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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4월 초순의 제주도는 유채꽃과 벚꽃으로 화려합니다. 꽃처럼 찬란하지는 않지만 더욱 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나뭇가지에서 피어오르는 신록입니다.

제주도의 4월을 알리는 나무 중에 하나가 팽나무입니다. 팽나무가 겨우내 상록수 틈에 앙상한 가지를 펼쳤다가 연두색 새싹을 틔우면 봄은 이제 뒷걸음질을 치지 못합니다.

제주도에는 웬만한 마을이면 팽나무가 있습니다.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고독하게 마을 어귀를 지키기도 합니다. 수령이 50년 이상 되면 멋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로도 쓰이고, 절벽 틈에 자란 것은 신목(神木)의 기능도 합니다. 과거 밭농사가 번창하던 때는 팽나무 그늘이 밭일하는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노거수(老巨樹) 팽나무 그늘은 마을의 문화가 형성되는 곳입니다.

식목일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마을 사람이 퐁낭 한그루를 팔아 수 백만 원을 벌었습니다.” ‘퐁낭’은 팽나무의 제주 방언입니다. 농촌이 살기도 어려운데 나무 한그루를 팔아 수백만 원을 벌 수 있다면 조상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이구나 하고 나무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주 팽나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듣고 보니 “그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년에 제주도의 나이든 팽나무들이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던 고향을 떠나야 하는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경업자들이 태풍과 바닷바람을 견뎌내며 50년 100년 자란 팽나무를 찾아내기 위해 동네마다 돌아다닌다는 겁니다. 육지에 있는 졸부들이 정원 관상용으로 비싼 값을 주고 사들인다고 합니다.

마치 서울의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에 조경수로 심기 위해 전국의 산야에서 멋있는 소나무를 사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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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나이든 팽나무들이 강제이주를 당하고 있다.



제주도 팽나무가 조경업자들의 눈을 사로잡게 된 것은 몇 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도 팽나무는 많습니다. 그런데 왜 조경업자들은 제주도 팽나무를 탐내는 걸까요. 태풍과 설한풍이 거센 제주도에서 자란 팽나무 줄기는 미끈하지 못하고 일생 농사를 지은 사람의 손 등걸처럼 험악합니다. 관상목으로서 그만인 셈입니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더니 제주도의 팽나무는 그 반대의 운명을 맞은 셈입니다.

작년 제주도의 여미지 식물원 회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주도 자연훼손의 심각성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걱정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제주도의 팽나무가 육지로 많이 반출되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이런 일을 미리 내다보고 보호했어야 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누가 팽나무를 사갑니까?”
과문한 나의 질문에 그가 어이없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육지에서 관상용으로 심기 위해 제주도에서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를 파갑니다.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에도 팽나무가 많지만 모양이 다릅니다. 제주도 팽나무는 모진 바닷바람과 태풍을 견디며 자랐기 때문에 첫눈에 보아도 그 줄기가 육지에서 미끈하게 자란 것과 다릅니다. 팽나무는 제주도 마을의 역사요, 제주도 풍토의 상징입니다. 아무데서도 구경할 수 없는 독특하고 귀한 나무입니다. 그리고 육지로 옮겨진 팽나무를 많이 보았습니다마는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는 그 멋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오래된 팽나무가 그렇게 반출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지적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는 제주도가 고향이 아니면서 제주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식물원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팽나무가 제주도에서 차지하는 가치를 토박이 주민의 입장이 아니라 외지인이자 식물원 운영자의 입장에서 더 잘 읽고 있다고 봅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건물이나 아파트 조경수로 전국에서 모양 좋고 오래된 소나무가 끌려옵니다. 이제 팽나무까지 이런 운명을 맞고 있습니다. 학술용으로 몇 그루 옮겨지는 것이야 이해가 되지만 육지의 부잣집 정원 관상수로 제주도 마을의 랜드 마크였던 팽나무가 동원되는 것은 졸부 문화의 극치인 것 같습니다.

좋은 숲과 나무는 그 어떤 인공의 랜드 마크보다도 마을과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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