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맙습니다

우리 사회의 희망씨, 희망제작소 후원회원님을 소개합니다.

1004클럽은 우리 사회를 바꾸는 소셜디자이너 1004명이 참여하는 희망제작소의 1천만 원 기부자 커뮤니티입니다. 자신만의 맞춤설계로 모금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천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빠! 왜 구둣방 문이 닫혔어요?”
“아… 그건 말이지, 주인아저씨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란다”
“왜 돌아가셨어요?”
“아프셔서”
“어디가 아팠는데요?”

다섯 살 정연이는 문이 닫힌 희망제작소 1004클럽 고 이창식 선생님 구두수선센터 앞에서 하염없이 물었다. 아이는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을까? 무엇이 그토록 아이의 시선을 잡고 있었던 걸까?

다섯 살 아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정연이 아빠 원종철 회원(자영업)은 서울 성동구 응봉동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고 있다. 아들 정연이와 함께 고 이창식 선생님 구두수선센터에 들린 날, 원 회원은 1004클럽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굳혔지만 아내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주저하다가 슬며시 얘기를 꺼냈다. 누나 원종아 씨가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이기 때문에 아내도 1004클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나 1004클럽에 가입할까?”
“1004클럽이요? 그 돈이면 정연이 장난감이나 사주지 그래요?”

어렵게 꺼낸 말이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틀이 자난 후에 다시 얘기를 꺼냈다.

“나 1004클럽 가입할까? 1004클럽 가입하면 좋잖아?”
“알아서 해요~”

뜻밖에도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승낙을 했다. 아내는 며칠 전 말을 꺼냈을 때부터 아무리 반대해도 남편은 꼭 가입하고 말거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모아 둔 돈으로 바로 1004클럽에 가입을 했다. 자신을 믿어주고 뜻을 모아 준 아내한테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예쁜 핸드백을 선물했다.

“정연이가 고 이창식 선생님에 대해 자꾸 관심을 보이는 걸 보고 뭉클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움직였죠. 갈수록 험한 세상에 남을 위해 서로 나누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배우면서 살게 하고 싶었어요. 아들이 살아갈 좋은 미래를 만드는 데 투자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기부하는 기쁨이 두 배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돈이 많다고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조그마한 것도 옆 사람에게 나눠주면 더 큰 기쁨을 맛보게 된다고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느낀 것인데 부모님들도 어려운 이웃을 보면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에요. 어머니는 더더욱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고 유난을 떠는 성격이 아니세요, 요즘에도 정기적으로 복지시설에 봉사하러 다니세요. 조용히 실천하는 그 마음을 응원해 드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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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이는 최연소 ‘강산애’ 대원

“9년 전에 책 대여점을 했어요, 댄 브라운, 파울로 코엘료, 김진명,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해서 대여점을 하면서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었죠. 그때 유대인들의 자녀교육법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정연이 교육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일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하루 1시간은 꼭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정연이는 자연스럽게 또래보다 또랑또랑하게 말하게 되었다.

강과 산을 사랑하는 희망제작소 후원회원 모임 ‘강산애’에도 정연이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정연이는 어른들의 귀여움을 잔뜩 받고 있는 마스코트이자 어린이 산악대장이다.

“ ‘다섯손가락-오리날다’가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보급팀으로 여러 차례 참여를 했어요. 당일 코스를 갈 때 정연이를 데리고 갔어요, 매월 강산애 모임 때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등산을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동행해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다섯 살 꼬마가 백두대간에 참가하자 강산애 카카오톡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린이 산악대장이라면서 다음에는 히말라야 등반도 기대한다면서 격려와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1004클럽에서 만난 새로운 가족

원 회원은 21살 때부터 자영업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큰 슈퍼마켓을 2개나 운영할 만큼 사업을 키웠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매장을 지키면서 붙박혀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함부로 하는 손님이라도 맞이할 때면 정신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때 우울증에 걸려서 1주일에 3~4번씩 친구들을 만나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죠, 요즘은 친구들을 만나면 저를 보고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우울증도 없어졌어요,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그때는 과거 이야기만 했는데 지금은 제가 오늘과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구요, 제 삶이 변하고 활기를 찾게 된 것은 순전히 희망제작소를 알고 강산애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에겐 강산애가 또 다른 가족 같아요. 이영구 선생님이나 석락희 회장님은 아버지 같고 나은중 부회장님은 어머니 같아요. 전명국, 유상모 대표님은 형님 같구요, 노주환, 최춘식 선생님과는 코드가 잘 맞아요.”

강산애 식구들을 만나면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보는 듯 마냥 친근하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어깨에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이 만나 산을 오르고 친구가 되고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이면 그만인 것이다.

‘사람이 하늘같이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난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라는 시 구절이 있다. 이렇게 사람이 하늘같이 맑아 보일 수 있다는 것! 모든 이들의 희망사항이 아닌가?

“저는 정연이가 성년이 되면 지리산 인근에 살고 싶어요, 백두대간을 걸을 때 산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정말 좋았어요, 그런 자연 속에서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고 싶어요.”

글_ 시민사업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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