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우리나라는 6. 25 전쟁 이후로 섬나라가 되고 말았다. 군사분계선으로 대륙으로 나가는 길이 가로막히자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이 섬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밀항선을 타는 길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우리 국민에게 외국을 왕래할 수 있는 증명서인 ‘여권’은 권력과 연줄의 상징이었고 해외여행은 고위층과 부자들이 누리는 사치였다.

그래서 여행자유화가 되기 전 우리 국민들은 영화에서나마 해외 관광명소를 보고픈 욕구가 강해 1988년 이전에 흥행을 한 외화 순위에는 ‘미션’이나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같은 빼어난 외국 풍광을 보인 영화들이 많다. 한국 사람이 유독 영화 ‘로마의 휴일’을 좋아한 것도 오드리 헵번의 청순한 매력도 좋았겠지만 스페인 계단을 비롯한 로마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이 한국민을 잡아 당겼을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난 1989년 노태우 정부가 해외여행 자유화를 하자 사람들은 쌓인 욕구를 풀고자 물밀듯이 해외로 나섰고 여행업은 성장 산업이 되었다. 2007년 내국인이 해외여행을 한 숫자는 1332만 5천 명에 달했고 2006년에 비해 14.8%나 증가했다.

주요 방문 국가는 중국이 가장 많고 일본과 태국이 뒤를 이었다. 한국관광공사가 2008년 해외여행객을 상대로 해외여행 목적을 조사하니 ‘여가/위락/휴가’라는 응답이 57.7%로 가장 많고, 이어서 ‘사업/전문 활동’이 19.4%로 2위였고 ‘친구/친지 방문’ 이 13.1%로 3위였다. 해외관광 여행의 이유는 ‘볼거리가 다양해서’가 54%로 1위였다.

조선 후기 때부터 한국인을 관찰한 외국인은 ‘구경하기 좋아하는 것’을 한국인의 특징으로 꼽았는데 그런 한국인이 해외에 널려 있는 ‘다양한 볼거리’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거리를 찾는 여행은 공무국외여행에도 관행이 되어 2007년 공공기관 감사들이 이과수 폭포를 보러간 ‘외유성 남미연수’는 큰 사회 파문을 낳았다. 2008년 6월 감사원은 공공부문 국외여행 실태를 감사하고 선진 제도와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공무국외여행대신 “나가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 얻는 것이 있다”는 후진국 형태의 안이한 여행분위기가 공직사회의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국회는 의원들의 해외연수 기록 공개를 꺼린다


감사원이 감사한 결과 관광성 공무국외여행이 만연해 있고 특히 공무국외여행이 ‘官官 접대’ 수단으로 변질된 사례도 다수 있다고 밝혔다. 감독기관이나 용역발주기관, 그리고 자금지원기관 등에 있는 직원이 상대기관의 부담과 안내로 관광성 공무국외여행을 하거나 국회의원 사무실 같은 유관기관 직원에 대한 유대관계 형성을 위한 수단으로 공무국외여행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국회도 자주 해외연수를 간다. 2007년 경우 국회 사무처는 총 6회 118명이 해외연수를 떠났고 총 연수경비는 2억 8650만 원이고 1인당 경비는 242만 원이었다. 의원보좌직원도 여행을 가는데 2007년에 50명이 갔고 총 연수경비는 1억 6368만 원이었고 1인당 경비는 327만 원이었다. 국회 사무처는 신규 사무처 임용자를 ‘주요국 의회 방문 및 문화체험’을 보내는데 2007년에는 85명, 2008년에는 58명이 유럽과 중국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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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해외연수가 선진제도와 경험을 배우는데 집중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공공기관이 관광여행에 집중하는데 국회만 독야청청 학습여행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공공기관이나 국회가 의뢰하는 우리나라 여행사들은 대부분 관광여행사이고 학습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곳은 거의 없다.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해외연수를 갈까? 2007년 국회 결산 보고서를 보면 ‘1032(단위사업) 의원외교 및 국제회의’ 항목에 61억 8000만 원을 썼다. 의원외교활동에 49억 4700만 원, 국제회의에 12억 4000만 원이다. 의원외교활동에 쓴 돈이 대부분 해외연수비용일까? 국회의장도 공무로 해외로 나가니 연수비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국회는 의원들의 해외연수 기록 공개를 꺼린다. 한 언론사 기자가 국회를 상대로 의원들이 해외를 방문한 계획서와 최종보고서, 그리고 영수증 등 경비내역 사본 공개청구를 했는데 국회는 몇 만 쪽에 이르는 서류 열람만 허가하고 사본 교부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그 기자는 국회 사무처를 상대로 사본공개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내었고 두 달 전 항소심까지 승소하였지만 국회는 요지부동이다. 국회는 대법원에 상고하고 아직 사본을 주지 않고 있다.

국회 감사를 받는 감사원이 국회의원의 해외연수 내역을 감사할 리 없고, 청와대나 그 누구도 손을 대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의 해외연수 내용이 떳떳하다면 공개 못 할 이유가 없고, 설령 잘못된 바가 있으면 서류를 공개하고 앞으로 고치면 된다.


서유견문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여행은 사람에게 휴식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삶과 일에 지친 사람에게 재충전을 할 수 있게 한다. ‘개인 재충전’도 필요하고 ‘나라 재충전’도 필요하다. 며칠 떠나는 배낭여행도 알뜰히 모은 돈으로 가야 하는 개인과 달리 공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나라 돈으로 여행을 갈 수 있다. 공무원을 재충전해서 나라 전체를 재충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제일 좋은 것은 공무원들이 ‘개인 재충전’을 하면서 ‘나라 재충전’도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소속 관악구 구의원인 김순미 의원은 2007년 6월 혼자서 영국 킹스턴 시 기획연수를 다녀와서 두툼한 보고서를 내었다. 보고서에는 도서관과 양로원을 비롯한 방문기관과 운영주체, 대표자, 홈페이지와 연락처까지 모두 써놓았다. 김순미 의원은 관례적으로 실시하는 지방의원의 상임위별 단체연수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제도라 생각해 혼자 킹스턴 시 공무원과 연락해 연수일정을 짰으나 시의회에서 개인 연수라고 비용을 지급하지 않았다. 국회의 몇 몇 보좌관들도 단체로 가는 해외연수를 가지 않고 따로 외국의 노인요양병원 등 현장을 조사하는 연수를 간다.

한 시민단체는 영국과 독일의 공공디자인을 연구하는 여행을 기획해 공무원들과 같이 갔다. 런던 대학의 교수나 전문가와 함께 재개발 사례를 현장에서 직접 듣는 형태의 여행이다. 너무 강의와 현장방문이 많아 ‘빡센 여행’이라는 공무원들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유길준은 1883년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고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로 쓴 서유견문에서 일본이 서양 나라의 장점을 취하며 여러 제도를 배운 지 삼십 년 동안에 부강을 이룩하였으니 “붉은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서양사람 가운데는 재주나 학식이 뛰어난 자가 있는 모양이어서 내가 옛날에 생각한 바와 같이 순전한 야만족에만 머무르지 않는 자들임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외국과의 국교를 이미 맺은 오늘날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 상하, 귀천, 여자 그리고 어린이를 가릴 것 없이 저들의 형편을 알지 못하고는 안 될 것이다”라고 했다.

국회가 먼저 나서 서유견문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저들의 형편”을 “빡세게 연수”해 “나라를 재충전”하면 국회 위상을 드높이는 길이 아닐까 한다.


* 이 칼럼은 여의도통신에 함께 게재합니다.


”사용자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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