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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희망제작소 정광모 공공재정 연구위원은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법률, 재정, 국회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해서 재미와 날카로운 시각을 겸비한 칼럼을 연재할 계획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국회는 죽었다. 그럴 리가 있는가? 국회가 죽었다면 매일 장관에게 이렇게 일을 못 하냐고 호통 치는 의원들은 무엇인가? 의원회관에서 한 번이라도 의원을 만나려고 줄을 서 기다리는 민원인들은 허깨비를 상대하고 있단 말인가? 이 밖에도 국회가 펄펄 살아 있는 권력이라는 증거는 허다하다.

그렇다. 국회는 살아 있으되 살아 있지 않다. 힘차게 뛰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쓰러져 가냘픈 숨만 쉬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는 국회의 껍질은 살아 있으나 속은 죽었다. 국회의 신뢰자본이 죽었기 때문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여론 조사를 보자.
세계 가치관 조사(2001년)에서 국회는 조사기관 13개 중 신뢰도 10.8%로 꼴찌였다. 아시아 바로미터 조사(2004년)에서 국회는 7.8%로 14개 조사 대상 기관 중 꼴찌였고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조사(2005년)에서 신뢰도 6.6%로 조사 대상 11개 기관 중 역시 꼴찌였다. 2007년 국제투명성기구가 세계 60개국 일반인들의 부패인식을 조사해서 ‘2007년 세계부패바로미터(GCB)’를 발표했다. 한국은 100점 만점에 정치가 20점으로 최하위, 다음이 22.5점을 받은 국회였다. 어떤 조사에서도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10% 대를 넘지 않는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은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국민은 그들 정권보다 국회를 더 불신하기 때문이다.


국회의 신뢰자본이 사라졌다


신뢰란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핵심 구성요소이다. 신뢰자본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다.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켜져 있을 때 차들이 지나가지 않는다는 신뢰가 없으면 사람들은 길을 건너갈 수 없다. 반대 차선의 차가 중앙선을 넘어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없으면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다. 내가 은행에 예금한 돈을 언제든지 은행이 내 준다는 신뢰가 없으면 사람들은 은행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은행 대신 금괴를 사 앞마당에 묻거나 튼튼한 금고에 돈을 쌓아놓을 것이다.

이런 국회의 신뢰도 추락이 최근의 일인가. 그렇지 않다. 시사저널은 1991년 5월 “지금같은 국회는 없는게 낫다”는 기사를 냈다. 김광웅 서울대 교수가 1990년 7월에 한 조사에서 “행정부, 대학, 국회, 언론, 법원 중에서 가장 신뢰하는 기관은 어느 곳입니까”라는 질문에 “국회”라고 응답한 사람은 불과 3.7%였다. “신뢰할 만한 기관이 없다”는 사람은 31.3%나 됐다. 또 “현 국회의 질적 수준으로 국정의 중심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65.1%가 없다”라고 답했다. “있다”라는 응답은 8.0%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는 ’신뢰자본 상실‘이란 병에 걸린 지 오래되어 이제 숨이 가쁜 위급한 지경이 되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이처럼 낮은 신뢰도가 계속되면 국회가 무엇을 하든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국민은 국회를 항상 불신하고, 국회가 국민을 향해 다가가려는 노력은 효과를 볼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러나 국회는 천하태평이다

그런데 국회의 신뢰도가 이정도 바닥에 떨어지면 국회의장과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서 신뢰를 확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하다못해 그 흔한 삭발과 단식이라도 하며 결의를 다져야 할 터이다. 그러나 국회는 그야말로 천하태평이다.


”?”국회는 7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제헌 6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국회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인기그룹인 동방신기, 쥬얼리, 송대관, 장윤정 등 세대를 아우르는 가수들이 출연하여 85분간 ‘제헌 60주년 기념 열린 음악회’를 열었다. 여기에 나라 돈 2억 2천만 원을 썼다.

그리고 레이저 쇼와 불꽃놀이 등 대대적 축하행사를 개최하여 ‘초호화 환갑잔치’를 벌렸다. 화려한 불꽃 쇼를 진행하는데 1억 5천만 원의 나라 돈이 들었다. 나라 경제가 위기라는 신문 보도가 줄을 잇고 기름값이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들어 서민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칠 때다.

이런 불꽃 축제에 대한 논란이 일자 국회 공보관실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18대 국회의 모습을 다짐하는 의미의 축포를 쏘아 올리는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거 참 희안한 논리다. 축포를 쏘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는가? 우리 국민이 지금 불꽃놀이를 못 봐서 정치와 국회를 저주하고 있는가? 불꽃놀이는 한화그룹이 매년 여의도에서 여는 세계불꽃축제로 족하다.


‘타성의 덫’에서 벗어나야


국회는 영등포구에 있다. 영등포구에 어렵게 사는 노인들과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많다. 혼자 사는 65세를 넘는 노인들만 6197명이다. 대학등록금이 없어 힘들게 공부하는 대학생들도 많다. 이들을 국회 푸른 잔디밭에 모셔놓고 국회의장과 사무총장부터 절을 하며 저녁을 대접해야 했다. 저소득층 학생과 학부모를 높은 연단에 모시고 등록금 전달도 해야 했다. 1억 5천만 원으로 이런 행사를 해야 했다.

한 마디로 국회는 과거로부터 해오는 대로 하는『타성의 덫』에 걸려 있다. 국회에 위기의식이 없는 것이다. 위기란 한자는 危機, 위험과 기회란 뜻이다. 위험할 때 기회가 있다. 국회는 위험하다. 그럼 국민에게서 멀어진 위험을 기회로 바꿀 생각이 있는가? 그러면 먼저 국회에 놓인 빨간 카펫을 걷어 던지자.

의원회관과 국회본청 정문 중앙에는 빨간 카펫이 깔려 있다. 국회의원들은 경위의 경례를 받으며 빨간 카펫이 깔린 정문으로 다닌다. 국민들은 빨간 카펫이 깔린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고 국회의 뒷문으로 다녀야 한다. 정작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뒷방신세다. 빨간 카펫은 영화제 정문에서 사진 세례를 받는 스타들 몫으로 넘기자.


빨간 카펫을 걷어 던지자


빨간 카펫이 무슨 큰 문제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빨간 카펫은 국회를 국민에게서 멀게 만드는 상징이다. 매일 여러 차례 정문의 빨간 카펫을 독점해서 밟으며 들어가 보라. 처음 국회의원이 될 때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굳은 다짐은 이슬처럼 녹아 없어지고 점점 목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특권의식이 의원을 휘어잡고 국회가 국민이란 ‘자기’로부터 분리돼 점점 ‘타인’으로 변해간다.

빨간 카펫을 벗어버린 정문으로 국민이 다니게 하자. 국회를 방문하고 견학하는 국민들 수는 엄청나다. 멀리 찾아갈 것 없이 먼저 그들에게서 신뢰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이 칼럼은 여의도 통신에 함께 게재했습니다)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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