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학교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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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백년지대계 (敎育百年之大計)

사람을 키우는 것은 100년의 계획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오랜 시간과 지극한 정성이 필요합니다. 교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사회의 근간을 이루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길러내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이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실천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 시대의 교육 가치와 교육 현실을 점검하고, 사회적경제 안에서 어떤 교육의 대안들이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릅니다.
엘리트만 대접받고 나머지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세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교육이라야지요.
타고난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며 자립하는 실력을 기르고
역사의식을 갖고 공동체의 활력에 기여하는 교육이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는 작아야 하지요.

– 홍순명 풀무학교 전 교장, “마을이 학교다 (17p)”

청춘, 아픔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시대 교육은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을까요? 높은 교육열, 과열된 사교육 시장, 그리고 일등주의와 최고주의 속에 병들어가는 학생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이라는 총 12년 동안,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과정을 견디어 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스스로 익히는 ‘학습’ 대신에 누군가 맞추어 놓은 주입식 교육 속에서 삶에 대한 고민은 할 틈도 없이 모두가 걷는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경쟁을 통해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 이상의 다른 꿈을 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성적 비관이나 학교 폭력으로 인해 자살하는 학생 수가 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대부분의 학교는 ‘좋은 성적’을 통해 유명한 대학에 가는 것 이상의 목표를 학생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어른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무거운 부담을 느끼며 우리 사회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신을 맞추어 가고 있습니다. 줄에서 벗어나면 ‘별종’, ‘낙오자’, ‘실패자’라는 이름표가 따라 붙는다는 두려움 속에 말입니다.

비단 학생들만의 일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만들고자 대학에 들어가고, 다양한 대외활동과 해외연수를 다녀오며 취업을 대비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 나아가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말 그대로 ‘배부른 소리’로 취급받고는 합니다.

이처럼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협동보다는 경쟁을, 사회보다는 경제를 우선으로 여겨 온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 ‘교육’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올바른 사람을 키워내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교육 개선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먼저 필요해 보입니다. 청춘이 겪는 혼란과 고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이전에 무엇을 위해 청춘들이 이토록 아파야 하는지, 그것이 아플만한 타당한 이유인지에 대한 질문이 앞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변화는 교육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의 참여와 협력 속에 일어날 것입니다.

교육가치 회복을 위한 시도들

사회가 지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 왔습니다. 먼저 경쟁 위주의 공교육 체계에 반대하고 대안학교를 설립하여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교육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홍성 지역에서 ‘더불어 사는 평민’이라는 교훈을 바탕으로 자연과 평화와 공동체를 50년 넘게 가르쳐 온 풀무학교와 ‘어른들과 아이들이 세대를 넘어 소통하는 마을학교’를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있는 마포구 성미산학교가 그 일례입니다.

이들 대안학교는 경쟁이 아닌 함께하기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고민하고 목표와 방법을 결정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교과서에 쓰여진 지식보다는 살아있는 지식을 키울 수 있도록 현장에서 실천을 통해 학습을 하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학교와 지역의 연계를 통해 교육이 학교 밖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학생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인 지역에 대한 이해와 교육은 당연히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풀무학교의 경우 일찍부터 신용협동조합과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역과의 연계점을 만들어 왔습니다. 졸업생들은 지역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함께 지역을 키워나가며, 홍성이라는 지역과 풀무학교를 함께 발전시켜 가고 있습니다. 성미산학교의 경우에도 지역의 생활, 일, 문화공동체 속에서 학생들이 삶의 지혜와 인간의 기본적 관계를 배워갈 수 있도록 지역에 기반한 학생 주도 프로그램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이와 구분하여, 공교육 안에서 대안을 찾아가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참 삶을 가꾸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라는 구호 속에 2001년 작은 학교로 전환한 남한산초등학교와 거산초등학교가 그 일례입니다. 이들은 교육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 및 지역민 간의 오랜 논의와 준비를 통해 작은학교를 설립하고 공교육에 새로운 교육의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동안 강조되어 온 획일화된 교육이 아닌 최대한 아이들의 자율성을 살리고, 교육 주체 간 자유로운 소통의 창구를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들도 핵심 운영의 주체로 참여하여 꾸준한 공부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영국에는 최근 이와 비슷한 사례로 협동조합 학교(Cooperative School)가 19세기 이후 처음으로 다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협동조합 학교 전환에 대한 지지 정책을 펼치면서, 현재 200개가 넘는 협동조합 학교가 영국 내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학교는  협동조합이 지닌 주체성, 책임감, 민주주의, 평등, 공평과 지역의 단결이라는 기본 가치를 정관에 기록하고 모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학생들은 스스로의 판단하에 자율적으로 협력하는 동안에 협동조합의 가치를 저절로 체득하게 됩니다.

영국 협동조합 학교 운영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역과의 연계를 들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 학교로 전환을 하게 될 경우 자금을 조달하는 트러스티(trustee)와 운영의 주체가 분리됩니다. 지역 상권, 대학, 관련 단체 등의 다양한 트러스티로 구성된 트러스트(trust)는 자금 조달만 가능하고, 운영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지역 정부기관 역시 학교의 운영에 관여하지 못합니다. 대신에 교육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민 등이 모인 운영 단위가 구성되고, 모든 운영 결정은 협동조합 학교의 기본 원칙을 준수한 선에서 많은 토론을 거쳐 운영 단위에서 결정됩니다.

영국 협동조합대학(cooperative college)의 설명에 따르면, 이처럼 학교에 대한 지역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향후 지역사회를 이끌어 갈 협동조합 일꾼을 키우고, 나아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갈 시민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민이 함께 고민하여 학생들이 삶의 주체이자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안학교나 작은학교와 그 맥락이 닿아있다고 하겠습니다. 민주주의, 공평, 협력이라는 기본의 가치가 이들 학교에서 공통의 교육 철학으로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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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학교 ESSEX (출처:co-op.ac.uk 홈페이지)

그러나, 이들 학교들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 학교들의 경우 학교의 교육 철학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교육 정책 때문에, 그 나래를 펼치는데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재정적인 제한으로 인해 지역 정부기관에 기대게 되어 기본 정책과는 다르게 운영상 제약을 받는 경우가 생기고 있고, 한국의 대안학교들도 미션을 지키기 위해 미인가학교를 선택할 경우 비싼 등록금과 재정적 참여부담으로 인해 ‘귀족학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육 철학에 동의하지 못하는 지역의 다른 시민들과의 소통의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민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지역과 학교가 상생하는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육이 비단 학교안의 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지역 사회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 부분임을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를 높여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협동조합 기본법 설립 이후, 중고등학교와 대안학교들의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영림중학교의 ‘여물점’ 매점 협동조합, 복정고등학교의 유기농 매점 협동조합 등 학부모와 교사, 학교가 앞장서서 학생들을 위한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의 설립이 가능해 지면서 교육 분야에서도 앞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적경제 사례가 더 많아 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회적경제 안에서 교육 희망 찾기

앞서 말한 사례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교육 가치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있습니다. 먼저 공평 교육이라는 가치를 달성하고 사교육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를 희망하는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하여 배울 수 있도록 한 시도들이 눈에 띕니다. ‘공부의 신’으로 유명한 공신닷컴의 경우 공부를 가르칠 역량이 되는 대학생 멘토와 중고등학생 멘티를 연결하여 학생에게 적합한 공부 방법과 정보를 가르쳐 줍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법 등 필요한 학습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공평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유형으로 젊은이들이 2년 동안 교육 기회가 적은 지역으로 파견되어 지역 학생들의 공부를 돕는 미국의 Teach for America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교과서다.’라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지역 중심의 교육 시스템을 회복하고 있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영국 ‘모든 것의 학교 (School of Everything)’나 ‘리빙 라이브러리 (Living Library)’는 모든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지혜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줍니다. 비슷한 유형으로 한국에는 ‘OO은대학’이 있습니다. 구로는 대학, 마포는 대학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청년들이 숨겨진 지역민들의 지혜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 입니다. 룸바를 잘 추는 장어집 사장님은 지역민들과 룸바 강습을 통해 만나며 지역 안에 새로운 관계와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이것이 지역과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_1C|1188818704.jpg|width=”400″ height=”23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 00은 대학 프로세스 (출처:oouniv.tistory.com 홈페이지)

희망제작소의 ‘지혜로운학교’나 영국의 ’U3A(The University of Third Age)’와 같이 시니어들의 평생교육을 지향하는 곳도 있습니다. 누구나 가르치고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모토로 하여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강좌를 개설하거나 들을 수 있습니다. 평생교육에 대한 시니어의 열정과 지혜가 녹아들어가 사회 안에서 시니어의 역할과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 제2의 인생을 열어가게 될 것입니다.

교육과 관련한 사회적경제 조직은 이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환경이나 문화, 먹거리 등 특정 주제와 관련한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교육에 특화된 조직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적경제 조직의 경우 소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선구자들이 그러했듯이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학습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경제가 현재 대안 형태의 교육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재정적인 문제와 지역 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으로 생성되는 결과물들을 사회적경제조직으로 전환 운영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성미산학교의 마을카페나 홍성의 유기농먹거리를 직접 공급하여 판매하는 생협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이처럼 사회적경제와 교육은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 가치와 방향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소설가 알랭드보통은 런던에 ‘인생학교’를 열고, 우리가 쉽게 지나치지만 중요한 인생의 주제들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열정대학’이 있습니다. 20대 청년들이 입시와 취업 위주의 삶에서 벗어나 1년 동안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성찰할 시간을 주는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대학’입니다. 어떤 청년은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번지점프를 전공과목으로 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연극과 공연 등 자신의 삶과 아무 관계 없을 듯 한 과목을 개설하고 한계를 벗어나 새롭게 도전합니다.

사람들은 지금의 교육 가치가 가져오는 경쟁과 실패, 좌절감에 힘들어 합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속해 있는 ‘피로사회’ 속에서 다른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가 사회적경제와 맞물릴 때 우리는 큰 전환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노나메기 지식협동조합’이 그 대안으로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그 지향을 함께 고민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주체가 중심이 되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때,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가치과 교육의 가치가 우리 사회 안에서 함께 자리 잡아 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글_ 노율 (사회적경제센터 위촉연구원 nyoul1002@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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