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박용남의 도시 되살림 이야기

독일 서남부의 흑림(Schwarzwald)을 끼고 함부르크에서 바젤로 이어지는 아우토반을 달리다 보면 서쪽으로는 프랑스, 남쪽으로는 스위스와 접한 유럽의 관문도시, 프라이부르크를 만나게 된다.

유럽을 대표하는 태양도시이자 독일의 환경수도인 이 도시는 남, 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포도밭이 도시의 상당부분을 점유하는 전형적인 녹색의 도시이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2005년 현재 총인구가 약 21만 6천 명으로, 그 중 약 2만 5천 명이 대학생과 학교 관련 종사자로 이루어진 대학도시이다. 또한 경제활동인구 11만 명 가운데 80% 이상인 약 9만 명이 관광, 호텔, 음식업과 각종 행정기관 등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문화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태양 에너지의 메카

프라이부르크 시가 ‘환경도시’, ‘환경수도’로 알려진 것은 불과 3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1974년에 이 도시를 둘러싸고 약 30km 떨어진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접경지역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추진되었다. 이를 반대하기 위해 시작된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저항운동을 계기로 녹색당과 분트 등 수많은 민간환경단체가 결성되었다.

이들이 주체가 되어 프라이부르크 시의회와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면서 도시 자체를 선진적인 환경정책의 전시장으로 만들고,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의식구조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재생가능 에너지, 특히 솔라에너지에 기반을 둔 태양도시의 건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시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물에는 에너지 절약 기준을 강제하고, 동시에 태양광발전, 소수력, 열병합발전 등을 장려해 핵발전이나 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비율을 지속적으로 줄여 나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태양 에너지의 활용을 확대하는 사업을 시정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추진하였다. 그로 인해 프라이부르크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경쟁 도시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태양열 주택단지가 있고, 태양에너지 시설과 관련 기구, 연구기관, 관련 산업체가 집중되어 있다.

이 도시의 태양에너지 관련시설은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에 있는 높이 60m의 ‘솔라타워’를 비롯해 드라이잠 축구경기장, 프라이부르크 솔라센터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다.
 
그리고 태양전지 패널을 만들어 전세계로 수출하는 ‘솔라패브릭(Solar Fabrik)’이라는 공장과, 태양에너지 건축가 롤프 디쉬(Rolf Disch)가 설계한 태양주택 ‘헬리오트롭(Heliotrop Solar House)’을 비롯해 리젤펠트(Reselfeld)와 보봉(Vauban) 생태주거단지에 있는 파시브주택 등 주거시설에서도 태양전지판의 설치가 아주 보편화되어 있다.

이밖에도 프라이부르크에는 태양에너지 관련 주요 국제기구들이 상당히 많이 자리잡고 있다. 태양에너지 연구자, 기술자, 건축가 등 100여개국 5천여 회원을 거느린 국제태양에너지협회(ISES: International Solar Energy Society)가 지난 95년에 미국에서 이곳으로 본부를 옮겼고, 유럽의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관련 기구인 유로솔라(EUROSOLAR)도 이 도시에 있다.

이에 힘입은 탓인지 솔라산업이 지역경제의 견고한 기반으로 자리잡은 프라이부르크 시는 해마다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는 태양 에너지 관련 산업의 박람회장으로도 아주 인기가 높다. 유럽에서 가장 큰 국제 태양 에너지전시회 ‘인터솔라(Inter Solar)’가 매년 이 도시에서 열리는 것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 관련 박람회와 심포지엄 등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열린다.

”사용자

바람에도 길을 내주는 도시

프라이부르크 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뮌스터 대성당을 제외한 도시 건물의 약 80%가 파괴된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프라이부르크를 찾는 외국인들은 수백년간 잘 보존된 도시와 건물들을 여전히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 이유는 재건 당시의 전통과 역사의식을 깊게 간직한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이 예전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복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지혜가 친환경적인 인간 중심의 도시를 창조하는 데도 아주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프라이부르크에는 도심 내에 순환수로와 바람의 통로 등 친환경적인 도시설계가 잘 이루어져 있다. 시 중심가에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오래된 건물이 즐비하게 서 있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도록 설계된 노출수로가 시내 골목마다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베히레(B?chle)라 불리는 이 수로는 총연장이 8.9㎞이며, 그 중 노출되어 열려진 구간은 5.1㎞에 이른다.

이들은 폭이 대략 30㎝ 정도로 넓지는 않으나 오래된 도심을 중심으로 시내 전역을 통과하면서 흘러 매우 신선한 느낌을 주며 프라이부르크를 상징하는 독특한 이미지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 수로가 도시 내부로 들어오면서 도시 내의 온도조절과 청정환경을 유지하는 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프라이부르크에서는 건축계획을 통제하여 바람 길을 조성함으로써 도시 내에서 대기정화를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시는 자동차 대중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1970년대에 극심한 차량혼잡을 경험한 이후 일부 상인과 지역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뮌스터 대성당을 중심으로 반경 1.5㎞ 지역인 옛 도심 내에서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보행자전용 공간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이와 더불어 자전거 주차장인 모빌레와 자전거 전용도로 건설 등을 통해 자전거천국을 만들고 버스와 노면전차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동차의 수송분담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요금을 획기적으로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 1984년에 독일 최초로 ‘레기오카르테(Regio-Karte)’-독일?스위스?프랑스로 이어지는 2천2백㎢의 ‘레기오(Regio)’라는 지역의 중심에 프라이부르크가 위치해 있다.

레기오 지역의 환경정기권이라는 뜻에서 ‘레기오카르테’라 불리는 ‘환경정기권 제도’를 도입해 도심 반경 50㎞내 지역을 엮는 연장 2,600㎞의 국철, 시영 및 사영버스, 노면전차 등 거의 대부분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프라이부르크 시의 레기오가르테 한 장 가격은 실제 대중교통 실비의 약 60% 수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시와 주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하게 도시 내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길을 열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량속도제한 강화와 주차요금 인상시책을 병행?추진하여 자전거와 노면전차 등 대중교통수단의 비교우위를 높이고 자동차의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여 나갔던 것이다.

1018123433.bmp살아있는 환경교육의 현장

프라이부르크 시내에는 1986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정원박람회 때 만들어진 호수공원이 있다. 여기에는 ‘외코스타치온(?kostation)’이라 불리는 자연친화적인 환경교육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 외코스타치온의 토지와 건물은 시 소유이지만, 건축물의 구상에서부터 다양한 환경교육 활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운영은 독일의 최대 환경단체의 하나인 분트(독일환경자연보호연맹)의 주지부에서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생태건축의 대표적인 모델 가운데 하나인 이 건물의 면적은 불과 50평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자재는 지역에서 나는 천연목재를 주로 활용했고, 단열재도 폐지를 이용하고 점토 반죽을 함께 사용했다. 천장 중앙에는 자연채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 밝은 창이 나있다.

6각형의 통나무식 건물 주변은 대부분 흙으로 덮여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북측 벽면은 열차단을 위해 전부 흙으로 뒤덮었다. 그리고 남쪽에는 태양열 온수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유리와 솔라패널 등이 자리잡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주 인상적인 분위기를 느끼도록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주말이 되면 부모와 아이 등이 가족단위로 몰려와 쓰레기 분리수거, 숲 체험하기, 나무 의자와 수공예품 만들기 등 여러 가지 현장 실습을 하고 다양한 강좌에 참여한다. 그리고 프라이부르크에 사는 학생들은 이곳을 방문해 동식물을 관찰하고 야채와 꽃을 재배하거나 새집 만들기를 하는 등 교실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자연교육을 받고 있다.

외코스타치온 주변에는 수만 평에 달하는 잔디밭과 호수, 숲을 가로지르는 자전거도로, 숲에 둘러싸인 나지막한 주택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지구에는 생태정원인 ‘비오가르텐(Biogarten)’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한 자연 퇴비화와 무농약 유기농법 등을 통해 다양한 야채나 꽃 등을 기르고 있다. 이 비오가르텐은 앞서 언급한 외코스타치온과 함께 프라이부르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환경공간이자 생태학습장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 시는 지역산업구조를 환경과 태양산업 위주로 전환시킴으로써 환경보호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아주 흥미로운 도시이다.

이 도시는 수려한 자연경관보다는 프라이부르크 시 자체의 정책적인 환경보호 노력과 시의회?시민?기업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제도화된 효율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이 만든 산물이기도 하다.

※ 지식공유를 허락해주신 박용남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글_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

2001년 ‘꿈의 생태도시 꾸리찌바’ 를 소개하면서 꾸리찌바 박으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 후 여러 곳에서 기고와 강연을 통해 신도시 건설에 집착하는 우리 도시 재생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는 자동차와 건설에 치우친 도시재생의 개념을 사람을 중심에 두는 개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브라질의 꾸리찌바시를 비롯한 해외 도시들의 참다운 도시 재생사례를 수집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계도시라이브러리는 우리 지역과 도시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국내외 사례를 수집하는 희망제작소의 프로젝트로서 국내외 전문가, 공공리더, 해외동포, 일반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집니다.
2009년 세계도시라이브러리는 주로 참다운 도시재생에 관한 사례를 모아 소개할 계획입니다. 도시의 속성상 끊임없이 제기되는 교통, 쓰레기, 주거 등의 문제를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방안으로 풀어가는 생생한 사례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박용남의 도시 되살림 이야기는  앞으로 여섯번에 걸쳐 매주 1회 연재될 계획입니다.  이 글은 세계도시라이브러리 블로그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세계 도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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