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시민교육 : 미래세대를 위한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

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평생학습 초점] 시민교육을 말하다
(4) 학교의 시민교육 : 미래세대를 위한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

「평생학습초점」에서는 앞으로 5회에 걸쳐 ‘시민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랜 기간 다양한 교육 주체들을 통해 진행되어 왔던 시민교육은 그 다양성만큼이나 정의도, 주제도, 내용도, 방식도 모두 다릅니다. 이에 짧은 몇 편의 연재 기사로 모든 것을 담아내고 정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고민하고 있고, 일어나고 있는 시민교육에 대한 현황과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엮어 내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보는 시도의 한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시민교육

현재 경기도에서 혁신교육의 일환으로 학교혁신과 창의지성교육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학교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단편적인 지식 암기와 경쟁에 의한 선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창의적 민주시민 육성’을 목표로 하는 창의지성교육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마주치게 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과 문제 극복을 위한 기획력, 공동체 속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민주시민 자질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교육과 배움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하기를 요구한다. 어떤 가치 있는 내용을 함께 배우고 익힐 것인지, 그 가치 있는 것을 다루는 배움의 방식은 어떠해야 할지, 배움이 일어나는 학교라는 공간과 내용에 대해 전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창의지성교육의 문제 제기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문제 제기이며, 교육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창의지성교육은 학교 교육의 목적에 대해 근본적, 철학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와 동시에 창의지성교육 실현을 위한 학교 운영 전반의 변화 필요성을 제기한다. 과거의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지식과 업무 전달체계로서의 학교는 새로운 교육을 담아낼 그릇이 될 수 없으므로, 교육 주체들의 학교 운영 참여를 통한 학교 민주주의의 실현은 창의지성교육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교사, 학부모, 학생의 학교 운영 주체로서의 인식의 전환과 그 방법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 높아지고 있다.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은 첫째, 학교 내 자치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와 더불어 둘째, 어떤 가치 있는 내용의 민주시민 교육이 이루어지는가의 문제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올바른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을 잡고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 민주주의, 교육, 학교, 미래세대’ 이 단어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방향을 정하는가에 따라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개인들이 갖게 되는 상은 너무나 다를 것이다.

이 글에서는 파리 자주경영고등학교와 스웨덴 의무교육과정을 통해 학교의 근본적인 가치와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학교 안 민주주의,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

필자가 2013년 1월 방문한 파리 자주경영고등학교는 프랑스의 공립학교로 30여 년에 걸친 교육실험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배움과 삶의 모든 영역을 교사와 학생이 함께 책임지고 만들어간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교사와 학생을 7개의 학교운영 팀으로 나눠서 일상적인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교육과정을 결정한다. 학교 구성원 전체의 의견이 필요한 주요사항은 학교 전체회의 및 학생, 교사 대표자 회의 등에서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

학교를 방문한 날, 우리에게 학교를 소개하고 안내한 팀은 그 주의 운영을 책임진 학생과 교사로 이루어진 팀이었고, 학교 관리자는 따로 없었다. 파리 자주경영고등학교는 교사와 학생 모두 학교의 문제를 다루고 결정하는 주체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학교체제를 갖추고 있다. 학생들은 학기 중 수강할 교과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배움에 참여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학생이 스스로 결정하고 참여할 때 진정한 배움이 이루어진다는 교육철학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실수와 실패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파리 자주경영학교에서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학교 운영체제 자체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생생히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학교는 학생자치와 교사자치를 통합한 학교자치를 이룬 좋은 예이다.

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완결된 내용과 형태의 민주주의가 있어서 그것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공동체 운영의 원칙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 상황, 수준을 구성원들이 함께 평가하고 보다 민주적인 공동체 운영을 이룰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이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올바른 판단을 보장할 충분한 정보의 제공, 사안에 따른 의사 표현의 자유 보장, 입장에 따른 갈등 해결과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열린 토론, 의사결정과정에서 제시되었던 소수의견 존중, 사후 평가에 소수의견 반영 등의 민주적 공동체 운영의 원칙을 지키는 조직운영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오랜 역사를 통해 그 구체적인 모습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 이름으로 포괄하는 사회적 계층과 사회적 권리의 내용 또한 달라지고 있다.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 구성원인 민주주의의 주체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교사, 학생,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임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로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지, 주인에게 어떤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는지 정확히 합의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혁신교육과 함께 학생인권조례와 학부모회 조직 등 교육의 주체에게 고루 그 위치를 찾아 주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인 학교운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각 주체들에게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부단히 합의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 주체들이 학교 안 민주주의의 수준과 방향에 대해 진단하는 과정은 학교의 주인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며, 민주적인 공동체 운영원칙에 합의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의 과정이 될 것이다.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을 한다는 것은 학교를 민주적인 운영원칙으로 운영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 학생이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다.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학교’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는 사회 속의 어느 다른 공간보다 철저하게 민주적 가치를 옹호하고 지키는 공간이어야 한다. 학교는 사회의 진전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학생들과 배우고 나누는 공간이므로, 학교 운영에 있어 교사와 학생은 이를 철저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학교 안 민주주의 교육의 방향을 세우고 내용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공간의 근본적 가치에 대해 재정립하는 계기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학교가 지켜야 할 내용과 민주적 가치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면서 접했던 스웨덴 의무교육과정에 나타난 학교의 근본적 가치, 지향하는 규범은 매우 의미하는 바가 컸다.

스웨덴 의무교육과정에서 밝힌 학교의 근본적 가치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국가 학교체계의 기본을 형성한다. 1985년에 발표된 교육법(The Education Act)에 따르면 첫째, 학교의 모든 활동은 근본적인 민주주의 가치에 일치하도록 행해져야 하고, 둘째, 학교의 모든 사람은 각자의 내면적 가치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환경을 존중하도록 해야 하며, 셋째, 학교가 표방하며 전해야 하는 가치는 ‘인간의 삶, 개인의 자유와 온전함의 불가침성’, ‘모든 사람의 동등한 가치’, ‘남성과 여성의 평등’, ‘약자와 소수자와의 연대’이다.

또한 스웨덴 의무교육의 목표와 지침에서 밝힌 학교가 지향하는 목표는 첫째, 지식과 개인적 경험에 기초하여 윤리적 관점을 의식적으로 형성하고 표현할 능력을 기르고, 둘째, 타인의 내적 가치를 존중하며, 셋째, 타인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것에 반대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지원하며 돕고, 넷째, 타인이 처한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진심으로 함께 행동하려는 의지를 기르고, 다섯째, 넓은 시각을 포함한 환경에 대한 존중과 돌봄을 가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의 모든 교직원은 학생들이 연대를 느낄 수 있도록 기여하고, 1차적 집단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책임감을 가지도록 하며, 개인과 집단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며, 민주적인 방법으로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교사는 스웨덴 사회의 기초적인 가치와 개인적인 활동의 결과를 분명히 하고, 학생들과 열린 자세로 다양한 가치와 문제를 드러내고 토론하며, 모든 형태의 학대 행위를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교직원과 함께 취하고, 집단적으로 일하고 참여하는 규칙을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 의무교육의 가치는 스웨덴 의무교육과정 교과목의 내용과 목표에 반영되어 민주적인 교육내용 조직, 민주적인 교육 방식 조직으로 이어져 있다. 이렇듯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은 특정 교과와 교육내용에서 두드러지는 것과 더불어 학교가 지키고 옹호해야 할 가치를 분명히 하고 이를 모든 학교활동에 반영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스웨덴 의무교육과정이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가장 크게 시사하는 바는‘학교’라는 공간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스웨덴 교육법에 나타난 ‘학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스웨덴 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철저하게 옹호하고 지켜가는 삶의 터전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스웨덴 학교의 교육내용과 운영원칙은 이러한 민주적 가치를 철저히 지키기 위해 조직되어 있다. 우리가 배움과 삶의 공간으로서의 새로운 학교를 고민하고 있다면 교육의 변화와 학교의 변화를 통해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학교 안 민주시민교육이 단지 교과서 내용의 구성뿐 아니라 학교의 민주적 운영과 함께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학교를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글_ 오혜원 (화성시 창의지성교육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