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택시를 타고

희망제작소 후원회원님 중에 한 마리의 파랑새가 되길 원하는 분이 계십니다. 택시기사로 일하시며 서울 곳곳에 나눔을 전파하는 김형권 후원회원님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파랑새가 되길 원하는 김형권 후원회원님께 나눔에 대한 철학을 여쭤봤습니다.


파랑새라고 불러주세요

왜 파랑새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김형권 후원회원님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파랑새증후군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만을 추구하는 병적인 증세라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한밤 중에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추는 바람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어요. 그때 차 한 대가 멈춰섰고, 운전자가 내리더니 한참동안 차를 살폈습니다. 거짓말처럼 시동이 다시 걸렸고, 답례를 하려고 하자 운전자는 한사코 거절했답니다. 다음 기회에 보답이라도 할 생각으로 이름을 묻자 ‘파랑새’라고 불러달라 했습니다. 이후 이 고속도로에는 50여 명의 파랑새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우처럼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면 쉽게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알고 있는 파랑새증후군의 내용이에요.”

김형권 후원회원님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파랑새를 만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본인 또한 누군가에게 파랑새가 되고 싶은 마음에 ‘파랑새’라고 불리길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참 빚이 많구나

파랑새님은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 광고회사에 입사했고 30대 초반에 부장이 됐습니다.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어요. 세상을 다 얻은 듯 교만했지요. 하지만 광고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던 제게 세상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연이은 사업부도로 방황도 많이 했어요. 10년 가까이 세상을 등지고 살았죠. 그러다보니 세상의 기준과 제 눈높이가 비슷해지더라고요.”

2000년 택시 운전을 시작하면서 파랑새님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이 세상에 빚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대학까지 나와 궂은 일 한 번 안하고 평생을 산 제 인생을 반추하게 됐죠. 반성도 많이 했고요. 빛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계속 고민을 했죠.”

희망제작소와의 만남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희망제작소였다고 했습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을 넘어 시민과 함께 대안을 연구하고 만드는 희망제작소를 통해 ‘세상에 진 빚을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우리네 주변에 산재해 있는 불편이나 애로사항을 시민들의 제안으로 하나하나 바꿔가는 모습이 마음에 드셨다고 합니다.

“초기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캠페인, ATM 수수료 사전공지, 높낮이 다른 지하철 손잡이 등이 희망제작소가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현실화시킨 사례죠. 제 제안으로 바뀐 것도 있어요. 택시를 운전하면서 터널을 지나다보니 보행자들에게 소음과 매연이 그대로 노출되더라고요. 희망제작소에 제안했죠. 터널 속 인도에 보행자를 위한 차단막을 설치하자고요. 마침내 그게 현실이 되었고요.”

택시 안에서 나눔을 배우다

파랑새님이 운전하는 택시에는 수익의 1%와 승객들이 남겨주는 잔돈, 성금을 모으는 작은 통이 있습니다. 후원하는 단체의 브로슈어와 후원회원 가입서도 함께 비치돼 있지요. 파랑새님은 이 택시를 타는 승객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생각하고, 나눔에 대한 의미를 배우며, 더 나아가 직접 나눔에 앞장설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택시 안에서의 나눔 전파와 더불어 지난 2005년에는 자전적 에세이 <파랑새>라는 책도 출간하셨습니다. 판매 수익금 전액은 10여 개의 비영리단체에 기부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고(故) 이영구 선생님께서 희망제작소의 1004클럽(3년 안에 1천만 원을 기부하는 희망제작소 후원방법) 회원이 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셨어요. 당시엔 손사래를 쳤죠. 그때 옆에 있던 고(故) 이창식 씨가 ‘저희 딸도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큰마음 먹고 1004클럽에 가입했지요. 올해 3월 드디어 1천만 원을 완납했습니다.”

세상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면

택시운전 벌이가 넉넉하진 않을 것입니다. 빠듯하지만 파랑새님은 세상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보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부는 단체뿐만 아니라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우선 기쁩니다. 사회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서 받은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도 행복하고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사는 파랑새님에게는 꼭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장안동은 중랑천이 흐르고 오래된 고미술상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지역의 상점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상생할 수 있는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습니다. 장안동 르네상스 프로젝트지요.”

오늘도 신나게 택시 운전을 하며 나눔을 전파하는 파랑새님의 희망찬 긍정의 에너지가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길 기원합니다.

인터뷰 및 정리_ 석상열 시민사업그룹 선임연구원 / ssy@makehope.org
참고_ <파랑새3 : 인생은 단막극이 아니다> (김형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