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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충남교육연구소가 공주시 봉현리에 자리 잡은 지 13년이 지났다. 이미 그 성과가 많이 알려져 있어서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연구소의 활동과 성과에 대해서 충분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료를 볼수록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교사와 교수가 만나서 지역에 민간 연구소를 세울 생각을 했는지, 연구소인데도 지역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마을과 소통하고 있는지, 십 년이 넘도록 흔들림 없이 운영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동력이 궁금했다. 지난 1월 7일 뿌리센터 연구원들이 충남교육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는 폐교된 봉현분교를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이곳저곳 사람의 손을 많이 탄 건물과 소품이 정겨웠다. 도착했을 때 전기공사가 한창이었다. “폐교이다 보니까 해마다 보수비용이 엄청나게 들어요. 교육청에서 임대해서 쓰기 때문에 리모델링도 마음대로 하면 안 되고요. 지난 10년 동안 지원이 있을 때마다, 또 리모델링 승인이 날 때마다 조금씩 고쳐서 교실 모양이 조금씩 다 달라요.” 드릴 소리를 뚫고 교실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교사 연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정로 소장과 조성희 사무국장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삶의 교육, 상생의 교육’이라는 연구소의 모토를 강조했다. 교육이 삶과 동떨어져 있는 문제를 지역에서 풀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연구소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과연 참교육이 맞는 건지 허망함을 극복하고 같이 모여서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겁니다. 연구소란 이름도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바탕이 되자고 지었어요.” 연구소는 충남 지역의 교육에 대해 조사하고, 대안적인 교육방향을 연구하며, 학교교육에 제언도 하고 연구한 프로그램을 직접 실행하고 있다.

폐교에 연구소가 설립되기까지

연구소는 2000년 충남 지역에서 ‘지역에 기반한 교육 연구와 교사 연수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교사와 교수를 중심으로 설립됐다. “교사들의 경우 실천을 위한 연구 확산이 필요한데 그런 게 약하다고 했었고, 교수들의 경우에는 이론은 있지만 현장성이 부족해서, 교수와 교사가 같이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해직교사였다 복직해 서울에서 근무하던 이진철 부소장과 조성희 사무국장 부부가 서울에서 내려와 폐교를 고친 연구소 내 사택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폐교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일부 교사와 교수들이 연구소 창립 멤버로 참여하였던 것이 계기가 돼 폐교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연구소는 ‘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의 교육에 관련한 조사연구를 해 왔고, 교육프로그램은 실험을 거쳐 의미 있는 제도를 중앙에 제안하기도 했다. 회원은 200~300명 정도다. 회원 대부분이 교사이다 보니, 지역 교육 현안에 대한 조사도 활발히 이뤄지는 편이다. 관료적인 정책개발원에서 만들어 내는 연구정책이나 지나치게 급진적인 교사들의 요구 사이에서 대안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현장 교사의 경험과 교수들의 이론을 합했다. 지금은 중앙정부의 정책이 된 혁신학교, 방과 후 학교, 돌봄 학교와 교육복지 사업들이 이미 이곳에서는 예전부터 연구되고 실행해 오던 것이다.

특히 이곳은 농촌의 지역문화와 자연을 소재로 한 교육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강사로 활동하기도 하고, 이것을 일자리 사업으로 연계시키기도 했다. 조 국장은 “처음부터 농촌교육에 방점을 찍은 건 아닌데 지역에 농촌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농촌교육이 핵심으로 나왔고, 농촌교육의 핵심이 뭘까 고민하면서 관련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농촌 교육’이라는 당시에는 새로운 개념을 화두로 던진 것이다. 연구소는 농촌에 뿌리내릴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고 농촌 교사로서 자각을 일깨우며, 교사의 기획력을 강화하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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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 마다 않고 품어 주신 마을 주민들과 한판 신나게 놀아보자!”

이곳은 ‘연구소’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다. 부설 청소년문화학교 ‘느티나무’를 운영해 지역에 있는 아이들이 방과 후 공부방, 주말학교 등의 교육 ?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매년 인근 세 마을과 함께 은행나무축제를 열고 있고 ‘역사문화마을만들기’ 사업, ‘폐교를 활용한 농촌 마을학교 및 문화 공동체 운영사업’ 등 공모사업을 마을과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마을과 연구소가 긴밀해졌다.

“폐교가 되니까 주민들이 아주 허탈해 했어요. 그걸 해결해 줄 집단이 여길 이용하자는 거죠.” 처음에 교사 중심 공동체를 만들자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주민 중심의 지역공동체는 없었다. 그래서 학교를 지역주민과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교육’을 떠올렸다. 회원 교사들의 자원봉사로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 후 공부방을 운영하다가, 학부모인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해 컴퓨터교실과 풍물교실, 한글교실도 만들었다. ‘봉현 마을학교’가 된 것이다.

2002년 연구소와 인근 마을이 함께 ‘은행나무축제’를 열었다. 봉현분교를 중심으로 한 마을처럼 지내던 세 마을이 폐교가 된 후 점차 멀어졌기 때문이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세 마을이 주민협의체를 만들고, 프로그램 기획 과정에선 마을 노인들이 전통 생활상과 경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삶과 농촌을 떼어놓고 교육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농촌 속에서 배울 거리를 찾고 프로그램화 하는 작업을 통해 농촌교육문화공동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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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배워 학교에서 실천한다

2003년 문화관광부의 공모사업인 ‘역사문화만들기 사업’에 봉현리가 ‘봉현농경문화마을’로 선정됐다. 연구소는 마을 지도자들과 사업의 기획과 운영을 도왔고,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지역 학교와 연대해서 운영할 수 있었다. 지역의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모내기, 김매기, 추수, 타작에 참여했다. 이를 발전시켜서 주말학교와 계절학교, 농촌문화체험학습 등 농촌형 프로그램을 만들고 마을 노인들이 이 프로그램의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해 노동부의 사회적일자리사업에 선정돼 교육인력 7명과 마을주민 3명을 고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이 많아지면서 마을 노인회와 관계도 가까워졌다. 노인회에서 연구소 교육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여타 청소년 프로그램과 차별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 활동을 통한 자신감을 통해 마을 노인 회원들은 봉현리 ‘5도2촌 마을만들기 사업’ 등 마을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었다. 농촌교육 활동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연구 활동도 활발해졌다. 교사로 구성된 연구소의 청소년문화연구팀은 농촌문화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2006년에는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에 ‘농촌 청소년을 위한 문화학교 운영’ 사업으로 선정돼, 3년간 10명의 인건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기존의 마을학교를 확대해 본격적으로 ‘농촌청소년문화학교 느티나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08년 봉현리가 ‘5도2촌 시범마을’에 선정되면서, 마을은 연구소에 기획, 홍보, 운영 전반에 대한 지원을 요청해왔다. 그동안 연구소가 먼저 사업을 마을에 제안했던 것과 달리, 마을에서는 사업의 주체로서 정체성을 갖고 제안해 온 것이다. 마을에서는 농촌 관련 마을교육 사례나 정보를 요청하기도 하고, 장기적인 마을 발전 계획에 의견을 묻기도 했다.

5도2촌 마을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의 역량이 커졌지만, 한편으론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저희가 원래 마을이랑 관계가 굉장히 좋았어요. 함께 축제도 해 왔고, 장학생도 만들어서 대학도 보냈고요. 그런데 마을에 돈이 들어왔을 때는 좋지만, 돈이 없어지면 그 사업들이 다 깨지거든요.” 예를 들어, 연구소에서 기획하고 운영해 왔던 은행나무축제를 봉현리에서 5도2촌 사업에 연계하기 위해 맡아 하는 동안 항상 함께했던 나머지 두 마을이 배제되게 되었다. 그런데 권역사업 지원금이 중단된 후부터는 마을에서 축제를 지속하지 못했다. 이처럼 마을사업에 돈이 들어오면서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봉현리는 인근 안양리와 함께 2013년 농촌권역개발사업에 선정되었다. 문제는 이 권역개발사업이 마을에서 장기적인 비전과 발전계획을 세워 유치한 사업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위에서 “한번 해봐라” 하면서 시작된 사업이라는 데 있다고 한다. 지역 내 역량이나 비전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돈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사업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채 20억이 넘는 돈이 들어오다 보니 여타 다른 대다수의 마을이 그러하듯 운영계획도 서지 않은 펜션과 체육관, 건강센터 등 건물을 짓는 것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에 갑작스럽게 큰돈이 들어오면 기존의 마을공동체는 여지없이 흔들리게 마련이에요. 5도2촌 사업이 처음 들어올 때도 마을은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 참여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어 큰 갈등을 이미 겪은 바 있거든요. 평생을 함께 살아온 한 마을사람들도 돈이 개입되니 여지없이 갈등관계가 되어버리더라고요. 그런데 5도2촌 사업규모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20억이 넘는 돈이 갑자기 마을에 들어오니 사실 걱정이에요. 일할 사람과 탄탄한 계획이 준비되지 않은 마을에 들어오는 돈은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약이 아니라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독이 되는 걸 너무 많이 봐왔거든요.” 그래서 조 사무국장은 준비 없이 시작된 권역개발사업이 마을과 충남교육연구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크다고 한다.

젊은 활동가들이 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그간 연구소의 사례를 배우고자 하는 곳이 많았다. 조 사무국장은 “13년이 흐르면서 갖추어진 지금의 모습을 보고, 시작부터 이 모습대로 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정부나 기업 같은 곳에서 돈을 지원받아서 한 곳도 있고요. 이렇게 하면 성과는 처음에 낼 수 있지만 사람이 바뀌거나 정책이 바뀌면 오래 못 가거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행착오도 겪어가면서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구소는 처음부터 사업을 구상하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상황을 잘 읽고 들어와서 다른 곳보다 먼저 시작했을 뿐이었다.

충남교육연구소가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창립할 때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구소를 지지해 온 회원들과, 뚝심 있게 연구소를 지켜온 임원진 그리고 일꾼들과 같은 사람의 힘이 가장 클 것이다. “설문조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회원인 교사들이 쭉 돌려요. 이렇게 급할 때마다 돕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키우고 네트워킹을 한 게 주효했죠.” 또한 연구소는 공모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때 연간 10여 개의 공모사업에 신청하기도 했다. 후원금만으로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열심히 찾아서 썼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우리만 독식하지 말고 다른 곳도 연계할 수 있도록 보다 넓게 생각하려 해요.” 지역의 영세한 단체들과 협업하면서 필요해 보이는 공모사업을 연계해 주기도 하고, 기획서를 쓸 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방과 후 유관기관 협의회, 농촌교육기관,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층위의 네트워킹을 부지런하게 맺었다. 이처럼 사람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젊은 사람들을 키워 내는 일이라고 한다. 산골짜기 농촌에 있는 연구소지만, 20대 상근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공주대 실습 나왔다가 엮인 친구들도 있고, 공부방 음악 강사를 하다가 일하는 친구도 있어요. 여기서 배우다가 대학 간 아이들이 이곳에 돌아와서 도우미 교사를 하기도 해요.” 하지만 젊은 상근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경제적 전망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것도 지속적인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젊은 사람들 데려와서 키워놓으면 학교로도 가고, 기관으로도 가고 그래서 심란하기도 했어요. 연구소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근데 가장 중요한 건 전망을 갖게 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조 사무국장은 이러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간지원조직이던 농촌지역조직이든 젊은 상근자를 위한 경제적인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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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충남교육연구소가 십여 년 동안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대답은 다름 아닌 ‘뚝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를 미리 예상하고 시작하지 않는 것,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지역에서 찾으려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행하는 자세, 그리고 연구소를 지키는 사람들. 이처럼 연구소를 지탱하는 동력은 뚝심이었다.

글_ 우성희 (뿌리센터 연구원 sunny02@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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