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정치교육 : 시민이 참여하는 생활정치를 위하여

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평생학습 초점] 시민교육을 말하다
(3) 시민과 정치교육 : 시민이 참여하는 생활정치를 위하여

「평생학습초점」에서는 앞으로 5회에 걸쳐 ‘시민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랜 기간 다양한 교육 주체들을 통해 진행되어 왔던 시민교육은 그 다양성만큼이나 정의도, 주제도, 내용도, 방식도 모두 다릅니다. 이에 짧은 몇 편의 연재 기사로 모든 것을 담아내고 정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고민하고 있고, 일어나고 있는 시민교육에 대한 현황과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엮어 내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보는 시도의 한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시민과 ‘정치교육’- 대의제와 훌륭한 시민

‘훌륭한 시민’은 공동체가 유지, 발전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민주주의를 운영원리로 삼고 있는 국가에서 시민은 단순한 구성원 이상의 존재이다. 주권자로서 시민들은 권력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권력을 감시, 통제하며 끊임없이 정치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와 같이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공동체 규모와 복잡성의 증가로 더 이상 일상적로 실현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현실에서 대의제라는 형식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루소의 말마따나 선거 때에만 자유로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도 ‘시민’의 역할과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첫째, 대의제이든, 직접민주주의든 민주정에서 대표는 시민들이 선출한다.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내세우는 공약과 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시민의 능력을 요구한다. 둘째, 시민의 역할은 훌륭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에서와 같이 국민의 관심이 없는 정치는 다수 인민이 아닌 소수의 위한 정치로 전락하게 된다. 관료제의 발달과 국가의 비대화, 이해집단의 능력 강화 등은 시민을 위한 정치를 더욱더 어렵게 하고 있다. 셋째, 정보통신의 발달, 특히 인터넷의 발달과 지방자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에 따라 정치참여의 기회와 가능성이 증가했다. 시민들은 이전과 달리 온라인을 통해 일상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수 있으며, 단순한 클릭만으로도 정치적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이처럼 대의제 하에서도 보다 좋은 위임을 위해서, 그리고 정치 참여의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의 증가라는 점에서 시민 역할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즉, 사회 정치의 수준, 민주주의의 수준은 바로 시민의 수준이 반영된다는 사실은 어떤 정치체제에서든 유효한 것이다.

2. 시민교육의 현황과 정치교육의 의미

훌륭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은 각자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발전시켜 왔다. 시민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시민교육’이라고 불리는 이들 교육은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시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고, 독일에서는 정치교육, 미국에서는 사회과 형태로 발전해왔다. 서구 국가들의 경우 국가 간 경쟁의 심화 등에 따라 시민교육과 관련된 교육들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 다문화·다인종 사회화, 마약, 범죄 등 청소년의 일탈행동 증가와 같은 문제 해결과 환경과 같은 새로운 가치의 등장 등에 따라 시민교육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시민교육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헌법(법률), 역사, 지리, 경제, 민주주의, 인권, 노동, 다문화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서구의 경우 통합과 새로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시민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시민교육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시민교육 내지는 시민교육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공교육에서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 사회 과목에서 시민교육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시민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됨에 따라 범 교과로서 시민교육이 도입되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정권의 정책에 따라 인·덕성 교육 등 이름과 내용을 달리해서 진행되기도 하고, 일부 자치 교육청에서는 재량권범위 내에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을 갖고 교재편찬 및 사회참여, 학생자치활동을 권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교육은 여전히 제도화 수준이 낮고, 교육여건상 지식 전달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 공교육의 틀 안에서만 진행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정치교육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 시민교육으로서 정치교육이 진행되는 경우로 정치교육은 시민교육의 다른 이름이다. 국가 차원에서 연방정치교육원을 설립하여 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민주시민교육, 시민교육, 정치교육은 차이가 없다. 둘째, 시민교육을 시민을 대상으로 하거나 시민성과 관련된 모든 교육이라는 넓은 의미로 사용할 때, 시민교육 중에서 교양교육과 취미교육을 제외한 교육을 의미하는 경우이다. 즉, 실용, 취미 등의 교육을 제외한 경우로, 정치, 경제, 사회, 법, 역사와 관련된 교육을 의미한다. 앞의 첫 번째 사례를 평생교육의 개념으로 접근할 경우에, 두 번째 사례는 평생교육보다 좁은 의미로서 시민교육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세 번째는 가장 좁은 의미로 정치과정의 참여 또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을 의미하는 경우이다. 주로 공교육에서 정치를 접근하는 시각이라는 점에서 교과서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에서는 선거교육, 참여예산관련 교육, 정당의 교육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상에서와 같이 정치교육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정치교육이 시민교육 등 다른 교육과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정치교육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시민교육의 틀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시민교육 중에서도 정치(교육)의 중요성 내지 우선성을 강조할 경우 정치교육이라는 용어가 시민교육과 구분되어 사용된다.

위와 같은 정치교육의 개념은 제도교육(의무교육)의 틀 내에서 한정되거나 또는 민주주의와 정치를 소극적으로 바라보고, 정치의 새로운 흐름(시민정치, 생활정치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정치는 본래 공동체의 일에 관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공공의 일, 즉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시민의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그리고 공공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을 바보(idiot)라고 불렀다. 정치는 공공의 일을 결정하는데 참여하는 것이고, 공공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였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공공의 일에 대한 관심과 참여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교육으로서 정치교육은 이와 같이 사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의 일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적 소양과 기술, 태도를 갖는 교육과 학습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다. 정치교육을 공공의 일에 관한 교육으로 이해할 때, 그 내용은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지리, 법, 제도에 대한 지식과 이해뿐만 아니라 실천으로까지 확장된다. 즉, 정치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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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청소년 사회참여 발표대회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웹사이트)

3. 한국 정치교육의 현실

한국에서도 사회 갈등의 증가, 새로운 가치의 등장 등에 따라 정치교육을 포함한 시민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제도화 수준은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교육의 제도화 수준이 낮은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시민들이 공공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독재정권하에서 정치교육은 반공교육이거나 정치적 동원을 위한 것이었다. 민주화 세력에게 있어서도 정치교육은 참여가 아닌 저항을 위한 것이었고, 매우 급진화 되어 있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정치교육은 민주화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민주화 이후에 정치교육이 활성화된 것은 아니었다. 첫째, 정치는 가장 인기 없는 것들 중 하나이다. ‘정치’가 국회, 정당, 정치인으로 표상되어 당리당략, 부패, 비리, 거짓 등 부정적인 인식되고 있는 상황은 정치교육의 큰 장애물 중 하나이다. 둘째, 정치를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것으로 여기는 ‘반정치’와 정치(민주주의)를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로 여기는 인식의 확산은 정치교육보다는 경제교육, 기능교육을 우선하여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반정치’는 자본, 언론뿐만 아니라 일부 시민사회단체에 의해서도 조장되었고, 심지어는 대통령이나 여당조차도 의회를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공간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는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경제 발전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셋째 정치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은 정치교육을 이미 충분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교육의 개념을 협의로 정의하는 경우로 정치는 지식과 절차로 축소된다. 이를테면 선거에서 후보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이나 공약에 대한 비교, 평가 및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후보자들에게 정책선거를 요구하거나 자신의 요구가 정책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까지도 시민들의 중요한 역량에 해당된다. 그러나 협의로 정의할 경우 선거와 관련된 교육은 투표 방법에 대한 교육과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를 수동적으로 선택하는 투표행위에 국한된다. 끝으로 생활정치 수준에서의 민주화의 지체는 정치교육의 발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정치교육을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라고 할 때 작업장이나 가정, 학교에서의 민주주의는 사회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상적으로 실천되지 않는 민주주의, 즉 생활 영역에서 여전히 강고한 권위주의는 정치교육의 영역을 국가권력 수준으로 가두어 버린다.

한국에서 정치교육이 활성화되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정치교육을 담당할 주체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권자 교육으로 권력을 통제, 분산하며, 참여를 통해 자원의 분배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정치교육은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과 거대화된 경제 권력과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권위주의적 국가와 자본은 정치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다. 서구와 달리 정당, 언론, 노조, 시민단체 등도 정치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다. 정당은 정치교육을 담당할 기관이 부재하거나 연수원이 있다 하더라고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교육에 불과했다. 그리고 교육보다는 이합집산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주요 언론은 정권과 자본, 그리고 사주의 개입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노조는 정치개입이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노조 스스로도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만 골몰하는 경향을 보였다. 시민단체들의 경우 열악한 환경과 정치적 중립성 등의 이유로 적극적인 정치교육을 진행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정치교육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4·19에서 학생의 분출에서 드러나듯이 공교육에서의 정치교육은 그것이 비록 최소한의 영역이지만 의무교육이고 기본적인 사회화가 진행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선관위에서 진행한 정치교육의 경우도 주로 공정선거와 선거의 참여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현재와 같이 투표율이 중요한 변수인 상황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공정 선거 교육 역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종교의 경우, 다른 단체에 비교적 자유롭게 정치교육을 진행하였으나 그것은 부차적인 활동일 뿐이었다. ‘정치교육’이라는 개념으로 진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정치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협동조합 교육은 민주주의 교육을 포함한다. 협동조합의 주요한 원칙 중 하나가 민주주의인데 민주주의 교육은 곧 정치교육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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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진행했던 <수상한 민주주의> 강의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웹사이트)

4. 시민정치의 활성화와 풀뿌리 민주주의 – 생활정치의 모색

화석화된 대의정치에 대한 저항과 참여로서 시민들은 주권자로서 자기 호명(呼名)과 새로운 참여수단의 발전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 즉 ‘시민정치’를 활성화시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헌법 조문으로 선언적으로만 존재했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촛불시위에서 주권자인 시민들이 자신이 권력을 위임한 통치자들의 결정을 탄핵하면서 스스로가 권력의 원천인 주권자임을 외치면서 실제화되었다.

새로운 시민정치 역시 모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국가의 중대사에 직접 참여해서 결정하는 그런 정치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의 규모와 정책의 전문성 면에서 그럴 수도 없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다른 방식으로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한다. 시민들은 이전과 달리 자신이 주권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선거일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시민들은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선거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온라인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위원회, 참여예산제와 같은 다양한 거버넌스 구조는 시민들의 참여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한 민원이나 제안은 실시간으로 그 진행과정과 결과가 공개되고 있다. 이 점에서 새로운 정치는 과거와 같이 선거에 모든 것을 거는 도박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하나하나 바꾸는 일상적인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지방자치제로 인식되기도 했던 과거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대의 정치의 하위 파트너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민정치의 활성화와 더불어 활성화된 풀뿌리 민주주의는 제도로써 지방자치 의미를 넘어선다. ‘시민정치’가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의 복원과 참여를 중심으로 한다고 할 때 풀뿌리는 시민정치의 출발점인 주권자로서 시민의 자기결정성과 구성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민으로서의 삶은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 자기결정성을 토대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인민주권이, 직접민주주주의가 일상적으로 구현 가능한 공간은 국가공동체가 아니라 생활정치 수준에서의 공동체이이다. 풀뿌리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삶과 관련된 결정에 참여함으로써 다른 시민들과 소통하고, 공존하고, 결정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식과 경험은 풀뿌리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장된다.

시민들이 참여하여 구성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교육과 훈련, 실천을 통해 ‘민주시민’을 양성함으로써 제도정치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소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자치’의 영역에서는 기존의 권력 조직들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데에 있다. 거대화되고 관성화 된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경제, 언론 등 기존의 거대 권력들은 아래로부터 수평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연대와 협동에 의해 재구성되는 시민들의 생활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찾기 어렵다.

강요가 아니라 생활적 필요로부터 수평적으로 구성되는 풀뿌리 생활정치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주인이 되는 생활협동조합의 사례나 공동주택, 공동육아, 대안교육, 다양한 품앗이 활동, 마을극장의 사례에서와 같이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력을 기성 정치와 다른 방식으로 구성한다. 획일적이고 조작된 욕구에 기반을 둔 생산, 소비, 교육, 문화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교육과 생산, 소비,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국가 공동체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권력의 재구성이 가능해 진다. 즉, 자치와 참여를 통해 아래로부터 권력의 다원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5. 정치교육의 장으로서 풀뿌리 생활 정치

생활정치는 풀뿌리에서 공공의 일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정치이다. 일상적인 필요와 요구에서부터 시작하는 생활정치는 시민들의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치교육의 장으로 기능한다. 나와 내 주변에서의 공적인 일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험은 중요한 학습효과를 갖는다. 생활정치의 학습효과는 풀뿌리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생활과 풀뿌리에서의 많은 문제들이 사회 전반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친환경 무상급식의 문제는 내 아이의 급식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된지 오래이다. 밀양 송전탑 문제의 경우 송전탑이 건설되는 몇몇 마을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에너지 정책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생활정치는 미시적인 영역에서 시작하지만 사회와 국가 차원의 정치와 관련되거나 확장된다. 그리고 생활정치에서 시민들의 참여에 대한 경험과 그 과정에서 길러진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효능감은 보다 쉽게 다른 생활정치의 문제나 영역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많은 지역에서 생협이나 협동조합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마을 도서관이나 카페 등을 만들거나 운영하는데 주축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생활정치는 확장되면서 권력과 시장이 축소한 공공인 영역을 확장한다. 즉 생활정치에서 시작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의 재구성은 정치를 축소하고 주변화 하는 위로부터의 정치와 달리 정치를 확장하고 다양화한다.

생활정치에서의 학습은 공교육과 같은 제도교육의 틀을 넘어 경험과 실천을 포함한다. 따라서 풀뿌리에서의 정치교육은 제도 교육에서의 교육과 같이 정형화된 대규모 형태로 진행될 수 없다. 다양한 나라에서 자기들만의 시민교육의 배경과 발전방향이 있듯이 각 공동체는 공동체마다의 맥락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 막 시작했지만 중앙정치에 의해 과도하게 규제되고 있는 교육 자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생활 속에서 필요와 요구를 참여를 통해 구성해가는 생활정치에서 필요한 능력은 단순히 대표를 선택하는 능력이 아니라 정치를 형성하고 구성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육 자치는 민선교육감이나 교육위원들, 그리고 지방의회에 차원에서의 자치가 아니라 개별 학교, 마을 수준에서의 자율성으로의 확대를 의미한다. 교육 자치의 확대를 위해서는 지역 차원에서의 교육 거버넌스와 국가적 수준에서의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생활정치의 활성화를 위해는 무엇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와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치의 주체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정치에서 교육은 공공의 일에 대한 관심과 참여 속에서 효능감을 느끼고 정치의 주체가 되는 학습의 과정이다. 따라서 공교육·사회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참여활동 또는 실천활동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공교육 차원에서 지역의 시민, 사회단체 등과 함께 지역을 탐사하고 그 과정에서 정책을 제안하거나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참여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즉, 학교와 지역이 만나고, 학교, 교사, 주민이 만나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이해하고, 자신의 실천을 통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주체로서의 인식과 사회의 작동원리를 깨닫는 것이다.

끝으로 생활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생활정치 수준에서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와 정치가 분리된 상황에서 생활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학교 일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는 것이 불온시 되고, 가정에서 민주적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생활정치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일례로 현재 학교에서 생활정치를 실천하는 사례는 학생들끼리 잘 지내기 위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 전부이다.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나 학생생활 관련 규칙을 만드는 일에 학생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글_ 이영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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