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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국정감사가 과연 필요한 제도인지 모르겠다” “정치감사가 아닌 정책감사를 지향한다는 구호는 이번에도 헛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최근 이야기가 아니다. 10년 전인 1998년 11월 ‘한겨레 21’에 실린 기사다.

국정감사 질의 시간 15분 동안 의원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시간이 없으니 짧게 답하세요”란다. 백원우 의원이 2005년 10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국정감사 현장 스케치>란 글에 나오는 말이다. 그 당시 18명의 교육위원회 의원이 20일 동안 40여 개 기관을 상대로 국감을 치르니 매일 시간에 쫓겨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에서 백원우 의원은 1988년 국감이 부활한 후 2005년까지 18년 동안 일괄질의와 일괄답변이 일문일답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 나면 이렇다 할 의미있는 제도개선이 없었다며 개탄하고 있다.
물론 그 후로 2008년 국감을 시작하는 지금까지 역시 이렇다 할 제도 개선은 없다. 국회와 행정부 모두 국정감사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국정감사에 쏟는 국가 에너지는 엄청나다


행정부가 국정감사에 쏟는 노력을 보자. 2005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낸 <국회 감사기능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이란 보고서를 보면 2004년 국정감사 대상 기관수는 488개 기관으로 서류 제출은 모두 3만 9000여 건에 총 면수는 약 9천 300만 쪽이었고 인쇄비용만 약 42억 7천만 원에 달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은 문서 양이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행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저 엄청난 자료는 공무원들이 야근까지 하며 만든다. 이 자료들이 기다리고 있다 컴퓨터를 켜면 바로 뛰어나올 리가 없으니 매년 국정감사 철이 되면 행정부 공무원들은 퍼붓는 국회 자료 요구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렇게 국가 에너지를 쓰는 국정감사가 끝나면 매년 시민단체와 언론이 국정감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도 “당일치기 국감에서 집중감사로” 나 “기관별 감사에서 정책토론 감사로” 등 비슷비슷하다. 그런데 국회 국정감사는 매년 종전에 지적한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예전 방식대로 진행한다.

이렇게 종전 관행대로 국정감사를 진행하면 가장 편한 쪽은 행정부다. 쉼 없이 쏟아지는 요구 자료 때문에 피곤하지만 국정감사 당일만 잘 피하면 1년 농사는 무난하다. 더욱이 행정부는 20년 넘게 국정감사를 치르다 보니 축적한 ‘국감 대처 노하우’가 만만찮고 이런 노하우를 모아 ‘국정감사 수감 매뉴얼’도 만들었다.



”?”행정부처 공무원은 ‘국회에 최대한 늦게 자료를 줘라’ ‘애매모호하게 답변하고 시간을 끌어라’ 식으로 대비방법에 통달해 있고 굳은 동료의식으로 이런 노하우를 공유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혹시 국회는 일부러 국정감사 제도개선을 하지 않고 국정감사 대상자인 행정부와 편하게 지내는 ‘적과의 동침’을 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조차 든다.


보좌관 스트레스 1위 ‘국정감사’


국회가 결과적으로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된 원인은 국회의원들이 ‘각개약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개약진’은 지형과 지물(地物)을 이용하여 병사들이 개별로 적진을 향하여 돌진하는 군사용어다.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는 ‘언론’을 타서 지명도를 높이는 것이다. 물론 국정감사를 통해 행정부의 잘못을 견제하고 국정을 바로잡으면 좋겠지만 이건 ‘언론’을 타 국감 스타가 되거나 이름을 떨친 후의 일이다. 모든 의원들이 서로 협동하여 행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려 안달해도 성과를 얻기 쉽지 않은 터에 의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개 약진’하면서 자기 생존에 힘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시사저널이 2006년 9월 의원보좌관을 상대로 조사하니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국정감사로54.9%, 지역구 민원 ? 예산 챙기기가 22.7%로 그 다음이었다. 선거는 10.4%였고 후원금 마련이 4.5%,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인 개정 법률안 마련은 1.3%에 불과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보좌진에게 국정감사는 시험기간이나 다름없고 성적표는 이 기간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들이 얼마나 언론에 노출되는가 하는 횟수와 보도크기다. 어느 의원이 언론의 관심을 얼마냐 받느냐에 따라 보좌진의 성적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문제는 언론은 묵직한 정책개선보다 언론 용어로 ‘섹시하다’고 하는 색다르고 선정적인 뉴스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국정감사 때 잘 뜨는 언론보도는 이처럼 ‘섹시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수험생이 시험 답안을 다른 수험생들과 의논해서 쓰지 않듯 의원실 역시 국감 준비부터 마칠 때까지 같은 상임위의 다른 의원실과 협동하지 않고 ‘독야청청’ 일한다. 한 의원실에서 국감을 준비하는 인원은 고작 4명을 넘지 못한다. 이들이 강력한 행정부라는 진지를 상대로 ‘각개약진’ 전투를 벌이니 승부는 이미 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의원실은 몇 곳에 나온 언론보도에 만족하고 이듬해에도 이런 각개약진을 계속한다.


의원실은 서로 협동하지 않는다


이처럼 행정부는 국회의원들이 매일 시간에 쫓겨 수박 겉핥기 국감을 하니 좋고, 언론은 보도에 목을 매는 의원들이 매일 제공하는 ‘섹시’한 보도자료 중에서 입맛대로 골라잡아 좋다.
그래서 국정감사 제도 개선이 되지 않고 매년 비슷한 국가 에너지 낭비 행사를 되풀이하는 까닭은 ‘국회-행정부-언론’이라는 ‘삼각 적과의 동침’ 덕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15년 전에 국회 사무처 의사국에서 펴낸 <국정감사 결과 시정 및 처리사항, 1993> 보고서를 보자.

그 당시 국회는 지금의 고유가를 예견한 듯 상공자원부에게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에너지 절약형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요구하였다. 국회는 내무부를 상대로 이북 5도 도지사를 위한 의전용 기관인 ‘이북 5도청’의 기능 활성화를, 그리고 힘 있는 자들이 나눠 가지는 ‘특별교부세’의 배분기준을 마련하는 등 제도개선 방안을 촉구하였다. 이런 국회의 시정요구사항을 2008년 국정감사에서 점검해보라. 놀랍게도 15년 전과 별로 달라진 사실이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한 중앙부처 국장 출신 전직 장관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의원들이 국감을 통해 얼마든지 행정부를 장악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분은 상임위 의원들을 4~7개의 소 감사반으로 나누고 한 부처에서 문제가 많았거나 예산이 많은 사업 십 여 개를 골라 감사반별로 한 두 개씩만 맡아서 국정감사를 진행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리고 담당 사업을 진행한 7급 공무원부터 최종 결재자인 고위 관료와 그 사업에 관계한 전직 간부까지 불러 놓고 국정감사 기간 내내 사업 결정부터 예산 배정과 집행을 포함해 하나하나 따지면서 현장점검과 전문가 토론까지 한다면 모든 부처 공무원들이 국회에 꼼짝 못한다는 말이었다.


‘청문회’ 식 집중감사로 바꾸자


한 마디로 ‘청문회 식 집중감사’로 정부 부처의 사업 잘못을 송곳처럼 파고 들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행정부의 업무가 마비되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걱정은 잠시 내려두자. 우리나라는 행정국가다. 행정부의 권한은 점점 커지고 국회는 갈수록 작아진다. 국회에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이 있다고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예산권과 입법권은 행정부가 쥐고 있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을 1%도 깎지 못하고 국회에서 통과하는 중요한 법안은 대부분 정부 법안이다. 그리고 행정부는 ‘당정협의’라는 미명 아래 행정부를 뒷받침하는 여당과 그 여당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 여당은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국회 임무는 꺼두고 국정감사에서도 행정부 편을 들 때가 많다. 행정부가 국회 앞에서 잠시 머리를 숙이는 척 하지만 씩씩하게 제 갈 길을 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런 집중감사를 하게 되면 고위 관료가 ‘잘 검토하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국감당일만 면하면 된다는 도피성 답변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매일 매일 감사 내용을 정리해서 필요한 자료를 위원회에서 결의해 받으면 된다.

또 하나,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하고 나면 그 정보를 국민과 공유하였으면 한다. 국정감사 자료와 국정감사를 통해 얻는 정보는 행정부나 국회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암묵지를 잘 공유하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고 하지만 국회는 그런 장벽을 과감하게 뛰어넘었으면 한다.

국정감사를 20년 동안 했는데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국정감사 과정에 대해 쓴 책은 서인석 보좌관이 낸 <국정감사 실무매뉴얼> 한 권뿐이다. 299명의 의원과 수 천 명의 직원을 둔 국회가 자신의 최대 업무인 국정감사를 다루는 지침서로 책 한권만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정경험을 사회자산으로 공유하자


심상정 의원실에 근무한 전 보좌관 손낙구씨가 2008년 8월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통계를 이용해 한국사회의 부동산 실태를 밝힌 역작이다. 손낙구씨는 4년 간 국회도서관과 관련부처 자료를 이 잡듯이 뒤지면서 부동산 문제에 파고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자료는 국정감사를 통해 받은 자료다. 필자는 주택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주택 사정이 좋아졌다는 통계는 많아도 지하실, 판잣집, 움막, 동굴과 같이 처참한 곳에서 몇 명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2006년에야 ‘역사상 처음으로’ 제출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그런 부동산 극빈층은 68만 가구 162만 명에 달한다.
국회에 다니는 분이라면 꼭 <국정감사 실무 매뉴얼>과 <부동산 계급사회>를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언론보도를 타기 위해 투자하는 노력들의 일부를 돌려 이런 책을 썼으면 한다. 국회가 쥐고 있는 ‘국정 경험과 자료’를 사회 자산으로 키우는 일은 입법과 예산심의만큼 가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대필 작가가 만드는 선거용 ‘자화자찬 자서전’이나 ‘수필집’에 몰두하기보다 국정경험 공유를 통한 사회 생산성 향상에 나서기를 바란다. 국회의원들이 책을 내면 얻는 이득이 많다. 국회의원 직이 전문가 집단으로 승격되고 개인의 명성도 높아진다.

이처럼 국정감사에서 얻은 경험과 자료를 가공해서 출간하는 일도 국회의원들이 개인 생존형 ‘각개약진’에서 사회와 동거하는 광야로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여의도통신에도 함께 게재했습니다.

”사용자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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