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4기 소셜디자이너스쿨 5강 –  유창복 성미산 마을극장 대표의 꿈 같은 마을이야기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의 다양함이 존중되는 마을,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휴식하고 치유할 수 있는 마을, 아파트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함께 만든 마을.”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책 ‘다시 마을이다’에서 명명한 대안 마을의 모습이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마을에선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사용자

성미산 마을 아이들은 저녁이 되면 친구 집으로 ‘마실’을 간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집에 늦게 들어올 때면 친구 집에서 밥을 먹고 잠도 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육아 품앗이’인 셈이다. 공부도 부모들이 돈을 모아 세운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초·중·고를 아우르는 대안학교에서 한다. 성미산과 마을 한복판이 교실이자 놀이터다.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않게 마을에서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연극이나 노래 등 마을주민들이 만든 동아리만 10개가 넘는다. 매년 여름엔 마을축제도 여는데 올해로 벌써 9회를 맞았다. 올해 2월엔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극장까지 세웠다.

“새로운 일은 모두 ‘수다’에서 나오더라고요. 맞벌이 부부들이 반찬을 만들어 먹기 힘들다고 하니까 손맛 좋은 엄마들이 모여 반찬가게 ‘동네부엌’을 만들었고,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아이스크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카페 ‘작은나무’ 설립으로 이어졌어요. 최근엔 유기농 커피도 판매하면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성미산마을극장은 마을축제가 없을 때도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생각에 세운 겁니다. 성미산 마을 공동체에 참여하는 주민 숫자요? 글쎄, 어림잡아 500가구 정도는 될 걸요?”

”사용자

유창복 성미산 마을극장 대표는 마을 자랑으로 입이 쉴 새가 없다. 동네가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마을,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살려 친환경 생활재를 만들고 구매하는 마을, 동아리와 축제, 극장에서 놀이를 즐기며 삶을 재충전하는 마을. 이쯤 되면 자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실제로 성미산 마을에는 조합원 3500가구를 자랑하는 마포두레생협을 비롯해 소출력공동체라디오(마포 FM), 풀뿌리 생활정치 시민단체인 마포연대 등 마을 단위 활동만 50개가 넘는다.

다시 마을이 희망인 시대에 마실 가고 싶은 동네를 만들어가는 성미산 마을의 노하우를 들어보자.

‘수다’가 만들어낸 ‘마실’가고 싶은 마을

 “2001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성미산을 헐고 배수지(수돗물 수압을 높이기 위한 물탱크)를 만들겠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산을 깎아 콘크리트를 붓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앞장서서 막을 정도는 아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빠들을 부르는 거예요. 아이들이 매일 성미산에 올라가 곳곳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이름을 지은 것을 아느냐고, 산이 헐리면 아이들의 추억과 보물창고도 그대로 사라지는 건데 이대로 두고만 볼 거냐며 엄청 혼이 났죠.”

성미산 지키기는 단지 자연과 생태, 환경 이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꿈과 추억의 공간을 지키겠다는 아빠들의 소박한 마음이 가장 큰 동력이었다. 그렇게 2년을 싸웠고,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면서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서울시는 성미산 개발을 포기했다.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성미산을 지켜낸 경험이 ‘우리가 힘을 합하면 못할 게 뭐 있겠느냐’로 모아진 것이다.

“원래 의료생협을 하려고 했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이사를 가는 바람에 불발로 끝났어요. 아쉬운 대로 자동차를 돌보자며 ‘차병원’(자동차정비소)을 만들었죠.(웃음) 가장 큰 사고는 성미산학교입니다. 땅도 사고 건물도 짓는데 25억 원이 들어갔거든요. 먼저 시작한 성미산어린이집은 교육기간이 비교적 짧고 아이들도 25명 남짓이어서 이사를 다니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성미산학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다니는데다 학생 수도 250명이 넘어요. 부담은 컸지만 땅을 공동구매해 우리 학교를 세우자는데 주민 모두가 만장일치로 결정했죠.”

”사용자

성미산학교는 3가지를 가볍게 여긴다. 교실에서 공부하기, 정해진 교육과정 배우기, 사범대나 교대를 나온 사람이 교사하기다.

“아이들이 100명이면 학교도 100개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마다 욕구와 수준이 다르니까요. 성미산과 마을 골목은 생태학습뿐 아니라 마을 어른들과의 교감이 이뤄지는 훌륭한 교실입니다. 각자 전문성을 가진 마을 주민들도 훌륭한 선생님이죠. 성미산학교가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안학교가 모든 학생들을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공교육의 폭력보다 더 무서운 폭력이 되니까요. 다만 성미산학교가 또 하나의 대안학교 성공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지요.”

성미산학교는 내달 9월 5주년을 맞는다. 유창복 대표는 “지금은 학생마다 입학 기부금 1000만원과 매달 교육비로 40만원을 부담하고 있지만, 은행 빚을 모두 갚는 2012년 이후부터는 교육비 0원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수결 대신 ‘제3의 대안’을 만들다

유례없는 도심 속 마을 공동체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성미산 마을도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고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15년 전 30대 맞벌이 부부 25가구가 공동육아를 위해 집단 이주한 것이 성미산 마을 공동체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어려움도 많았어요. 하다못해 아이들 식단에 계란을 넣을까 말까를 놓고 2박3일간 토론을 벌일 정도였죠. 대부분의 엄마들은 당연히 아이들에게 계란을 먹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아이가 아토피를 앓고 있는 엄마는 무조건 반대를 한 거예요. 참 신기한 건 다수결이 안 되니까 제3의 대안이 나오더라는 겁니다. 엄마들이 끝장토론 끝에 돈을 좀 더 내더라도 유기농 계란을 먹이자고 의견을 모았거든요.”

성미산 마을 주민들은 반복되는 끝장토론을 통해 자기 말을 하는 대신 남의 말을 듣는 것이 ‘회의를 가장 빨리 끝내는 방법’이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요새 유행하는 ‘비폭력 대화’나 ‘소통’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스킨십이 늘어나면 싸움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하지만 회의가 일상인 성미산 마을에서 갈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창복 대표는 “갈등이 없어진 게 아니라 갈등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라고 말한다.

”사용자

“저도 대학에 다닐 때 학생운동을 좀 했는데, 그때는 내 생각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무조건 배제했던 것 같아요. 동일성을 최대 가치로 여긴 거죠. 하지만 성미산 마을에선 그럴 수가 없어요. 부모끼리 싸웠더라도 아이 친구가 마실 오면 밥도 해주고 잠도 재워줘야 해요. 다투면 이해하거나 이해하는 척을 해야 하는데, 표정관리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이해하게 되는 거죠.(웃음)”

놀이를 통한 소통은 성미산 마을의 미덕 중 하나다. 금전적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올해 2월 성미산마을극장을 세운 것도 ‘놀이만한 소통 수단이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마을극장은 영화제나 주민 동아리 공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민들 사이의 스킨십을 늘리고 공감대를 넓히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성미산 마을극장도 성미산학교와 마찬가지로 시설비만 3억5000만 원이 들어갔다. 현재까지 동네사람들의 모금으로 4000만원을 모았고, 나머지는 유료 대관으로 충당하고 있다. 마을극장에서 일하는 25명의 인건비는 예비 사회적 기업 등록으로 노동부에서 매달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사용자“성미산 마을의 운영방식은 간단합니다. 필요한 일은 품앗이로 해결하고, 필요한 돈은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충당하는 겁니다. 주민들 사이에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도 어느 정도 노하우를 터득했어요. 회의에선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그동안의 갈등이나 속상한 이야기는 수다와 뒷풀이에서 모두 풀어헤치는 거죠. 요즘 시민사회나 정부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며 성미산 마을에 투어를 많이 옵니다. 하지만 마을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 중심엔 마을주민들이 있고요. 지금부터라도 ‘마을 만들기’ 대신 ‘마을살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  4기 소셜디자이너스쿨 수강생  권지희 (前 여성신문사 기자)
사진 /  희망제작소 인턴 남정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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