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12월 2일, ’68운동의 현대적 의미 및 아탁(ATTAC) 활동 소개’라는 주제의 간담회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주최로 열렸다. 독일의 대표적인 68세대이자 현재 아탁(ATTAC, 국제금융거래과세연합) 학술평의회 구성원인 클라우스 매슈카트(Klaus Meschkat) 하노버대학 교수는 68혁명 40주년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68은 서구가 아닌, 전 세계적 운동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수용, 발전시킬 것인가? 68의 현재적 해석은 한국의 시민운동에도 많은 메시지를 전해줄 것이다.”

”?”11월 29일(토) 한국 서양사학회가 주최한 “68혁명 40주년을 돌아보며” 심포지엄에서 매슈카트 교수는 <1968-국제적 확산과 초국가적 구조들>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68심포지엄에 젊은 사람이 많이 와서 좋다. 역시 한국이 좋다. 68이 그리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껴져 감사한다.”

매슈카트 교수는 12월 2일, 간담회를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단체활동가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여성의 전화, YWCA, KYC,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들과 독립영화 감독,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학생 등이 참석했다. 그는 68이 화석화된 ‘한 때의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어떤 정신이자 운동의 모태라는 점을 강조했다.

68은 일상의 정치화, 정치적 실천의 일상화를 촉발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여성운동과 환경운동 등을 배태하고 반전과 반권위주의의 가치를 보편화시킨 청년운동인 68은 결코 학계 담장 안에서만 논의될 수 없는 것이기에, 매슈카트 교수가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나고 싶어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68년과 2008년

매슈카트 교수를 비롯한 독일 68의 주역들은 현재도 아탁 학술평의회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해 반신자유주의(반세계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ATTAC은 국제금융거래과세연합이다. 자본이동에 대한 조세부과를 위한 시민연대 (Association pour une Taxation des Transactions financieres pour l”Aide aux Citoyens)라는 뜻의 프랑스어 약자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탄생했다. 현재 약 50개국에서 9만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일본과 호주에서 결성되어 있다.

“독일 아탁의 학술평의회 멤버가 대부분 68동지들이다. 지금 그들은 연금을 받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수가 아직도 정치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려고 한다. 생태학적 정치경제학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해온, <자본주의의 종말 Das Ende des Kapitalismus, wie wir ihn kennen>의 저자 엘마 알트파터(Elmar Altvater)가 대표적이다. 68을 뿌리로 삼아 활동하는 아탁 회원은 20명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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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의 거대은행과 보험회사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하거나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다. 아탁은 10월 15일 “때가 왔다: 금융 카지노를 폐쇄하자”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매슈카트 교수는 “국제 투기자본을 규제하지 않고 풀어둔 결과 다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쳐왔다. 당시 성명서가 얼마나 옳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98년 12월 프랑스 아탁 창립 당시 성명서의 유효성을 언급했다. 금융도 기본적으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97년의 동아시아 금융위기-98년 프랑스 아탁 창립-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2000년 독일 아탁 설립-2001년 G8 정상회담 맞이 반세계화 시위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국제적, 조직적으로 반기를 든 1차 행동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지금 다시 맞은 세계 경제위기, 곧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위기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속화해온 만큼 세계사회포럼, 아탁 등 대안적이고 새로운 사회ㆍ경제질서를 제시하는 세계사회운동도 성장했다. 이미 거대 은행들이 국가의 원조를 받아 국책은행화하고 있는 이 시점에, 한 나라의 위기가 실시간으로 세계화되는 이 국면에 ‘시장의 자기규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탁의 활동상을 듣던 한 참석자는 “이런 경제 위기 시기에 세상을 변혁시키려면 좀 더 조직된 단체가 필요하지 않겠나, 일상적이지 않은 폭발적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68에서 사람들은 세계 혁명을 믿었다. 그러나 아탁은 세계혁명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을 갖고 있다. 실패도 있었다. 아탁은 이라크전 반전 시위를 조직했으나 전쟁을 막진 못했다. 아탁의 한계를 알고, 그러나 활동이 용기를 잃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매슈카트 교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그동안 아탁이 해온,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활동’들을 소개했다. 신자유주의적인 내용을 강화하는 유럽헌법이 국민투표에 부쳐졌을 때, 그 안을 부결시키는 데는 프랑스 아탁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독일에서는 공공재 민영화에 반대하는 활동(영화제작, 리플렛 배포 등)을 벌여 철도민영화 막아냈고, 10월 27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서의 항의행동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이 기사의 한국어 번역판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그밖에 유럽차원에서 아탁의 연대로 막아낸 정책들도 있었다. 폴란드 회사가 독일에 사업장을 만드는데 폴란드 임금을 적용하겠다는 ‘서비스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었을 때, 아탁은 기업과 정부가 사회복지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이 가이드라인을 무산시키는 운동을 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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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우리가 행동해야할 시점

아탁은 상향식 의사결정체계를 가지고 있다. 중앙집권적 의사결정방식을 배격하고, 의장 없는 대변인체제(순환제)로 운영된다. 양성평등에 입각해 평의회 대의원을 남녀 동수로 구성하고, 정당식 의사결정 체계 경계한다. 국제 네트워킹에도 이는 동일하게 적용되어, 중앙은 존재하지 않고, 각 국가별로 어떤 문제가 우선하냐에 따라 활동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독일 아탁은 독일의 68, 신좌파의 계보를 이어받았다. 지난 2001년 독일 아탁의 첫번째 회의는 68의 상징과도 같았던 체게바라의 티셔츠와 각양각색의 깃발로 물들어 독일 학생운동의 절정기였던 60년대를 연상케 했다. 상징적인 장면이다. (독일의 NGO ‘Attac’첫 회의 – 한겨레 2001년 10월 24일 보도) 애초 독일의 신좌파를 이끌었던 독일사회주의학생연맹(SDS)은 독일 사민당(SPD)의 학생조직이었으나 59년 ‘처벌받지 않은 나치사법’ 전시회를 기점으로 결별했다. 이 사건은 학생조직이었던 독일사회주의학생연맹(SDS)이 스스로 정치화하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으며 대연정에 반발하며 일어난 원외야당운동(APO)과 궤를 같이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젊은 피’들이 90년대 후반 원내 정당으로 진출했다. 물론, 80년대 학생운동의 다양한 세력들은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문화운동으로 분화해 다양한 시민사회를 구성했다. 90년대 시민사회단체의 양적ㆍ질적 팽창이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혹독한 경제위기와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하고 있는 2008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시 한번 새로운 실천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맞닥뜨렸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하기 쉽고, 일정한 성취가 있더라도 ‘실패’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68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세계체제론>의 저자 이매뉴엘 월러스틴의 평가, 곧 “이제껏 세계 혁명은 단 둘 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그리고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역사적으로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처럼, 20세기의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던 부정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2008년 봄, 한국에서도 ‘실패’로 규정할 수 있으나, 실패가 아니었던 사건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공공의 가치’를 외쳤다. 광우병 위험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에는 10대들에게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자율화를 반대하고, 환경파괴를 일으킬 대운하를 반대하고, 빈부격차를 강화하는 비정규직법을 시정하라는 목소리가 함께 녹아 있었다. 일부에서는 그런 외침이 관철되지 못했다며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유럽의 68세대가 현재까지 ‘더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광장의 민주주의를 경험한 다양한 세대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함께 외쳤던, ‘공공적 가치’를 이슈화하고 관철시킬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