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이웃랄랄라 기억하시죠? 지난해 사회창안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한 이정인님의 싱글 에코네트워크 프로젝트입니다. 이정인님이 합정동 건물 옥상에 이웃 싱글들과 함께 도시 텃밭을 꾸려가기 시작한 뒤 어느덧 8개월의 시간이 지났는데요, 얼마 전 반가운 소식 하나를 전해오셨답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하는 2010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 ‘우리동네 예술동네’ 수기공모에 응모해 당당히 3등상을 거머쥔 것이지요. 이정인님은 옥상 텃밭의 작물들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싱글 에코네트워크의 성장과정을 달별로 꼼꼼히 정리해 수상의 영예를 누리셨는데요, 해당 수기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현재 2010 수원시민창안대회도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웃랄라라의 뒤를 이어 또 어떤 멋진 프로젝트가 탄생할지,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 주위에는 고향을 떠나 타지의 대학진학을 계기로 1인 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자취생’으로 불리는 이들은 조리가 간단하고 값이 싼 인스턴트 푸드와 배달음식으로 불규칙한 끼니를 해결 했으며 그마저도 거르는 일이 잦았다. 학교와 직장 근처를 따라 자주 이동하는 보증금+월세의 원룸 생활은 ‘우리집’ ‘우리동네‘ ’동네 이웃‘을 만들 시간과 기회를 만들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서른이 된 지금 그들의 공통점은?

위장 관련한 각종 질병, 동네에 아는 사람도 한명 없이 잠만 자는 방 한 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1인 가족이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햇반’이나 ‘원룸’처럼 경제적 소구 대상이나 출산율 저하의 주범으로 지칭될 때나 언급될 뿐, 1인 가족들은 늘 사회문화제도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그들도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싶고, 동네친구를 만들어 보고도 싶지만,
 
‘주말농장은 차 없이 가기 어렵고, 대부분 가족단위라 눈치가 보인다’ – 김유진, 32세
‘요리 좀 해볼까 싶어 들른 마트에서 파는 야채들은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 포장되어 있어 냉장고에서 썩어버리기 일쑤’
                                                                                                                                                                                                     - 김혜연,33세
‘용기 내어 나가본 반상회에서는 혼자 사냐, 결혼은 언제 할꺼냐는 등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들로 난처하게 만든다’
                                                                                                                                                                                                     - 이윤주,31세
 ‘옆방 사람과 안면이나 터볼까 싶지만 어제 본 ‘원룸 사는 성폭행범’ 뉴스가 떠올라 고개를 젓게 만든다’  – 김은영,29세

같은 고민과 같은 외로움을 가진 1인 가족들이 모여 함께 텃밭을 일궈 보면 어떨까?

인스턴트에 찌든 육체를 신선한 야채로 정화하고,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키워보자는 초록빛 취지에서 ‘이웃 랄랄라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우선 합정동 벼레별씨 까페 건물 옥상을 텃밭 장소로 섭외하고, ‘인천 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진행하는 한 달짜리 도시농부학교 수업을 들었다. 이곳에서 각종 절기와 작물 종류, 재배법, 유기농 거름 만드는 법 등을 배우며 간신히 까막눈을 벗어날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월 말에 포털 사이트에 웹커뮤니티를 만들고, 본격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도시농업관련 커뮤니티와 트위터, 희망제작소 등에 글을 올리고, 옥상텃밭이 있는 벼레별씨 까페와 합정동 골목에도 포스터를 붙였다. 이때만 해도 ‘이 귀찮은걸 하겠다고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는 생각에 딱 열 명 정도만 와도 좋겠다 싶었는데…

이게 웬일, 3주 만에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까페 회원가입을 했고 실제 오프라인 활동에 참여하겠다는 신청도 서른 명을 넘어서는 바람에 부랴부랴 조기 마감을 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 1인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그만큼 부족했다는 것과 적절한 기회에 손을 내밀면 그들도 언제든지 방을 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2시. 합정동 벼레별씨 까페 옥상에서 ‘이웃 랄랄라’ 첫 모임이 열렸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20대 중후반~30대 초중반의 연령대로 일반 회사원부터 생협 간사, 젬베 연주가도 있었다. 각자 모임에 오게 된 계기와 기대하는 점을 인사를 통해 나누면서, 또 각자 가져온 개인용 텃밭 상자를 예쁘게 장식하면서 어색하던 분위기는 점차 웃음 섞인 대화로 바뀌어 갔다.
 
특히 개인 텃밭 상자의 경우 미리 재활용 박스로 들고 올 것을 주문했었는데, 스티로폼 박스부터 바퀴달린 수납상자, 대형 종이원통 그리고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던 아이스백까지 회원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해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리고 이날, 향후 모임 진행 형식에 관련한 몇 가지를 결정했다.

1. 경작방식: 각자 원하는 작물을 심고 재배하는 개인경작과 모두가 함께 가꾸고 수확할 공동경작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한다
2. 회비: 경작에 필요한 씨앗과 도구 그리고 참여 독려를 위해 연회비 3만원을 내고, 지출내역은 까페에 공개한다
3. 대부분 직장인임을 고려하여 공식 모임은 한 달에 한번, 토요일로 정한다
4. 물은 번갈아 가면서 주되 까페 캘린더에 각자 가능한 날짜를 표시하여 겹치거나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유달리 추위가 길었던 이상기후 때문에 4월 모임에서야 씨를 심을 수 있었는데, 그에 앞서 흙을 퍼오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사실 심고 재배하는 생각만 했지 정작 경작의 가장 기본인 흙이 도시 옥상에는 없음을 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퍼올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망원동 성미산 자락까지 가서 흙을 퍼 날랐다.
 
여초현상이 극심한 모임 특성상 다들 삽질도 서투르고 작은 푸대로 여러 번 옮기는 일명 ‘개미 작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삼일에 걸쳐 열 번도 넘게 옥상과 성미산을 오르내리느라 기진맥진 했다. 이후 모임에는 남자분이 오실 때마다 일단 삽질의 숙련도를 위해 ‘군필’임을 확인한 후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미리 각자 원하는 작물 신청을 받아 사온 씨앗과 감자를 심고, 특별히 참석해 주신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오창균 선생님의 천연 퇴비만들기와 병균퇴치에 대한 현장 강의도 들었다. 흙이 부실하진 않을까, 날이 너무 추운건 아닐까, 완전 초짜들인데 뭔가 잘못 심은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이 계속되던 5월, 드디어 초록빛 싹들이 이웃 랄랄라 텃밭을 덮기 시작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잘 나와 준 싹들이 고맙기도 해서 ‘솎아줘야 잘 자란다’는 말에도 왠지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싹을 뽑던 날, 샐러드와 비빔밥 파티가 열렸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밥통의 남은 밥과 반찬에 갓 따온 야채들을 넣어 비빔밥을 만들고 누군가 가져온 ‘회사 워크숍에서 남은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정기 모임 이외에도 젬베 연주가 회원의 공연에 가거나 부천영화제를 보러 가기도 하고, 1인가족 특성상 남기 일쑤인 반찬을 서로 나누는 만남을 갖기도 하는 등 비정기적 ‘번개’들도 곧잘 열렸다.

7월에는 감자를 캐고 모종을 심었다. 작은 상자마다 한 알씩만 심었는데도 감자알이 주렁주렁 발견될 때마다 옥상은 온통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뜯어먹는 재미도 좋지만 캐먹는 재미가 이렇게 신나는 것인지 몰랐다며 내년에는 감자만 심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이날 한 쪽에서는 일명 ‘관 상자’로 불리는 커다란 텃밭 상자에 고구마 모종을 한가득, 다른 상자에도 가지, 방울토마토, 고추, 수박, 참외 모종을 심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리고 노동 후에 찾아온 휴식. 그날 캔 감자와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으며 첫 수확의 기쁨을 만끽했다. 혼자 사는 각종 에피소드 이야기에 다함께 공감과 폭소를 터뜨리며 시간가는 줄 몰랐던 여름밤이었다.

여름휴가를 맞추어 함께 인천의 승봉도로 MT를 가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방울토마토와 가지, 고추 등을 따 먹으며 8월을 보냈다. 뒤늦게 태풍과 장마가 몰아쳤던 9월에는 모임 날에도 비가 계속 내려서 우의를 입고 일을 해야 했다.

엄청난 기세로 자라고 있던 고구마 순을 함께 다듬어서 반찬거리로 가져가고, 아직 남아있던 방울토마토와 가지를 모두 땄다. 옥상텃밭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심지 말라는 조언에도 몰래 심었던 수박은 주먹만한 크기로 딱 한 알이 열렸는데 예상외로 맛이 좋아서 감격했다. 소량을 선호하는 1인가족에게 적합한 맞춤형 수박이니 개발판매 해보자는 사업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쌀쌀한 10월이 되어 드디어 고구마를 캐던 날. 무성한 고구마순을 걷어내고 흙을 파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깊이 박혀 있던 고구마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준비 해온 두 개의 휴대용 가스렌지에 불을 붙이고 ‘1인가족의 필수품’으로 평가된 직화구이 냄비에 고구마를 올리자 옥상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구수한 냄새는 잊을 수가 없다. 군고구마엔 우유가 최고라는 의견에 따라 다함께 우유 병나발을 불며 고구마 파티를 즐기고 2차를 갔다. 11월 모임에는 배추와 쪽파를 수확해서 부침개를 해 먹으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회원 한명 한명마다 어떤 소회를 가지고 있을지는 연말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 알 일이지만, 전혀 모르던 도시의 1인 가족들이 모여 농사 짓는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그 안에서 누릴 수 있었던 소소한 즐거움과 새로운 경험들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각자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믿는다.

올해의 좌충우돌 경험을 발판삼아 내년에는 조금 더 확장된 규모의 농사와 공동체 활동을 하고 싶다.  일단 기계의 도움을 받은 흙의 대량지원과 배수ㆍ급수 시설이 절실하고, 작물의 유형과 종류도 다양하게 하고 싶다. 각 달마다 담당자를 정해서 농사 및 친목활동 계획을 맡도록 하면 좋겠다. 농업에 대한 이해도 더 커질 것이고 친목활동의 내용도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웃 랄랄라 옥상이 있는 건물이 인근에서는 높은 축에 속해서인지 주변 주택들의 옥상이 쭉 내려다 보이는데, 옥상 텃밭을 하고 있는 집들이 꽤 보인다. 상자텃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호박이 주렁주렁 열린 엄청난 내공을 자랑하는 집도 있다. 만약 내년부터 일정 이상의 수확량이 확보된다면 1층에 자리한 벼레별씨 까페를 통해 이웃 랄랄라 뿐만 아니라 합정동 텃밭에서 각자 키운 작물들을 함께 모아 판매하는 ‘동네채소 벼룩시장 네트워크’도 기획해 보고 싶다.

글ㆍ사진제공_ 이정인

※ 수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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