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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그동안 숨겨왔던 나의 질병을 하나 고백하려 한다. 나 이외에 이 질병을 앓는다는 환자를 본 적이 없으므로 병명은 할 수 없이 내가 지었다. ‘연구원 분열증’ 풀 네임을 적자면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어떤 행위에 대해) 분열증(적 내부 혼란을 겪다 정신을 차리는 병)’이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을 밀접 접촉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증상이 시작되었으니 병력이 상당히 길다. 처음엔 증상이 경미하여 그저 잠깐 놀라는 정도였다. 어떤 연구원이 이야기 중에 희망제작소를 ‘회사’라고 일컫는 걸 들었을 때, 또 어떤 연구원이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해 신랑 후보자감을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놀랐다. 맥락상 ‘직장’이란 뜻으로 쓴 것 같아서, 또 20대 선남선녀가 짝을 찾는 방법에 대해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는 것도 편견인 것 같아서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몇 번 증세가 심했던 적도 있다. 야근, 휴일근무 등에 근로기준법을 들이댈 때,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던 연구원이 더 나은 곳으로 떠날 때, 사직할 때 덜 쓴 연차 따져 계산할 때, 공동체행사에 자주 빠질 때,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준을 적용해 상급자나 조직을 비판할 때는 정신을 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니, 공적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시민사회 기반 조직에서 어떻게 저런 깍쟁이 같은 요구를 할 수가! 우리 땐 내 돈 써가며 일했는데.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얼마나 더 열악한데! 상급자 무능하다면서 자기는 뭐 얼마나 일 잘한다고 헌신성이 있어야지, 헌신성이!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한다고 피 토할 땐 언제고 결국 더 편한 데로 가는 거야? 사람 모이는 곳이면 다 있는 일 가지고 정말 심하게 말하네 ’ 여기서 끝나면 병명이 분열증일 리가 만무.

명찰 만들기부터 간식 구입, 참여 요청 전화 돌리기, 차표 예약하기, 선물 포장하기, 제안서 쓰기, 사진 찍기, 홈페이지에 관련 기사 올리기, 비용 정산하기…. 삼성경제연구소나 한국개발원 연구원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연구원들을 보면 갑자기 애틋한 마음이 들고, ‘그래, 80년대, 90년대랑 비교하다니 어휴 내가 꼰대가 다 됐나 봐. 좋은 사회란 시민운동 하는 사람도 9 to 5 하는 사회지. 우리가 그런 사회서 살아보자고 이러고 있잖아. 20대 때 날 세우지 않으면 언제 날 세우겠어. 우리 20대 땐 더했잖아. 사실, 결정권한이 많은 사람이 책임도 많이 져야지….’ 중얼거리다가, 유명짜한 컨설팅 회사의 컨설턴트에게서 월급이 얼마인지 듣고 오는 길, 어떤 연구원의 맑은 눈망울이 문득 떠오르고 공연히 눈물이 나면서 증상이 끝이 난다. 끝없이 흔들리는 나 자신을 미워하는 약간의 후유증을 남긴 채로.

그러나 함께 기뻐해 주시라. 최근 나는 신경림의 <갈대>라는 시를 다시 읽다가 불현 듯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나의 분열증, 나의 흔들림도 그런 것이 아닐까? 불평등, 부정의, 모욕과 멸시, 편견과 차별, 탐욕과 어리석음이 편재하는 이 세상, 이 현실 속에서 그 못지않게 불완전한 내가 어떻게든 조금 더 나아져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흔들림 자체가 존재의 방식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연구원들도 늘 흔들리고 있지 않을까?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목적과 수단 사이에서,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어쩌면 이 흔들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나침반의 바늘 끝처럼.

글_ 유시주 희망제작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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