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그리스 해외탐방 후기(2)

[##_1C|1305701644.jpg|width=”450″ height=”33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3. 멸망의 역설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였던 하투샤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딸아이가 불쑥 던진 질문,
“여기가 어딘가요, 충남 예산?”
분명 웃자고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웃고 난 다음에는 되새김질이 되는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해발 1000m 고원에 기복이 심한 비탈길에서 보이는 것은 커다란 암반, 그 뒤로 사람 키를 넘는 약간의 나무들, 주변에 널려있는 잔돌들, 지천으로 깔려 있는 잡풀들, 그리고 돌층계와 하늘, 우리 일행들은 옛 왕궁터에서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찌르면서 찰칵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익숙한 장면이었다. 게다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으니까…

그 소리를 듣고 난부터는 우리 일행들끼리만 찍은 에베소스의 유적지, 베르가마의 유적지, 고린도의 유적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양귀비, 마아가렛, 노란 야생초가 흐드러지게 깔린 언덕과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 그것 역시 사진만 보면 출처가 애매해지게 된다.
[##_1C|1106347681.jpg|width=”500″ height=”16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리스 파르테논신전앞에서 가장 뽐내는 모습으로 찰칵. 수니온에게해에서 신화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_##]
멸망해 버린 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긴 기둥들이 그나마 옛 흥성을 가늠하고 짐작케 하여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했다. 만물은 생, 노, 병, 사를 거친다. 인간도, 왕국도, 그리고 예술도 그러하다. 그래서 역사란 끊임없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카(E`H`Carr)는 말했다. 오스만 제국, 사산조페르시아, 헬레니즘 왕국, 로마제국, 그들의 멸망은 잔 터만 간직할 뿐 역사 속에 이미 매몰되어 있었다. 오직 대화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웃기는 패러독스, 사람들은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엄청난 노고를 아끼지 않고 멸망을 체험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관광인파가 그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 속의 멸망은 지금 멸망되었는가, 온전한 멸망 속에서 오히려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_1C|1077792775.jpg|width=”500″ height=”357″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지천에 핀 야생화들은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혼란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고향의 멋이었다_##]
4. 신과 인간의 밀약
시간이 지날수록 유재원표 정보량은 과부하가 걸려 입력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급기야 신화와 인물들 그리고 1만년 전의 역사와 지명들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마 구약성서를 다문다문 이해하면서 그 편린들을 모아 모자이크를 하는 정도에서 감히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능력별 보충수업(교수님방 세미나)이 있었다. “교수님, 모닝콜이 울렸으니 이제 좀 주무셔야죠” 최목사님의 기가 막힌 종례 선언이 없었다면 무박행진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이스의 포세이돈 신전 앞에서 나는 눈이 확 트이는 영감을 받았다. 푸르른 에게해가 보이는 언덕에 홀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포세이돈 신전, 그가 누구인가.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 아닌가. 그동안 보았던 많은 신전들은 와글와글 군중 속에서 축제와 사랑과 전쟁과 평화를 동시에 치루고 있었다. 그러나 신전은 신이 만드는 게 아니다. 신전이야 말로 인간의 손에서 창작되고 유지되어진다. 그렇다면 바닷가에 바다를 주관하는 신을 세우는 목적은 단 하나다. 거친 풍랑, 요즈음 같으면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를 평정해주고 해상의 일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_1C|1375468940.jpg|width=”500″ height=”37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파묵칼레의 옛 유적지는 말이 없지만 이곳에서의 선조들의 자유를 위한 외침은 귀에 쟁쟁하다_##]
신이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문득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가 일었다. 과연 신이 인간을 보호해주고-
때론 체벌도 하겠지만- 다스리는 것일까.

내가 사는 여수는 유무인도 376개의 다도해이다. 지천에 떠 있는 섬문화를 연구해 보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용왕당이 서 있다. 당집이라고도 한다. 그곳에 바다를 주관하는 신을 모셨다. 익살스럽게도 부리부리한 눈이 툭 튀어나온 허연 수염의 신은 거센 풍랑에서도 끄덕없는 영물스러운 용을 타고 앉아있다. 동양의 용왕님, 서양의 포세이돈, 다를 게 과연 무엇인가… …

아테나 신전은 제우스 신전 보다 더 높은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져 있었다. 전쟁의 신 아테나, 승리의 신 니케가 두 날개가 잘린 채 파르테논 신전에 모셔진 이유는 수많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처절한 인간의 소망을 표현해 놓은 것이다.

민심이 천심이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밥그릇이 천심이다. 술(포도주)을 관장했던 디오니소스가, 노동력을 위한 다산의 아르테미스 신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추앙되고 숭배받은 이유가 바로 천심에 있는 것이다.

나의 상상력은 점점 더 대범해졌다. 과연 신탁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가?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의 위력 앞에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 초인의 힘이 필요했다. 인간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신은 탄생되었다. 적당한 습도와 양분을 주면 고물고물 미생물이 탄생되는 것처럼 신은 그렇게 출현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알렉산더처럼 대왕이 죽으면 신전이 하나 지어진다고 했다. 사람도 죽으면 신이 되는 것이다.

자꾸 여수를 빗대서 미안하지만 여수 영당에는 이순신 장군과 이대엽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곳에서 어부들의 풍어와 안녕을 비는 굿을 매년 치룬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신은 나약한 인간을 지탱해주니 결국 인간이 신이고 신이 인간인 것이다.
[##_1C|1230807837.jpg|width=”500″ height=”16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페르가몬 원형극장에서 아침이슬로 합창을 하면서 동방의 후예임을 만방에 알렸다_##]
5. 사랑의 대합창
인간의 목소리가 모든 악기 보다 더 음악적이라는 베토벤의 합창곡, 희망제작소에서 마련한 터어키 그리이스 역사기행도 장엄한 대합창곡이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낙오자 없이, 어느 한 사람도 아픈 사람 없이, 모두의 행동이 일치를 이룬 대단한 미션을 잘 마쳤다.

푸르름이 넘실거리는 에게해의 석양 모래밭에서 우리 모두는 가슴을 끌어안고 만남의 각별한 인연을 만끽하면서 가장 인간적이기를 고집하였다. 고린도의 사제들이 횃불을 들고 밤마다 사원으로 내려올 때의 장렬함을 감히 나무랄 수 없는 것도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인간적일 때 가장 순수할 수 있다. 한들거리는 작은 풀꽃들, 길거리에서 풍기는 은은한 오렌지향, 완만한 능선을 따라 서있는 올리브 나무, 에게해와 지중해에서 부는 해풍, 그 모두가 따스하고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일행 모두가 동일한 순수를 지향하면서 합창을 했기 때문이었다.
[##_1C|1175425312.jpg|width=”500″ height=”33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파묵칼레 석회암지대 온천에 발을 담그고 물장난을 치는 젊은(?)언니 오빠들의 모습이 벌써 그립다_##]
하지만 모두가 같은 소리만을 낸 것은 아니다. 각 파트에서 자기만의 음색을 튀어나지 않게 불렀다. 다만 조화를 잘 이루었기 때문에 같은 노래 소리로 느껴졌을 뿐이다. 김민기 버젼으로 부른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합창이었으나 김주인 회장님의 사랑의 세레나데는 아리아였다. 하나투어 권희석 대표님까지 동행했으니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이 되었다. 대부분 부부들의 사랑인 것 같으나 엄마와 딸, 아빠와 딸, 오빠와 여동생이 간주곡으로 들어왔다. 희망제작소가 제작한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최문성님의 뒷심이 작용하였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스님과 목사님은 슬쩍 러브샷을 했다. 토리식품 호박죽 쉼표, 성북동 갈비집 마침표, 터어키 관광홍보청 고문, 70대의 노익장, 우리 모두는 전체이면서도 개별이었고, 개별이면서도 전체가 어우러지는, 사랑의 대합창을 성황리에 마친 것이다.

다만 많은 변호사님들과 교수님들의 위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가방들을 시간차를 두고 늦게 도착시킨 터어키 비행기의 고약한 행태를 고쳐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휴게소에서 6.25 참전 터키 용사를 만나 코리아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켰던 박석현님의 민간외교는 웃기다 못해 기가 찬 돌출행동이었다. 그리고 박원순님이 마이크를 들고 했던 “다음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열차를 탈 예정이오니~” 하는 마지막 멘트 때문에 아직 9박 11일 일정이 끝나지 않은 아리송한 의구심이 들어 여행은 여전히 ~ ing 진행형인 듯하다.
[##_1C|1162012677.jpg|width=”500″ height=”33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성소피아성당은 기독교,이슬람교,박물관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 모습에서 회원들은 무엇을 느꼈을까_##]

*글 : 정숙 수필가
*사진 : 김영태, 권혁세, 박석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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