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3월 19일 원주 한라대학교에서 ‘가난하고 무지한 이들이 일구는 착한경제’ 라는 주제로 <원주 사회적경제 블록화 사업> 심포지엄 및 22개 협동조합ㆍ사회적기업간 상호협약식이 열렸습니다.  원주 사회적경제 블록화 사업은 국내 협동조합운동 및 대안사회운동의 메카인 원주의 미래에도 일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혁진 이사(원주협동경제사회네트워크)의 발제문을 통해 이번 사업의 의미와 전망을 소개합니다.  ※ 장문의 글입니다. 모니터 상으로 읽기 힘든 분들은 상단 ‘프린트 하기’ 기능을 이용하세요.

원주 사회적 경제운동의 나가야할 방향과 비전에 대하여

최혁진 원주의료생협 전무이사

1. 여는 말씀

발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이 글의 제목에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란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회적 경제‘라는 표현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및 기타 관련 단체 모두를 넉넉하게 포함해내는 적절한 용어인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지역사회에서 합의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역에서는 현재 ‘협동경제’, ‘연대의 경제’, ‘대안 경제’ 등 다양한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고 또한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이 우리의 활동 전체를 포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그러한 입장들이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이 대단히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우리 나름의 재해석도 가능할 수 있고 또한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 용어가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해진 표현이라 이 자리에서 사용해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 판단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가 ‘타인의 희생이 없는 경제사회적 발전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논의를 진행해보고자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사용한 ‘사회적 경제’의 의미도 저 개인적으로는 이윤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우선 고려하는 것, 다시 말씀드리자면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보살핌의 경제, 연대의 사회에 대한 지향을 담은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보면 이곳에 함께 한 모든 단체와 참여자 분들의 공동의 가치와 비전을 설명하기엔 ‘사회적 경제’란 표현이 그다지 쌩뚱 맞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낡은 것은 지나가버렸는데 아직 새로운 것은 도래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일전에 안토니오 그람시의 글에서 읽어 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어 보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어마어마한 경제적 충격으로 전 세계가 아직까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근래 일부 언론에서는 몇 가지 겉으로 드러난 경제지표에 근거하여 한국 경제가 가장 빠른 속도로 전 세계적인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표상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우리 사회가 어떤 근원적인 변혁이 없이는 도저히 지속 불가능한 소위 임계점, 대전환의 시점(Turning point)에 아주 가까이 도달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사회적으로 커다란 고비에 직면할 때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힘없는 다수의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위기를 넘기고 또 성장하여 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를 기억해보십시오.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희생되었고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사용한 카드남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서민들을 빚쟁이로 만들고 비정규직으로 내몰아서 가까스로 거대기업들을 살리고 시장기능을 유지시켜낸 것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는 감세와 환율정책으로 거대기업들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제는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내몰려 있습니다. 냉철하게 말씀드리자면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한구사회는 근본저긴 원인을 해결하는 방식보다 제 살 깎아내기 식으로 그것도 이 사회의 가장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밑바닥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몰며 겨우겨우 위기를 봉합해왔던 것입니다.

제가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제 더 이상 희생시킬 누군가가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빈곤층이 800만에 도달하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절반이 안정된 일자리가 없습니다.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가 비자발적 비정규직이고 대형 유통자본의 공격적인 시장 확대로 영세 소상공인들의 몰락은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노인은 늘어나고 젊은 세대는 아이낳기를 거부합니다. 아마도 여기에서 더 이상의 희생이 강제된다면 한국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하게도 ‘타인의 희생 위에 존립하던 낡은 방식의 자본주의’는 이제 그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일정기간 동안은 갈수록 점점 더 주기가 짧아지는 반복되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단기처방의 임기응변으로 현재의 사회 시스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희생시킬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러한 자기 파괴적 시스템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이미 세계는 새로운 가치와 사회경제 시스템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형태들이 보수나 진보 양진영 모두에게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새로운 혁신적 조직들이 표방하는 가치가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해온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면 원주는 한국 사회에서 참으로 소중한 곳입니다. 우리 선배들은 이미 40년 전부터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준비해왔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과 지학순 주교님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도 기꺼이 함께 하소 계신 여러 선배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심포지움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분들의 희생과 봉사에 힘입어 오늘 우리는 낡은 것이 지나간 이후의 사회에 대하여 감히 꿈꿀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때로 아무리 잠재력과 가능성이 높아도 반드시 실현된다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여러 가지 긍정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원주의 사회적 경제 운동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많은 실제적인 문제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선배들이 물려주신 유산에 무임승차하여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소임들을 방기하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자칫 ‘아직 도래하지 않는 미래’가 되기는 커녕 우리 스스로가 몰락해야 할 낡은 것 중 하나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어떤 원칙과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공감과 긍정적 실천을 이끌어내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주제도 원주 사회적경제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협력에 기초해야 가능한 일이며 저 개인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자리를 통해 협동조합의 역사적 경험과 원칙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도전의 실천적 사례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들을 현재 우리의 모습에 비추어 소개하는 것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드러내고자 하며 여러분과 함께 토론해가면서 그 해법과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지난 수년간 마치 운명처럼 우리 선배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한걸음 한걸음 도전해온 세계 각지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현재 ‘아직 도래하지 않는 미래’의 한 모델로 주목받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여전히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입증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현재를 통해 오늘 우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새벽에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걸어갈 때는 발걸음 어지럽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뒤 따라올 사람을 위한 배려입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에 첫 발자국을 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올곧게 걸어간 사람의 발자취를 잘 살피며 나아가는 것도 그 나름 보람 있는 삶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한두 사람이 지나면 발자취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지나면 길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만일 언젠가 그 발자국이 멈추는 곳에 이르면 우리도 역시 발걸음을 곧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겠지요. 남의 나라 일이라며 혹은 문화나 조건이 다르다고 간혹 주마간산하는 경우를 봅니다만 마음을 열고 잘 살피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나 비전을 찾아나가는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 몬드라곤, 트렌토, 퀘백 그리고 원주

저는 원주 사회적경제 운동의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복합체, 이탈리아 트렌토 협동조합연맹, 캐나다 퀘백의 거버넌스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 운동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역들이 협동조합운동의 발전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 되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 지역들이 원주와 유사한 전통과 뿌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지역들은 모두 가톨릭 사회운동에 근거하여 협동조합운동을 발전시켜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복합체의 창시자는 돈 호세마리아 신부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다는 인간들이 비인간적인 처우와 일상적인 착취구조 속에서 신음하는 모습들을 보며 이 문제를 개선하고자 노동자들을 위한 협동조합을 구상하였습니다. 트렌토 협동조합운동도 지역사회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카톨릭 사제였던 돈 로렌조 신부에 의하여 지도되었습니다. 캐나다 퀘백의 협동조합운동도 그 뿌리는 카톡릭 사회운동에 있습니다. 지역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카톡릭 사제들이 적극 참여하는 가운데 다양한 공제조직과 안티고니쉬 운동에 기초한 신용협동조합 조직을 만들어 낸 것이 오늘날 퀘백 협동조합운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원주의 경우도 천주교 원주교구에 지역사회개발위원회가 조직되면서 가톨릭 사회 운동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협동조합운동을 확신시켜왔다는 점에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위 네 지역의 협동조합운동은 모두 특정한 개별 협동조합의 성장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협동조합의 연대를 통해 지역사회 전체의 변화 즉 협동조합 지역사회를 목표로 하였다는 점입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복합제의 경우 최초에는 난로를 생산하는 작은 노동자협동조합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재는 바스크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수백개의 다양한 협동조합 조직들의 연맹체로 발전하였습니다. 트렌토의 경우도 농업분야와 신용협동조합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재는 소비, 유통, 가공, 생산, 복지, 노동 등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들로 발전하여 지역 차원의 연맹체로 강력하게 연대하고 있습니다. 퀘백의 경우도 신용협동조합들이 성장하면서 타 협동조지들을 위한 투자기금 등을 조성하여 지원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의 다양한 그물망이 구축되어 있고 여기에 노동조합, 시민단체, 지방정부까지 긴밀하게 협력체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원주지역의 경우도 초기부터 단일 협동조합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강원 남부지역 전역에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상호간 협력체계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네 지역 모두 대내외적으로 수많은 정치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점입니다. 몬드라곤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에 위치하여 근세기 지속적인 정치적 탄압을 겪어왔으며 그로 인해 아주 빈곤한 지역으로서 지역자원은 빈약하였습니다. 트렌토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아 빈곤문제가 심각하였고 파시즘 정부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던 역사가 있습니다. 퀘백의 경우 상대적으로 정치적 탄압은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미국의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곳입니다. 원주 역시 군부독재 시절에 지속적인 정치적 탄압으로 고초를 겪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상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상당히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단 겉으로 드러난 외용만을 살펴보면 원주와 나머지 세 지역은 상당한 격차를 확인하게 됩니다. 1956년 시작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운동은 현재 270개 협동조합 연맹체가 되었고 연간 매출액만 8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화물자동차를 생산하는 노동자협동조합의 경우 EU에서 벤츠에 버금가는 생산규모와 기술수준을 가지고 있고, 트렌토 연맹의 경우도 인구 50만 지역에 협동조합 수만 540개에 이르고 매출규모는 3조 6천억 원이라고 합니다. 협동조합들로 인해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100%를 넘겼다고 하는 군요. 게다가 협동조합들은 일반 영리기업에 비해서 가장 좋은 노동조건과 임금, 복지제도를 실현하였다고 합니다. 퀘백의 협동조합들이 만들어낸 사회연대 시스템도 대단합니다. 일단 900만 인구 가운데 협동조합에 참여하거나 이용하는 분이 830만 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는 믿겨지지 않아서 다음번에 다시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일단 협동조합 수는 3만 2천개라고 하구요.

물론 현실적으로 각각의 지역이 정치사회적, 역사문화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과 그것이 사회적 경제 조직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격차가 벌어진 원인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오늘 원주지역의 사회경제적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 대단한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연구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해보면 좋겠는데요. 이 자리에선 제가 관련자료를 통해 확인하거나 논리적으로 추론해본 차이와 그 원인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토론이 가능할 것입니다.

원주와 나머지 지역의 격차가 발생한 원인으로는 우선 금융기반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원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모두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자체적인 금융기반을 마련해왔습니다. 몬드라곤에는 협동조합들을 위한 신협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1960년대 말 아직 노동자협동조합들이 경영적으로 많은 곤경을 겪고 있던 시절이었지만 호세 마리아 신부는 협동조합들을 위한 협동조합은행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하였습니다. 일반은행이 협동조합 조직들의 성장에 필요한 안정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협동조합복합체가 가능하게 된 가장 강력한 실제적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트렌토 연맹의 경우도 지역사회 전체 금융의 60% 이상을 신협 조직들이 관리하면서 지역 협동조합들의 성장을 강력하게 지지해내고 있습니다. 퀘백의 경우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신협조직들이 만든 데잘딩 사회투자기금, 노동조합들의 연기금(약 8조원), 지방정부의 투자기금, 민간 NPO장기투자기금 등이 협동조합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현재 원주에는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들을 위한 금융기반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농업관련 조직들은 매년 수매자금 확보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공분야나 제조업처럼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사회적 경제 영역은 좀처럼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럽의 협동조합들이 다국적기업들의 공세에 대하여 자본 조성능력에서 뒤처지자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대응하였지만 끝내는 상당수가 사멸하였던 경험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제시한 세 지역이 그에 대비하여 자체적인 금융기반을 강력하게 구축해온 거세 대해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수년째 논의가 진행되어온 지역협동기금 문제가 이번 심포지움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에 많은 기대를 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사회적경제 조직 간의 강력한 연대체를 구축하고 다양한 분야로 협동조합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운동의 성장에 있어 연맹(MCC)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연맹은 각 조직의 경영능력을 강화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교육이나 금융분야 등 개별 협동조합이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를 책임지고 지방정부와의 협력 등 행정분야 그리고 회원조직의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탁월한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트렌토 연맹의 역할도 이와 유사하며 각 회원조합들은 매출의 3%를 연맹에 지불하여 연맹이 안정적으로 활동하는데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연맹의 활동은 그 이상의 매출 증대로 회원조직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퀘백의 경우도 소지역별, 광역별 그리고 업종별로 다양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고 이러한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네트워크로서 샹티에 같은 조직이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위 지역들에 비하면 대단히 느슨한 연대체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실 협동조합이 성장하려면 조직 내부의 건강성 외에도 제도적 환경과 지역사회의 다양한 관계망들이 협동조합의 성장에 유리한 환경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정치, 사회, 문화, 교육적인 차원에서 협력체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사회적경제는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위 세 지역처럼 현재의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특히 네트워크는 각 조직의 경제적 필요를 해결하여 경영적 안정화를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해야 하며 이를 위한 금융, 교육, 컨설팅, 상호부조, 물류교류, 거버넌스 등의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원주지역의 모든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각 회원단체들이 비전을 공유하면서 강력한 지지기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왜 그러게 가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자본주의가 확산되고 극단적인 이윤추구와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오직 지역 차원의 강력한 연대체를 이룬 협동조합들만이 경영적 성공과 자신의 사회적 목표를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었다는 점 말입니다.

세 번째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민주경영에 기초한 강력한 협동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 세 지역의 협동조합들은 노동자와 이용자, 지역사회 내의 지지자, 기관출자자, 협동조합 연구자 모두에게 점차로 경영을 개방해왔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1980년대 레이드로 박사가 말하였던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협동조합들, 협동조합운동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그러한 협동조합의 전형들을 실현해온 것입니다. 이들은 지역사회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들에게 조합원 자격과 이사회 참여자격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협동경영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대폭 개선되었는데 신빈곤 시대에 이러한 실천은 지역사회로부터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모두 조합원들의 가족이기에 그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된 것은 당연히 조합원들로부터 지지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져 오늘날 영리기업들을 압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실제로 몬드라곤이나 트렌토 협동조합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1대6 또는 1대3의 임금원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몬드라곤의 경우 최고경영자와 최저임금 수령자의 임금격차를 1대6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트렌토는 1대3의 원칙을 지난 백년간 고수해왔습니다. 이들은 재벌은 없지만 모두가 풍요로운 지역사회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원주지역은 아직 이러한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해관계자가 모두 함께 하는 협동 경영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못하며 이러한 변화가 국제 협동조합 조직을 통해 진행되어온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의 시계는 1970년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의 노동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도 없습니다. 원주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되던 1970년대에는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검토가 있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협동조합이 어떠한 노동을 창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협동조합 운동이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빈곤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것을 잊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뿌리인 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민주적인 협동경영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대단히 강력한 경영조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영리기업들조차 협동조합의 가치를 받아들여 경영혁신을 이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주식회사들은 이사회의 30% 범위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회사들은 수직적인 명령체계를 거부하고 자율경영체계를 도입하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협동조합운동이 추구했던 경영방식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협동조합들이 자신의 옷을 벗어 버리고 이미 영리기업들 조차도 벗어버린 옷들을 주워 입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아직 도래하지 않는 미래’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원칙적 입장과 실현가능한 실천적 대안을 찾아내야 합니다. 자존감 있는 노동을 창조하고 보다 높은 수준의 노동조건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취업시키고 싶은 그런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적합한 경영원리들을 만들어내는 아주 구체적인 연구와 작업들이 이 시간부터 실행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협동조합운동의 성장을 위한 제도개선과 정치환경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탈리아 트렌토의 협동조합운동과 퀘백 사회적경제 운동이 지금처럼 풍성해진 이면에는 협동조합 기본법의 제정과 정세에 따른 제도 개선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들은 삶의 전 방위에서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시민들에 의해 자유롭게 설립가능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왔습니다. 또한 지역사회의 경제사회적 정책을 주도하면서 지방정부를 견인해내고 이를 통해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형성하여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국가와 죽음의 키스라는 소위 저웁지원에 의해 종속되는 길을 피하고 협동조합운동의 역량을 연대체를 통해 강화시켜내면서 오히려 역으로 재정위기를 맞고 있는 지방정부를 새롭게 견인해내는 혁신적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사회에는 협동조합 기본법이 없는 관계로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운동이 성장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원주지역에서도 여러 유형의 사회적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제도상의 한계로 인하여 외형적으로는 상법상 회사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설립자들의 정신에 의해 협동조합적 운영을 지향하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사유화되고 협동조합적 성격이 퇴색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며 현재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운동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만들어 내야 할 것입니다.

지방정부의 정책과 역할을 변화시키는 노력도 구체적인 전략을 수입하여 진행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원주시의 경우 사회적경제 운동의 오랜 역사적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목하고 있지 않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구상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지방정부 만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통해 지방정부의 역할을 변화시켜내는 노력을 소홀했던 점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적 목표는 시민들 누구나가 안전하고 안심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지역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통해서만 실현가능합니다. 보다 넓고 포용력 있는 자세로 우리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면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주변환경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네 가지 외에도 위 세 지역은 강력한 교육기반과 연구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 협동조합의 가치를 올바르게 실현해내는 훌륭한 경영자 집단을 양성하였다는 점 그리고 실무적인 영역에서도 다양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준비가 되는 만큼 하나하나 우리의 실정에 맞는 대안들을 창출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여기에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현재 수준에서 위 네 가지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과 강력한 지역 연대체를 구축하는 일은 경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의 힘을 강화시켜나가는데 있어 지금 시기에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노동조건 개선과 민주경영을 이야기한 이유는 조직 내부의 통합력과 협동력을 강화시켜내는 일과 인간의 열굴을 한 사회경제 조직으로 혁신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을 높여내는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치변화와 지방 정부의 정책변화는 우리 지역사회 전체가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이며 이는 원주 사회적 경제의 성장에 있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3. 마치는 말씀

제가 다른 나라 협동조합을 방문하거나 관계자 분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활동에 대해여 질문하면 꼭 듣는 대답이 협동조합의 7원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 저마다 철학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 7원칙에 대한 해석은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여하간 해석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들은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이 지난 200년 가까운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서 경영적으로나 운동적으로 대단히 깊은 영감을 준다는 것을 언제나 강조하고, 아울러 그 원칙이 전 세계 협동조합의 소중한 약속이라는 점도 거듭 이야기하곤 하였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분들은 7가지 원칙을 보다 확대하여 15가지 원칙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한국사회의 협동조합 현장에서 7가지 원칙을 말하는 분들을 좀처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원주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사회적기업들도 협동조합 7원칙의 핵심내용을 기본가치로 하고 있습니다. 역시 외국의 사회적기업가들 가운데 이 원칙을 대단히 소중하게 이야기하는 분들을 자주 만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분들을 보기 어렵습니다. 위 세 지역들과 원주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어찌보면 그 근원자리에 협동조합 7원칙에 대한 입장차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앞서 말씀드린 네 가지 측면의 차이도 결국에는 협동조합 원칙에 대한 이해와 그것에 대한 실현을 소중히 해왔던 그들의 역사적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협동조합의 7원칙을 굳이 두 가지로 분류하면 민주주의의 원리와 연대성의 원리로 축약됩니다. 보다 민주적이고자 하는 노력들 그리고 보다 협동적이고 연대적이고자 하는 노력들이 수십년의 세월 속에서 큰 차이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협동조합 7원칙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언젠가 협동조합의 7원칙을 거론하며 이사회와 총회를 진행하는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해보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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