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11 희망제작소 창립 5주년 프로젝트”사용자
박원순의  희망열차


● [전라] 전체 스케치 (3월 6일 ~ 11일)

무언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아 이름만으로도 설렌 희망열차의 첫 단추, 전라도행은 원순씨께서 짐을 직접 트렁크에 넣어주시면서 시작됐다. 점심시간 조금 못되어서 출발한 탓에 1000원짜리 김밥과 음료수 한 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순씨를  실제로 처음 본 나는 어리둥절함도 잠시, 김밥을 드시면서 “이런걸 찍어야 해~” 하며 소박하고 친근하게 우리의 긴장감을 풀어주시던 모습에 낯선 여행의 걱정이 사라져 버렸다.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 자원봉사라는 역할로 인연을 맺게 된 우리들은 각자가 이곳에 오게 된 얘기를 나누었고 이를 들은 원순씨는  이에 맞는 역할들을 하나하나 의미 있게 만들어 주셨다. 어쩜 이렇게 섬세할 수가~*_*
1029316672.bmp전라도에서의 첫 강연은 변산공동체에서 시작되었다. 저녁시간이 거의 다 되어 집에서 만들어진 연기를 보고 찾아갔던 이곳에서는 처음 접하는 신선한 기운을 많이 느꼈다. 어린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많았던 것이 놀라웠다.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직접 농사도 짓고 집도 만들면서 공동규칙을 어기지 않으며 서로 돕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들에게 원순씨는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소개했다. 시간이 늦어 졸던 아이들도 어느새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고 정해진 시간이 끝난 후에도 더 듣고 싶다는 의견으로 강연이 길어졌다.

첫날밤을 이곳 아이들의 작지만 진심이 담긴 배려로 무사히 보냈다. 그 다음날 떠날 때까지 부끄러워하면서도 개성 있게 자신을 표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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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 일찍 찾아간 곳은 부안의 누에타운! 군에서 지원을 받아 체계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웅장한 전시관은 군민들이 직접 뽕을 식용으로 개발해서 브랜드화시켰다는 자부심을 통째로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박물관식 전시관은 다소 실망스러웠고  살아 있는 누에를 한 마리도 보지 못한 점이 안타까웠다.

다음으로 간 곳은 부안독립신문사. 지역신문사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원순씨께 해결방안을 상담했다. 다양한 방법들이 언급됐지만 그중에서도 형식적인 것이 아닌 깊이 있고 집중적인 강좌들을 꾸준히 개최하는 등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부안군청에서는 마을과 지역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일자리 없는 어르신과 귀농인이 함께 운영하는 두레농장과 같은 다양한 사례와 카페와 농가가 결합하고, 예술과 농가가 결합하는 등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관행처럼 진행되어 오던 계획에 맞춰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닌 창의적인 발상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부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전주로 이동한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전주 책마루어린이도서관이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를 하다 관장까지 맡게 됐다는 김 관장님의 이야기와 아이를 업고 근무를 하고 있던 사서의 모습이 어린이 도서관이랑 너무나 잘 어울렸다.

이곳에서 원순씨는 인문학 학습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다양한 정보에 쉽게 접근이 가능해졌지만 근본을 모르는 가지들만 있고 뿌리가 없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또한 그곳에 온 사람들에게 책 한 권씩을 꼭 쓰라고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생기기 때문이다. 책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게 포인트였다. 원순씨의 저술 10계명을 들은 나는 나도 책을 한 번 써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에 앞서 독서노트를 빨리 만들어야 할 텐데..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다.

다음 우리의 목적지는 한국순례문화연구원! 여러 종교의 순례길을 통합하여 책으로 만들어 낸 이곳에서 원순씨는 도시의 재창조에 대해 언급했고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다우며, 순례길의 독특함과 전통을 잘 살려 가꾼다면 길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정신없이 둘째날 일정도 끝이 나고 우리는 숙소 바로 뒤에 있던 전주 한옥마을에서 조금은 언벨런스하게 전통차가 아닌 이국적인 음료를 즐기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1100737491.bmp전주 한옥마을 안 교동아트센터가 셋째날의 첫 번째 방문장소였다. 이곳은 일제시대 백양공장으로 있던 곳으로 지금까지 원래의 터와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 안을 수리해 문화공간으로 그 역할을 바꾼 곳이었다.

원순씨가 일전에 지나가면서 소개해 유명해지면서 인연을 맺었다는 이곳은 나에게 정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곳 주인인 관장님의 흔들림없는 의지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허물어지고 한옥으로 개조돼 큰 식당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지금까지 무조건 한옥만 모여 있으면 좋아보였는데, 역사적 가치와 지역성, 자발적인 움직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역작가들이 점점 활동할 공간을 잃고 눈에 보이는 것들로 채우려고 하는 우리의 관행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문화적 기운을 가득 안고 우리는 젊음의 패기를 느낄 수 있는 전북대학교로 떠났다. 이곳에서는 “나의 삶, 나의 직업”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진행되었고, 원순씨 스스로 젊은 시절 겪었던 고뇌와 방황, 고통을 풀어놓았다. 젊기에 가능한 열정적 도전의 중요성과 용기에 대해서 거듭 강조되었고, 한 번밖에 없는 인생,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진실로 스스로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쌓을 것을 주문하였다.
 
다음 목적지는 creative 24. 창조적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모여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고 발전시켜나가는 싱크탱크 역할을 자처하던 카페였다. 이곳에서 원순씨는 많은 힘을 얻는 듯 보였다. 시대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의 아지트를 만들고 싶다던 사장님의 모습이 원순씨를 자극하는 듯 했고, 공간이 가지고 있는 다기능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멘토링 그룹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대학교와 대학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도시락을 먹으며 가졌던 자유로운 질의응답 시간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무분별하게 늘어나고 있는 카페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젊음의 패기를 뒤로 한 채 커뮤니티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의 성공사례로 뽑히고 있는 완주군 CB 센터로 향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아도 그것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실천해나가느냐가 어마어마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기에 완주군의 실천적 사례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말 완주군에서 받은 느낌은 다른 지역과는  달랐다.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려는 적극성이 눈에 띄었고 열기가 상당했다. 이것 역시 선발주자로서 많은 이점과 변화를 겪었기에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군수님부터가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지역주민과 함께하려는 마음이 있었고 어떻게 하면 더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권위적인 수장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에 다른 지역도 이와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면 우리 농촌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1336010390.bmp넷째날의 시작은 목포시 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 이곳에서 원순씨는 ‘사람을 낚는 13계명’을 소개했다. 실질적이고 필요한 문장들이 하나 하나 소개 되었다. 신부님이 운영하던 이곳에서 성경 문구를 인용한 사람 낚는 법은 정말이지 딱 들어맞는 소개방법이라 생각했다.

이어 우리는 무안군 여성농업인센터로 이동했다. 이곳의 지역주민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을 살려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농사 짓고 종자를 가꿔 보존하면서 부흥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꼭 잘 해내고 말겠다는 젊은 의지가 절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에 원순씨는 모금과 기부의 힘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강연비를 기부하면서 첫 번째 기부자가 되었다.

영광 여민동락공동체와 영광 희망아카데미에서 주최한 강연에서는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를 위한 천만상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진행되었다. 많은 학생과 지역주민이 함께 했다. 첫날 방문했던 변산공동체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조금은 더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사회와 소통하고 있었던 여민동락 공동체에서의 하룻밤은 너무나 즐거웠다.

직접 만든 치즈를 가지고 오신 분, 현란한 말 솜씨로 “위=하=여”를 외치며 모두가 하나임을 느끼게 해주셨던 분, ‘야생초 편지’의 주인공인 황대권 선생님까지 하나같이 인심 좋은 이들이 뒤풀이 자리에 모였다. 무엇보다 10원짜리 커피를 맛볼 수 있었던 특이한 여민동락 공동체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꼭 한번 다시 찾아가고 싶다.
 
6일간의 전라도 일정 중 가장 기발한 만남을 준비했던 광주국제교류센터!  무릎팍 도사가 됐던 원순씨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카운슬링의 방법으로 만남이 진행되었다. 가장 집중되었던 문제는 좋은 의도로 꼭 필요한 경영을 하고 있음에도 무시할 수 없던 적자경영이었다. 젊은 인재들이 자유로운 마인드를 가진 소장님과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이를 타개하기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이에 원순씨는 “Please ask!”를 외치며 실질적인 경영방법을 소개했다. 기부 프로그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이라고 했다. 짧은 만남이 아쉬웠는지 이곳 직원 중 두 분은 다음 시화문화마을 강연까지 우리와 함께 했다.

우리는 진안군청을 거쳐 곡성군으로 향했다. 곡성군에 들어서자마자 발견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다른 지역보다 많은 아이들을 마을에서 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강연 역시 아이들이 도와주고 있었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아이들도 많았지만 공무원들도 정말 많았다는 것. 전, 현직 군수, 경찰서장까지 함께 했던 강연장은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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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강연의 마지막 날, 장흥에서는 짧은 강연 시간 때문에 발표자료 없이 칠판에 수업하듯 그때그때 질문을 받으며 강연을 이어갔다. 여유가 없어 크게 홍보도 못하고 이틀 전 플래카드를 단 것이 다라는 주최 측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은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강연장을 찾았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강연장을 가득 채우며 경청하는 주민들의 모습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농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무엇이든 도와드리고 싶은 맘이 절로 생겼다. 보성군의 벌교와 광양 중마공원을 거쳐 조례 호수공원으로 이어진 강연은 추운 호수바람 앞에서도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숨차게 달렸던 전라도행 희망열차의 종착지는 순천 기적의도서관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우연의 일치였는지 기적의 도서관을 만든 정기용 건축가님이 타계하신 날이기도 했다. 마지막 강연의 주제는 ‘나의 삶, 나의 스승’. 가슴 떨리게 했던 주제였다. 지금의 원순씨를 있게 한 스승들을 만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중고등학생들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과 위트있는 답변까지 마음 한가득 꽉 차는 강연이었다.

5년만에 세상 밖으로 달려본 원순씨의 희망열차는 기대반 걱정반이었던 처음과는 달리 알차게 마무리됐다. 무엇보다 전라도는 역시 어딜가도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따듯한 인심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스스로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찾기 위해 떠났던 희망열차는 정말이지 내 가슴속에 희망의 빛을 비추며, 그동안 찾지 못하고 방황했던 나의 꿈을 찾아주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감사한 희명열차 전라도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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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_희망열차 자원활동가 오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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