 의견을 말해줘야 하나 잠시 망설였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간의 모든 공이 무너지고,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내게만 의존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쏘시오. 그러고 싶으면 쏘란 말이오. 하지만 절대 말해 줄 수 없소”라고 말했습니다.”(프레이리&호튼의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중에서)

교육의 목적은 학습자 스스로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따라서 교육적 관점에서는 당장의 문제 해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스스로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호튼은 그 점을 간파하고 끝까지 교육자로서의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그렇다고 그가 조직가의 역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말하게 하라”

우리는 이런 호튼의 일화 속에서 ‘평생학습’이라는 주제와 ‘주민운동’이라는 주제를 왜 함께 다뤄야 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다. 필자는 그 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코너의 제목이기도 한 ‘스스로 말하게 하라’라는 말은 평생학습시대 주민운동의 방향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일 년 전 고인이 되신 허병섭 목사님이 쓰신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주민운동의 기본 원칙을 환기할 뿐만 아니라, 앞서 호튼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교육자로서의 책무가 무엇인지 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주민운동의 문제에 비추어 봤을 때 ‘스스로 말하게 하라’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이란 주민 스스로가 자신들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이 문제를 분석할 수 있다는 믿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 주민운동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 믿음의 결과는 여러 사례에서 발견된다. 행당동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 ‘자기 삶의 환경을 스스로 개척하는 주체로 성장’해 갔다(스스로 말하게 하라 2). 필리핀의 주민조직운동, 특히 페페(PEPE)의 민중교육운동은 주민들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로 세우는 일이기도 했다(스스로 말하게 하라 4). 따라서 CO운동에서도 주민운동의 주체는 다름 아닌 주민 그 자신이다. 주민운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지도자와 조직가의 역할도 전문가들의 몫이 아니라 철저히 주민들의 몫이다(스스로 말하게 하라 1).

둘째, 주민의 ‘목소리’에 대한 신뢰다. 브라질의 교육학자인 프레이리(Freire)는 한 농장의 농민들이 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발견 했어요.”(Freire & Macedo, Literacy: reading and writing world 중에서)라고 하는 한 농부를 만나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필자도 어떤 문해 학습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글을 배워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더냐는 질문에 그분은 “집에 있는 남편도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나도 이제는 막 따지고 대들기도 해”라고 대답하였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다 자기 목소리에 대한 긍정에 있었다. 주민운동은 단순히 지도자가 생각하는 옳은 길로 주민들을 동원해 내는 일이 아니다. 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비롯된 ‘목소리’, 즉 이들의 지식과 지혜에 비롯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이자 침묵하는 이런 목소리를 회복시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힘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일이다.

셋째, 학습 역동에 대한 신뢰다. “스스로 말하게 된” 주민들은 다채로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갖게 된 주민들은 세상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을 발산하게 되며, 애초 교육자의 ‘기획’과는 다른 여러 갈래의 학습 활동을 전개한다. 필자가 박사 논문 사례로 살펴봤던 부안 핵 폐기장 반대운동 사례를 보면, 초창기에는 지도부의 교육이 주를 이루다가 운동 중반기에 이르러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부하는 모임이 생기고 대책위를 향해 여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책위 입장에서는 ‘분열’로 비쳐질 상황이었지만, 주민들의 자발적인 세력화를 통해 다양성이 증가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우리가 마을운동의 성공 사례로 꼽고 있는 성미산마을 사례나 필자가 주민으로 참여하고 혜택을 누렸던 고양시 행신동 사례도 꼭 그렇다. 동네 사람들은 모이고 경험하고 떠들고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자꾸 움직인다. 거기에도 숨은 조력자(주민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조직가)는 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앞에서 이런 일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과 어울려 지내며 주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이들이 말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주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넷째, 끊임없는 변화의 추구다. 학습의 역동은 변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람들더러 움직이라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라고 한다. 여기에서 유성상 교수님의 글에도 소개되었던 필리핀 민중교육단체 페페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페페(PEPE)는 『페페의 희망교육』이라는 책에서 과거의 운동 방식을 ‘전동벨트 방식’이었다고 고백한다. 과거에는 리더가 이끌고 주민들은 수동적으로 따랐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그러나 종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만들고 창조해 가는 그런 방식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민운동은 앞선 필자들께서도 여러 번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과정이자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미래를 만들고 준비하기 위한 주민운동을 위해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성찰과 재성찰, 즉 변화를 위한 학습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부안 핵 폐기장 반대 운동의 예를 들면, 주민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핵 폐기장 유치를 철회하는 것이었다. 강한 조직화를 통해 결집된 주민은 이런 운동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 참여한 주민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대안에너지, 주민자치, 교육, 언론 등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토론하고 대안적인 실천 활동을 만들어 갔다. 진화론에 따르면 진화 과정에서 생존하는 것은 강자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여 살고 있는 개체는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제일 먼저 도태된다. 진화는 다양성의 증가이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의 증가는 새로운 위협적인 상황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학습을 통한 끊임없는 변화(그러나 성급하지 않은 변화)는 주민운동이 당장의 목표 달성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새로운 운동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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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안핵폐기장 유치 반대와 핵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범도민대책위 구성
                                             (출처:오마이뉴스 부안 촛불문화제 1만여개 타올랐다 2013.08.02)

스스로 말하는 주민운동 그리고 학습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학습한다. 학습의 결과는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기도 하며, 학습 그 자체가 삶에 여러 가지 의미 부여를 가능하게 한다. 모든 학습이 당장의 삶의 문제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몸’의 어딘가에서 삶을 살찌우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도 말했듯이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우리 삶의 과거의 경험들은 현재의 나를 향해 의미 있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스스로 말하게 하는” 주민운동은 이 지점에서 평생학습과 만난다. 주민들은 운동 과정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지만 운동은 주민들의 학습을 통해 진화할 수 있다. 주민들의 ‘목소리’가 당장의 문제해결을 더디게 할지 모르지만, 삶의 더 깊은 지층을 흔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나중에 뒤돌아보면 그때 그 경험들이 정말 의미 있었노라고, 현재의 변화에 의미 있는 경험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호튼이 전문가로서의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고집했던 이유도 문제해결의 지속가능하고 근본적인 방법이 운동 주체들의 성장에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말하는 주민”이 되도록 하는 일은 결국에는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조직화의 방법(문제 해결의 방법)일 수 있다.

다시 군산의 사례를 떠올려 본다. 필자는 지역사회의 한 서점을 살려낸 군산 주민들의 경험에 감탄하면서도, 사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변화에 더 큰 기대를 걸어 본다. 더 가까이 가서 살펴봐야할 일이겠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은 ‘상상’을 더 해본다. ‘서점이 물에 잠긴 일’은 한 개인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이 맞닥뜨린 문제였고(아마 이미 주민들에게 서점은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그 결과, 주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였고, 서점은 새로운 모습(예컨대 더 주민과 가까워진 모습)으로 거듭났다. 이 과정 속에서 주민들은 문제 해결의 ‘주체 됨’의 경험을 했을 것이고, 이 지역 사회에서 이 서점이 갖는 ‘의미’도 달라졌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한 서점을 살려낸 일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참여한 주민인 ‘나’도 변했고, 지역사회의 새로운 ‘문화’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앞으로 주민의 힘을 모아 다시 문을 연 그 서점은 주민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진화하게 될까? 지역주민에게 한걸음 다가 선 그 서점은 지역사회에 또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까? 그리고 거기에서 주민들은 어떤 성장을 경험하게 될까? 시련을 극복하고 힘겨운 성장통을 경험한 것은 비단 그 서점의 주인만은 아니다. 그 과정을 함께 겪고 참여하고 느끼고 만들어간 주민들은 이미 과거의 주민들이 아니다. 어쩌면 주민들은 이미 지역의 어디에선가(또는 그 서점에서) 함께 떠들고 꿈꾸고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생학습과 주민운동은 그렇게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의 장에서 이미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_허 준(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 [평생학습 초점] 스스로 말하게 하라 연재목록
 (1) 주민의 가능성을 보는 눈 ‘주민운동 교육훈련’
 (2) 공부방에서 꿈꾸는 주민공동체
 (3) 동자동 쪽방촌에서 벌어진 일
 (4) 필리핀의 주민운동 엿보기
 (5) 주민운동과 평생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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