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홍 일 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시거센터 방문연구원, 희망제작소 연구기획위원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 http://www.ips-dc.org)의 대표를 맡고 있는 존 커배너(John Cavanagh, Director of IPS)와 지난 2007년 2월 1일과 2월 8일, 이틀에 걸쳐 약 2시간 30분가량 인터뷰를 하였다. 존 커배너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정책연구소의 대표를 맡아 오고 있으며 정책연구소 전체의 운영, 국제연대사업, 재정문제 등을 총괄하고 있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UN와 국제건강기구(WHO)에서 경제전문가로 일하였으며, 1983년 정책연구소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이후 1997년까지 글로벌 이코노미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와 사회운동이 처해 있는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 그리고 정책연구소의 현황과 특징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에 이어 앞으로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 트랜스아프리카포럼(TransAfrica Forum) 등, 지금까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싱크탱크들을 직접 방문하여 소속 연구원들과 인터뷰 한 내용을 게재할 계획이다.

홍일표(이하 홍) :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정책연구소(IPS)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진보적 사회운동과 싱크탱크 전반에 대해 여쭤보려 합니다. 저는 지난 1월 27일 토요일의 이라크전 반대 집회에 참여했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진행된 반전집회였는데 매우 흥겨우면서도 진지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로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 그리고 마치 60년대 히피를 연상시키는 젊은이들의 춤판 등으로 국회 의사당 앞 광장(Mall)이 가득 채워진 모습이 많이 기억에 남는데요. 저도 제 딸아이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던 것이 못내 아쉬웠을 정도였는데요. 이런 식의 평화적인 집회와 행진, 그리고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리는 방식의 시위가 미국 시위 문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날의 집회가 좀 독특했던 것인가요?

존 커배너(John Cavanagh, 존) : 물론 어떤 집회냐에 따라 다릅니다. 지난 100여 년간 미국의 대중 집회와 행진의 양상은 변화해 왔습니다. 1930년대 열렸던 시위(demonstration)의 경우 매우 폭력적이었고, 참가자들은 대부분 남성 성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마틴 루터 킹이 이끌었던 시위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시위대의 전면에 등장을 하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행진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이 시기까지는 아직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고요. 베트남전 반대 운동 당시에도 마찬가지인데, 유명한 켄트 주립대학 사건에서처럼 경찰의 발포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는 등 경찰과의 폭력적 대결이 빈번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죠.

”?”지금의 이후 1975년부터 1995년 정도까지 약 20년 동안에는 시위 양상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반세계화 시위들로부터 다시 한 번 변화하기 시작하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1999년의 시애틀에서 열렸던 반세계화 시위 당시에는 약 6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었는데 이때부터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당시 시위대 일부가 경찰과 충돌하고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는 했습니다만. 지난 1월 20일 반전 시위와 같은 평화적인 대규모 시위의 양상은 2003년 2월, 이라크 침공 직전 열렸던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당시 많은 시민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왔고 가족 단위로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저 역시 제 아들을 데리고 시위에 참여 했었고요. 그리고 이번 시위의 경우에는 전 국민의 2/3이 전쟁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것이라는 점도 시위의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시위대 뿐 만 아니라 경찰들도 반대하고 국회의원들도 반대하는 분위기였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도 크게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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