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사용자

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기획기사의 2013년도 두 번째 주제는 주민운동 교육훈련입니다.

주민 스스로 행동하고 지역을 변화시켜 나가는 조직적인 운동인 주민운동의 중심에 있는 교육훈련은 주민이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찾고 성장하도록 촉진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민조직가가 주민의 조직화 가능성을 찾아 활동하도록 촉진하기도 합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주민운동교육이 무엇인지 그 역사와 내용을 알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민운동교육 사례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학습 초점] 스스로 말하게 하라 (4) 필리핀의 주민운동 엿보기

주민운동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민조직, 교육, 행동 등 일련의 사회변혁을 위한 조직적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조직화(community organizing)와 교육(popular education)은 주민운동의 핵심적인 활동으로,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관여한다. 솔 알린스키의 10가지 주민조직화 방법론은 미국 산업도시의 빈민조직화를 통하여 구체적인 생활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던 것으로 여전히 주민운동의 조직화 방법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주민운동에서 교육은 조직화와 대등한 지위를 갖는 활동으로 주민조직화 이전, 혹은 조직화 이후 구체적인 주민의 행동과 변화로 연결하도록 하는 수단이자 곧 주민운동의 목적이 된다.
 
이 글은 주민운동의 개념이나 방법에 관한 논의가 아닌, 주민운동의 리더나 조직가들과의 교육활동이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필리핀의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필리핀 사례에 관해서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가 가장 정통하기 때문에 작성한다기 보다는, 필리핀 사회, 주민운동, 조직화와 그 속에서의 교육활동에 대해 공부했기 때문이다. 이미 필리핀의 주민조직운동과 지역사회개발 사례들은 다양한 형태의 글을 통하여 소개되어있으므로 여기에서는 필리핀의 주민운동과 교육활동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는 수준에서 다루고자 한다.
 
필리핀의 주민조직운동
 
필리핀의 주민조직운동은 한국의 주민운동가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1960년대 홍콩을 중심으로 한 주민조직운동이 미국의 조직가들의 도움으로 한창 번성하고 있을 때 이후, 주민운동에 있어 한국과 필리핀은 상호 협력적인 관계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2003년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아시아 지역의 주민운동을 배울 수 있도록 NGO센터를 필리핀 마닐라에 설립한 것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은 ‘아시안 브릿지’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NGO로 거듭나게 되었지만 아시아를 잇는 연결고리로서 주민운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강조되어야 한다.
 
필리핀의 주민운동은 마르코스 독재가 횡행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리핀은 우리나라와 달리 이질적인 문화공동체가 공존하고 있는 다문화사회이다. 물론 이렇게 공존이라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문화적 차별, 정치 참여의 불평등, 사회경제적 부의 불공정한 분배,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비민주적 종속, 억압과 착취가 존재한다. 대략 50여 개의 서로 다른 민족, 100여 개의 서로 다른 언어 공동체가 있다고 추산되며, 실제 사람들의 삶은 ‘타갈로그어’로 대표되는 필리핀다움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1972년 마르코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시민운동이 위축되어 온 이래 줄곧 이어져 온 사회변혁운동은 EDSA 혁명으로 불리는 1986년의 마르코스의 퇴장에 이르기까지 사회변혁의 불씨로 기능했다. 그러나 그 후 25년이 지나도록 필리핀 사회의 민주적 변혁의 씨앗은 아직 제대로 싹을 틔우고 있지 못한 듯하다.
 
이러한 변혁운동의 한 가운데 주민조직운동이 자리하였고, 지금도 주민조직운동은 도시와 지방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필리핀 주민조직운동을 이끈 집단은 가톨릭교 지도자들이었다. 지방에서는 신앙에 기초한 종교공동체운동(Basic Christian Communities, BCCs)이 주민들의 의식화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도시에서는 도시 빈민들의 조직화를 통하여 빈부 격차 해소 및 빈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민조직화운동이 진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에서의 주민조직화 운동은 처음에는 인권보호와 생활개선을 목표로 민간협의체 형태로 등장하였다. 그러던 것이 구체적인 사회·정치·경제적 변혁을 목표로 옹호, 교육, 행동을 내세운 기관으로 변모해 왔다. ‘주민조직화를 위한 필리핀 기독교협의회(PECCO)’로 대표되던 주민운동은 이후 이념적 성향에 따라 ‘필리핀주민조직체(COPE)’와 ‘주민역량강화를 위한 기독교민중협의회(PEACE)’로 분리되어 활동해 왔다. 이후 단순히 지역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주민조직화를 넘어서, 지역주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필리핀 사회의 변혁을 위한 공동체운동, 이를 위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물론 명시적 억압이 다분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필리핀의 주민운동교육, CO-M 그리고 PEPE
 
주민운동교육은 주민운동의 수단이자 곧 목적이다. 주민운동에 참여하는 조직화 혹은 주민교육활동가들에게는 (1) 주민운동의 목표와 실제, (2) 함께 활동할 주민들의 조직화 방법, (3) 주민문제인식 및 해결방안 도출 방법, (4) 효과적인 주민운동 과정, (5) 전략구사 및 이슈제기, (6) 재정확보, 회의진행, 단체운영 방법 등을 익히도록 하고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이론 강의와 연구에 집중하기보다는 실제 지역사회의 문제와 활동에 참여하고 문제해결과정에 투입되는 과정을 통하여 실질적인 기능과 감각, 인적 네트웍을 익히도록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필리핀에는 주민조직화와 지역사회개발을 견인할 수 있는 지도자 훈련프로그램들을 담당하는 단체들이 일찍부터 등장했다. 필리핀의 주민운동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주민조직화의 측면에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CO-M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민중교육의 측면에서 주민운동과 사회변혁운동과의 접점을 찾고 있는 PEPE, ELF 등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CONET)이 1960년대 말 도시문제연구소 ‘주민조직실무자훈련’으로 시작하였던 것과 유사하게, 필리핀에서는 PECCO에서의 실무자훈련으로부터 시작하여 COPE를 거쳐 현재 주민운동교육훈련원(Community Organizers Multiversity, CO-M)에서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의 CO-M의 주민운동교육훈련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운동조직가와 민중단체들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1) 조직화 방법, (2) 맞춤형 민간단체 지역개발컨설팅, (3) 지역에 적합한 주민운동조직 및 주민운동교육센터 설립방법, (4) 지역문제를 둘러싼 단체 간 파트너십 구성 및 운영 방법을 가르친다.

둘째, 주민운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민간단체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1) 정부, 기업, 국제단체와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 (2) 단체 운영과 관련된 프로그램 개발 방법, (3) 사회문화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지속가능발전 및 평화 옹호 방법, (4) 지역사회개발에서 인적자원 활용 및 인적자원양성방법, (5) 지역개발과 관련된 주요 이해집단과의 워크샵 운영방법을 가르친다.

셋째, 주민조직화를 위한 네트웍 확장을 위하여 국제연대방안 및 국제개발 의제에 대해서 가르친다.

넷째, 조직가이자 교육활동가로서 주민들과 함께 참여연구를 어떻게 실시하는지, 주민조직화와 관련된 사례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관련된 주제들을 통하여 어떤 학습을 주체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지 논의하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이상에서 주민운동을 조직화의 측면에서 CO-M을 살펴보았다면, 보다 교육적 의미를 고민하고 있는 시각에서 주민운동과 지역개발과의 접점을 PEPE에서 찾아 볼 수 있다.

PEPE(Popular Education for People’s Empowerment)는 민중역량강화를 위한 민중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1986년 EDSA혁명 이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사실 PEPE에 대해서는 지난해 출간된 번역서 [페페의 희망교육](학이시습, 2012)을 통하여 보다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PEPE는 주민운동조직체를 포함한 풀뿌리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벌여왔던 제반 활동을 교육이라는 큰 틀로 묶어서 반성적으로 정리하고, 보다 지속가능한 사회변혁운동을 벌이기 위한 단체로 시작하였다. 민중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지역사회의 개발과 구체적인 주민들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있어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방안이 ‘조직화’와 ‘교육’으로 양분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특히 여전히 사회문화적 차별이 있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민중교육은 곧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개선과 보다 확대된 사회구조변혁으로의 운동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PEPE는 첫째, 비판적 사고력에 기초하여 지역주민들간의 상호소통, 지도력 발휘, 문제인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프로그램들은 특정 교과형식으로 제시되기보다는 ‘홀리스틱’접근에 기초하고 있다.

둘째, 교육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주민들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다문화사회의 평화와 관용, 이해를 목표로 하며 보다 나아가 문화적 소통을 통한 세계시민성 향상에 두고 있다.
 
셋째, 교육은 주로 민중교육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워크샵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지도하고, 직접 참여에 의한 문제해결 사례들을 공유한다.

넷째, 개개인의 잠재 역량을 깨닫도록 하고, 차별과 인권침해 없이 상호 존중하는 주민공동체 형성과정에 개입한다.

다섯째, 국제사회의 주요 개발 의제들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환경의 보전을 염두에 두고 인권에 기반한 개발을 추구하고 있듯이, 필리핀의 지역공동체의 개발도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태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도록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필리핀 사회의 주민운동교육에 있어서 CO-M이나 PEPE에서 크게 다른 점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들이 1960년대 이후 1970년대 억압적 상황에서 주민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이 흘러왔다는 점을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고, 필리핀 사회의 복잡한 사회·문화·정치·경제적 변화를 지역사회의 주인인 주민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히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민운동에서 조직화와 교육활동은 어느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인지, 나중인지에 대한 논쟁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활동임을 인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민운동교육은 기관 간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필리핀 주민운동교육의 내일

 
여느 개발도상국가들의 지역개발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주민운동과 주민운동교육의 활동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세계화 추세는 도시와 시골의 지역적 특성을 넘어 보다 다차원적인 대처와 대응 방법들을 요구하고 있다. 필리핀의 주민운동교육/훈련이 주민들의 문제인식능력과 해결능력을 높이고 자신들의 공동체를 스스로 꾸려나가고, 갈등을 민주적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린스키가 내세운 10개 조직화 원칙을 지키면서 보다 반성적인 교육 활동을 강조하는 조직화와 교육의 개념적 원리들을 프로그램에 잘 반영하면 될 것인가? 점차 높아지는 빈부 간 격차, 번듯한 개발 뒤에 가려진 빈곤의 어두운 그림자가 구체적인 사람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도록 주민운동교육이 좀 더 거시적인 사회변혁과 사회정의를 구현하려는 교육, 옹호, 체계적 캠페인과 맞닿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멀지 않은 내일, 이러한 연계의 효과가 주민 한 명 한 명의 삶의 질 개선으로 나타나 다양하지만 평화로운 그러면서도 정의로운 필리핀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_ 유성상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 [평생학습 초점] 스스로 말하게 하라 연재목록
(1) 주민의 가능성을 보는 눈 ‘주민운동 교육훈련’
(2) 공부방에서 꿈꾸는 주민공동체
(3) 동자동 쪽방촌에서 벌어진 일
(4) 필리핀의 주민운동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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