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사용자

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긴 장마 끝에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방학에 설레고, 어른들은 휴가에 들뜨는 계절입니다. 휴가하면 여행이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번 평생학습 초점에서는 두  번에 걸쳐 여행과 학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대표 공정여행 사회적기업인 <공감만세>에서 진행한 국내외 다양한 공정여행,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공유합니다. 여행에서의 관계 맺기와 여행 그 후, 일상에서의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평생학습 초점] 여행과 만남, 그리고 배움 (1) 아이가 성장하는 여행

얼마 전, 대전에 있는 중학교에 강의를 하러 갈 일이 있었다. 무심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난 1년 동안, 60대 이상 노인과 1시간 이상 대화한 적이 있는 사람?”

60여 명의 아이 중 단 2명이 손을 들었다. 한 아이는 노인복지시설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아이였고, 다른 한 아이는 노인분에게 예체능 활동을 배우고 있는 아이였다.

“지난 1년 동안, 10살 이하의 아이들과 1시간 이상 대화한 적이 있는 사람?”

60여 명의 아이 중 단 5명이 손을 들었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사회보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손을 들면서도 놀라고 있었다. 사실 누군가와 속을 터놓고 1시간 이상  대화를 나눠 본 적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정말 놀라운 건 매일 만나는 부모와 교사,  그리고 친구들과도 일상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관계 형성이라 불릴만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삶은 쫓기고 있었고,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설렌다는 것을, 그것이 소비를 통해 느끼는 즐거움보다 크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어째 초반 질문이 위와 같아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층간 소음이란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

아이들은 이미 층간 소음의 이야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현대인의 생활 분쟁 문제라는 것에서부터 이로 인해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일까지 아이들의 정보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층간 소음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뭘까?”

아이들은 왁자지껄 대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냥 참으면 돼요.”

“매일 잠자는 시간에 쿵쿵 뛰고, 떠든다면 우리는 매일 참을 수 있을까?”

이 대답에 금세 아이들은 참는 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인지했다.

“벽을 두껍게 만들고 소음 방지 시설을 설치하면 돼요.”

“그 비용은 누가 내야 할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내야 할까? 아니면 세금에서 써야 할까? 그리고 아무리 두껍게 만들고 소음 시설을 해도 소리가 들릴 것 같은데.”

이 대답에 아이들은 역시 이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쉽게 인지했다. 그때 누군가가  대답했다.

“배려하고 이해하면 돼요.”

예상보다 빠르게 아이들의 입에서 대답이 나와 놀랐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서로를 알아야 해요.”

그 대답 이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집에 사는 사람들을, 특히 아까 이야기한 나이가 많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은 알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반상회를 하면 돼요.”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답과 같은 답을 30분 안에 말했다. 결국 해결책은 없었고, 문제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먹고, 놀고, 떠들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상적 구조를 가지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논리적이었고, 똑똑했다.

강의가 끝난 후, 교사들은 아이들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날 강의에서 별로 한 일이 없었는데, 끝나고 많은 아이들과 악수를 하고 나왔다. 아이들은 무언가 신기한 경험을 한 것처럼 이야기 했는데, 걱정됐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스스로가 답을 구하면서 본인을 둘러싼 관계 형성과 맺기에 대해 좋은 영감을 얻었길 기대할 뿐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여행

공정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의 관계 맺기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아이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국한된 장소 안에서, 몇 안 되는 사람만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다. 그마저도 여유를 찾기 쉽지 않다. 성장기에 사회에 대한 이해와 주도적 역할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사회에 던져져 자신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봤을 때) 너무 늦은 대학시절부터 형성되는데, 남자는 군대, 여자는 취업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그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철이 든다.’라고 표현하는데, 청소년들이 해병대 캠프에 가야 하고, 젊은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과 발음 교정을 다녀야 하는 현실 앞에 우리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사회에서의 관계 형성과 맺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금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 놓여 있는 아이들에게 공정여행은 관계 맺기에 좋은 영향을 주나? 정답은, 나도 알 수 없다. 누군가는 내가 공정여행을 하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길 원했을 수 있지만, 나는 정말로 알 수 없다. 매달 공정여행을 하는 아이는? 매년 공정여행을 하는 아이는? 공정여행이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내가 그런 것을 확신하고 이야기할만한 표본을 가지고 있는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부터 3천여 명의 아이들과 지난 4년간, <사회적기업 공감만세>란 이름으로 공정여행을 했던 경험에 기반해 이야기를 공유하려 한다.

 ”사용자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은 이질적 존재의 극이다. 해외여행의 경우 다른 생김새, 다른 말과 글, 다른 문화와 스타일. 이들을 만나는 것은 호기심보단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공정여행은 안전과 교육을 책임지지만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맡긴다. 홈스테이 가정에서의 생활, 여행 중 만나는 사람, 거니는 장소, 활동 및 체험 등은 함께 합의한 바에 의해 아이들 스스로 해내야 한다.

“선생님, 우리 아이만 쳐지거나 적응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감내해 줄 훌륭한 조정자만 존재한다면 모두 잘 해낸다. 그래서 중장기 공정여행은 아이들이 또래와 섞여 오는 게 좋다. 부모가 섞여서 오는 팀의 경우, 부모와 아이는 통상적으로 의가 상하거나, 아이가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급감하게 된다. 원인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시행착오를 못 견디는 부모와 우리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해서 바라보는 부모의 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몸을 사용해 소통하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는 게 공정여행이 관계를 맺고 형성하는 방법이다. 말이 다르니 그들과 통하기 위해선 교감해야 하는데, 교감 후의 짜릿함을 아이들 대부분은 공정여행 와서 처음 느낀다.

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표현을 엿본다면,

“오늘 필리핀의 홈스테이 아줌마와 대화를 했다. 아줌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이야기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집 친구 역시 외계어로 쌀라쌀라~ 그런데 같이 장난도 치고, 게임도 했다. 여기는 분명 우리보다 가난한데 페인트통에 꽃도  심고, 후졌지만 넓은 판자 거실도 있다. 우리는 여기보다 잘 사는데 왜 좁은 아파트에 살지…”

아이는 이런 식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참고로 이 아이는 글쓰기를 싫어하고, 부모와 대화를 거부하던 사춘기 중학생이다.  아이는 심각한 얼굴로 외계어로 대화하는데 우리 엄마와 대화하는 것보다 잘 통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을 하던 아이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아이는 홈스테이 가족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 공정여행을 또 신청했다.

공정여행 그 후

공정여행은 특별한 요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고, 놀고, 먹고, 자는 행위를 각자가 할 수 있게 치밀한 설계를 한다. 물론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배치와 배열을 하지만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강제할 수 없다. 모든 관계 맺기가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신하건데 99%, 공정여행을 하며 아이들의 관계 맺기는 통상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성공했다.

아이들의 관계 맺기가 실패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관점과 그 욕망이 투입된 아이들의 생활 패턴이 원인이다. 왕따의 근본적 문제는 서로 배려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를 공정여행을 보내야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 현재 학교의 구조와 교육 방식,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의 생활 패턴 속에서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만남과 변화가 지속된다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글_ 고두환 (청년 사회적기업 (주)공감만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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