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라이브러리, 이렇게 해도 되나요?

희망제작소에는 휴먼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거나 운영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문의가 옵니다. 지금까지의 휴먼라이브러리 운영 및 교육, 컨설팅의 경험으로 가능한 답변을 드리고 있지만, 희망제작소 역시 종종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 건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휴먼라이브러리의 가치와 운영방식을 되짚어보기 위해, 전문가를 만나보았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전문가는 평화갈등연구소의 정주진 박사입니다.


>휴먼라이브러리가 뭐지? 처음 접해본 분은 ☞휴먼라이브러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휴먼라이브러리 운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분은 ☞사람책, 어떻게 만나지(휴먼라이브러리 운영자를 위한 안내서)

우리는 그저 단순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서로 대화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로 휴먼라이브러리를 시작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 직장 동료, 친구와 함께 대화를 나누기에 껄끄러운 주제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걱정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답을 알고 싶은 그런 주제들 말입니다.

결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함께 마주 앉아 일상적인 주제가 아닌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오해, 편견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 아니, 상대방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공간. 이런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휴먼라이브러리를 통해 다양한 삶을 이해하기


희망제작소 (이하 희망) : 휴먼라이브러리는 당사자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편견을 해소하는 데 목적을 둔 프로그램입니다. 이 방식이 편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주진 (이하 정) : 그럼요. 개개인이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만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사회가 갖는 큰 문제 중 하나는, 자신과 말이 통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만 만나기를 원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말에 동조해주고 네가 옳아 잘 살고 있어 격려해주는 사람만 만나죠.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만나는 것조차 싫어하고, 만나게 되더라도 대화를 하기보다 싸우려고 해요. 휴먼라이브러리는 사회적 집단 간 벽을 허무는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그 지점으로 가기 전 과정이자 훈련의 장은 될 수 있어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 연습이랄까요? 누군가가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다면 좋겠죠.

희망 : 휴먼라이브러리는 편견을 해소하는 데 목적을 두지만, 실제로 운영해 본 휴먼라이브러리는 일종의 대화훈련의 장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 :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 대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휴먼라이브러리와 같은 방법을 통해 대화를 경험하고 연습할 수 있어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도 싸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경험을 지속해서 하다보면 ‘나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틀린 사람은 아니구나’ 인식할 수 있지요. 더 나아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져요.

사람들이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크게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거예요. 특히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요. “내가 저런 인간하고 만날 필요가 뭐 있어”라고 말하지만, 실은 만날 용기가 없는 거죠. 나하고 싸운 사람과 안 만나겠다고 하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피하고 싶은 거거든요.

2014년 5월 휴먼라이브러리 현장
▲2014년 5월 휴먼라이브러리 현장

안전한 대화의 장 만들려면 꼼꼼하게 기획해야

희망 : 프로그램의 취지와 목적에 동의하더라도, 운영자는 딜레마에 처하게 됩니다. 우선 만나야 실마리가 생기는데, 사람들이 만나러 나오지 않는 거죠. 자발적 참여를 우선으로 하지만, 사람책이 독자를 찾아간다든가 등 다른 방식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정 : 어떤 사람이든 사회적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더 당사자를 만나는 것은 만나보지 않는 것보다 낫죠. 의미가 있습니다. 그게 편견을 깰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사람이 편견을 갖거나 두려움을 갖는 이유는 그 사람을 만나보지 않았거나 혹은 그 상황을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갈등이 생기거나 악화되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입니다. 휴먼라이브러리가 교육의 장이란 걸 상대방이 인지하고 있다면, 새로운 주제나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강요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문제예요. 예를 들어 동성애자가 사람책으로 교실에 방문했다고 하죠. 문제는 사람책이 동성애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느냐 마느냐입니다. 학생 독자가 동성애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사전에 많은 정보를 접해보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보고 스스로 판단해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이후에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강요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주제를 선정하는데 조심성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어리거나 약한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첨예한 문제는 함부로 얘기해선 안돼요. 왜냐면 그것 때문에 다른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아이가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동성애자와 만나고 대화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보죠. 이건 아이와 부모, 부모와 학교 사이의 문제와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희망 : 첨예한 갈등 사안을 다루는 게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정 : 갈등이 첨예한 사안을 피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이런 주제를 받아들이거나 받아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린 아이의 경우 사람책과 힘이 균등하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인 듣기가 될 수밖에 없어요. 성인의 경우엔 사람책의 말에 반박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죠. 물론 주제에 관심이나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요. 무엇보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는 이런 대화를 소화할 수 있는 훈련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숙련된 진행자가 있어야겠지요.

휴먼라이브러리는 소규모 대화여서 대화테이블에 진행자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방식은 관점에 차이가 있더라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그 사안이 문제라 인식하고 동의하는 문제가 대화주제라면 무방하겠죠.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차가 큰 사안인 경우에 진행자 없는 대화테이블은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미혼모 문제는 사회적으로 핫한 이슈인데요. 만약 미혼모가 사람책으로 등장한다면, 이 대화테이블은 사람책에게나 독자에게나 안전한 공간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그 자리에 마음먹고 사람책을 비난한다면 모두에게 불편한 자리거든요. 그걸 저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사람책 혼자 감당해야 하잖아요. 사람책이 충분히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요.

대화할 수 있는 사람책, 질문할 수 있는 독자가 있어야

사람책을 섭외하기 전 인터뷰한 사람책 경험자들이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말하는 점은 사람책으로 참여한 것이 자신에게도 큰 감동과 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편견과 질문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경청하고 이에 걸맞은 답변을 갖춰 대화하는 경험은, 독자 못지않게 사람책을 성장시킵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을 향한 편견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휴먼라이브러리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람책을 발굴하고 사람책을 키워내는 일 또한 앞으로 우리가 짊어져야 할 몫입니다.

일상시민교육으로서 휴먼라이브러리의 과제


희망 : 어떤 사람이 사람책이 되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정 : 우선 주의할 게 독자가 사람책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인데요. 흔히 ‘사람책’하면 책을 한 권 이상 출간한 저자 또는 전문가를 쉽게 떠올리잖아요. 해당 주제에 상당한 식견과 성찰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되죠. 하지만 실제 사람책과 독자가 기대하는 사람책이 다를 경우, 예를 들어 사람책이 단순히 해당 주제의 ‘다른’ 사람일 경우 휴먼라이브러리는 위험해집니다. 사람책은 독자에게 좋은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고 독자의 공격적이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도 잘 소화해서 아울러야 하거든요. 그래야 휴먼라이브러리가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죠. 그렇지 못하다면 교육적 효과가 없어요. 그리고 독자에게 ‘사람책’의 역할과 입장, 상황 등이 어떤지 정확하게 안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책은 ‘잘 훈련된 한 집단의 대변인’으로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사람책 선별은 까다로워야하고, 운영자는 사람책에게 독자의 수준, 환경에 대해 정확하게 안내하고 주문해야 합니다.

휴먼라이브러리가 제 효과를 내려면 독자가 도전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사람책은 내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는 능력 그 이상의 새로운 질문을 이끌어내는 그리고 독자들끼리 토론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앞에 서 있을 때 도전적인 질문을 받는 걸 거북해하죠. 이런 걸 능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책이 필요해요. 만약 선정된 사람책이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면, 중간에 비판과 공격을 유연하게 순화시켜주고 독자 대신 적합한 질문을 던져주는 진행자가 있어야겠죠.

사실 저는 제가 편견을 대표할 수 있나 하는 게 고민이었어요. – 기독교인 사람책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책인 경우 집단적 대표성에 의문이 들어요. – 지역위원 사람책

사람책들의 속사정


희망 : 물론 운영자는 사람책을 선별해서 섭외합니다. 그런데 사람책에겐 이런 고충이 있어요. 운영자는 편견에서 벗어난, 즉 편견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경험을 지닌 사람책을 섭외하는데 사람책이 생각하기에 대중들의 편견이 사실인 경우도 있거든요. 그리고 사람책 주변에 편견 그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러면 자신이 이 주제에 적합한 대변인일까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요. 혹시 내가 독자들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고요.

정 : 누가 그 역할을 맡든 일반화는 할 수 없죠. 독자들이 사람책 한 명을 만나고 그 집단군을 일반화시키지는 않아요. 아주 어린 아이라면 모를까요. 그래서 중요한 게 질문입니다. 사람책의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이 도전적인 질문을 해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전적인 질문을 하는데 약해요. 투쟁적인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질문은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질문으로, 진짜 질문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사람들은 도전적인 질문을 하도록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야기에 빠르게 동화되는 것에 비해 내용을 분석해서 자기 질문을 개발하는데 약해요. 이럴 경우 진행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공무원 사람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당신처럼 살아가는 공무원이 전체 중 몇 퍼센트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질문이 나와야죠. 그래야 독자들이 사람책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죠.

우리 주변 모든 사람과 사건이 휴먼라이브러리의 주제

저희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편견보다는 기사 검색을 통해서 찾았어요. – 기획자 K
어떤 편견을 다룰 것인가 고민하기보다는 이미 주제가 정해져 있었어요. 오히려 걱정은 편견의 주제가 한 가지로 단일하다는 거죠. – 기획자 C

휴먼라이브러리, 직접 해봤더니


희망 : 휴먼라이브러리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운영자가 부딪치는 문제는 여러 주제 중 어떤 주제를 선정할 것인가 입니다. 어떤 주제가 휴먼라이브러리에 적합할까 또는 다양한 주제 중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까 등을 고민하는데요.

정 : 사람들이 그 시점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죠. 매일매일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지는 게 한국사회인데요. 땅콩회항 사건을 예로 들어볼까요. 갑을문제뿐만 아니라 돈, 인권, 자존감, 직업윤리 등 파생되는 여러 문제가 있잖아요. 브레인스토밍을 해보면 금방 나오죠.

제 생각에 이 질문의 속사정엔 운영자가 혼자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브레인스토밍 과정 없이 주제를 한 번에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듯해요. 두세 사람이 점심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면 주제 선정이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희망 : 휴먼라이브러리는 대화의 장을 여는 이벤트인데요.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선 대화내용이 휘발되는 게 아깝고, 독자 입장에선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게 아쉽기도 해요. 이렇게 일회적으로 만나는 게 편견 해소에 과연 이바지하느냐고 묻는 분도 있고요.

정 : 이건 선택의 문제죠. 프로그램의 목적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 달라요. 사람들은 종종 누군가 밥도 차려주고 떠먹여주고 소화까지 시켜주길 기대하고 착각해요. 이럴 땐 우리가 하는 일은 단초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운영자가 확실하게 얘기해줘야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일을 하고 있잖아요. 이후 후속작업을 해야 할 필요를 운영자가 느낀다면 그때 다른 방식을 고민할 수 있겠죠. 사실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더 바라는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이 성공했다는 뜻 아닌가요?

▲2014년 4월 휴먼라이브러리 현장
▲2014년 4월 휴먼라이브러리 현장

희망 :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휴먼라이브러리 운영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정 : 저도 휴먼라이브러리에 사람책으로 섭외 요청받은 적 있는데요. 저 개인만의 느낌일 수 있지만, 당시 30여 분간 앉아서 얘기하는 게 수박 겉핥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무료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긴 했지만, 사람책으로 참여하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제가 기관 행사의 장식품으로 소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독자 입장에서 평소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질문해볼 수 있는 기회는 되겠지만, 깊이 있는 얘기를 하지는 못했어요. 편견 주제에 대해 스스로 말해보고 질문을 받아보는 경험의 장으로 사람책이 되는 분에겐 좋은 기회겠죠. 하지만 주제의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기획하는 프로그램이라면 휴먼라이브러리보다 심도 있게 토론하는 자리가 적합할 것 같네요.

글_ 이민영 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mignon@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