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지역재단은 지역주민의 기부로 기금을 조성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변화와 발전에 쓰이도록 배분하는 곳입니다. 지역재단은 복지 외에도 지역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지원하며, 기금을 개인에게 직접 배분하기보다 필요한 단체나 사업에 배분함으로써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재단 연속세미나 후기 참조)


한국에서는 2006년 천안풀뿌리희망재단이 설립된 이후 부천희망재단, 성남이로운재단, 안산희망재단, 인천남동이행복한재단 등이 설립되었습니다.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혀가며 지역의 공익활동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지역재단을 소개합니다.


월급 끝전 모으기, 참좋은가게???지역 기부문화 일구는 부천희망재단
– 부천희망재단

지난 글에서 안산희망재단을 통해 세월호 참사라는 지역의 큰 사건에서 지역재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소개했고, 성남이로운재단 장건 이사장 인터뷰에서 지역재단의 설립과정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부천희망재단은 최근 부천에 사는 신용불량 대학생 17명의 학자금 대출금을 갚아 주어 화제가 됐습니다. 학자금 대출로 신용불량자가 된 부천 청년들의 과거를 지우는 캠페인이란 의미로 ‘지우개 캠페인’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지우개 콘서트’를 열어 22,291,463원을 모금했고, 이 돈으로 대출 원금을 갚았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해 주는 기관인 한국장학재단과 MOU를 맺어 해당 대학생들의 이자도 전액 삭감해 주기로 했습니다.

부천희망재단은 경기도 최초의 지역재단으로 설립한 지 4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재단입니다. 그렇지만 지역재단으로서 입지도 단단해, 지역재단 벤치마킹을 위한 모범사례로 꼽히곤 합니다. 부천희망재단의 김범용 상임이사는 지역재단을 설립하고자 하는 곳에서 자문 1순위로 지목되고, 각종 모금 강연에서 러브콜을 받는 인기 강사이기도 합니다. 김범용 상임이사로부터 지역재단 모금전략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김범용 부천희망재단 상임이사

▲김범용 부천희망재단 상임이사

모금 아이디어가 모락모락

지난해 부천FC 최진한 감독이 지역에 있는 어려운 아동들을 돕고 싶다며 자녀 결혼식에 들어온 쌀 화환을 부천희망재단에 기부했다. 축구팀 감독이 지역재단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기에 후원할 수 있었을까?

“부천FC와 저희는 2011년에 사회공헌사업협력 업무협약을 맺었어요. 특정 날짜 홈경기 경기 입장료 수익을 ‘거리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기금’으로 저희에게 기탁하기도 하고요. 저희가 경기장에 가서 홍보활동도 합니다. 그러니 감독님께서도 자연스럽게 저희를 아시게 되었죠. 저희는 지역에 있는 기관, 단체나 언론사 등과 MOU를 적극적으로 맺습니다. 수십 곳이 돼요.”

부천희망재단은 다른 재단이 하는 모금 프로그램인 거리캠페인, 음악회, 바자회나 지역 상점 매출액 일정액을 기부 받는 ‘참좋은가게’, ‘월급 끝전 모으기’뿐 아니라 새롭고 다양한 모금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국에선 동전을 넣으면 재미있게 떨어지는 게임 도구 같은 모금통이 있더라고요. 그걸 사서 부천에 있는 만화박물관에 놓았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굉장히 신나게 동전을 던지면서 기부를 하더라고요.

마트에 가면 동전을 넣어야 카트를 쓸 수 있잖아요. 카트를 반납할 때 동전을 꼭 찾아가기보다 기부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트에 동전 수거함을 설치하자고 아이디어를 내서 지역에 있는 마트에 찾아갔어요. 담당자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지만, 본사에서 검토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본사에 가서 설득하라는데, 지역에 있는 재단이 본사까지 찾아가서 모금통 놓기란 쉽지 않잖아요. 아직 지역재단 인지도도 낮고 하니 애로사항도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금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골몰하다보니, 다른 곳에 가서도 모금을 어떻게 잘 할지를 눈여겨보게 된다.

“저희가 모금 컨설팅도 할 수 있어요. 성북동에 있는 최순우 옛집에 갔는데요, 거기 놓인 모금통이랑 방명록 위치를 바꿔주고 왔어요. 지역재단은 어딜 가서든 다른 생각을 하고, 더 나은 방법으로 모금하도록 아이디어를 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일본 도쿄에 갔다가 도시농업 공원과 광장을 단체가 기부받아서 운영하는 걸 배웠어요. 부천에서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어디에 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 시에 제안했거든요. 처음엔 공무원들이 잘 믿지를 못하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십수년간 방치된 폐 정수장을 활용하여 만든 여월도시농업공원입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어도 계속 배우고 부딪혀 보는 거죠.”

기부를 받는 사람뿐 아니라 기부하는 사람과 기부를 제안하는 사람 모두에게 인센티브가 있어야 해요. 행정에게도 좋을 일이 있어야 해요. 제가 희망제작소에서 했던 모금전문가학교를 수강했을 때 뭘 배웠냐면, 기업의 컨설팅 방식이에요. 기업은 목숨 걸고 물건 팔아야지 잘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아무것도 안 주고 돈을 달라고 하면 안 되겠죠. 기부자에게 우리 재단에 돈을 내서 엄청난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하거나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거나 해야겠죠. 적어도 ‘저곳에 돈을 기부하면 좋은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래서 기부한 사람들을 칭찬해 주는 행사인 기부천사의 날을 만들었습니다.”

김 상임이사는 지역재단 활동이 왕성하게 이뤄지면 기부에 인색하고 어색한 한국사회의 기부문화를 바꿔내는 활동도 함께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이든 온갖 돈을 모아보려고 생각해요. 어디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면 다시 사무실에 던지는데, 이게 응용돼서 모금으로 연결되는 게 부족해요. 사람이 없어서 그렇죠.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에요. 옹기박물관에 가서 큰 옹기를 봤어요. 거기에 동전 던지면 좋을 것 같아서 사무실에 얘기했는데 실행할 여력이 없는 거죠. 그래서 제가 직접 박물관 학예사를 만나고 설득하고 기획안을 작성해서 제안서를 냈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박물관에는 복 항아리가 돈을 먹으며 활동 중입니다.”

운영 재원이 빠듯하니 지금 인력으로는 기존에 있는 사업을 꾸려가기도 벅차다. 상임이사는 거의 무보수로 일하고, 상근자 두 명 인건비도 고액 기부자 두세 분의 지원으로 충당한다. 사무공간도 지역의 어르신이 기부해 주셨다. 법적으로는 모금액의 15%까지 재단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기부자들이 기부금을 운영비로 쓰길 꺼려하는 인식이 있어서, 작은 단체들이 모금액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영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설립 후 2~3년 동안은 생존이 중요해요. 좋은 일에 배분하는 것보다, 재단 살림을 안정화시키는 게 급선무죠. 취지에 공감해 주신 고액 기부자 두세 분이 계셔요. 간곡하게 설득해서 매달 운영비를 후원받았어요. 이렇게 해 주는 분이 몇 분만 계셔도, 어떤 재단이든 처음에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미국 지역재단도 그랬다고 들었어요. 초기에는 고액 기부자들이 있었죠. 150만원을 만들려면 1만원씩 150명 모아야 하잖아요. 그분이 먼저 후원을 해 주시는 동안 열심히 소액기부자를 만들어야죠. 공익단체 만들 때는 그게 핵심인 것 같아요.”

연구나 기획하는 역량이 부족해서 목이 말라요.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기업에서 지역재단을 돕는 인력을 파견해 주는 거예요. ‘드림투게더’라고 21개 기업이 연합해서 만든 전국 지역아동센터를 돕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KT 직원이 파견돼서 그곳을 도와주고 있어요. 우리 지역재단도 기업이 직원을 파견해서 도와주면 기업도 사회공헌 활동이 될 테고,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해보고 싶은 직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새로운 기부 툴을 만들어서 기업과 MOU를 맺는다면 공익재단이 살아남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되겠죠? 기업도 공익에 대해서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을 테니 사회공헌을 하는 데도 연결이 되겠죠.”


지역의 신뢰를 바탕으로 모금이 이뤄진다

사무실 공간을 내어 주고, 운영비를 매달 큰 몫 지원해 주는 고액 후원자가 있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생 지역재단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물었을 때, 김 상임이사는 ‘신뢰’라고 답했다.

“전 부천에서 30년 동안 있었어요. 저는 YMCA랑 부천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어요. 그래서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구 설득시킬 때 눈빛을 보고 저 사람의 요구가 정말’진심이고 간절하구나’ 하는 걸 보여줘야지 할 수 있죠. 지역재단 일도 마찬가지예요.”

부천희망재단은 ‘강희대부천시민상’이 뿌리가 되어 설립됐다. 서예가이자 민주화운동가였던 강희대 선생이 타계하고 나서, 지역에서 이분을 기리는 상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어서 1억원을 모았다. 이 기금으로 올곧은 부천 시민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상을 주자는 취지였다. 김범용 상임이사는 그곳의 운영위원장을 하다가, 지역재단으로 발전시켰다.

“강희대부천시민상에서 월 200만원을 지원금으로 내주면 설립 준비를 하겠다고 했어요. 지역재단 연구도 하고 창립준비도 했죠. 준비위원회를 띄웠죠. 그분들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했어요. 저는 부천 시민사회에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일을 해 왔는데요, 거기 활동을 통해서 만나고 이어온 지역사회 소중한 분들이 사무실이랑 큰돈을 기부하셨어요.”

지역의 시민사회 토대가 탄탄하게 다져지고, 재단의 설립과 초기 운영을 힘 있게 추진할 인사가 있으며, 시민사회 인적 자원이 힘을 합하여 재단이 설립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민간 지역재단 설립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인적 구성이 특정 분야에 편중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돈을 끌어내려면 아주 유연해야 해요. 모두 시민사회 인사로 구성되면, 사람들에게 특정 세력의 것이라고 낙인찍히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이사 선임에도 신중했어요. 모금위원회에는 돈 많이 모아본 사람이 들어와야죠. 경영학 교수나 기업인사도 포함됐고요. 아는 사람들의 자원만 끌어쓰면 뭐 하겠어요. 담쟁이 타고 가듯이 줄 타고 사람들을 엮어가는 사람들이 모금위원회죠. 배분위원회에는 ‘이분들은 욕심 없이 공모 심사를 하겠구나’라고 생각하게끔 믿을만한 사람들이 포진되어야죠.”

‘모금’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역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새로운 모금 기획안을 들고 분주히 뛰어다니는 부천희망재단과의 만남을 추천하고 싶다.

인터뷰 및 정리_ 우성희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sunny02@makehope.org

부천희망재단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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