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눈을 뜨니 온 몸이 쑤십니다.  전날 조계산을 오르내리며 살짝 무리한 모양입니다.  투덜거리며 방문을 여는 순간, 상쾌한 아침 공기가 밀려듭니다. 차갑습니다. 산 아래에서 맞는 아침. 밤새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는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단잠을 자던 사람들은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하네요.

아침을 먹기 전 전통차체험관에서 오 분 거리에 위치한 선암사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체험관 뒷문을 통해 선암사에 이르는 길도 무척 좋더군요. 숲 속 오솔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힙니다. 

”사용자선암사를 보고 돌아오는 길, 멀리 풀숲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시커먼 몸뚱이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떨어지더니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아무도 정확히 본 사람은 없었지만, 고라니로 추측되는 동물이었죠. 난데없는 사람들의 발길이 고요한 숲의 아침을 방해한 모양입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늘 남도삼백리길 답사의 출발지는 순천만에 위치한 와온마을입니다. 이름이 특이하죠? 이 곳에서 바라보는 순천만의 일몰이 특히 아름답다고 하네요. 출발장소에 도착하니 이 날 안내를 맡아주실 순천시 관계자분들이 일행을 맞아주었습니다. 어제와는 다르게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날입니다. 제작소 식구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순천만 해안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답니다.

”사용자순천만은 2006년 람사르 협약(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에도 등록된 자연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지역희망찾기 연구공모를 통해 펴낸 우리강산푸르게푸르게 총서 아시죠? 시리즈 중 한 권인 <순천만, 시민사회 물결치다>를 보면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풀어냈습니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위치한 순천만은 호수 같은 느낌을 주는 고요한 바다로 썰물 때는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뭍으로 움푹 들어간 순천만의 동부 지역에는 순천 시내를 흐르는 동천과 이사천, 서부 지역에는 벌교천이 있어 육지에서 풍부한 영양염류를 비롯해 갯벌 생물들의 먹이가 되는 유기물을 공급받고 있다. – 책 37쪽

S자로 수놓인 물길과 뻘배가 지나간 흔적의 굽이굽이를 껴안은 갯벌, 우거진 갈대밭을 건너 뛰어 인공적으로 만든 것처럼 동그란 갈대 군락지가 바다를 향해 자리한 순천만. 이 둘 위에 온갖 생명체들이 깃들어 철따라 신비감을 더한다.
 – 책 40쪽

”사용자호수 같은 느낌을 주는 고요한 바다!  상상이 되시나요? 뿌리센터 박상현 연구원에 따르면 순천만이 지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까지 시련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천은 순천 시내를 관통해 순천만으로 합류하는 강인데요, 90년대 중반 시에서 동천 하류의 하도를 정비하고 골재를 채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쳤답니다.

시민들은 개발로 인한 순천만 생태계의 파괴를 우려했던 것이죠. 이후 시민들은 대책 모임을 꾸려 순천만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들을 펼쳐나가게 됩니다.  순천만 생태계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고, 생태자원으로서 순천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나갔죠.

10년에 걸친 지루한 싸움 끝에 시민들은 골재 채취 허가를 취소시키고, 하도 정비 사업도 축소시키는 성과를 이뤄내게 됩니다. 그러나 <순천만, 시민사회 물결치다>의 저자인 박두규님은 순천만 지키기 운동의 중요한 성과는 다른 곳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순천만 지키기 운동은 동천과 순천만에서, 시작할 때는 상상하지도 못한 생태적 가치를 발견하는 성과를 얻었다. 갯벌과 갈대와 철새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 생태계라는 보물을 찾아 품에 안은 것이다. – 책 48쪽             

”사용자기분 좋은 이야기지요?  순천만의 생태계에 대한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면서 순천만을 바라보는 관청의 관점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천만에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습지 보전 지구를 지정하는 등 순천만 보호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지요. 지난해 순천시는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10만 제곱미터의 내륙 습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답니다. 

현재 순천시가 희망제작소와 함께 의욕적으로 남도삼백리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을 겁니다. 순천시의 슬로건이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 이라는데요, 순천시, 파이팅입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 길로 샜군요. 다시 남도삼백리길 여행을 떠나볼까요. 희망제작소 식구들은 넓게 펼쳐진 해안선을 따라 계속 길을 걸어나갔습니다. 왼편으로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기 시작했죠. 길을 걷다보면 몇 발자국 못 떼고 걸음을 멈춰야 했는데요, 이유인즉, 정신 없이 갯벌을 바라봐야 했기 때문이랍니다.  
       
”사용자길을 걷다 무심코 갯벌에 시선을 멈추면 정말 수많은 움직임을 느끼게 됩니다. 가만히 선 채 유심히 들여다 보면 조그만 생명체들이 부지런히 갯벌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죠. 자기 몸집만한 집게발을 자랑하는 농게에서부터 그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짱뚱어에 이르기까지.

”사용자

농게 한 놈은 조그만 탑 처럼 솟아있는 숨구멍으로 쉴 새없이 들락거리느라 바쁩니다. 짱뚱어는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고요. 제작소 식구들은 곁눈질로 갯벌을 훑으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답니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순천만에 접한 용산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설치된 데크에 오르는 순간,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순천만의 장관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번 답사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이었죠.

”사용자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유유히 흐르는 물길은 살포시 바다에 닿아있었습니다.  둥그런 원 모양의 푸른 갈대밭은 물길 따라 점점히 박혀있고요.  순천만 너머로는 남도의 부드러운 능선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네, 그 순간 우리는 순천만 앞에 서 있었습니다. 물길처럼 굽이쳐 흐르는, 부드러운 남도길을 걷다가 마주친 선물이었죠.

”사용자순천만을 달구는 뜨거운 태양을 뒤로 한 채 일행은 산을 내려왔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의 일정은 대대포구 뚝방길을 따라 순천시 별량면 장산마을에 이르는 길이었죠. 장산마을 마을회관이 바로 이 날 여행의 목적지가 되겠습니다. 일행은 저녁에 계획된 고기파티를 향한 일념 하나로 한 낮의 폭염을 견디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이제 슬슬 소설 ‘무진기행’ 이야기를 꺼내야겠군요.  김승옥 작가의 대표작  ‘무진기행’ 의 무대가 바로 이 대대포구 갈대숲 일대인 것이지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김승옥 작가는 순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물론 태양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으며 안개가 명산물이라는 도시, 무진의 분위기를 만끽하기는 쉽지 않았답니다.

”사용자그래도 길을 걸으며 생각해봅니다. 60년대 청운의 꿈을 품은 젊은 소설가가 안개의 도시를 구상하며 걸었을 길. 그리고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가 그를 떠올리며 걷고 있는 이 길을 말입니다. 길이란 게 그런 모양입니다. 사람도 걷고, 시간도 걷고, 이야기도 걷고 말이지요.

숙소인 장산마을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시가 조금 넘었더군요. 15km에 이르는 해안길을 걸은 뒤라 연구원들의 몸에서는 바다내음이 솔솔 풍겨왔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마을회관을 둘러봤습니다. 

”사용자고된 농사일에 시달리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방에는 온갖 안마기계들이 갖추어져 있더군요. 연구원들은 신이 났습니다. 차례차례 사이좋게 안마의자에 올라 피로를 풉니다. 뭉친 근육들을 어루만져주던, 그 거친듯하면서도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네요.

저녁 식사를 준비할 차례입니다. 한바탕 마을 잔치를 벌이기로 했거든요. 야채도 씻고, 상도 펴고, 고기도 굽고, 연구원들은 여느 때 보다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저녁식사를 준비해 나갔습니다. (모두들 배가 많이 고팠던 게죠) 어느새 마을회관 앞에는 푸짐~한 상이 차려지고,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앉았습니다.

”사용자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갈 때 쯤,  반가운 손님들이 마을회관에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정다운 얼굴로 제작소 식구들을 맞아주셨던 마을 이장님을 비롯해 푸근한 인상의 별량면 면장님, 그리고 이날 하루동안 제작소 식구들과 일정을 함께 하며 이것 저것 챙겨주셨던 순천시 공무원분들까지. 조용하던 마을이 갑자기 떠들썩해졌습니다.

”사용자한 잔 두 잔 술잔이 돌고, 사는 이야기가 따라 돕니다. 누군가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한 곡조 뽑아내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더군요.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그렇게 사람들이 어울려갔습니다. 흥에 겨운 사람들 따라 장산마을이 들썩들썩 했지요. 네, 그 순간 우리는 남도의 마을에서 밤을 맞고 있었습니다. 물길처럼 굽이쳐 흐르는, 부드러운 남도길을 걷다가 마주친 선물이었죠.

    글_  희망제작소 콘텐츠팀 (ktlu@makehope.org)
사진_  희망제작소 정성원 연구위원 (sansotong@makehope.org)

☞  남도삼백리길 답사 첫째날 이야기 다시보기  

여행 셋째날,  매실에 취하고  발아미에 반하다!

희망제작소 식구들의 남도삼백리길 답사 마지막날 소식은 주로 먹는 이야기입니다.  ‘매실 명인’으로 유명한 홍쌍리 여사의 광양청매실농원과 유기농 발아미 생산을 통해 한국 농업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가고 있는 농업기업 미실란!  모두가 떠난 농촌에서, 모두가 꺼린 농업을 통해 우뚝 선 두 작은 거인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읽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남도답사 마지막날 여행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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