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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9>

지방화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지방, 그리고 지방문화와 지방정신.

하지만 진주의 지방문화는 이제 봄을 맞았다. 젊은 문화인의 참으로 가상하기만한 노력 덕이다. 도서출판 ‘사람과 나무’의 대표를 맡고 있는 황경규 씨.

그는 아직 젊다. 기자 생활을 거치면서 향토 정보에 눈떴고 기자 생활을 정리하면서 향토자료 수집에 발 벗고 나섰다. 진주의 작은 면 단위로 면지를 내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기초로 진주의 모든 향토자료를 수집하는 진주향당을 설립했으며, 보다 본격적인 자료 수집을 위해 “진주ㆍ진주사람ㆍ진주책”이라는 전시회를 열어 시민들의 진주 관련 서적과 자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 ‘진주 책사랑 모임’을 만들어 서점마다 ‘진주 책 코너’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진주를 상징하는 ‘논개가락지날’을 정해 젊은이들이 논개를 사랑하고 논개정신을 이어받는 노력도 다하고 있다.
”?”면지의 발간사업을 시작하다

그는 9년 동안 진주신문 등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모두 접었다. 지역신문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또 ‘글 쓰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문사를 그만둔 후 처음 시작한 것이 도서출판 <사람과 나무>였다. 사람과 나무에서는 주로 면지(面誌)를 발간하는 작업을 했다. 진주시는 1개 읍, 15개 면, 21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집현면과 대평면에서 면지를 만들었고, 미천면지와 수곡면지도 작업하고 있다.

면지는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지역의 미시사를 정리하는 지역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자, 하나의 성과이다. 이 일을 진주 지역의 문화와 역사,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황경규 대표가 직접 하고 있다.

예컨대 집현면지의 경우 집현면의 문화에 중심축을 두어 각종 문헌 속에 등장하는 집현면의 역사적 기록과 사실을 담고 면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 집현면에 산재한 문화유적이 표시된 지도와 선사시대의 유적, 문화재, 농특산물, 공공기관과 교육시설, 행정구역 변천사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집현면에 대한 백과사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면지 발간 작업은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과 땅, 그리고 그들 간의 세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셈이며 향토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활용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 면지를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다. 중앙 위주의 역사기술만 중요시되는 현실에서 지역단위의 자료가 많지 않아 자료를 재구성하기 위해 자료를 찾는 작업과 더불어 많은 인터뷰가 필요하다.

황 대표는 면지 발간작업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면지를 작업하기 위해서는 편찬위원이 먼저 위촉되어야 해요. 보통은 ‘리’ 단위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이는데 문화원 회원, 교직에서 퇴임한 분들이 모입니다. 그리고는 집필위원을 선정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는데 집현면의 경우 진주시사, 과거의 진양군사 문헌들을 참고했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해 구성했습니다. 특히 대평면이 어려웠는데 대평이 수몰지구거든요. 원래 무척 큰 면이었는데 남강댐이 생기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죠. 거기는 당시 노인들의 기억을 되살리며 빠짐없이 그림을 채워 넣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자료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면지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4년이 걸려요. 혼자 쓰고 있는데 혼자 할 일이 아니죠. 전문가들이 붙어줘야 하고 그 자료를 찾는 것하며, 보통 비용도 평균 1억이 들어가요.”

집현면에서는 마을주민들이 1억을 갹출하고 출향인사들이 몇 백 만 원이라는 큰돈을 후원해 면지 작업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면지는 향토사 연구의 기본을 닦는 일이고, 향토사 연구는 각 지역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활동이며 나아가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향토인의 삶의 질 향상과도 연결되기에 더욱 중요한 일이다. 황경규 대표가 몇 년을 쏟아 부으며 만들고 있는 면지는 진주의 정체성과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기초 작업인 셈이다. 아울러 황 대표는 면지와 더불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진주문화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진주 관련 자료 ‘진주향당’에 모이다

경남역사문화연구소 ‘진주향당(晉州鄕堂)’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주민들이 만나는 진주의 향토문화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진주향당은 진주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자료를 모아, 이를 재구성하고 현대인들에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민을 대상으로 향토문화와 향토사를 공부하는 모임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를 만든 것도 황경규 대표다. 한 사람의 힘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 “진주향당을 만들면서 진주지역에 대한 자료를 찾기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다못해 진주의 중심으로 흐르는 남강에 다리가 몇 개가 있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어요. 어쩜 이렇게 지역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사료들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 있는지 너무 안타까워요. 그래서 진주지역 자료를 다 모아보자 마음먹고 경남역사문화연구소 진주향당을 창립했습니다. 자료들이 도서관이나 문화원 각지에 흩어져 있으니 이를 한곳에 모아 지역문화와 역사연구에 꽃을 피워보고자 했죠. 그게 2003년의 일입니다. 사실 이것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전업이 아니라 관심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라서 많이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조금씩 자료들이 모여요. ‘촉석류지’라는 책은 1966년 간행됐던 건데 경매를 통해 구입했고 1920년대 사진도 꽤 수집했어요. LG의 모태가 된 구인회포목상점의 사진도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진주향당을 만들기 위해 흘렸던 그의 땀방울들이 전해져 온다. 그 땀방울들은 조금도 허투로 쓰이지 않았고 그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얻은 귀한 자료들이 어떤 보석보다 귀하다.

“힘든 과정이었고, 지금도 갈 길이 멀지만 과정에서 얻는 자료들이 얼마나 제게 힘을 주는지 몰라요. 남명 조식 선생의 모든 유적을 탁본한 것은 지금도 뿌듯해요. 진주향당의 주요 설립멤버였던 강병주 진주시문화재전문위원과 강동욱 박사(경남일보 문화부장) 등이 다니면서 직접 탁본했는데 매년 산청에서 하는 남명선비문화축제에서 그 탁본을 모아 3년간 전시회를 했습니다. 이렇게 자료들이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진주시역사박물관으로 발전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각 지역별로 박물관들이 있지만 정작 지역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거든요.”
”?”모아놓은 자료들을 설명하는 황 대표의 눈이 반짝이고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어렵지만 그 어려움에 상관없이 그는 이 험난한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그의 눈빛에는 이 일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솟구쳐 보인다.

‘진주ㆍ진주사람ㆍ진주책’ 전시회를 열다

‘진주ㆍ진주사람ㆍ진주책전시회’는 그가 그동안 모은 자료를 공유하고 한편으로는 여러 자료들을 모으는 방편으로 마련됐다.

황 대표는 “개인적으로 자료를 모으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진주에서 발간된 책을 먼저 모아봐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것이 진주ㆍ진주사람ㆍ진주책 전시회예요. 매년 시청로비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출판사를 하면서 알게 된 이들이 펴낸 진주관련 책자를 모두 모으고 있어요. 근데 진주 작가들의 책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어요. 지역에서 책을 내고 전국 서점에 나가면 100-200권밖에 나가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 진주 시민들이 먼저 지역작가들의 책을 사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지역에서 먼저 자신의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예컨대 진주성이 임진왜란 3대첩 가운데 하나의 현장인데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지역민이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진주ㆍ진주사람ㆍ진주책 전시회에 더욱 애착을 가지고 이를 확장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조금이라도 지역민들이 지역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그러한 노력들이 모여 지역민이 먼저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찾고, 이해하며 이것들이 지역에 대한 애정을 더욱 강화시켜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진주 책사랑 모임’과 더불어 ‘진주 책 코너’도 만들었다. 매년 하는 전시회 역시 일회적이다. 상시적으로 생활 속에서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는 진주의 작가를 만나고 그 책들이 교류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주 책사랑 모임’은 지역에서 나온 지역의 책들을 일상적으로 사주는 운동이다. 지역에 작가들이 많고 지역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지만 생활이 어렵고 책을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중앙으로 나가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는 그만큼 지역민들이 지역의 작가들이나 책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책을 내면 1000권도 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책 사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거죠. 지역민들이 책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모임과 더불어 책을 사려면 그러한 책을 파는 서점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진주 책 코너도 만들었죠. 서점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결국은 상생이 필요하니까 어쨌든 코너는 설치됐어요. 이젠 이것들이 상생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길 바래야죠.”

능력도 안 되면서 펼쳐놓은 일만 많다고 걱정하는 황 대표, 하지만 그의 모든 일에는 무한한 애정이 묻어난다. 진심은 늘 통하게 마련이고, 그의 새로운 시도 또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진주 논개 가락지 날을 정하다

그가 지역을 위해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제 ‘논개’다. 황 대표는 논개에 대한 관심을 진주를 넘어 전국적으로 일깨우기 위해 ‘진주논개가락지날’을 정하는 데 앞장섰다.

“진주를 상징하는 논개가 있는데 우리만의 기념일을 만들어보고자 했어요. 이미 2000년대 초에 그런 말이 나왔는데 논의만 되다가 드디어 2005년 8월 8일을 ‘진주논개가락지날’로 공표했습니다. 논개가 유월 그믐에 순국했는데 양력으로 계산해보니 1593년 8월 8일의 일이라고 합니다. 또 가락지는 반지 두 개를 말하는데 이는 모양으로 숫자 8과 같지요. 그래서 8월 8일을 논개가락지날로 정하고 이를 선포하기 위해서 추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논개를 지역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곳은 진주만이 아니다. 전북 장수군이 논개의 출생지가 장수임을 내세워 사당을 세우고 별도의 행사도 벌이고 있어 어느 정도 지역 간의 다툼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지역 간에 싸움은 이익이 될 리가 없다. 함께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황 대표가 나서 장수군과 논개가락지날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단기적 시선에만 그쳐서는 작은 이익을 낼 수밖에 없다. 훌륭한 결정이다.

“장수에도 연락을 했어요.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함께 하자고 했지요. 논개를 선양하는 일에 힘을 모으자니 장수에서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장수군과 함께 표준 논개영정을 제작하는 것과 더불어 2007년부터 논개가락지날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어요. 전국적인 기념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하나하나의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모든 나무들이 곧고 튼튼하게 성장해야 숲이 건강하고 멋이 더하다. 지역과 국가도 다름 아니다. 우리는 가끔 그 당연한 진리를 잊고 지낸다. 하지만 이미 지역에서는 이러한 진리에 맞춰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지역들은 달라지고 달라진 지역은 다른 대한민국을 만든다.

면담장소 – 진주시 칠암동 78번지 진주향당

면담일시 – 2006년 11월 4일 오후 2시

면담인사 – 황경규(사람과 나무 대표, 4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