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세계화(globalization) 바람이 한바탕 지나간 뒤 세계화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화로 국가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국가’가 아닌 ‘지방’이 정치, 경제, 문화의 실천적인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희망제작소는 고양시와 함께 주목할만한 해외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려합니다.


(5) 일본 미야자키시

1997년 시작된 고양 국제꽃박람회는 3년마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이다. 국제 꽃박람회가 열리지 않는 해에는 한국 고양꽃전시회가 개최되어 고양시를 꽃의 도시로 인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내년이면 6회를 맞이하는 고양 국제꽃박람회의 구체적인 성과를 살펴보면, 2009년에는 18일 간의 박람회 기간 동안 51만 여 명의 입장객이 몰렸고 참가업체 수는 154개였다. 이 기간 중 3,000만 달러(약 338억 원)의 수출계약을 맺는 등 상업적으로도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이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고양 국제꽃박람회는 상업적인 성격과 일회성 행사의 이미지가 크다. 게다가 매년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개최되어 점점 지역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15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는 동안, 꽃박람회는 지역민들과 융화되기 보다는 점차 고립되어 멀어지고 있다.

둘째, 전국 수많은 지자체가 꽃 박람회를 경쟁적으로 개최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대구 꽃박람회, 광주 봄꽃박람회 등 크고 작은 박람회와 축제가 거의 매달 열리고 있다. 이런 박람회들과 내용적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질적인 도약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꽃의 도시 고양시’라는 이미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즉, 일부 사업체가 참여하는 화훼 산업에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정원 문화로의 확산과 변화가 필요하다. 지역 주민이 응원하고 참여하지 않는 행사는 결국 사라지고 만다.

현재 우리가 도시의 공공 녹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다. 시민의 땀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인위적인 꽃밭,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없는 수목 등 나무가 많고 꽃이 많다고 해서 메마른 도시가 아름답거나 풍요로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메마른 정서는 나무와 꽃에도 나타난다.

나무의 껍질은 공해로 썩어가고 있고, 과실은 생기 없이 쭈글쭈글 매달려 있다. 꽃은 단색 일색, 일자로 반듯하게 줄지어 심어져 있다. 혹은 여러 종류의 꽃을 전문가의 손을 거쳐 심어본들 오십보백보다. 재미가 없다. 참여도 없다. 없는 거 보다야 낫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잠시 잡아 둘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교감할 수 없고, 교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지 못해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지역 주민의 참여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참여’라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꾸준히 시민참여를 말로 떠들어 대지만 행동으로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는 곳은 여전히 적다. 주민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365일 꽃이 넘치는 도시

일본 남부지방에 위치한 미야자키현(宮崎縣)의 현정 소재지 미야자키시(宮崎市)는 주민과 행정기관이 함께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한 도시이다. 온난한 기후로 인해 남북으로 이어진 해안선에서는 남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피닉스 야자나무와 워싱턴 야자나무, 종려나무 외에도 계절별 화초 등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다.

미야자키시는 1984년 시 60주년 기념 시민운동으로 ‘마을에 꽃과 신록을 늘리는 운동’을 추진하며 ‘365일 꽃이 넘치는 마을 만들기’를 시작했다. 이후 1993년 ‘미야자키시 꽃 마을 만들기 기본계획’, 2001년 ‘미야자키시 녹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태양과 신록 대지의 정원도시 미야자키시’를 주제로 마을 만들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원을 정비하고, 녹지를 보존하고, 공공시설과 민간시설의 녹지화를 전개했다.

미야자키시는 도시 녹지화 기본계획 아래 하드웨어를 조성하고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데, 대표적인 하드웨어가 플로란테 미야자키 공원이다.

플로란테 미야자키 공원은 1999년 개최된 ‘제16회 전국 도시 녹화 미야자키 페어’의 주요 개최장 중 하나로 재정비된 후 2000년 4월 개장했다. 전체 면적이 5.1ha인 이곳은 시민과 관광객이 사계절 내내 꽃을 볼 수 있고,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되는 도시 녹화 식물원 기능을 가진 유료 공원이다.  


공원 사무소를 겸한 유메하나관(夢花館)은 가드닝(Gardening)을 주제로 전시실과 정보센터, 도서 라운지, 강의실, 카페테리아, 꽃집 등을 갖추고 있다. 또, 다양한 테마 정원을 볼 수 있다. 서양식과 일본식, 농ㆍ산촌 주택별 정원 견본 모델이 있어서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플로란테 미야자키 공원에서는 분기별로 다양한 축제가 진행된다. 가장 중요한 축제는 3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진행되는 ‘봄의 플로랄 축제’로 80여 종의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여름에는 야간 축제가 진행되고, 꽃이 피지 않는 겨울에는 일루미네이션 플라워 가든 축제를 개최한다. 90만 개의 일루미네이션(전구를 이용한 장식)은 빛의 꽃밭을 만들어 수십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환상의 짝꿍된 민ㆍ관

미야자키시를 정원 도시로 만든 소프트웨어는 ‘오픈가든 선 플라워 미야자키’ (이하 오픈가든) 라는 NPO 법인이다. 플로란테 미야자키 공원이 꽃과 정원의 도시 미야자키시의 상징적인 하드웨어라면 오픈가든은 정원 문화를 확산하고, 꽃의 도시를 만드는 핵심적인 소프트웨어의 역할을 담당한다.

2001년 꽃 애호가 23명이 꽃밭 만들기 네트워크를 수립하려는 목적으로 오픈가든을 설립했다. 이 조직의 첫 번째 활동은 현립병원 꽃심기 자원봉사 활동이었다. 2002년 관청으로부터 미야자키 시민 활동지원 보조금 5만 엔을 지원받으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2003년에는 ‘제1회 오픈가든 견학회’를 개최하고, 유명한 강사들을 초청해 보다 전문적인 가드닝 교육을 받았다. 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보관소에서 꽃심기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고, 200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미야자키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오픈가든 시민견학회’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활동에 힘입어 2007년 ‘전국 꽃의 지역만들기 콩쿠르’에서 국토교통대신상을 수상하면서 단체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시 경관가꾸기에 없어서는 안될 주민조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픈가든의 구체적인 활동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꽃 심기 자원활동이다. 현립병원과 지역병원, 자전거 보관소에 꽃을 심고 관리하며 미야자키역 앞 타치마나 거리를 중심으로 거리 녹화 사업을 진행한다. 정원 가꾸기 강좌와 프로란테 미야자키 공원의 견본 정원을 디자인하는 사업도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봄, 가을 연 2회 실시하는 오픈가든 시민견학회이다. 이 사업은 시민들의 공모를 받아 진행된다. 지역의 정원을 견학하면서 경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시민의 참여도를 높인다.  

세 번째는 정원과 관련된 학습을 제공하는 활동이다. 가드닝에 조예가 깊은 강사를 초청해 식물화, 세밀화, 정원디자인, 비누만들기, 흙만들기, 꽃꽂이, 콘테이너 정원에 여러 종류의 식물심기 등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시민들과 함께 공부한다. 분기마다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인기가 많아서 매회 신청이 조기 마감된다.

마지막으로 오픈가든 회원들이 자신이 가꾼 정원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오픈가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회원들이 가꾼 다양한 형태의 정원을 공개해 관심 있는 시민들이 정원을 감상하게 하고, 정원을 가꾸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오픈가든 프로그램을 미야자키시 봄 축제 중 하나인 플라워 페스타와 연계해 시행함으로써 관광객 유치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다층적 네트워크가 핵심

이밖에도 미야자키시는 도시 정원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시민, 사업자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한다. 매년 20명을 선발해 해외 가든시티 견학을 실시하고, 시내 중학생을 대상으로 지역 경관 모형을 제작해 실제 경관의 문제점을 찾아보게 하는 교육을 한다. 도시 정원을 위해서 행정과 시민이 하나가 되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시의 정원 도시 만들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중심 시가지부터 사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지만, 점차 준도심, 농촌지역에까지 해당 지역 특성에 맞는 경관 조성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미야자키시가 국내외에 성공적인 정원 도시 사례로 알려지게 된 핵심 요인은 사업과 정책을 추진할 때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다층적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관이 주도하거나 민간에만 맡겨 둔 채 방치한 것이 아니라 디양한 주체가 함께, 그리고 꾸준히 사업을 전개해왔다. 그리고 정원과 꽃을 소재로만 활용한 단편적인 축제를 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경관’의 개념 아래 접근했기에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사용자미야자키시의 사례는 고양의 꽃 박람회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꽃 발람회 기간 중에 고양 꽃 전시관에서 한정된 전시를 하는 것을 넘어서 고양시민 전체가 꽃으로 하나 되는 시민의 축제로 발전 시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지 말고, 우리 집 꽃밭을 가꾸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마을에 빈 공터를 정원화하고, 길가의 녹화를 주민들과 함께 조성하고 함께 관리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고양시에서 충분이 이러한 일을 함께 할 성숙한  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정원도시 고양과 내년의 고양 국제 꽃 박람회를 기대해 본다.

글_ 뿌리센터 박상현 선임연구원 (thank2god@makehope.org)
                                                  
월간 고양소식 12월호에 실린 글을 편집해 게재했습니다.  

● 연재목록
1.
세계의 중심은 어디인가 – 연재를 시작하며
2. ‘은하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 일본 삿포로 사회혁신 클러스터    
3.
빌바오의 힘 – 스페인 빌바오 
4. 지역에서 찾는 고령 사회의 해법  – 지역 사회공헌 일자리 사례
5. ‘꽃과 정원의 도시’는 어떻게 탄생했나 – 일본 미야자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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