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지난 11월 15~16일, 서울과 완주에서 제3회 커뮤니티비즈니스 한일 포럼  ‘커뮤니티비즈니스, 다시 사람이다’가 개최되었다. 이번 한일 포럼에서는 ‘문화적 자원 활용과 인재육성 전략’을 주제로 문화예술과 커뮤니티비즈니스를 접목시킨 한·일 양국의 다양한 사례가 발표되었다. 두 차례에 걸쳐 15일 서울에서 진행된 포럼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커뮤니티비즈니스, 다시 사람이다 (2)

”사용자
포럼 1부가 끝난 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NPO법인 야마 · 사토 · 크라시 네트워크(이하 야마사토 내트워크)의 기쿠시 신이치 부회장의 발제로 2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기쿠치 부회장은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이 지역만들기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사례를 소개했다.

행정ㆍNPO주민이 협력하면?

인구 3만 명의 아담한 도시 도노시에는 90여 개의 다양한 주민자치회가 결성되어 있다. 이들 자치회는 9개의 상부 조직으로 묶여 있고, 그 위에서 도노시가 예산을 지원하고 총괄 지휘를 한다. 도노시의 지역 만들기와 사회 교육은 풀뿌리 자치회의 활약과 행정 당국, NPO 야마사토 네트워크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도노시 지역에는 약 400년 전부터 다수의 향토 예능 단체가 존재해왔다. 일본 전역에 존재하던 이런 단체들은 2차 대전 종전 후 점차 쇠퇴하며 사라지는 추세였다. 도노시는 약 50년 전부터 커뮤니티 형성을 장려해 향토 예능 단체의 재조직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도노시는 흔치 않게 향토 예능 단체가 부활하는 지역이 되었다. 대표적 사례로 일본의 공연 예술 가구라의 부활을 들 수 있다. 도노시에서는 어린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가구라에 참가하고, 마을에 새로 시집 온 사람은 노천 가구라 공연에 등장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에 편입된다. 가구라를 통해 알게 된 젊은 엄마들이 따로 모임을 결성해 활약하기도 한다.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의 결속력을 강화한 것이다.


가구라 모임에서 시작된 액티브 마미 사업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엄마들의 소박한 바람에서 탄생했다. 엄마들은 한국에서 시집 온 사람으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김치 판매를 시작했다. 또 시내 행사장이나 비닐하우스 산지 직판장에서 닭 꼬치 등을 판매해 수익을 올렸다. 액티브 마미는 도노시의 산지직판조합 가미고와 협력해 내년 봄 상설 산지 직판장 겸 레스토랑을 여는 것이 목표다.

도노시에서는 토지를 마련해줌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야마사토 네트워크에서도 다양한 지원금을 끌어와주었다. 지역의 농업 고등학교 학생들도 직판장 참여 의사를 밝히며 사업 추진을 응원하고 있다. 이처럼 도노시에서는 행정, 주부, 생산조합원, NPO, 학생 등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는 주민자치회라는 풀뿌리 기반과 향토 예능 활동을 통한 주민간의 결속력 강화가 밑받침 되어 가능한 결과였다.

200명을 동시에 가르치는 장인들

NPO법인 홋카이도 장인의숙대학교의 후지타 가즈히사씨는 일본의 장인 전통을 산업체험형 커뮤니티비즈니스로 재구성 한 사례를 소개했다. 홋카이도 오타루시의 ‘오타루 장인 모임’에서 시작한 이 단체는 2000년 NPO 홋카이도 장인대학교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장인 후계자 양성 및 장인 체험 관광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의 정신적 토대인 장인 문화를 교육 서비스와 관광에 접목시켜 직업 교육, 일자리 창출, 장인 산업 활성화, 홋카이도의 관광 부흥 등 여러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장인의숙대학교의 체험 서비스는 기존의 장인 체험보다 규모를 확대하고 체계성을 보완해 장인들의 판로 개척에 기여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장인이 한 번에 가르칠 수 있는 인원은 약 10명에 불과하다. 장인들이 개인적으로 체험 학습을 진행한다면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접근성도 떨어진다.

장인의숙대학교는 원래 장인 모임으로 시작했고 전국·세계장인학회를 발족시킨 장인들의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를 활용해 10명을 가르칠 수 있는 장인을 20명 한 자리에 모아 200명을 동시에 가르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 신청 단체의 규모와 위치에 따라서 교육 장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의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킨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연간 약 110개 이상의 학교, 9000명이 넘는 관광객을 수용하고 있다.


장인의숙대학교의 NPO 홋카이도 장인대학교는 장인 후계자를 양성하는 곳이다. 장인의 후계자 양성은 전통 계승과 함께 큰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도제에게 장인 수업은 일자리와 자아실현을 위한 통로이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청년 실업 문제 완화와 직업의 다양화를 의미한다. 일본은 한국 못지않게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청년들은 취업난과 무의미한 경쟁에 지쳐 아예 일찍부터 취업할 의사를 잃기도 한다. 그들은 아르바이트로 최소 생계비만 벌며 사회의 경제적 일원이 되길 거부하는 ‘후리타’가 된다.

‘후리타’를 줄이는 한 방법은 그들을 장인으로 길러내는 것이다. 그러자면 장인 대학을 늘리고, 청소년들에게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직업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장인의숙대학교는 1997년부터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제작 체험 학습을 시작했고, 2005년부터 경제산업부의 ‘지역 자율 민간 활용형 커리어 교육 프로젝트’를 위탁 운영하며 아이들의 직업관 양성에 힘쓰고 있다. 장인 교육으로 육성된 학생에게 자립할 용기와 자질을 배양하는 기업가 교육사업도 실시한다.


어느 장인의 실패

그러나 장인의숙대학교의 성공에도 경계할 점이 있다고 후지타씨는 말한다. 성공을 거듭할수록 이윤추구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커뮤니티비즈니스는 ‘수익 극대화’가 아닌 ‘적절한 수익성’을 지향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수익을 높일까만 고민하다보면 효율성을 위해 사업 규모를 키우고 최소인력으로 최대이윤을 내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길로 빠진 커뮤니티비즈니스는 고유의 특성이자 경쟁력인 관계성, 사회성 등의 가치를 잃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200명 정도의 단체를 대상으로 도자기 공예를 가르친 장인이 있었다. 이 장인은 한 번의 성공을 계기로 수익을 더욱 높이고자 후계자를 조교로 쓰지 않고, 혼자서 모든 체험 신청자를 가르치려 했다. 여러 개의 도방에 선생님 없이 도예 재료만 준비해두고, 자신이 영상으로 원격 교육을 시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장인 또는 그 후계자가 하나하나 옆에서 지도해주는 교류와 관계성이 결여된 수업에 실망했다. 결국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 사례는 수익을 생각하다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사업이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이윤 추구 외의 가치를 지켜가는 것이 커뮤니티비즈니스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는 이윤보다 작품의 완성된 가치와 순수한 예술적 의도를 더 중시하는 장인 정신과도 상통하는지 모른다.

“풀뿌리는 근본적인 것”

대안대학 풀뿌리사회지기학교의 창립자이자 교장인 이신행 연세대 명예교수가 강단을 이어받았다. 풀뿌리사회지기학교는 92년에 결성된 신촌 민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회는 활동 중지와 재개를 거듭하다 2005년 풀뿌리사회지기학교를 발족시켰다. 풀뿌리사회지기학교의 목적은 외부에서의 위협으로부터 지역 사회를 지켜내는 ‘지기’를 양성하는 것이다.


미래의 ‘지기’인 청년들은 토론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한다. 지리산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신촌 민회에서 지역 사회 정기 포럼을 개최한다. 마을 카페 ‘체화당’에서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지역 정신을 생산하기도 한다. “풀뿌리는 단지 작은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이라고 이신행 교수는 말한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와 일핵화를 극복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지역이라는 뿌리가 튼튼해져야 한다. 풀뿌리사회지기학교에서 청년들은 학벌과 취업 등 획일화된 고민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것을 토론하는 풍토를 다진다. 이러한 대안 교육은 한국의 지역 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글_뿌리센터 김영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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