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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에게 안정적 소득이란?

“얼마를 벌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다 다를 테지만 ‘사회 초년생 때는 적게 벌 수 있다’는 데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런데 5년 10년을 일해도 소득이 높아지지 않는 사회 구조라면 어떨까?

20년 이상 한 직장에 다닌 사람은 678만 원을, 대기업(300인 이상) 직원은 432만 원, 금융 및 보험업 종사자는 578만
원을 평균적으로 매달 받는다고 한다(2016, 통계청). 그런데, 그런 일자리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지금 20~30대로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다면 어떨까?

창의적인 일, 고정성을 탈피한 일, 가치 있는 일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결과로 예술, 비영리,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하거나 프리랜서, 스타트업 구성원이 됐는데 월세와 식비도 감당할 수 없는 처지라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자비 없네 잡이 없어-2030세대 노동 이야기’의 네 번째 주제는 ‘안정적 소득’이다. ‘고용안정’, ‘충분한 휴식’ 편에 이은 세 번째 ‘주제 별 토크’로, 지난 12월 2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DO 카페’에서 진행됐다.

연구자 네트워크 중에서 김정민 씨가 진행을 맡았고, 최태섭 씨가 참여했다. ‘알바노조’ 위원장 이가현 씨가 ‘플러스 1인’으로 함께 했다. (연구자 네트워크 소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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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 얼마를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지난 자리에서도 얘기했지만 고교 때부터 예술을 전공하다보니 셀 수 없이 다양한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경험을 했어요.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한 시절도 있고요. 공익재단과 공공 부분의 안정적인 조직에서 일한 경험도 있지요. 양쪽을 경험해 보니 큰 차이가 보여요. 일단 매달 고정적으로 돈이 통장에 들어온다는 자체가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최태섭 : 저는 직장생활은 그리 오래 하지 않았어요. 다 합쳐서 2년이 채 안 되네요.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저술노동’을 10년 넘게 해 왔어요. 글을 써서 받는 원고료와 강연료 수입으로 살죠. 당연히 ‘안정적 소득’이라고는 할 수 없는 정도예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고민들

이가현 : ‘안정적 소득’이라는 기준을 저는 실제 삶의 형태로 말하고 싶어요. 제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했을 때예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주 3~4일 하면서 월 40만 원을 벌었어요. 세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방에서 친구들이랑 살았는데도 월세로 10만원 가까이 냈고요. 밥 한 끼 먹을 때도 망설여졌어요. ‘6,000원짜리 순대국밥 먹을 것이냐, 2,000원 밥버거 먹을 것이냐’ 하면서요. 그런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게 ‘안정적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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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 : 그거 참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고민이잖아요? 가만히 보면 제가 사는 물건은 거의가 ‘원 플러스 원’이에요. 음료 하나를 그냥 마시고 싶어서 선택할 수가 없는 거죠. 가끔은 “이 돈 모아서 집 살 것도 아닌데…” 싶기도 해요. 사실, 예전에는 임금이란 생활비 빼고 저축해서 집도 사고 그런 거였어요. 지금은 설사 억대 연봉을 받아도 서울에 아파트 사기 어렵잖아요? 심지어 중위소득도 안 되는 돈을 번다면 ‘돈 모아 집 산다’는 생각은 아예 지우고 살죠. 최소한의 생활비, 보험을 들거나 약간의 저축 할 정도를 원하는 건데 주위를 보면 그것도 안 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김정민 : 최근 통계(2016, 통계청)를 보면 우리나라 중위소득은 월 209만 원이래요. 가장 큰 소득부터 적은 소득까지 한 줄로 놓았을 때 정 가운데가 월 209만 원이라는 거죠. 20대만 보면 중위소득이 172만 원으로 확 떨어져요. 15~35세가 가장 많이 종사하는 업종은 숙박음식점업, 그 중에서도 서비스업이고요. 사실상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인 거죠. 통계보다 현실은 훨씬 더 열악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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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 ‘알바’가 학생 때 잠깐 하는 일이 아니라 20~30대, 그 이후로도 이어지는 노동이 되고 있는데 그 노동환경이 극도로 열악하니까 점점 힘든 사람이 많아지는 거예요. 알바노조에서 상담을 받아보면 사실 근로조건만 가지고 진정까지 가지는 않아요. 인격적 모독을 당했는데 마침 불법적인 근로조건까지 있다면 겨우 용기내서 진정 하는 정도죠. 그런데도 그 중 처벌이 되는 건은 1%도 안 돼요.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다른 법은 지키라고 할까, 이해가 안 돼요.

김정민 : 우리는 자라면서 노동교육을 거의 받지 못 했잖아요. ‘돈’의 가치가 이렇게 절대적으로 큰 사회인데 실제로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임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채로 사회에 나오고요.

학자금 대출에 눌린 첫 세대

최태섭 : 요즘 ‘영 포티’라는 말이 유행하기에 ‘그럼 지금의 2030세대는 더 나이 들면 뭐가 되나?’ 하고 생각해 봤어요. ‘뭐긴 뭐야, 계속 88만 원 세대지.’라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나이가 들어도 자연히 임금이 오르거나 고용이 안정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딱 그 경우예요. 거기다 쓸데없이 ‘가방끈’은 길어졌는데, 덕분에 빚도 많이 지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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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 저는 20대 때, 은행에 가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어려우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물어봤더니, “개인 파산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이게 20대에게 할 말인가?” 싶더라고요.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어느 날 돈이 생겨서 갚았어요. 인디뮤지션으로 활동할 때 만든 곡이 갑자기 팔려서요. 그런데도 기쁘기보다는 허탈했어요. 그렇게까지 나를 짜증나게 하던,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던 금액이 어떤 관점에서는 별로 큰돈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최태섭 : 저는 지금도 갚고 있어요. 이제는 좀 무디어졌지만 한 때는 장학재단에서 오는 독촉 문자 받다가 미쳐버릴 것 같기도 했어요. 친구가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라는 책을 썼는데, 딱 제가 그렇죠. 공부할수록 빚이 많아지고 가난해져왔으니까요. 물론 안했다고 부자가 되진 못했겠지만요.

이가현 : 제 주변에는 ‘취업후 상환’, 그러니까 취업한 이후부터 원금을 갚기 시작하는 조건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취업을 못 해서 10년이 넘게 이자만 내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동안 낸 돈은 엄청난데 원금은 그대로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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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 그거 아세요? 지금 40대 이상 세대는 대학 학자금 대출 부담이 우리처럼 크지 않아요. 90년대까지만 해도 등록금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거든요. 문과 쪽은 학기당 200만 원이 안 되는 곳이 많았어요. 지금 2030세대가 소득의 상당 부분을 학자금 대출 갚는 데 쓰면서 산다는 자체를 모르는 분들도 많다니까요.

최태섭 : 그런 부분들이 결국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게 무서워요. 생활에 여유가 없으면 경험의 폭도 제한되고, 성취에도 영향을 주죠. 예를 들어, 책을 쓰기 위해서 다른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책 값 때문에 필요한 것을 다 못사는 일이 많아요. 그런 영향은 제가 내놓는 성과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잖아요? 그렇게 효과들이 쌓여가는 거죠.

경조사비 내고 계세요?

김정민 : 받을 돈을 제 때 못 받아서 수입이 불안정해지는 경우도 있죠. 뮤지션으로 일할 때 그런 점이 화가 났었어요. 헬스 트레이너 하는 분에게도 들었는데, 제 때 돈이 안 들어오니까 계속 현금서비스를 받게 된다는 거예요. 현금서비스는 이자도 비싸지만, 신용에도 악영향을 주잖아요? 우리 사회는 그렇게 신용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왜 다른 사람의 신용을 지켜주는 데 무감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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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 ‘최저임금’에 대한 반응에도 모순을 느껴요. 일본 노동조합 활동가에게 들었는데, 거기서는 우리처럼 최저임금에 딱 맞춰서 임금을 주는 사업장은 거의 없다는 거예요.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생활에 맞는 임금 수준을 만들어 간다고 해요. 사실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국가가 정한 ‘최저’ 선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모든 사업장이 일제히 최저임금에 맞춰서 임금을 줘요.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고, 얼마 안 가서 ‘정부가 정해준 임금’으로 통할 지경이죠.

김정민 :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학생에서 노동자로, 준비도 없이 내던져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갑자기 ‘어른의 도리’를 하라는 압박까지 받고요. 결혼식, 장례식 때 경조사비 내는 일이 대표적이죠. 저는 30대에 접어드니까 ‘이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가?’하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더라고요. 두 분은 어떠세요?

이가현 : 종종 있어요. 사실 3만원만 해도 알바 시절 월급의 10% 수준이니까 부담이 되죠. 그 용도로 매달 얼마씩 떼서 모아 놓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최태섭 : 사실 저는 경조사에 많이 못 가요. 정말 친한 친구의 경우를 빼고는요. 가서 축하하거나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은 들어도 경조사비 때문에 포기하는 거죠.

김정민 : 인간의 도리를 못 하는 것도 문제지만 또 다른 측면도 있어요. 국민연금을 안내면 미래소득의 차이가 커지는 것처럼, 지금 경조사비를 못 내면 큰일을 당했을 때 함께 해 줄 사람이 적어지는 거니까요. 금전적 도움을 떠나서 심정적으로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자체도 정말 힘든 일인데, 사실은 미래의 안정성도 침해되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가 많은 부분이 유실된 채로 살아간다는 걸 윗세대들은 모를 거예요.

노동을 보호 받은 경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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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 : 저는 “얼마를 벌어야 적정하게 살 수 있을까?”는 생각을 평소에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월 150만 원만 안정적으로 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행도 한 번씩 가고 필요한 물건 사고 부모님 아프실 때에 대한 대비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액수는 중위소득에도 못미쳐요. 평균 소득에는 더더욱 못 미치고요. 적정한 소득에 대한 감을 잡는 게 어려운거죠.

이가현 : 저는 지금 그보다 못 벌지만,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주거비가 안 들기 때문에 아직은 괜찮아요. 월세를 내는 친구들은 저보다 많이 벌어도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알바노조가 ‘최저임금 1만 원’을 몇 년째 주장해 왔는데, 물가와 주거비가 이렇게 계속 오르다보면 그 주장이 관철돼도 생활수준이 얼마나 나아질지 모르겠어요.

김정민 : 저는 그래도 서울에서 살려면 월 200만 원 소득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조직에 속해서 200만 원을 받는 것과 프리랜서로 200만 원을 받는 것은 전혀 다르거든요. 4대 보험료의 직장 부담분과 퇴직금 때문에도 그렇지만 조직에 속해 있으면 은행 대출 이자도 상대적으로 낮고, 소득공제도 받잖아요. 제가 얼마 전부터 대학원에 다니는데, 학비도 소득공제가 되더라고요. ‘아, 소득이 많고 비싼 학교에 다니면 받는 혜택이 더 크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돋았어요.

최태섭 : 지금 2030세대 중에는 자기 노동에 대해서 보호를 받아 본 경험 자체가 없는 사람이 많아요. 조직에 들어갈 때 환대를 받고, 신분 보장을 받고, 동질적인 혜택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거죠.

이가현 : 맞아요.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유통기한이 지나서 폐기할 음식들을 먹게 해 주는 걸 혜택으로 알아요. 어딜 가도 식대 주는 곳이 없으니까 그나마 낫다는 거죠. 기껏 경험하는 복지가 폐기 음식이라니, 다른 상상을 해 볼 수 없다는 점이 슬퍼요. 그런 점에서 저는 요즘 논의되는 ‘기본소득’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이 많이 불안해해요. 자동 주문 기계들을 도입하면서 인력을 줄이고 있거든요. 남은 직원들의 노동강도는 강해지고요.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임금을 보전해 주는 역할도 하지만,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문제제기 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도 할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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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 대신 잠과 재력을’

최태섭 : 예전에 1980년대에 대학 다닌 세대인 학자에게서 “왜 너희는 그렇게 나라 걱정을 하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다른 비빌 언덕이 없으니까 그렇죠.”라고 답했어요. 최소한의 권리라도 지키기 위해서 의지할 곳이 국가밖에 없는 거죠. 사실, 우리 대화의 처음 질문인 “얼마를 벌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내지 못 했는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면서 살 수 수준이 적정 소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수준을 사회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요.

이가현 : ‘최저임금 1만 원’ 슬로건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잠재력 대신 잠과 재력을’이라는 거예요.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최소한의 소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 정도가 안정적인 소득이 아닐까요?

김정민 : 멋진 말이네요. 언젠가 나중에 하려고 미루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의 안정성과 인간적인 삶을 누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돼요. 저는 오늘 이야기를 나누고, ‘노동과 실질적인 경제 교육의 부재’가 정말 큰 문제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 발언권을 우리가 획득하는 수밖에는 없잖아요? 일 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해야 하는 거죠. 알바노조가 만들어진 것처럼 더 다양한 대변자들이 있어야 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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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대화는 지금까지의 연재 토크 중에서 이 날의 주제와 분위기가 가장 무거운 편이었다. 각자가 말한 ‘안정적 소득’의 수준이 결코 높지 않음에도 그랬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최저임금 1만 원, 노동교육 등 해법이 가장 다양하게 제시된 대화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미 문제의식이 깊어져 있고, 더 많은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는 주제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다음 편은 5회 ‘조직 노동이란?-월급쟁이와 머슴의 차이는 뭔가요?’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해피빈 공감펀딩(후원) 금액은 전액 프로젝트 진행 및 출판 비용으로 활용되며,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경우 재단법인 희망제작소의 공익사업에 전액 사용된다.

* 이 시리즈는 2030세대의 새로운 노동에 대한 고민을 담은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4회는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코워킹스페이스 DO카페에서 진행됐습니다.

– 정리 : 황세원 | 시민상상센터 선임연구원 · joonchigirl@makehope.org
– 사진 : 이우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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