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지난 11월 15~16일, 서울과 완주에서 제3회 커뮤니티비즈니스 한일 포럼  ‘커뮤니티비즈니스, 다시 사람이다’가 개최되었다. 이번 한일 포럼에서는 ‘문화적 자원 활용과 인재육성 전략’을 주제로 문화예술과 커뮤니티비즈니스를 접목시킨 한·일 양국의 다양한 사례가 발표되었다. 두 차례에 걸쳐 15일 서울에서 진행된 포럼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사용자 

커뮤니티비즈니스, 다시 사람이다 (1)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첫날 포럼에는 문화예술인, 지역 활동가, 공무원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참석해 객석을 채웠다. 희망제작소 유시주 소장의 개회사로 포럼의 막이 올랐고,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혼다 오사무 소장과 완주군 임정엽 군수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어서 일본의 NPO법인 ‘미야자키 문화본포’ 이시다 타츠야 대표의 기조 강연이 진행됐다.

‘새로운 공공’의 부상

2011년 일본은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며 ‘새로운 공공’이라는 과제가 정책에 포함되었다. 사실 이 개념은 일본 인구가 감소 추세로 들어선 이듬해인 2007년에 처음 제시되었지만, 정권 교체와 함께 ‘새로운 공공’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된 것이다.
 
일본은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세금 수입은 줄고있지만, 공공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예산만 일방적으로 투입하는 기존의 공공 정책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 ‘새로운 공공’이 대두된 배경이다. 지역 사회의 공공 서비스는 행정 혼자서 담당할 수 없으며, 지역 주민이 힘을 합쳐 처음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의 주체적인 참여와 재정 자립의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 길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비즈니스와 소셜비즈니스다. “이제 돈은 우리 손으로 벌 수 있다”고 이시다 대표는 말한다. 지역 자원을 발굴해 수익 모델로 정비하면, 주민들 자신의 손으로 이제까지의 공공 영역보다 더 삶에 밀착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공공 영역을 창출할 수 있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온 세상이 다 좋은 관계성

일본 경제산업성은  ‘사회성, 사업성, 혁신성을 갖는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으로 커뮤니티비즈니스를 정의한다. 그러나 이시다 대표는 커뮤니티비즈니스나 소셜비즈니스는 이 세 가지 외에도 참여하는 모든 주체 간의 ‘관계성’이 성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대면하고 “고맙다” 말을 건네며 상생 · 공존의 구도로 이끌어가는 관계성이야말로 일반 기업에는 없는 커뮤니티비즈니스만의 활력소이다.

일본에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온 세상이 다 좋은 관계성’이라는 말이 있다. 이시다씨는 이를 커뮤니티비즈니스의 핵심으로 파악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화폐 경제 이전의 물물교환에 의한 경제 행위는 이러한 관계성에 뿌리를 두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커뮤니티비즈니스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인류가 수천 년 전부터 해왔던 활동을 재현하자는 것일 따름이다.


이러한 관계성과 ‘주민 주체’라는 원칙을 염두에 두고 미야자키 문화본포는 주민과 함께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다. 미야자키 아야정의 활엽수림 자원을 이용해 숲 가이드 양성 유상 교육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삼림 관광을 활성화 할 수 있었다. 또 다치바나의 상가 거리에 상인들의 협조를 얻어 화단을 조성하고, 화분에 작은 광고를 달아 광고료로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행정의 보조에 의존하기보다 기업의 협찬금 · 광고료로 보다 자립적인 사업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취지이다. 시민들이 축제 등의 이벤트나 사업을 벌일 때 경비를 받고 전화 대응, 티켓 판매, 언론 홍보 등을 맡는 시민활동 사무국 대행 서비스도 제공한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완성품을 제공하는 대신 시민들의 주체적인 사업에 인적, 물적 노하우를 지원해 함께 커뮤니티비즈니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만화 속 악당’이 되라 

이렇듯 지역의 사람, 건축물, 역사, 문화, 전통 등을 발굴하면 그 자체로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원료 상태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기술, 체제, 각색, 프로듀싱이 더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재가 요구된다. 그럼 커뮤니티비즈니스 및 소셜비즈니스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우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커뮤니티비즈니스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이익을 종합하고 아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 커뮤니티비즈니스는 엄연한 사업이므로 자금 관리에 철저하고,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인재는 오직 경험으로만 길러진다. 책이나 세미나만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일단 맡겨볼 수 있는 사업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초기엔 몇 번 실패를 하더라도 수용하고 격려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계속 실패해도 세계 정복을 위해 되돌아오는 만화 속 악당들처럼, 실패에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세상을 우리가 그리는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재도전하는 사람이 커뮤니티비즈니스의 리더”라며 이시다 대표는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강연을 마쳤다.

마을을 살린 히나 인형

다음 순서로 NPO법인 ‘주민의 힘’ 노무라 유키하루 대표가 단상에 올라 전통 자원 활용으로 잃었던 생기를 되찾은 다카토리마을의 사례를 소개했다.

나라현의 다카토리 마을은 2009년 60세 이상 인구가 30% 이상을 차지할만큼 고령화 된 지역이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며 소비 인구가 줄어 경제적으로 쇠퇴하던 이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히나 인형이었다. 히나 인형은 일본의 전통 축제 히나마츠리에서 여자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는 의미로 주던 선물로, 일본 여성에게는 소중한 추억의 물건이다.


다카토리 마을에서는 이 히나 인형을 자원한 100여 가정에 장식해, 관광객들이 직접 전통 양식의 민가를 방문해 인형을 구경하고 집주인으로부터 설명을 듣도록 했다. 단순한 상품화가 아닌, 추억과 전통을 되살리고 주민의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낸 기획으로 다카토리 마을은 전통의 활기를 되찾았다. 축제를 중심으로 고령자 여성회, 노인 연합회 등이 떡 판매나 이벤트 안내 를 하며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 주민들이 관광객과 교류함으로써 활기차게 지내도록, 상점가가 폐점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고령자들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도록 앞으로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노무라 대표는 말한다.

다카토리 마을이 전통의 재발견으로 마을을 활성화한 사례였다면, 이어진 강연에서는 NPO법인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협동기구’의 미와 워렐씨가 현대 미술을 통해 지역의 문화와 관광을 부흥시킨 ‘대지의 예술제’를 소개했다.

마을이 곧 ‘예술’이다

니가타의 에치고츠마리 지역에는 760㎢에 이르는 광활한 토지 곳곳에 약 200여 점의 설치 미술작품이 흩어져 있다. 허수아비 인형에서 거대한 조형물이나 공원에 이르기까지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이 예술작품들은 일본과 해외 예술가들이 에치고츠마리의 자연과 역사, 주민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따라서 이 조형물들은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어가 마을의 이야기를 전한다.

계단식 논 위에 농부에게 경의를 표하는 시를 걸어놓은 <이리아&이메리아>, 지금은 자취를 감추어버린 마을의 강줄기를 노란 깃발로 재현한 <강은 어디로 갔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주민들에게 고장의 아름다움을 환기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파괴된 현실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 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변화시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처음부터 대지의 예술제가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시작 당시에는 땅 소유주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그들을 찾아가 대화와 협상의 자리로 끌어내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 <강은 어디로 갔나>가 살치된 땅의 소유주 200명을 일일이 찾아가 허락을 받기도 했다. 처음엔 반대하거나 마지못해 승낙한 땅주인들도 점차 예술품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자기 땅의 예술품에 대해 경탄하니 흐뭇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치미술품만으로 연중 관광객이 몰려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에치고츠마리에서는 지역 자원을 활용한 각종 연중사업을 벌이고 있다. 유휴 농지를 대여해주는 ‘계단식 논 오너(Owner) 제도’로 백 명 가까이 되는 외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러 이곳에 온다. 지역 브랜드 상품 개발 사업을 통해 생산자와 디자이너를 연결해 지역 특산물의 포장, 디자인, 프로모션을 개선해 판매를 촉진한다. 향토 음식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먹을거리 프로젝트와 농악 학교도 연간 활발히 운영 중이다.

성공의 비결은 네트워크

소설 <설국>의 무대인 니가타는 3,4월까지 눈에 덮여 있는 다설 지역이다. 야외에 설치된 조형물들을 지키기 위해 눈을 치우는 일만해도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학생 자원 활동가로 이루어진 ‘아기뱀 대’이 이런 일을 담당한다. 홍콩에서도 학생들이 올만큼 폭넓은 네트워크인 아기뱀 대는 작품 정비, 빈집 정리, 행사 도우미, 방문객 맞이 등 곳곳에서 대지의 예술제를 지키는 활약을 한다.

또한 도쿄 사진학교, 교토 세이토 대학, 일본 대학 등 학술 단체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로 대학 세미나에서 에치고츠마리의 사례가 소개되고, 젊은 예술 인력이 방문해 낡은 민가를 새 민박집으로 개조하는 등 재능 기부도 활발하다. 지난 동북대지진으로 에치고츠마리가 피해를 입었을 때는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과학자, 사회학자, 예술가 등을 강사로 초청해 민간 학교를 열기도 했다. 민간 학교는 지진으로 무너진 삶의 터전에서 복구의 의지를 다지는 촉진제가 되었다. 에치고츠마리 인적 네트워크의 활약상은 커뮤니티비즈니스의 성공이 결국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에치고츠마리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니가타라는 외딴 곳의 유일한 자원인 자연과 농업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예술을 통해 그것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미와씨는 예술이 특정 정의나 활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자연이나 삶 그 자체, 주민의 일상 속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옛날부터 그 지역에 있었던 자연, 삶의 지혜 등을 예술을 매개로서 재발견하는 활동이 대지의 예술제이다.

창작공간과 시민, 벽을 허물자

이어서 부산문화재단 차재근 문예진흥실장이 대지의 예술제처럼 예술을 주민 삶의 현장으로 끌어온 부산 또따또가 사례를 소개했다. 또따또가는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문화 클러스터다. 지금까지 폐교나 폐공장, 유휴 건물을 창작공간으로 활용한 사례는 많이 있어왔다. 문제는 이런 공간들이 주민과는 격리된 예술가의 점유 공간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집중화라는 장점도 있으나 지역과의 소통 면에서는 취약했다.

또따또가는 예술가와 주민 간의 교류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주민 삶의 현장에서 실현하자는 취지아래 발족했다. 그래서 ‘창작촌’이 아닌 ‘문화창조공간’을 기획했다. 한 곳의 집단 거주 지역이 아닌 부산 중구 구석구석의 빈 건물 및 공간 18곳에 예술가들을 입주시켰다. 물리적 공간의 분산과 함께 예술가들의 활동 영역이 지역 곳곳으로 확대되길 기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이 시민과 만날 때 얻어지는 효과는 무엇일까. 단순히 시민이 예술적 체험을 일시적으로 ‘소비’하는 게 목적은 아닐 것이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예술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배양된 시민의 역량이 지역 발전에 스스로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따또가의 모든 작가와 공간은 시민을 위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점심시간 30분간 직장인을 대상으로 각종 문화예술 강좌가 펼쳐지는 ‘비타민C30’, 영세한 인쇄소 골목길을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 그린 벽화로 장식한 ‘경민이의 사과나무’ 등이 그 예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의 성과를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민이 배양한 문화예술의 힘이 언젠가 시민주도 지역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란 믿음이다.

글_뿌리센터 김영 인턴연구원

※ 다음 글에서 15일 포럼 2부 행사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도노시의 사회교육 사례ㆍ일본의 장인 전통을 커뮤니티비즈니스로 재구성한 사례, 신촌의 풀뿌리사회지기학교 사례를 소개합니다. ☞ 커뮤니티비즈니스 다시 사람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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