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지금, 나는 희망제작소인가

2014년 4월 9일, 지난 14년간의 ‘영리기업’ 근무를 접고 ‘비영리단체’인 희망제작소 시니어사회공헌센터의 연구원이 되었다. 출근한 지 이틀 만에 ‘행복설계아카데미'(전문직 은퇴자 제2인생 설계 프로그램) 운영자로 주말도 반납하고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던 중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정말 나만 행복하면 될까?

‘멀쩡히 월급 잘 주는’ 영리기업을 뒤로 하고 상대적으로 ‘어렵고 힘든’ 비영리단체를 선택한 나를 향한 주변의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다’가 대부분이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 거리, 턱없이 낮아진 월급, 일당 백을 요구하는 업무. 그럼에도 왜, 지금, 나는 희망제작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가?

영리기업을 다니며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은 7~8년 전부터다. ‘나는 월세를 내야 하지만 쾌적한 집이 있다. 나를 누구보다도 믿고 의지해 주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나 혼자만 행복하면 되는 것일까? 구호단체에 매월 기부를 하는 것만으로 나는 내 할 일을 다 한 것일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과 책임감이 짓누르기 시작할 때, 2012년 상영된 영화 ‘두 개의 문’은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뉴스로만 접했던 용산 참사를 다른 결로 이야기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관련 기사와 글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회적 구조와 모순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과 말’은 결국 자연스럽게 무언가 하고 싶다(해야 한다)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2013년, 결국 나는 이직을 결심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2014년 4월 희망제작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 천개의 행동 캠페인 때 '사교육비를 비영리교육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 천개의 행동 캠페인 때 ‘사교육비를 비영리교육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좋은 일을 한다는 것

영리기업에서 일을 잘 했다고 해서 비영리단체에서 나를 환영하며 맞아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희망제작소에 들어오기 전, 1년 가까이 비영리단체에 대한 탐색과 준비 기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적응은 쉽지 않았다. 효율성을 앞세운 수직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에 익숙한 내가 구성원이 함께하는 ‘수평적’ 의사결정에 적응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반면 내 ‘아이디어’와 ‘신념’을 믿어주고 들어주는 이곳은 무시무시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희망제작소에서 ‘내가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은 더 무겁게 돌아온다. 희망제작소의 ‘생각과 행동’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어주는 후원회원들과 동료들의 조용한 믿음 덕분에 내 일은 내가 도전해야 할 과제인 동시에 의무가 된다. 이곳에서 책임감은 ‘숙명’과도 같다.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때때로 더 적은 임금으로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지치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유동적 근무시간, 재택 근무, 직무 분담은 오히려 비영리단체가 영리기업보다 훨씬 뒤쳐져 있다. ‘인권단체에 직원 인권이 없고, 복지단체에 직원 복지가 없고, 개발단체에는 직원 개발이 없다’는 우스갯 소리는 비영리단체의 웃지 못할 현실이다. 좋은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의 노동가치는 평가절하되고 성과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은 열악한 근무환경, 낮은 임금, 강도 높은 노동을 업보와 같이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비영리단체는 타 직종에 비해 이직률이 매우 높고 숙련된 인재를 확보하는 데 늘 어려움을 겪는다.

▲ 딸 서안이가 나에게 준 편지,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면서 딸과의 대화 주제가 다양해졌다.
▲ 딸 서안이가 나에게 준 편지,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면서 딸과의 대화 주제가 다양해졌다.

나는 진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제작소에서 ‘희망’을 본다. 한국 사회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신자유주의 탄생 아래 무서운 속도로 물리적 팽창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사람들에게 ‘남들만큼 살아야 한다’, ‘뒤쳐지면 끝이다’는 끝없는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사회는 자기 삶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약자와 소수자를 공격하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렇듯 ‘나’ 이외의 타자 즉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 혐오가 넘치는 지금, 그래서, 또 다시 희망제작소다. 사회적 윤리와 공동체적 결속, 시민과 함께 연대하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고민하는 이곳. 사회적 이슈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실질적 대안을 만드는 희망제작소는 그래서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씽크탱크다. 아니 ‘Think & Do Tank’다.

희망제작소의 일원이 되면서 작지만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책장에 사회과학 분야 책들이 점점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대안 언론사에 후원을 하고, 직접 집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내가 이 사회에서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연대하는 힘을 통해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희망제작소의 연구와 사업을 통해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딸아이가 내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엄마 가방에 노란 리본은 ‘세월호’ 언니 오빠들 기억하려고 단 거지?”
“응”
“1년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잊지 않은 거지?”
“응”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야?”
“물론이지, 앞으로도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나는 생각하고, 말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나는 진화하고 있다.

글_ 최호진 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hjjw75@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