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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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의 분말로 만든 백두식품의 느릅냉면. 소화가 잘 되고, 뒷맛이 개운하다.

편집자주/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 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지식하게 만들어 다르다

“여기는 왜 이리 음식을 허술하게 해먹습니까?”

백두식품 이춘삼 대표는 새터민 출신이다. 지난 2002년에 가족들과 함께 북을 떠나 한국에 정착했다.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어엿한 사업체도 꾸리고 있다. 한국에서 자립에 성공한 새터민 모델로 소개될 정도로 한국 생활이 익숙해진 그이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작은 아쉬움이 자리해 있다. 바로 북한에서 맛 보았던 먹을거리에 대한 추억이다.

“어느날 식당에 갔다가 어머니 손맛이 생각이 나길래 콩비지찌개를 주문했어요. 북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 종종 콩비지를 맷돌에 곱게 갈아서 찌개를 해주셨거든요. 맛이 아주 일품이었죠. 주문한지 얼마 안 지나서 음식이 나왔어요. 모양새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허술하다고나 할까? 좀 실망했어요. 화학조미료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음식에 들인 정성에서 차이가 나는 듯 해요. 북한에서는 음식 만들 때 정말 갖은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요.”

잊을만하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먹거리 파동 때문일까? 그의 말이 비단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인스턴트 음식과 화학조미료가 한국 음식문화의 원형을 크게 훼손한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도 이제는 남한 음식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고 말했지만, 화학조미료가 범벅이 된 음식 앞에서는 표정관리가 안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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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출신의 이춘삼 대표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그 고지식함에서 먹을거리에 대해 정(精)과 성(誠)을 다할 그의 모습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그는 먹거리 사업을 하고 있다. 새터민들과 함께 세운 ‘백두식품’이 그가 일하는 공간이다. 백두식품의 대표적 제품은 ‘느릅냉면’이다. 느릅냉면은 북한에서 귀한 손님이 올 때나 내놓는 귀한 음식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느릅냉면 만드는 과정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성을 쏟아야 즐길 수 있는 음식이란 소리다.

“느릅냉면은 손이 매우 많이 가는 음식이에요. 만들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먹고 싶을 때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어요. 귀한 손님이 올 때나 내놓는 음식이었죠. 이 귀한 음식을 남한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어서 냉면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느릅으로 만든 음식이 많이 알려졌는데, 남쪽 사람들은 잘 모르나 봐요?”

최근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 엉터리 칡냉면을 만드는 업체가 소개된 적이 있어 소비자들을 당혹케 한 적이 있다. 그 회사는 칡색깔을 내기 위해 인공색소를 넣고, 극소량의 칡성분을 넣어 소비자들은 기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표와 다른 새터민 직원들은 이러한 눈속임을 탐탁하지 못하게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기업 문화를 고지식하다고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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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육수를 포장하는 직원의 손길이 바쁘다. 백두식품 냉면육수는 사골액기스와 천연 재료로 직접 끓여내 만든다.


화학조미료가 없어 개운한 뒷맛

“남들이야 가격 경쟁을 한다고 저가 밀가루로 면을 만들고 화학조미료로 육수를 만드는데, 저희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아마 고지식해서겠죠. 원료는 무조건 1등급을 써요. 육수도 사골 액기스, 마늘 액기스 등을 넣고 직접 끓여내 최대한 원래의 맛을 살리려 합니다. 게다가 아직 대량 생산 체계는 아니에요. 그래서 아예 가격 경쟁은 포기하다시피 했죠.”

그의 말처럼 백두식품의 냉면과 육수 맛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들과는 다르다. 우리의 혀를 길들인 화학조미료 탓에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맛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맛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대한 천연 원료를 사용했기에 뒷맛이 개운하고 깔끔하다. 조미료 범벅의 음식들이 텁텁하고 더부룩한 뒷맛을 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느릅 자체의 향과 기운이 음식의 맛을 살려 기존 인스턴트 냉면에서는 맛볼 수 없는 풍미도 느낄 수 있다. 또한 예로부터 약재로 자주 쓰였던 느릅나무는 소화기능을 좋게 한다고 하는데 느릅냉면 역시 먹고 나서의 불편한 포만감이 덜하다. 동의보감에서는 느릅나무의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고 부드러워 이뇨작용을 좋게 하고, 장과 위의 사열을 없앤다고 나와있다.

백두식품은 냉면 비수기인 겨울엔 느릅으로 찐빵도 만들어 판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수요가 크게 줄어드는 냉면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제품인데, 예상외로 반응이 괜찮다. 이 대표의 어머니는 북한에서 느릅찐빵을 종종 만들어줬다고 한다.

찐빵을 만드는 데에도 이들의 고지식함은 여전한 듯 하다. 작은 동네 찐빵집에서 빵을 직접 쪄서 팔 듯 공장 한 켠에 솥을 놓고, 일일이 손으로 빚어서 쪄낸다.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지만 그 정성만큼은 곱절이다. 그래도 이러한 정성 때문인지 느릅찐빵은 김포지역 70여 군데 학교에서 급식 메뉴로 지정됐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기메뉴라고 한다.

현재 백두식품이 생산하는 제품은 느릅냉면과 느릅찐빵을 비롯해 메밀을 주원료로 하는 대동강냉면, 산학협동을 통해 탄생한 우리가(家)냉면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느릅의 그윽한 향을 느낄 수 있는 느릅차와 업소용으로 개발한 애국(만능국거리소스) 등이 있다.

새터민들의 무모한 도전?

백두식품은 지난해 15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맨주먹 하나로 이들이 냉면사업에 뛰어든 지 7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그러나 새터민들의 백두식품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 익숙한 그들이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기업체를 꾸리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란 이유에서다.

“선배들이 저보다 먼저 이 사업을 시작했어요. 저는 2004년에 결합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죠. 제가 냉면 사업에 뛰어든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하나 같이 만류했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제가 고집이 좀 있거든요. 안 되면 투자금 날리는 것밖에 더 있겠나 싶어서 이 악물고 시작했죠.”

하지만 직접 부딪쳐 본 사업은 자신의 생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제품 생산이 문제였다. 소량으로 생산하는 것이야 큰 문제가 안 됐지만, 대량 생산은 다년간의 노하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딱히 방법은 없었다. 새터민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기계의 작동 원리와 원료 배합 비율을 그야말로 감으로 익혀야 했다.

밀가루 등 원료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원료 업체에서는 새터민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란 얘기에 물건을 공급하지 않았다. 새터민들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혹시 납품 대금을 주지 않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다. 어음이 아니라 현금으로 바로 결제하겠다고 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원료 하나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돈을 더 얹어서 비싸게 구입해야 했다.

판로 확보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주로 성당이나 교회 등 종교단체에 납품을 했는데, 상거래라기 보다는 동정적 후원의 성격이 강했다. 새터민 돕기 행사 차원에서 진행됐던 것으로, 당시 새터민들의 자활 노력에 큰 힘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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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식품 직원들이 냉면을 포장하고 있다.


‘도와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새로운 판로를 확보해야 한다’

이들은 짧은 자본주의 생활에서 이러한 원리를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처음엔 교회나 성당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새터민들이 열심히 사는 게 보기에 좋았나 봐요. 이 사람들 물건을 사줘야 생활할 수 있단 생각을 하신 거죠. 그래도 도와주는 건 한두 번이지 계속될 순 없잖아요? 무엇보다 저희 냉면이 맛있어야 이분들이 계속 사주고, 새로운 판로가 열릴 것이라 생각했죠. 아마 맛이 없었다면 백두식품은 벌써 없어졌을 거에요.”

어느날 백두식품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종교단체를 통해 느릅냉면을 먹은 적이 있다고 말했고, 칭찬을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백두식품에 대리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물론 대리점은 없었다. 직원들이 판매 사원이자 영업 사원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에게 대리점을 내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백두식품에 1호 대리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고지식한 깐깐함으로 시작한 이들의 느릅냉면은 얼마 안 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대리점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판매망이 전국으로 확대된 것. 새터민이란 꼬리표를 떼고 맛 하나로 승부한 게 효과를 본 것이다. 이들 대리점을 통해 전국 주요 식당에 느릅냉면이 납품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리점이 없는 지역의 식당에서도 직접 주문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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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식품은 통일을 준비하는 사업장

새터민들로 시작한 백두식품은 이제 남북이 함께 만들어 가는 회사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한 결과다. 지금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웃으며 일하는 사이지만, 처음에는 사소한 오해도 많았다. 무엇보다 문화적 이질감이 컸다. 남쪽 주민들은 오랫동안 주입된 반공의식 탓에 새터민들에 대해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이 대표는 북한에서는 여자가 할 일이라 생각해 지시를 했는데, 남쪽 사람들은 남자들이 할 일이라 여긴 것이다. 감정이 상한 것은 당연한 일. 나중에 오해는 풀렸지만 사소한 말투나 행동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게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었을까? 이제는 서로의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통일 이후 가장 큰 문제가 문화적 이질감일거에요. 그런데 아마도 우리 회사가 그 모델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남쪽사람들이 우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이 안 간다고 생각했대요. 하지만 한 작업장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 보니 차츰 서로 이해하게 됐어요. 우리 회사가 통일을 대비하는 사업장이 아닐까요?”

새터민이 만든 회사란 얘기가 알려지면서 사업 초기 도움의 손길이 많았다. 그때만해도 새터민이 한국에서 사업을 벌인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종교단체나 기업 사회공헌팀 등이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이 대표는 그러한 분들의 도움이 몹시 고마웠고, 이제는 매출 15억원의 어엿한 회사를 선보일 수 있게 돼 기쁘기만 하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엔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자신들이야 새터민이어서 자립하는데 아낌 없는 지원을 받았지만, 국내의 다른 작은 회사들은 이러한 도움 없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새터민이니까 도와달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에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에게 목표는 오직 실력만으로 앞서 나가는 회사의 미래다.

백두식품은 아직 갈 길이 먼 작은 기업에 불과하다. 그동안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느라 뒤를 돌아보지 못했지만 나눔 사업만큼은 적극적이다. 사회 각계로부터 받은 도움을 사회에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백두식품은 총 1만2천인분의 냉면과 찐빵을 사회에 기부했고, 올해에도 벌써 2만2천인분의 냉면과 찐빵 등을 지역 복지관과 푸드뱅크 등에 기부했다.

“항상 이 생각을 해요. 우리가 한국에 올 때 빈손으로 왔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자립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살 수 있는 집도 얻고, 훌륭한 사업장도 꾸리게 됐어요. 그런데 그 도움이 결국 국민들 세금에서 나온 거에요. 빚을 많이 진 셈이죠. 제가 보답할 길이란 게 아직은 이 정도겠지만, 앞으론 사업을 잘 해서 세금을 많이 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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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만 2만인분의 냉면과 찐빵을 기부한 백두식품. 이춘삼 대표가 멋쩍은 표정으로 감사패를 들고 있다.



희망소기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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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현재 IR 대행사 아이피알파트너즈에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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