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같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지난 4~5월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의 겐론(言論)NPO가 한국과 일본 국민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했습니다.
한국 국민 가운데 72.5%가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일본 국민 가운데 52.4%가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인 가운데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이는 15.7%이고,
일본인 가운데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이는 23.8%입니다.
한 해 500만 명이 오가는 두 나라인데, 국민들 마음 속을 들여다보니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비유가 딱 맞아떨어집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역사 문제가 나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일본은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한 이후에는 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사태가 악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현실적인 한일관계는 최악입니다.
한때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까워졌던 거리가 다시 주춤하며 멀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와 문화를 통해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쌓아가며 평화를 지키는 게 주변국 외교의 기본일 것입니다.
그 기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한국 정부는 이런 위기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타협을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오랫동안 한일관계를 고민하며 외교관 생활을 했던 조세영 동서대 교수는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전합니다.

“나도 내가 죽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 알아.
이 문제는 내가 죽은 후에 여러분들 세대에서 제대로 해결해 줘.
그래도 옛날과 비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게 되었고 우리 편이 되어 주어서 여한은 없어.” (자세히 보기)

외교관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고심하던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타협책도 피해자들을 납득시킬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외교란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국가 사이에서 ‘실현 가능한 차선책’을 찾아 타협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실현할 수 없는 최선’을 지켜 나가야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역사문제가 그렇습니다.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타협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며,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는, 끝까지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한일협정 50주년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옵니다.
식민의 역사를 담지 못한 채 돈을 받아와야 했던, 부끄러운 협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한국이 일본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한국, 중국, 일본의 전문가들과 함께 동아시아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 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 전문가들과 벌였던 토론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전세계에서 기업 임원 중 여성 비율이 가장 낮은 두 나라가 한국과 일본입니다.
기업을 평가하는 지표에 그 항목을 넣자는 의견을 토론하던 끝에, 결국 포함시켰지요.
한일 전문가들이 부끄러운 일을 드러내고 개선하는 데 먼저 나서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예를 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한국과 일본 기업이 좀 더 책임 있는 기업이 되도록 함께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젊은 사회적기업가들이 함께 교류하며 힘을 얻게 하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금융과 교육 같은 시스템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역동적 경제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도 두 나라 공통의 고민입니다.
이 모든 것이 미래를 함께 준비하며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6월 21일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NPO 공동주최로 열리는 ‘한일미래대화’에 참석하러 일본 도쿄에 갑니다.
한일 각각 10여 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워크숍에서 토론할 예정입니다.
한일관계의 문제와 해법에 대해 이야기할 그 워크숍에서,
저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도전해 풀어볼 만한 공통의 문제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2차 대전의 참화를 겪은 독일과 프랑스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거듭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는 과감한 경제협력을 구상하고 공동시장을 제안하면서 독일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뒤 수십년 동안, 유럽은 평화와 복지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침략과 식민의 역사는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한국과 일본도, 좀 더 넓게 보아 동아시아도 그런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대담한 구상을 함께 해볼 수는 없을까요?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는 길을 고민하며 쓴 ‘이원재의 희망편지’는 2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발송됩니다.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메인에 있는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이원재의 희망편지’에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