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33-2)
장애인 고용과 환경보전을 이룬 특별한 농원

안신숙의 일본통신(33-1) 일본 시민들은 왜 버려진 땅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나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처음에 미누마 복지농원이 받은 땅은 이미 황폐해진 경작 포기지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농지 정비를 위해 달려왔다. 쓰레기를 치우고, 간벌재인 대나무로 배수시설을 만들고, 낙엽과 잡초로 비료를 만들어 토양을 회복시켰다. 가장 먼저 달여온 사람은 은퇴한 지역 시니어들이었다.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은 다양한 사회경험과 어린시절 농사를 지었던 경험을 갖고 있어서 복지농원 운영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한번은 경운기를 분실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이를 기사로 접한 우라와 로타리 클럽에서 자금 지원을 제안했다. 이노세 대표는 ‘돈보다 함께 비지땀을 흘려달라’며 직접 참가하기를 권했다. 그 뒤 우라와 로타리 클럽의 시니어들은 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농원 일에 계속 참가하고 있다. 지역의 농가들도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미누마농지의 특징을 알려줬다.

대학의 써클과 연구회 단위로 젊은 학생들도 모였다. 그들의 참가로 복지농원 만들기 참가자는 100명 규모로 늘어나 복지농원은 주말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 학생들이 조직한 ‘미누마 바람의 학교’는 처음에는 매월 한 번씩 진행하는 이벤트적인 활동으로 시작해 지금은 거의 매주 정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농업 소년단’을 조직해 지역 초?중등학생들도 활동에 참가하도록 권하고 있으며, ‘농업이란 무엇인가’, ‘자연환경이란 무엇인가’ 등 자연과 공생하는 삶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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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누마 바람의 학교 회원들

이처럼 장애인들과 시니어, 학생들이 함께 비지땀을 흘린 결과 미누마농지 중심부에 3개의 복지농원이 완성됐다. 밭은 비옥한 흙으로 잘 정비돼 있으며, 배수가 잘 되도록 고랑을 파고 땅속에는 농지 주변의 숲에서 벤 대나무로 관을 만들어 묻었다. 농장 중앙에는 작업용 하우스와 잔디 광장, 농기구 보관장, 풍력 발전 시설을 갖춘 탈의실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으며 우물도 직접 팠다.

자원봉사자들은 함께 밭을 일구고 장작을 잘라 화덕에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주말이면 잔디 광장에 모여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장애인을 돕기 위해 복지농원을 찾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농사를 체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복지농원은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풍요로움을 느끼는 공생의 장소인 것이다. 즉 나이와 장애 여부를 초월해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땀을 흘리고 일하면서, 장애인은 농업으로 생활의 자립을 이루고, 자원봉사자들은 사회 참가와 자기 실현을 꿈꾸는 커뮤니티 장소인 것이다.

장애인 지역 활동 지원센터 ‘아그리’

현재 미누마 복지농원에서는 평일에는 지역의 장애인 복지 단체 ‘아그리(農, agri, 농업이란 뜻)’와 ‘와라지(짚신이란 뜻)회’가 작업을 하며, 휴일에는 학생 자원봉사단체인 ‘미누마 바람의 학교’와 ‘우라와 로타리 클럽’의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그들은 구역을 나눠 농사를 짓고 공동으로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교류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농장 경영은 주로 ‘장애인 지역 활동 지원센터 아그리’가 맡아 하고 있다. 지난 해 연말 이노세 대표의 차남 이노세 코헤(猪?浩平、메이지학원대학 교수)씨 안내로 복지농원을 찾아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직접 찾은 복지농원은 생각보다 넓었고 잘 정비돼 있었으며 밭에는 배추, 무, 파 등 겨울 작물이 찬바람을 견디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작업용 하우스 안에 들어가니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10여 명이 모여 앉아 크와이라는 우리에겐 낯선 작물의 껍질을 까고 있었다. 아그리의 장애인 작업자들과 스텝 그리고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이다. 크와이는 일본 설음식에는 빠질 수 없는 식재료로 설에 출하하기 위해 손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농기구가 보관돼 있는 창고에 가니 뜻밖에도 김치가 몇 개의 커다란 통 속에서 잘 익어가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농장에서 재배한 배추를 이용해 김치 만들기 강좌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그리는 사이타마시의 보조로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 복지 취업 알선 단체다. 펭귄회 모임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단체로 현재 일반 취업이 힘든 6명의 중증 지적 장애인들이 소속돼 있으며, 2명의 상근 스텝과 1명의 비상근 스텝, 그리고 다수의 유급 고령자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의 취업 활동을 돌보고 있다. 장애인 지역 활동 지원 센터란, 장애인 복지법에 규정돼 정부가 지원하는 장애인 복지 취업 시설과 작업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소규모 단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규정해 운영비를 보조하는 단체다. 사이타마시는 6명 이상의 장애인 단체에 대해 장애인 지역 활동 지원 센터로 공인하여 그 운영비를 보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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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세심하게 일일이 작업 지도를 하고 있는 이노세 씨 부인은 “인원이 적은 우리와 같은 시설은 지역 활동과 밀착해서 일할 수 있어 오히려 좋은 점이 많다. 힘든 농사일을 하길 원하는 장애인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인원이 적어도 활동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이타마시의 제도가 있어서 아그리가 미누마농지 보전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며 일반인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농사일을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교 때는 재일 한국인 인권 활동에도 참여했었다는 그녀는 큰아들에게 세 살 때 자폐증이 발견되자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오랜 세월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인들의 지역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활동해 왔다. 때로는 장애자인들과 빵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목각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이렇게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말이다.

아그리는 복지농원에서 계절별로 각종 채소와 허브를 재배하여 판매한다. 토양의 손질부터 제초 작업, 씨뿌리기, 수확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을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유기 농 재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수확한 채소를 포장하여 시내에 있는 안테나숍과 구청의 복지 매장에서 직접 판매하며, 패키지를 만들어 가정에 배달하기도 한다. 또한 주변 농가의 농산물과 가공품을 안테나숍에서 같이 판매하기도 하며, 지역의 제과점과 연계해 직접 재배한 채소로 각종 빵과 피자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항상 지역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아그리의 장애인들과 스텝들은 일반인들도 힘들다고 피하는 농사를 통해 지역의 환경 보전에 참가하면서 생활의 자립을 꿈꾸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지역생활을 실현해 가고 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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