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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중국은 우리에게 거대한 현실이자 미래다. 한국의 100배가 되는 국토와 27배에 이르는 인구 규모를 갖고, 요즘 같은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연 8%의 성장을 지속하며 우리 곁에 가장 다가서 있는 나라다. 숨 쉬는 공기와 하루 세끼의 밥상에서부터 국가안보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영향 아래 놓여 있지 않은 것은 없어 보인다.

중국 지도부의 생각과 전략을 읽는 일은 정부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을 읽는 중요한 정보원(情報源)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의 정세를 수집하는 안테나의 역할을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파악하는 풍향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희망제작소가 청융화(程永華) 중국대사를 초청해서 한중 관계에 대한 강연회를 열었다. 한국에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대사를 순차적으로 불러 그들의 견해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그런데 강연 중에 중국대사와 파룬궁 지지자들이 별로 달갑지 않게 조우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파룬궁 지지자들은 기회를 노려왔던 듯했다. 그들은 처음에 방청자로서 청 대사에게 질문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티베트 문제 등 질문공세


이들은 중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티베트 문제, 인권탄압, 인터넷 통제, 빈민농민공사태 등을 꼬집으며 청 대사의 답변을 요청했다. 청 대사는 이들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역공했다.
파룬궁 측은 또 다른 질문을 쏟아내며 청 대사와 논쟁을 벌일 태세를 보였다.

이때 청중석에서 “왜 질문을 독점하느냐. 여러 사람의 말을 듣는 게 오늘 강연의 취지가 아니냐?”며 불만스런 반응을 보였다. 강연장엔 긴장감이 부풀어 올랐고, 청 대사는 당황스런 기색을 자제하며 답변을 계속했다.

그런데 강연이 끝났을 때 파룬공 지지자들의 행동은 선을 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연장에서 퇴장하는 청 대사에게 야유와 구호를 외치며 돌진했고, 청 대사는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주최 측이 항의 시위자들을 말리지 않았다면 몸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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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에서 강연중인 청융화 중국대사



나는 언론보도로 수없이 들었던 파룬궁의 행동을 처음으로 보았다. 파룬궁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들이 막판에 보여준 시위 행동을 보며 “저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강연회는 공개된 회의였다. 파룬궁 여부를 떠나 누구나 참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용어 사용 등에서 중국대사의 심경을 건드릴만한 중국 내부의 문제가 있었지만 기자나 일반인들도 질의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또한 중국대사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단호하게 반박하고 중국의 입장을 밝혔으니 어찌 보면 주고받는 공방이었다. 또한 주한 중국대사라면 이 정도의 분위기는 아량으로 수용하는 것이 ‘대국’의 외교사절다운 자세라고 생각했고, 중국대사도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자제하는 눈치였다.

파룬궁 지지자들이 여기서 자제했다면 긴장감 있는 연설회로서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강연을 듣고 질문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중국대사에게 보여줬던 것이다. 주최 측은 참석한 일부 청중의 불만을 무마시키면서 그들의 발언을 보장해줬다. 이것은 순조롭고 자유로운 강연을 보장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파룬궁 지지자들은 결국 청중에서 시위자로 돌변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이 그들이 계획했던 시위 전술이라면 더 할 말은 없어진다. 그러나 주최 측과 청중이 서로를 배려해야 성숙한 토론문화가 정착되고, 토론을 통해 다수 참여자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주최 측은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 대사들을 초청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 국가의 전략과 생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어렵사리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실내 강연장에서 벌어진 이런 해프닝은 외국 대사에 대한 결례일 뿐 아니라 주최 측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도 많은 차질을 빚게 한다.


절제력도 힘의 원천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한 지 17년이 됐다. 이 짧은 시간에 중국은 우리의 제1의 교역국이 됐고, 연간 400만 명이 중국에 여행하는 제1의 인적 교류국가가 됐다. 이런 물적 인적 교류 외에 북핵과 관련한 6자회담을 거치면서 중국의 외교안보적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증대하고 있다. 중국을 아는 일, 중국을 배우는 일, 중국과 장사하는 일, 중국을 견제하는 일, 중국과 협력하는 일, 중국과 협상하는 일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어가고 있다.

외교관만 아니라 민간의 입장에서도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냉정하게 바라볼 시점이 됐다.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며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수렴하는 여론형성의 지혜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분노도 때에 따라 필요하지만 상황에 따른 절제력도 힘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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