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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33-1)
일본 시민들은 왜 버려진 땅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나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의 수도 사이타마시는 인구 약 132만 명의 수도권을 대표하는 도시다. 이 도시 중심에 넓이 약 1260ha의 ‘미누마농지(見沼田圃)’가 남북으로 펼쳐져 있다. 이곳은 원래 바다였으나 호수로, 습지로 모습이 바뀌다 에도시대에 관개용수로를 건설하면서 논으로 개척된 곳이다. 그 농지가 오늘날까지 보전되어 현재 수도권에 남아 있는 녹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수도권에 이처럼 광대한 농지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미누마농지 또한 다른 도시의 녹지처럼 1950년대 경제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택지로, 학교로, 도로로, 공공시설 등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59년 태풍이 덮쳤는데, 그때 미누마농지가 자연 저수지의 역할을 하면서 주변 시가지의 침수 피해를 막아줬다. 농지의 수재 방지 효과를 확인한 사이타마현 정부는 1959년 치수정책의 일환으로 ‘미누마 3원칙’을 제정해 농지의 택지 전환을 규제했다. 이 덕분에 미누마농지는 개발의 열풍을 피해 그대로 보전되어 주변 농가들은 도시 농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 정부의 쌀 생산 조정에 의해 논은 거의 밭으로 전환됐으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영농자들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으로 경작 포기지가 늘어나면서 건축용 쓰레기 등의 투기로 농지가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버블기를 맞이해 골프장 건설 등의 개발 움직임이 대두되면서 미누마농지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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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누마농지가 시민체험 농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미누마의 농가, 대학생들이 미누마농지 보전에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황폐해진 경작 포기지에 모여 함께 땀을 흘리면서 폐기물을 청소하고 자연산 퇴비를 만들어 농지를 다시 일궜다.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미누마의 생태계와 농부들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며 농사도 함께 짓는 시민활동도 전개했다. 포럼 등을 개최하여 현과 시정부에 미누마농지 보전에 대한 정책적인 제안과 요구활동도 활발히 추진했다. 현재 미누마농지 보전에 참가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약 20여 개 1,400여 명에 이르며, ‘미누마농지 시민 네트워크’를 구성해 연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활동이 인정받아 작년에는 ‘일본 유네스코 미래 유산’에 등록되기도 했는데 이는 지역의 자연 환경과 문화 유산을 미래에 이어가는 활동 또는 단체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이다.

사이타마현과 사이타마시도 이러한 시민적 요구를 전격 수용하여, 1995년 ‘미누마농지 보전 활용 창조의 기본 방침’을 제정했다. 농지를 유지하면서 공원, 녹지로 토지 이용을 제한하는 대신에 농업을 유지하기 곤란한 농가의 토지를 정부가 매입하여 공유지화하기로 한 것이다. 1998년부터 정부의 토지 매입이 시작돼 약 14ha의 공유지가 탄생했으며, 이들 공유지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복지농원, 시민농원, 체험농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미누마농지는 도시 농업의 장으로서 기능을 유지하면서 시민 공유의 환경 재산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미누마 복지농원, 장애인의 일터가 되다

이 미누마농지 중앙에 미누마 복지농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당시 지적장애인들의 취업 시설로 복지농원을 만든 것은 거의 파격적인 시도였다. 미누마 복지농원 대표 이노세 료이치(猪?良一)씨와 지적장애인 부모들의 모임인 ‘펭귄회’는 앞서 말한 미누마농지 보전 운동의 중심에 서서 활동해 왔다. 그 과정에서 복지농원이 탄생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노세 씨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의 부모로서 언제나 지역의 장애인들, 그리고 그 부모들과 함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에 맞서 왔다. 덕분에 그의 장남은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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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누마농지 중심에 있는 미누마 복지농원,경작 포기지를 자원봉사자들이 정비했다.

이노세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남의 장래를 고민하다가 보전 활동 과정에서 알게 된 농가로부터 약 100평 가량의 농지를 빌려 실험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주위 농가들도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지적장애인들도 세심한 지도만 있으면 충분히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1986년 ‘미누마농지 복지농원 구상’을 사이타마현과 시에 제안했다. 그가 구상한 복지농원은 농업을 통해 장애인들의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장애인들의 일터이자, 아이들과 고령자들이 모두 함께 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 가든과 같은 곳이었다. 현과 시는 미누마농지의 토지 활용 방안의 하나로 이 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1999년 현의 미누마농지 공유화 사업의 일환으로 ‘미누마농지 복지농원’이 개원한 것이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 다음 주 미누마 복지농원의 다양한 활동을 소개하는 글(장애인 고용과 환경보전을 이룬 특별한 농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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