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일본 희망제작소 안신숙 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 메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일본통신 ②  ‘1m가 가른 운명’의 현장을 가다

2011년 6월 4일 ~ 5일, 이와테현(岩手?) 토오노시(遠野市)와 리크젠타카다시(陸前高田市)를 방문했다. 동일본 대지진 구호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일본의 비영리법인 ‘토오노 야마(山) ?사토(里) ?크라시(暮らし)네트워크’ (이하 야마사토 네트워크)에 아름다운재단의 구호 지원 모금액을 전달하고 지원 활동 현장을 둘러보기 위한 방문이었다.

도쿄에서 동북신간선을 타고 출발한 일행은 신하나마키역에서 연안지방으로 가는 로컬선으로 갈아탔다. 30분 정도 지나 토오노역에 도착했다. 인구 30000명의 토오노시는 나즈막한 산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산과 전원, 그리고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가꿔져 있는 전통가옥들이 어우려져 마치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오후 2시, 우리는 바로 야마사토 네트워크 사무실로 향했다. 허름한 창고 건물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일전에 도쿄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던 키쿠치 신이치 부회장과 젊은 직원들이 우리를 맞았다. 키쿠치 부회장은 야마사토 네트워크와 이번 재해지역 주민 지원 사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그는 고교 졸업후 토오노 시청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뒤 정년을 3년 앞두고 퇴직해 지금의 야마사토 네트워크를 창립해 이끌고 있는 토오노 토박이였다.
 
야마사토 네트워크는 2003년 6월  ▲ 지역의 자원을 살려 도시주민과의 교류 ? 이주를 촉진하고 ▲ 전통문화 ? 예능 ? 기술 ? 기예를 전승, 발전시키며 ▲ 지역의 전원 ? 산과 함께 순환적인 생활 스타일을 확립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풀뿌리운동을 통해 자발적으로 생긴 지역의 그린투어리즘 관련 그룹들로 구성된 클러스터형 조직이다.  농촌 체험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희망하는 농가를 조직해 토오노의 전통을 살린 그린투어리즘 활동을 펼쳐왔다.
 
”사용자
그러나 올해 3월11일부터는 인근 연안 지역의 이재민을 지원하는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까지 큰 지진을 4번 정도 경험해봤다. 이번 지진은 오래 흔들리긴 했으나 세 번째 정도의 강도(진도5)였다. 지진으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지만 전기가 끊어졌고, 사무실이 있던 쇼핑센터는 폐쇄됐다. 자동차 네비게이션으로 TV를 보면서 정황을 판단해야 했다.”
 
키쿠치 부회장은 담담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리크젠타카다시, 오오즈치쬬등 인근 연안지역은 쓰나미에 의해 거의 쓸려갔고, 주민 대다수가 집과 가족을 잃고 이재민이 됐으며 모든 행정기관이 마비됐다.

전기가 다시 회복된 것은 이틀 뒤였다. 사무실을 정비해 15일부터 일본 전역의 시민단체 네트워크에 지원 물자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매일 발신했다. 고맙게도 전국의 시민단체로부터 지원물자가 도착했고, 이를 토오노시에 대피해 온 피난민과 현지 피난소, 그리고 민가에 대피해 있는 이재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지원물자는 토오노시 사회복지협의회와 함께 창고에 공동 보관하면서 사용한다. 시간이 지나자 타지역의 지원단체도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3월 28일 ‘토오노 마고코로(?心) 네트워크’를 결성해 지원 조직 체계를 정비했다. 여기에는 토오노시 사회복지협의회와 다른 NGO?NPO, 그리고 토오노시의 민간 기업등이 함께 하고 있는데, 지원 사업을 통일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

이 안에서 야마사토 네트워크는 주로 지원 물자 공급과 피난소 생활로 심신이 지쳐있는 주민들에게 일시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홋도히또이키 사업(一息事業)’ 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민의 가설 주택 입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커뮤니티 비지니스를 조직해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시민펀드를 모집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용자
리크젠타카다시를 둘러보다
 

모금 증서를 전달한 뒤 우리 일행은 키쿠치 부회장의 안내로 리크젠타카다시를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산길을 1시간 정도 달리니 리크젠타카다시가 나왔다. 하구를 향해 달리자 풍경은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구에서 약 3km 떨어진 지점에 도착하자 키쿠치 부회장은 “여기까지 쓰나미가 밀고 왔다”고 설명했다. 도로 양 쪽으로 무참하게 부서진 집과 수많은 자동차, 그리고 밀려온 쓰레기 더미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집들만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가는 길에 리크젠타카다 드라이빙 스쿨(운전 학원)에 잠시 들렀다. 교장과 만나 이재민을 위한 급식 사업에 대해 잠시 논의한다고 했다. 이곳 드라이빙 스쿨 교장은 이전부터 체험학습 등 그린투어와 합숙형 운전면허 취득을 결합해 도시 학생들을 함께 유치해 온 협력 파트너라고 한다.
 
”사용자
드라이빙 스쿨에서 고지의 길을 벗어나 요네사키쬬로 들어섰다. 굴 양식을 하는 오오와타씨 집에 야채 등을 전달해주기 위해서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 꽤 가파른 곳이다. 오오와타씨 집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다행히 집이 무너지진 않았다. 하지만 바로 밑에 있는 집은 그야말로 토대만 남아 있었다.

”사용자
 ‘겨우 1m 남짓한 고도차가 이렇게 운명을 갈라놓을 수도 있구나….’ 새삼 자연의 힘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오오와타씨 가족도 집만 남아 있을 뿐이지, 양식에 필요한 2대의 배와 그물, 굴종자, 그리고 4대의 자동차는 고스란히 쓸려갔다.

“울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일가 10명의 가족이 모두 무사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며 굴종자를 구하려 사방팔방으로 알아 보고 있다는 오오와타씨는 이미 재기의 의욕을 되찾고 있었다. 젊었을 때 실업단 배구 선수로 활동했다는 활달해보이는 그의 부인은 지금 지역 어머니 배구클럽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네트워크가 이번 사태에 큰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밝고 씩씩한 부부의 모습에서 동북인의 강한 생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쓰나미로 흔적도 없이 쓸려간 해안 연안부를 안내받았다. 거대한 제방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 철골만 남은 주유소, 조명만 남은 야구장, 누에 껍질 처럼 변해버린 호텔 등 TV 화면에서 본 광경이 360도로 펼쳐져 있어 마치 가상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다시 산을 넘어 토오노로 들어오자 정갈한 시가와 소박한 전원 풍경에 다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밤에는 키쿠치 키쿠코씨 집에 초대받아 징기스칸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2년 전 한국에 그린투어리즘 견학을 온 적이 있다며, 희망제작소와 한국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지금은 미용사 일을 하고 있지만 농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게 꿈이라고 했다. 꼭 다시 토오노에 와달라는 말에 진심이 어려있었다.

지원활동 현장을 둘러보다

다음 날 야마사토 네트워크의 직원인 타무라 타카마사 (田村 隆雅)씨가 우리를 안내해줬다. 언뜻봐도 도시 청년으로 보이는 그는 대학원 재학시 토오노의 농촌 체험에 참가했는데, 그 때 토오노의 자연과 풍토에 반해서 이주를 결심했다고 한다. 야마사토 네트워크에서 일한지는 7년이 됐다.
 
토오노에는 자신처럼 도시에서 이주해 온 젊은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숙박했던 펜션 주인도 재작년 도쿄에서 이주해 펜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확실히 토오노에는 젊은이들을 불러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만은 아닌 듯 하다. 좌시키와라시 등 수많은 민화의 발상지라는 전통의 향기만도 아닌 듯 하다. 어제밤 토오노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자연과 민화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활스타일과 주민들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연줄이 토오노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무라씨의 소개로 아래의 시설들을 둘러봤다.                  

● 시모쿠미쬬 커뮤니티센터

”사용자그가 처음으로 우리를 안내해 준 곳은 시모쿠미쬬(下組町) 커뮤니티센터였다. 소방센터와 함께 병설돼 있다. 지역 주민들이 모이는  공간이며 토오노가 자랑하는 사회교육의 산실이기도 하다. 토오노시에는 총 10개의 지역커뮤니티 센터가 있는데, 외지에서 오는 자원활동가들에게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역 공간을 활용해 많을 때는 1000명의 자원활동가를 수용하고 있다. 이 작은 도시에서 최대 2000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일부 지역의 커뮤니티센터는 연안지역 이재민의 피난소로 쓰이고 있다.                                                    

●  타카므로 수광원(水光園)

”사용자토오노의 아름다운 자연과 생활 풍경을 재현한 시민 휴양시설. 태양열을 이용해 급탕과 난방을 하고 있으며, 온천과 숙박시설,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다. 하루 약 20명의 피난소 주민에게 온천과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  토오노시 이나리시타(?荷下) 체육관

”사용자실내 체육관에 들어가니 한쪽에 물품 박스가 잔뜩 쌓여있다. 한글이 기재된 다이아몬드 생수와 기장 미역 박스도 눈에 띄었다. 베트남에서 보내온 타올도 쌓여있다. 앞으로 가설 주택 입주가 본격화되면 여름 의류와 생활용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마고코로 네트워크는 지원 물자를 모두 이곳에 모아 공동 관리하고 있다. 넓은 창고 한쪽에선 마치 바자회장처럼 진열대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재민들이 필요한 물자를 직접 가져갈 수 있어 불필요한 배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재민들이 사진 찍히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사진 촬영은 생략했다.  

● 청양원(?養園)

페기물 처리장인 그린센터와 시민휴양시설이 인접해 있다. 그린센터의 쓰레기 연소로 얻은 열을 이용해 급탕과 난방을 한다. 연안지역 피난소에서 아침 9시 30분에 주민들을 버스에 태우고 출발해 청양원에 도착하면 11시가 된다. 주민들은 온천에 몸을 담근 뒤 점심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4시에 다시 버스로 귀가한다. 마치 당일 코스의 버스투어 같다.

청양원은 대욕탕과 휴식공간, 아름다운 정원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오랜 피난소 생활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 가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특히 조리실이 있어서 자원활동가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피난소 급식으로 생활해 온 주민들에게 따뜻한 가정식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주민들이 가장 그리워 하는 음식은 역시 생선 구이. 이를 위해 바베큐 도구를 따로 구입하기도 했단다.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입욕과 생선구이를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인들의 습관을 생각하면 이 서비스가 피난민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이해된다.
     ”사용자
우리는 이곳에서 타무라씨와 헤어져 귀로에 올랐다. 그의 추천으로 역으로 가기 전 미찌노에키(道の?) 카제노오카(風の丘)에서 점심을 먹고 토산품을 구입했다. 토오노가 갓파(우리의 도깨비와 같이 일본 민화에 등장하는 요정)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번 일정 중 전해들은 토오노의 민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에 갓파가 새겨진 쿠키를 몇 상자 샀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토오노에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는 토오노의 민화와 그린투어리즘, 그리고 토오노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글_안신숙 일본희망제작소 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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