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공정한 노동] 취업했는데 조건 안 맞으면 누구 책임?

[좋은 일, 공정한 노동]
⑨ 취업했는데 조건 안 맞으면 누구 책임?

“출근하기 전까지 아니, 첫 월급을 받을 때까지 월급도, 일할 조건과 환경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면, 그래서 만족할 수 없다면 그건 누구 책임인가요?
인생은 복불복이니까 ‘재수 없었다’ 하고 계속 일해야 하나요? 누구를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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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가 진행 중인 ‘좋은 일 기준 찾기 릴레이 워크숍-나의 일 이야기’의 세 번째 행사가 지난 10월 6일 오후 5~9시에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스페이스류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특별히 취업준비생(취준생)을 대상으로 했다.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진짜 ‘나의 일’을 찾고 있는 사람들도 포함됐다.

한국 사회에서 기존에 통용되던 좋은 일 기준을 돌아보고, 지금의 시대와 세대에 맞는 ‘좋은 일’의 상을 다시 그려봐야 한다는 것이 이 릴레이 워크숍을 관통하는 취지다.

‘나에게 좋은 일’ 알아야 하는 이유

그중에서도 세 번째 워크숍에서 초점을 맞춘 취준생들은 이미 오랜 시간 좋은 일에 대해 고민해 온 사람들일 것이다. 다만, 그 기준이 정말 나라는 개인에게 맞는 일, 내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일의 기준인지, 그저 일반적인 기준이거나 ‘어른들’이 좋다고 한 일의 기준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라도 ‘나에게 좋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미 한두 번의 직장 경험 끝에 이런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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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은 세 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는데, ‘구인광고 분석’과 ‘근로계약서 작성 실습’, ‘보드게임으로 알아보는 나에게 좋은 일’이다. 그중에서 ‘구인광고 분석’ 세션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급여는 내규에 따름? 내규가 뭐예요? 입사 후 협의? 정말 협의를 하긴 해요?”
이번 워크숍 홍보에 사용된 이 문구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인광고를 보고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인광고에 ‘내규에 따름’, ‘입사 후 협의’ 등 모호한 표현이 많은 이유가 뭘까? 그것도 다름 아닌 임금과 같이 결정적인 조건에 대해 이런 표현이 사용된다. 지원자는 얼마를 받을지도 모르고 입사해야 한다는 뜻, 그저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는 뜻일까?

면접 평균 비용 6만원, 누구의 책임?

혹자는 “마음에 안 들면 입사 안 하면 되지”라고 하겠지만, 2015년 취업포털 ‘사람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취준생들이 1회 면접을 보기 위해 쓰는 평균 금액이 6만 원이었다. 15만 원이 넘는다고 답한 사람도 응답자의 10% 이상이었다. 이런 비용을 쓰면서 모든 채용 과정을 다 통과한 후에서야 알게 된 조건이 기대와 달라서 입사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 비용은 누구의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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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입사한 후까지도 정확한 급여와 근로조건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근로계약서를 쓰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도 하겠지만, 근로계약서 작성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미루는 사업장들이 있고, 연봉총액에 이런저런 수당을 불법으로 포함시켜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첫 월급을 받아봐야 자기 임금이 얼마인지 알게 되는 일이 적지 않게 벌어지는 것이다.

구인 과정을 거쳐서 입사자가 최종 결정된 후, 혹은 위와 같이 입사해서 얼마간이라도 일한 다음에 신입사원이 그만두게 되면 기업도 손해를 본다. 그 때 신입사원이 “생각한 것보다 임금이 적어서”, 혹은 “근무조건이 안 맞아서” 그만둔다고 말하지 않고 ‘개인 사정’ 때문이라고 했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기업은 계속해서 같은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체 왜 이래?”라는 불만과 불신만 커지는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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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확한 구인광고, 처벌하는 법 있을까?

그렇다면, 구인광고를 정확하게 내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찾아보니 법적 장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거짓 구인 광고’를 낼 경우에 대한 법적 처벌 근거는 있다. 직업안정법 34조는 ‘거짓 구인광고를 하거나 거짓 구인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같은 법 제 47조6호)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처벌 대상은 ‘직업소개사업’, ‘근로자모집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일반 기업에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
2015년부터 시행된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4조는 기업이 사업장 홍보를 목적으로 거짓 채용광고를 내거나, 구인광고 내용을 구직자에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도록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완전히 ‘거짓’인 경우만 규제하고 있을 뿐, 보다 정확한 정보를 주도록 하는 내용은 없다. 그나마도 100명 미만 사업장은 2017년부터 적용되고, 30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는 등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서 ‘모호한 구인광고’에 늘 직면해 있는 구직자들은 계속 ‘약자’여야만 할까? 이번 워크숍에서는 구인광고를 취준생들이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최근 실제로 공개채용에 사용된 구인광고 8개를, 기업 및 조직이름을 명기하지 않은 채로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별점을 1~5개로 매겨 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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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입장 아닌 구직자 입장에서 생각해 주길”

참가자들마다 선호하는 직종과 근무형태 등이 다를 텐데도 반응은 대체로 공통적이었다. 급여와 근무조건, 근무지, 조직 문화까지 정확한 정보를 주려는 노력이 보이는 구인광고에 높은 점수를 줬다. 다른 참가자가 보지 못 하는 모호함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참가자는 1번 구인광고에 별 다섯 개를 줬지만 같은 테이블의 다른 참가자는 “‘교육비 지원’이라는 말이 좋아 보이긴 하는데 얼마를 준다는 내용은 없다”면서 “1년에 5만원 주고 생색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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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원부터 점장까지의 월급을 자세히 명기한 3번 구인광고를 긍정적으로 본 평가자가 있는 반면, “언제 어떻게 직급이 올라가는지 알 수 없는데 이렇게 적어 놓으면 급여가 많은 것 같은 착시현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 소득 세전 4,000만~4,500만 원 수준’이라는 말 뒤에 ‘주 6일 기준, 인센티브 등에 따라 변동’이라고 쓰여 있는 4번 광고에 대해서는 “실제 월급은 훨씬 낮은 수준일 수도 있겠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야근과 술자리 회식 등을 당연하게 써 놓은 구인광고들에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온 반면 “마케팅, IT 등 특정 분야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수긍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정보는 비교적 자세하지만 임금수준이 최저임금에 근접하는 구인광고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임금이 너무 낮다”고 아쉬워하는 의견이 있는 한편, “여기 써 있는 내용만 정확하다면 임금이 낮아도 지원해 보고 싶다”는 경우도 있었다. 부정확한 정보 때문에 시행착오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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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및 조직들이 인재를 뽑기 위해 제시한 여러 조건들 중에서 20~30대인 워크숍 참가자들이 대체로 주목한 부분이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 ‘수평적이고 서로 존중하는 조직 문화’, ‘성별·학력·종교·정치 성향·성적 지향 무관’ 등 개인의 삶과 성향을 존중하는 내용들이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 했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여러 개를 놓고 보니까 구인광고를 기업 대표 입장에서 쓰는 곳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지원하는 사람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려는 기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야 기업도 딱 맞는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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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세션은 박성우 공인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회장)와 함께 한 ‘근로계약서 작성 실습’, 그리고 희망제작소가 자체 제작한 보드게임을 통해 ‘나에게 좋은 일’을 알아 본 시간으로 다음 연재를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보드게임 ‘나에게 좋은 일’ 개괄 및 제작과정 소개)

4회 워크숍은 비영리 종사자 대상

희망제작소의 ‘좋은 일 기준 찾기 릴레이 워크숍-나의 일 이야기’의 다음 순서는 오는 11월 3일(목) 오후 5~9시에 서울시 NPO지원센터 대강당에서 열리는 ‘비영리 종사자’ 대상 워크숍이다. ‘좋은 일에 대한 새삼스러운 고민?’이라는 제목의 이 행사는 시민사회단체, 공공기관, 재단, 사회적경제 부문 조직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현재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1차 대상이지만, 이 분야에서 일해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 (관련내용보기)

5회 워크숍은 같은 장소에서 12월 3일(토)에 ‘끝에서 두 번째 일, 좋은 일이려면’이라는 주제로 이직을 생각하는 4060세대를 위해 열린다. 이 행사에서는, ‘좋은 일’을 개인의 차원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 즉 개인들이 협력해서 노동 환경과 토대를 높여갈 수 있는 내용으로 이뤄진 보드게임의 2부도 개발돼 공개될 예정이다.

글 : 황세원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joonchigirl@makehope.org
사진 : 이우기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