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찾아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서울시만 해도 1995년에 약 7,600개에 달하던 쓰레기통이 2000년도에는 3,200여개로 줄었고, 현재에는 약 4,000개의 쓰레기통이 남아 있습니다.

쓰레기통은 자꾸 줄어드는데, 쓰레기 무단 투기에 대한 벌금은 자꾸 올라갑니다. 버릴 곳도 만들어주지 않고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쓰레기를 거리가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으려면 쓰레기통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오랜만에 찾아가는 열여덟 번째 희망제안입니다.

서울 도심, 거리 쓰레기통 간격은 1km 이상

시민단체인 자원순환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명동의 경우, 명동에서 을지로 입구까지의 6.97km 구간 내 쓰레기통은 6개로, 쓰레기통 간 평균 간격은 1.16km입니다. 또 대학로 혜화역에서 이화사거리, 혜화로터리, 성대입구까지의 구간 내 쓰레기통은 2개, 쓰레기통 간 평균 간격은 1.88km로 조사되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모이는 광화문~세종로~경복궁, 종로5가, 청계천 지역의 3.32km 구간에 설치된 쓰레기통은 2개, 쓰레기통 간 간격은 1.66km이었습니다. 쓰레기를 들고 1km 이상을 가야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쓰레기통이 없으면 쓰레기가 줄어든다?!?

거리에 쓰레기통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된 1995년부터. 쓰레기 배출자가 그 처리 비용을 부담하는 종량제 실시 이후, 거리에 몰래 갖다 버리는 사례가 늘어나 그 조치로서 거리 쓰레기통을 없앤 것입니다. 각 지자체들은 종량제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거리 쓰레기통을 늘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만,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을 대비에 거리 쓰레기통 증설 계획을 서둘러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거리 쓰레기통에 대한 지자체의 입장은, “TM레기통이 없으면 쓰레기가 줄어든다.”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각 지자체는 쓰레기통을 철거한 대신 미화원을 상주시키거나 수거 인력을 담당 구역에 배치하여 쓰레기 발생 시 즉시 처리하도록 하는 등, 쓰레기통 없는 거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수거 인력의 노력으로 낮 시간 거리는 쓰레기통이 없어도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녁 시간의 거리는 마구 버려진 쓰레기서부터 버릴 곳을 찾지 못해 조심스럽게 놓여진 쓰레기까지, 곳곳이 쓰레기로 넘쳐 납니다.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책임지기 이전에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그 자신이 되가져가는 ‘쓰레기 책임제’는 거리의 미화를 유지하고 환경을 지키는 출발점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개인의 양심과 시민 의식에만 호소하기 이전에 일정 정도 쓰레기를 버려야 할 곳에 버릴 수 있는 인프라 역시 구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서울시는 인상폭이 너무 커 보류가 되긴 하였습니다만, 담배 꽁초나 쓰레기 무단 투기 과태료를 현행 3만원에서 7만원으로 133%나 상향하는 조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각 지자체는 쓰레기통을 설치할 계획보다는 단속 강화, 과태료 부과 등만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원순환연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쓰레기 무단 투기의 이유는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에 호소하고 이를 계도하는 것 역시 행정 당국의 몫이지만,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 또한 이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어떻게?

유럽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를린에는 쓰레기통이 무려 2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최근 베를린에는 쓰레기를 넣으면 태양열을 이용하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새로운 쓰레기통이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새로운 쓰레기통을 도입한 데에 대해 관계자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도록 시민, 관광객 모두를 격려하기 위해서라 말합니다. 생활 질서 단속이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싱가포르에도 거리에는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많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거리에 버리는 게 금지되어 있는 홍콩 역시 곳곳에서 쓰레기통을 볼 수 있습니다. 거리의 쓰레기통이 쓰레기는 거리가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종이로 만들어진 쓰레기통은 그 자체로 누구나 기억하는 도시의 명물이 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은 물론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제대로 잘 버릴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는 것이 아닐까요? “쓰레기통이 없으면 쓰레기도 줄어들 것이다.”라고 믿기 이전에 보다 융통적인 쓰레기통 정책을 기대합니다.

다음 주 희망제작소의 희망제안은 신용카드를 쓸 수 없는 시외버스 터미널 문제를 들고 찾아갑니다. 희망제안은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50분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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