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사용자 

1999년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금광회사 골드코프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수년 동안 이어진 탐사에도 불구하고 금이 묻혀 있는 정확한 위치와 매장량을 알아내지 못했고, 많은 지질학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금을 채굴한 온타리오의 레드 레이크 광산은 이미 고갈되었다고 진단했다. 금이 매장된 새로운 지대를 찾지 않는 한, 이 광산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새로 부임한 맥이웬 사장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약 6,730만 평에 달하는 광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웹사이트에 공개한 다음, 6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도전 골드코프(Goldcorp Challenge)’ 콘테스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었고, 50여 개국에 흩어져 있는 진짜 ‘꾼’들 1천여 명이 이른바 ‘금 찾기 경연대회’에 달려들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수학, 고급물리학, 인공지능시스템, 컴퓨터 그래픽은 물론 비유기적인 문제를 유기적으로 해결하는 기발한 방법들까지 동원된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콘테스트로 밀려 들어왔다. 응모자들은 전문 지질학자는 물론이고 수학자, 컨설턴트, 심지어 대학원생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참가자들은 이 광산에서 110곳의 후보지를 찾아냈고, 그 중 절반은 회사에서도 찾지 못한 곳이었다. 
이 무모한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새로운 후보지의 80% 이상에서 220톤의 금이 발견됐다. 1억 달러 남짓 저조한 실적을 내던 골드코프는 90억 달러의 실적을 내는 거물로 급부상했고, 망해가던 온타리오 북부 광산은 업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큰 수익을 내는 광산으로 변모했다.
맥이웬 사장은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는 새로운 발견을 해낼 특별한 인재들이 회사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의 지적 재산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여 집단의 재능과 능력을 활용했다. 탐사에 대한 독창적인 접근방법으로 효과를 입증하고 큰 성과를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는 대규모 협업이 사회의 제도를 바꿔버리는 위키노믹스(Wikinomics)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꾼 집단의 지성과 지혜, 위키노믹스 (2009년)


사이버 공간에서 대규모의 사람들과 조직이 공개적으로 협력하여 새롭고 역동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가치 창출방식을 피어링(Peering, 대등접속)이라고 한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접속되어 가공할만한 집단적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우리는 지식과 권력, 가치가 분산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 질서에 동참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 새로운 협업 질서는 상업적인 이익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와 같은 개인공간의 나눔, 천재지변 발생 시 다수의 제보자들이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크라우드 맵핑(Crowd mapping), 유전질환의 치료나 기후변화의 예고와 같은 공적 영역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열정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건물 파괴, 질병, 범죄 현황 등 다양한 현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취합하여 구호활동을 지원한 것으로 유명한 지도 기반 오픈소스 플랫폼 우샤히디(Ushahidi)가 대표적인 사례다.  
1071846105.bmp그렇다면 주로 사회적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회혁신 분야는 어떨까? 혁신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된 뛰어난 인물을 발굴해 집중적으로 후원하는
아쇼카 재단(Ashoka Foundation)이 잘 보여주듯, 그간 사회혁신 영역은 대체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영웅들(Entrepreneurs)에 주목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한 명의 특출한 개인보다 다수 구성원들의 자발적 협력방식인 집단 사회적기업가 정신(Collective social entrepreneurship)이 훨씬 더 큰 사회적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지난 십여 년간의 임상실험 결과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추진하는 ‘집단모델’ 방식은 특히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 지역 사회는 빈곤과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양극화로 인한 단절과 소외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역이 안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들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구조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능력 있는 소수의 힘만으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해법은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협력에 있다. 세계적으로 지역 재생에 성공한 많은 사례들은 ‘백지장을 맞들면 놀라운 시너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개발 중심의 사업방식을 바꿔 주민들이 지정한 마을기업에 예산을 집중 투입할 수 있도록 법제화함으로써, 주거 안정과 일자리 창출, 삶의 질 개선을 이룩한 미국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도시재생 프로젝트(NRP).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공주택사업을 통해 고실업으로 몰락하던 지역을 새롭게 살려낸 영국 버밍햄 캐슬 베일(Castle Vale)의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 프로젝트 등 섹터 간 건강한 파트너십을 통해 ‘스마트 커뮤니티(Smart community)’를 이룩한 지역혁신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협력(co-operation)과 협치(governance)란 말하기는 쉬워도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란 매우 어려운 법이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집단지성의 협력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도시화로 인해 개인화되고 이기주의적으로 변한 현대인들이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신뢰의 바탕 위에서 협력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어떤 전제가 필요할까? 

그 해결 방법 중 하나가 공동체 안에서 집단학습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 공동체에서 마을회관을 짓기로 했다고 하자. 가장 간편하면서도 통상적인 방법은 부지 매입부터 설계, 건축, 감리 등 전 과정을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 절차를 따르게 되면, 회관 건설에 합의한 구성원들은 자기 몫의 비용을 충당함으로써 의무를 다하게 된다. 회관을 짓는 사이 몇 차례 형식적인 회의가 진행될 것이고, 사람들은 공사의 책임을 맡은 이가 혹시 돈을 떼먹지는 않을지 계속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반면, 이와는 다른 접근방법이 있다. 최초 마을회관을 짓기로 결의한 시점부터 마지막 준공인가가 끝나는 시점까지 ‘공동 참여위원회’를 만들어 순전히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우리 동네 마을회관 짓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최대한 ‘아웃소싱’을 지양하게 될 것이므로 전자에 비해 속도도 느리고 완성도 역시 떨어질 것이며, 만일 마을 주민 중 건축 설계 관련 전문가가 없다면 공기는 더 지연될 확률 또한 높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직접 회관을 짓는다는 ‘담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계와 디자인, 관련 법률과 제도, 건축 공법과 재료 등 건설회사가 알고 있어야 할 수준의 지식과 정보들을 습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니만큼 의견충돌도 생길 것이고,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얌체족도 나올 것이다.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할지도 모르고 이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이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103793290.bmp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 강하게 뭉치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지역의 자원을 총동원하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격려할 것이고, 자발적인 학습과 실천 과정을 통해 터득한 지혜를 통해 작고 소박한 ‘그들만의 회관’을 완성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유럽의 공동체 부락에서 개인소득의 절반 이상을 마을에 내놓는 것처럼,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유물들을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내놓을 것이다.    

만일 마을 사람들이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작품’을 완성시켰다면, 남들이 보기에 지리멸렬하기 이를 데 없는 배움과 적용 그리고 시행착오의 길고 긴 과정은 그들에게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높은 가치를 창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모양과 쓰임새의 마을회관을 지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땀과 노력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구체적 상징을 통해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함께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가는 동안, 마을은 집단 학습과 실천을 통해 서로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게 될 것이고, 한층 더 끈끈한 연대의식과 신뢰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귀한 지역 자산 혹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마을은 낙후되고 볼품없으며 서로에게 무관심한 군상들이 모여 사는 정주공간에서 서로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불러주는, 살맛나는 공동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집단 지성의 협력구조란 ‘따로 또 같이’의 새로운 실험이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되, 조금씩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며 일상적 경험을 나누고 소통하면서 함께 공통분모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체험과 학습을 통해 ‘집단 세례’를 통과하는 사이, 구성원들의 신뢰 지수는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고 마을과 지역은 다양성 넘치고 창조적인 삶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중심부에서 활약하는 뛰어난 소수의 영웅담이 아니라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별 볼일 없는 다수와, 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를 더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글_사회적경제센터 문진수 소장 (mountain@makehope.org)

사회적경제센터 (구 소기업발전소)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