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희망제작소는 10회에 걸쳐 ‘착한 돈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관한 글을 연재합니다. 이 연재글은 일본의 NGO 활동가 16명이 쓴 책《굿머니, 착한 돈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의 일부를 희망제작소 김해창 부소장이 번역한 글입니다. 몇몇 글에는 원문의 주제에 관한 김해창 부소장의 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일본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눈에 비친 전 세계적인 돈의 흐름을 엿보고,  바람직한 경제구조를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용자
지역통화의 흥망성쇠

지금도 지역통화가 계속 통용되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곳에서 지역통화는 책상 서랍에 들어가 있다. 원활하게 통용되던 지역통화를 이용하던 한 친구는 “지역통화를 사용하는 경우는 지붕의 널빤지를 새로 갈 때, 아니면 혼자서 하려면 처량할 때이지”라고 한다. 확실히 그럴 때에는 ‘전에 도와줬으니 이번에는 내가’ 하면서 지역통화를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이 강한 곳에서는 굳이 지역통화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싱거운 일’이고, 반대로 교류가 거의 없는 도시에서는 돈으로 지불하는 편이 간편하다. 그래서 전국에 생겼던 수많은 지역통화는 일부 사례 말고는 사라져버렸다.

지역통화는 1999년 NHK에서 ‘엔데의 유언’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퍼지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동화작가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의 돈에 대한 철학에 바탕을 두고, 세계 각지에서 시도된 지역통화의 사례와 경제 근간에 있는 ‘통화’의 문제를 예리하게 다룬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물건과 마찬가지로 통화도 가치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경제학자인 실비오 게젤을 소개하면서, 케인즈가 게젤을 마르크스보다 높게 평가한 점도 함께 밝혔다.

게젤이 주장한 것은 복리로 늘어나는 금리 구조 때문에 경제파탄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통화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그 후 8년이 지난 지금, 왜 그 많던 지역통화가 남아 있지 않은지, 지역통화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지역통화란 무엇인가

지역통화는 그 형태가 하나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통장에 기입하거나 지폐 또는 소액 수표 형태 등 다양하다. 법적 용어를 빌리면 강제력이 없는 ‘채권·채무’ 관계를 알 수 있도록 한 것 뿐이다.  지역통화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점이 있다.

하나, 시민이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다.
둘, 지역에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돈이 거의 돌지 않는 지역에서도 쓸 수 있다.
셋, 지역에서만 쓸 수 있기에 경제가 지역 내에서 순환하도록 할 수 있다.
넷, 금리가 붙지 않는다.

지역통화는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므로 사용 당사자들의 신용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만들어도 문제가 없다. 처음 돈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데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빚을 지는 일’로 인해 통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게다가 지역통화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에 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경기가 좋지 않은 마을이라고 해도 통용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만 사용되는 통화이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생산물이 밖으로 빠져나가 팔리는 것을 막게 된다. 지역 생산물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지역의 경우 지역통화를 통해 지역 내의 경제순환을 실현할 수 있다.

이자가 붙게 할지 여부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대개는 붙지 않는다. 그것은 게젤의 의지가 전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거래하기 위한 통화에 이자가 붙으면 다루기가 몹시 어려워지는 까닭에서일 것이다.

”사용자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지역통화

언젠가 브라질에서 3주 간 지낸 적이 있다. 그 첫 날 일본 엔화를 현지의 ‘크루제이로’라고 하는 통화로 환전했는데, 돌아올 시점에 브라질 통화의 가치가 엔화에 대해 4분의 1이나 하락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돈이 4분의 1이나 줄어든 것이다. 이런 경우 현지 사람들은 훨씬 더 곤란해진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심한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의 통화를 갖고 있으면 위험하다. 그래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옷장이나 옷을 사두었다가 돈이 필요한 때에는 그것을 팔아 필요한 것을 산다. 통화의 가치가 너무 가변적이기 때문에 자산을 통화 형태로 지니는 기간이 가장 짧아지도록 거래한다. 자산을 화폐나 숫자가 찍힌 통장이 아닌 현물로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현물은 이동하기가 불편한 데다 흠이 생기거나 불타서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때에 편리한 것이 지역통화다. 예를 들어 물건값으로 무 한 개를 원하는 사람에게 ‘무 한 개권’을 발행했다고 하자. 국가통화라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치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반 년 후에 같은 돈으로 무 한 개를 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역통화는 실물로서의 무 한 개와 관계된 것이기에 항상 무 한 개와 교환된다.

물건의 가치와 돈과의 균형을 볼 때 물건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디플레이션, 물건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인플레이션 때에는 지역통화 쪽이 경제 합리성이 있다. 그 증거로 인플레이션이 심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자연적으로 지역통화가 생겨나고 있다.

이때 지역통화는 실제 통화로 인정받는다.  채권ㆍ채무의 계약증서이며, 떼먹는 걸 허용하지 않는 어음이나 소액 수표와 같은 것이다. 일본의 엔도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혹시 엔 가치가 폭락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그때에는 지역통화가 도움이 될 것이다.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통화를 설계하고 싶다면, 이러한 때를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사기에서 시작된 은행

지역통화는 화폐경제의 부작용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커다란 기회를 제공했다. 돈은 인간이 만든 제도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이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들은 대부분 돈벌이와 관계가 있다. 만일 현재 지구상에 있는 돈을 한꺼번에 모두가 물건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지구가 몇 개 더 필요할 정도로 돈의 가치가 너무 부풀려져 있다.

애초에 돈이란 무엇이었나? 물건과 교환하기 위한 것이라면 물건과 돈은 일 대 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통화가 너무 많이 발행되었다. 이는 은행이 생긴 때부터 이미 시작된 일이다.
 
은행을 처음 시작한 것은 영국의 금 세공업자였다. 당시 부자들은 금을 모아서 금세공업자에게 맡겼고, 그러면 금세공업자는 금을 받은 증거로 ‘예탁증서’를 발행했다. 그리고 그 예탁증서를 가진 사람에게 맡아둔 금을 넘겨주었다. 따라서 예탁증서는 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 그 예탁증서가 점차 유통되었고, 이것이 지폐다. 이때의 지폐는 금과 바꿀 수 있는 태환지폐였다.

그러나 금세공업자 가운데는 얍삽한 사람도 있었다. 한 금세공업자는 꾀를 냈다. 자기가 맡아둔 금이 1,000만큼 있다 해도 찾으러 오는 것은 하루에 80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가 맡아두고 있는 것 이상의 예탁증서를 발행한다고 해도 아무에게도 들통날 일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금세공업자는 남몰래 자기 마음대로 예탁증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발행한 것이다. 금세공업자의 사기행위, 이것이 은행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보면 지금까지 말해온 은행의 ‘신용창조’ 기능이라는 대단한 장점의 값어치가 떨어진다. 더욱이 이러한 사기행위에서 시작된 신용창조야말로 물건과 돈의 일 대 일 대응을 파괴한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이 어지럽게 사용돼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지금, 이러한 돈의 증식효과를 억제하는 지역통화의 기능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글_ 다나카 유
번역_김해창 (hckim@makehope.org)

【우리는 지금 | 김해창】한국의 대표적인 지역화폐 공동체 ‘한밭레츠’

우리나라에서 지역화폐 운동은 1998년 3월 신과학운동 조직인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국내 최초로 ‘미래화폐’란 이름으로 지역화폐를 운영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전국에 ‘한밭레츠’, ‘광주 나누리’, 서울시 송파구 자원봉사센터의 ‘송파 품앗이’ 등 30여 개의 지역화폐 운동 단체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대전지역의 공동체인 지역품앗이 ‘한밭레츠’다.

한밭레츠는 ‘두루로 만드는 행복한 마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2000년 2월 70여 명의 회원으로 시작했다. ‘두루’란 ‘두루두루’라는 뜻으로, 한밭레츠의 화폐 이름이다.  ‘1두루’는 우리나라의 법정화폐 단위인 ‘1원’과 등가이다.

한밭레츠는 지역 내에서 통용되는 공동체화폐인 ‘두루’를 이용해 회원들이 노동과 물품을 거래하는 교환제도를 운영한다. 2008년 현재 한밭레츠 지역통화의 거래총액은 약 1억 8천여 만 두루에 이르며, 매월 거래건수는 600~1,100여 건, 거래참여 가구 수는 160~210가구 정도다. 거래 내역별로 보면 농산물(22.1%), 의료(16.5%), 가맹점 거래(12.2%), 재활용품(11.0%), 자원활동(8.5%), 교육(5.3%) 등의 순이다.

한밭레츠는 2002년 ‘대전민들레의료생협’과 2004년 대안학교인 ‘대전 푸른숲학교(현 ‘꽃피는 학교’)’를 만드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그동안 품앗이 만찬 등 공동체 행사를 통해 건강한 이웃관계를 형성해왔으며, 노인과 주부들이 새로운 기술과 재능을 배울 기회를 갖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 연재순서

1. 당신의 돈이 전쟁을 돕는다
2. 저금이 환경을 파괴한다?    ? 다시 생각해봐야 할 국책ㆍ공공사업
3. 토빈세, 야만과 싸우는 세금
4. 단리와 복리, 어느 쪽이 친환경적일까?
5. 인플레이션도 피해가는 화폐   ? 한국의 대표적 지역화폐 공동체 ‘한밭레츠’
6. 돈의 사용처 공개하는 착한 금융기관
7. 계좌로 바꾸는 세계
8. 굿(goods) 감세, 배드(bads) 과세
9. 공유지 보전으로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든다    ? 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10. 지금, 돈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 개발을 거부한 도심 속의 오래된 미래, 물만골공동체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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