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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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공기를 가르며, 부처님의 자비심과 만나다

새벽 4시, 예불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군대나팔소리도, 시계의 알람소리도 아닌 기림사의 은은하고 웅장한 종소리는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대적광적에서는 이미 스님들의 예불이 시작되었고, 회원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종교 신념에 맞추어 경건하게 예불에 참여했다. 박원순 상임이사와 김정헌 대표는 가장 먼저 예불에 참석하여 다른 회원들에게 의미를 설명해 주었고, 장완익 변호사는 108배까지 하며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였다.

이렇듯 새롭고, 이른 하루의 시작은 새벽 5시 30분의 아침공양으로 이어졌다. 잣죽과 어울린 김치와 나물의 가벼운 식단은 절제되고, 검소한 사찰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아침공양 후 회원들은 달을 품은 형상이라는 함월산 산책에 나섰다. 인간의 ‘때’가 타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을 간직한 함월산은 곳곳에 개울이 흐르고, 울창한 숲이 있어 아침햇살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함월산의 삼림욕으로 피톤치드를 마셔 도시생활에서 누적된 ‘때’를 벗겨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천연의 공기와 배경음악에 감화하여 회원들에게 박선희 대표가 선사한 이태리 노래는 천상의 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신라시대 국제화된 도시, 경주를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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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틀째 일정의 첫 행선지는 괘릉이었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신라 원성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다. 괘릉은 입구의 무인석이 특히 회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얼굴 생김새와 세부 묘사 등을 살펴보았을 때, 중국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소그드인이다. 이는 신라시대의 다양한 문물이 교류하던 경주가 얼마나 활발하게 국제사회로 부각됐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는 민 박사의 체계적인 설명에 괘릉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었다.

소그드인은 당시 중앙아시아의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무역을 주름잡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뼛속까지 대상인지 알 수 있는 이야기 하나. 소그드인들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입에는 꿀을 한 입 떠서 넣어주고, 손에는 아교를 쥐어줬다고. 꿀을 먹이는 것은 꿀 같은 감언이설(?)로 장사를 잘하라는 의미이고, 손의 아교는 한 번 재물을 손에 쥐면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의미란다.

장인을 통해 지켜지는 우리 전통문화

괘릉의 새로운 발견을 뒤로하고, 회원들은 신라시대 전통적인 방식대로 토기를 재현하고 있는 신라요로 향했다. 이곳 신라요의 명장 ‘류효웅’씨는 발 물레를 돌려가며 대대로 내려오는 신라토기 제작술을 지켜가고 있는데, 회원들 앞에서 직접 토기제작과정을 보여 주었다.

아무 모양도 없던 찰흙이 발 물레 위에서 그의 손 움직임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모습은 신기 그 자체였다. 작업장 곳곳에 스며든 장인의 손길과 분위기가 더욱 그 가치를 짐작케 했고, 가마에서는 전통기술 보전과 전수를 위해 노력하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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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요와 이웃한 삼선방에서는 금관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테두리 위에 입식을 세우고 금판을 오려서 만들고 출(出)자형과 녹각(鹿角)형이 주종을 이룬 신라의 금관은 뚜렷하게 다른 지역의 금관과 구별되며, 깨알 같은 금 조각을 붙이는 등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는 작업으로서 그만큼 복제가 힘들다. 복제가 까다롭지만 다음 세대에 올바른 전통 금관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유물 복제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김진배’씨 부부의 정신을 통해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생각할 수 있었다.

뒤 이은 점심식사는 30여가지의 푸짐한 반찬과 함께했다. 각종의 나물, 고기, 생선 등이 조화된 상차림은 어느 반찬에 먼저 젓가락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했다. 식사시간 중 회원들에게 잊지 못할 시간을 선사해 준 (주)오토의 김선현 대표와 민병훈 박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도 가졌고, 김정훈 대표는 이번 여행의 스케치 중 두 점을 김선현 대표에게 선물하여 회원들의 부러움을 자아내었다.

재충전, 천년 고도의 숨결

점심식사로 재충전을 한 회원들은 경주교동 최씨고택으로 향했다.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집안으로 보통 경주 최부자집 또는 경주 최진사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경주최씨 최언경(崔彦璥 1743~1804)이 이곳에 터를 잡아 정착하여 약 200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경주 내남면 게무덤에서 7대를 내려오면서 살았고 교동에서 5대를 만석꾼으로 유지하며 살았는데, 특히 막대한 독립자금을 제공하고, 교육사업에 뜻을 두어 전 재산을 대구대학교(영남대학교 전신)에 기부하는 등 정경분리의 본보기인 집안이었다. 특히, 진사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며느리는 무명옷을 입혀라 등 총 6가지 최부자집 가훈은 회원들에게 큰 깨달음을 선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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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과 천마총으로 이어진 마지막 일정에서도, 민 박사와 동행하며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천년 고도 경주의 가치를 지켜가기 위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경주 땅에 묻혀있는 유물의 온전한 발굴과 발굴된 유물의 보존을 통해 다음 세대에 우리 전통 가치를 올바르게 전수하기 위한 방법! 이번 ‘세계문화유산 경주’ 행사에서 희망제작소와 HMC 회원들이 새롭게 인식하게 된 부분이었고, 이 깨달음의 시간이 우리의 일정을 보다 가치있고 보람되게 만들어 주었다.

글 : 이지형(전 회원재정센터 인턴연구원)
사진 : 조영우(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석락희(강산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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