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를 낚기 위한 ‘영 파운데이션’의 전략

낚시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 ‘낚시꾼’이란 이름표를 달아주고 근사한 낚싯대도 사 주었습니다. 낚시꾼은 낚싯대를 들고 강가에 가서 찌를 드리우고 물고기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가끔 눈 먼 고기가 찌를 건드렸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어도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낚시꾼이 앉아 있는 강가는 물살이 빨라 물고기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닌데, 그것도 모르고 낚싯대만 기울이고 있는 초보 낚시꾼에게 잡힐 물고기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정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 이미 낚시에 익숙한 사람의 경우, 대어를 낚아 더 좋은 낚싯대를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낚시꾼들은 물고기를 잡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사회적기업 육성은 종종 물고기를 잡는 것에 비유 됩니다.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낚시법을 가르쳐 주어 직접 잡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요. 그동안 정부나 기업 등 외부 지원이 ‘단기적인 재정 지원’에 집중되면서 많은 사회적기업이 ‘낚싯대 딜레마’에 빠지고 있습니다. 초보 낚시꾼이 낚시를 시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낚싯대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결코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정책방향이 점점 사회적기업을 둘러싼 생태계 조성으로 전환되고 있는 이 때, 초보 낚시꾼과 함께 낚싯대를 잡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같이 고민해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바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절실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국의 대표적인 중간지원조직인 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의 런치패드 프로그램을 살펴보면서, 바람직한 인큐베이션 기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중간지원조직(intermediary)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적기업을 육성해 왔습니다. 런치패드 프로그램은 이러한 사회적기업들이 겪는 어려움,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완성도 있는 사업을 만들어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_1C|1262785113.jpg|width=”550″ height=”35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런치패드 인큐베이팅 과정_##]

런치패드 프로그램은 3가지 단계로 구분됩니다. 가장 먼저 다양한 사회 이슈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런치패드 누리집을 통해 공모하고, 창립자와 전문가의 분석을 수렴하여 평가 기준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선발합니다. 이 때 고려하는 사항은 ▲사회적 영향력 ▲다른 아이디어와 차별성 ▲비즈니스로서의 지속 가능성 ▲다양하게 적용이 가능한 확산 ▲아이디어를 실행할 사람들의 진정성 입니다. 이후 선발된 아이디어는 구체화 과정을 거칩니다. 사업과 관련하여 해당 사회 서비스 욕구 조사 등 많은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지고 투자에 적합한 대안을 찾게 됩니다.

두 번째는 사업화전략 단계입니다.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지속가능한 컨셉에 맞춘 사업지원이 이루어집니다. 보조금(grant), 융자나 주식(equity)의 형태로 자금지원이 이루어지는데, 각 사업 진행 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집니다. 자금 지원 이외에도 영 파운데이션 내 전문가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경영 지원 팀이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컨설팅, 경영이나 해당 사업 영역 관련 기술적 지원 등을 함으로써 구체화 된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현실화하게 됩니다. 사업으로 시작할 준비가 되면 시장에서 바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기존 사회서비스 영역과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세 번째는 사업 안정화 단계입니다. 사업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해결할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이 이어지는 단계입니다. 최소 하나 이상의 주요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필요에 따라 제3자로부터의 지속적인 투자가 가능하도록 조정합니다.

이처럼, 최초에 선정된 아이디어는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업이 되기까지, 총 18개월간 런치패드 프로그램 과정을 거치며 지원을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단계별로 차별화된 자금과 기술 지원 과정’이 있다는 것과 18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사업의 완성도’를 높여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런치패드가 사회적기업 육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만들어진 전략인데요. 한 번에 자금을 지급하거나 단계별로 같은 금액을 지급하다 보면 자금 사용에 익숙하지 못한 초보 기업가의 경우 자금 사용의 효과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3년 이상 건강한 실적을 올린 기업에게만 충분한 융자를 해 주는 영국의 현실상, 단기간에 사회적기업을 성장시켜 시장에 내 보낼 경우 자금 유용의 어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자금을 지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 파운데이션이 직접 주주로 사업 투자에 참여해, 후에 사업 이윤을 배당 받기도 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사회적기업의 성장에 단순한 조언자가 아닌 사업 파트너로 함께 하는 것인데요. 물론 가끔 이익 배당을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회적기업의 항의를 받기도 한답니다.

안에서 바꾸고 밖에서 도와 건강한 사회 만들기

영 파운데이션은 현재 이러한 과정을 거쳐 건강 의료 서비스와 관련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헬스 런치패드(Health Launchpad)와 교육 문화를 새로 만들어가는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러닝 런치패드 (Learning Launchpad)를 운영 중입니다. 먼저 헬스 런치패드는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목표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의 NHS 시스템이 일상 건강관리와 장기적인 관심이 필요한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 등의 관리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건강에 관한 수요가 있는 곳에 적절한 건강 관련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헬스 런치패드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NHS 내부 직원들과 런치패드 팀, 그리고 신생 사회적기업의 협력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회적기업가 레지던스 SEiR(Social Entrepreneur in Residence)’라는 이름으로 기존 의료 시스템과 조직 안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직원들 스스로 파악하고, 외부 전문가나 런치패드 프로그램 내의 유관 사회적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이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기존 의료 체계 안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하여 개선해 나가는 효과가 있고, 더불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회적기업의 사업계약 연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런치패드의 ‘사회적기업가 레지던스’ 전략을 통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자리를 잡은 ‘마슬라하 헬스(Maslaha-Health)’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기업은 영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종교나 문화적인 이유로 건강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무슬림이 사는 지역의 NHS 또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데요, NHS와의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건강관리가 필요한 이 지역 무슬림 환자들이 손쉽게 건강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쓰인 건강 관련 자료나 DVD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해 왔습니다. 비만, 당뇨, 혈관 질환 등의 환자들을 위해 라마단 금식 기간 동안 따라 할 수 있는 건강관리시스템을 따로 만드는 등 지역민의 욕구를 반영하여 지역의 건강 상태를 향상시켜 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NHS와 정식 계약을 맺어 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배우고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러닝 런치패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아이디어를 지원합니다. 요즘 청년들이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찾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교육을 받다가 사회에 나가서 쉽게 좌절하는 것을 보고 그 문제의 원인이 교육에 있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청년들이 학문적인 영역을 넘어서 성공에 이를 수 있도록 돕고, 행동을 통한 배움 (learning by doing)을 지원하며, 교육에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자금 및 체계화 된 기술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14개의 팀을 지원하였고 현재까지 다수가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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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업으로 꼽히는 것은 ‘모든 것의 학교 (School of Everything)’입니다. 폴 밀러(Paul Miller)와 다섯 명의 친구들이 2007년 영 파운데이션을 찾아와 제안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 것인데, 모든 것의 학교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것. 온라인을 통해 가르칠 것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르치고 배우고 싶은 사람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감동한 영 파운데이션은 러닝 런치패드를 통해 씨앗기금과 사무실을 제공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기금마련 전략 등을 지원했습니다. 창립자인 폴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 파운데이션이 없었다면 시작은 꿈도 못 꿨을 거예요. 우리가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경험에 근거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의 학교는 2009년 10,000명의 회원을 기록하고 현재도 계속 규모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정답은 없다

영 파운데이션의 대표이자 런치패드 개발자인 사이먼 터커(Simon Tucker)는 여전히 런치패드 프로그램 운영 상 발생하는 문제들로 고민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적인 전략을 세우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해 안전한 성장과정을 거쳐 주류사업화 되는 방식을 이상적으로 생각해 왔으나, 최근 처음부터 기존의 큰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공공부문에서 자리를 잡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방식이 낫다는 쪽으로 생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사회적기업가 레지던스(SEiR)’도 공공부문의 조직들과 협력 관계를 통해 일을 해 나간다는 점에서 이 전략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잠재력 있고 열의가 있는 사회적기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 해결책으로 영 파운데이션이 자체적 연구를 통해 사회 혁신의 가능성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 스스로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을 위한 자금 지원과 기술 지원 외에도 사회적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투자해 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적기업 지원과 사회적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보스턴컨설팅, 빅소셜뱅크와 공동 연구하여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휴면계좌의 돈을 투자에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 중입니다.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기업의 육성을 고려할 때 영국 정부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돈입니다. 사회적기업의 전문성이나 네트워크 등은 정부에게는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한국에 비해 민간 사회적 투자자들의 활동이 활발하지만 이들의 관심도 인큐베이션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아니라 단기간에 걸친 수익 목적의 투자인 것이 큰 고민입니다.” (2012.02.14, 영파운데이션, 한국 중간지원조직 세미나 )

성공적인 인큐베이션을 위한 전략에 정답은 없습니다. 런치패드의 개발자인 사이먼 터커도 여전히 많은 고민을 하는 중이고, 희망제작소를 비롯한 한국의 중간지원조직(intermediary)들도 모두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입니다. 인큐베이션 과정은 비슷해도, 전략은 많은 변수에 반응하며 탄력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국내외 중간지원 조직들의 사회적기업 인큐베이션 전략을 살펴보다 보니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 보입니다. 바로 사회적기업의 진정성입니다. 사회적기업가들이 가진 열심과 진심만큼은 전략적으로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잡고 싶다는 마음에 진정성만 있다면, 중간지원조직이 옆에서 함께 낚싯대를 잡고 고기 잡는 법을 고민할 것입니다. 오늘도 대어(大漁) 잡는 방법을 고민해 봅니다.

글_ 노율 (사회적경제센터 인턴연구원)

Comments

“대어를 낚기 위한 ‘영 파운데이션’의 전략” 에 하나의 답글

  1. 기사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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