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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의 낮은 목소리

제가 아는 4월 노래는 세 가지입니다.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T. S. 엘리엇의 긴 시 ‘황무지’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망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워낸다”로 시작합니다.

노벨상은 받지 못했으나 존경받는 시인 신동엽의 ‘4월은 갈아엎는 달’은 “내 고향은/강 언덕에 있었다/해마다 봄이 오면/피어나는 가난”하고 처연하게 읊조리다가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로 끝납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4월을 “빛나는 꿈의 계절”이라 노래합니다.

세 시인은 각기 다른 언어와 형식으로 죽음을 깨뜨리는 생기의 계절 4월을 보여줍니다. 4월이 두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긴 겨울 동안 숨죽이고 견디던 힘이 마침내 솟구쳐 나오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동학혁명과 4.19혁명이 4월에 일어난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혁명(revolution)보다 진화(evolution)를 좋아하는 제게 올 4월이 유독 두려운 건 역사에 새겨진 혁명의 기억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피 흘리지 않은 혁명, 즉 벨벳혁명은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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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고 배부른 사람들은 혁명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혁명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은 혁명을 싫어합니다. 힘없고 배고픈 사람도 쉬이 혁명을 꿈꾸진 않습니다. 남루한 평안과 목숨까지 빼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생존에 몰리던 약한 자들이 정말 화가 났을 때 일어납니다. 그나마 가진 최소한마저 위협당하여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느낄 때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꾸 불안해집니다.

지난 3월 30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력을 21퍼센트 줄이는 직제 개정령안이 의결되었습니다. 인권위의 정원이 208명에서 164명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2001년 출범한 인권위, 지난 8년 동안 직원의 수가 180명에서 208명으로 1.16배 늘었다지만 같은 기간 동안 처리한 진정사건은 2.3배, 민원업무는 10.4배나 증가해 인권위의 인력 축소를 추진했던 행정안전부조차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했었다고 합니다.

개정령안이 의결되자 212개 시민사회단체와 장애인단체로 구성된 ‘인권위 독립성 보장 및 조직 축소 철회 공동투쟁단’은 기자회견을 열어 “인권은 정권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정부를 성토했습니다. 박찬욱, 임순례, 장진 등 영화감독 41명도 성명을 내어 “인권위 조직을 축소해도 될 만큼 한국 사회의 인권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제인권기구들도 우리나라 사정을 걱정합니다. 120여 개 국의 국가인권기구들을 망라하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ICC: 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of National Institutions for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의 제닌퍼 린치 의장은 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 일주일 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인권위 축소 계획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한국 정부가 이 계획을 밀어붙일 경우 “A등급을 받아온 한국의 인권 수준이 재검토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010년 ICC 의장국이 되려하는 한국의 계획도 무효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저는 남의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일에 대해선 할 말이 없습니다.

인권위의 인력이 줄고 ‘5본부 22팀 4소속기관’에서 ‘1관 2국 11과 3소속기관’이 되면, 인권 차별 시정 기능이 위축될 게 뻔합니다. 5본부 체제에서 군, 검찰, 경찰 등 공권력에 피해를 입은 이들을 구제하던 ‘침해구제본부’와 성, 직업, 학력으로 인한 차별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시정, 구제하던 ‘차별시정본부’가 2국 체제의 ‘조사국’ 안으로 통폐합되고 직원이 줄어들면 지금까지 해오던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위의 두뇌로 불리며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주목하던 ‘인권정책본부’가 ‘인권정책과’로 축소되면 인권 침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어쩌면 인권위가 조직 축소를 자초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작년 촛불집회 때 경찰의 진압 방식에 인권 침해 소지가 있었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인권위고,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사이버 모욕죄,’ ‘국정원법 개정안’ 등에 대해 각각 “신중히 검토 할 것”, “명확한 기준 필요” 등의 의견을 낸 것도 인권위이니까요. 그러나 안경환 위원장의 말대로 인권위는 국가 권력의 잘못과 인권 침해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조직이니 태생적으로 국가와 갈등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에 순응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듯이 권력에 순응하는 인권위는 인권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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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정부가 추구해온 정책과 방침은 여러 분야에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정부가 내정한 사장을 거부하던 YTN의 노조위원장이 구속되고, MBC 피디수첩의 피디는 작년 봄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재개를 앞두고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문제를 제기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전쟁터가 되어, 작년 10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당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대신 체험학습을 하도록 허락했다는 이유로 7명의 교사가 해임되었습니다. 지난 3월 31일 전국 초등학교 4~6학년과 중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진단평가를 앞두고 정부는 교사들의 ‘방해 행위’가 확인되면 작년과 마찬가지로 엄중 징계한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전국적으로 1,400여 명의 학생들이 체험학습에 나섰다고 합니다.

선거를 통해 출범한 합법적 정부의 조처들이 나라 안팎의 비난과 반발을 사는 건 그 조처들이 나라의 수준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론인의 체포, 구속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연상시키고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히 치러지는 ‘일제고사’는 그보다 더 앞선 시대를 상기시킵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통합 교육을 실시 중인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지난 3월 31일 진단평가 때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장애 학생들을 시험에서 배제시킨 것만 보아도 ‘일제고사’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학력측정방식인지 알 수 있습니다.

4월 햇빛은 자꾸 영글어 화창한 진달래는 신동엽 시인의 노래 속에서처럼 강산을 덮지만, 시 속 희망은 그냥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하는 1966년 4월의 희망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정부가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엇보다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보호를 위해 인권위 축소계획을 철회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생존마저 포기해야 할까 잠 못 이루던 힘없는 이웃들이 기쁜 눈물로 “등불 밝혀” 들고 박목월의 “4월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현재의 YTN) 국제국 기자로 15년,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4년여를 보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
현재 코리아타임스, 자유칼럼,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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