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그날은 한껏 부푼 희망을 안고 희망제작소에 출근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던 중 인터넷 포털 뉴스 하나를 접했다. 그러나 사실 그때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우리나라는 윗분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랑하는 OECD 회원국이고 우주에 사람도 보내고 개도 복제하는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고 있는 선진국 아닌가? 이런 객관적인 조건과 척도를 갖고 있는데, 아무리 무능한 정부라 할지라도 하물며 다른 나라 국민도 아니고 우리나라 국민을 곧바로 모두 구출할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다음날 출근길에 만난 동료의 충혈된 눈을 보고서야 알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상상해서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날 이후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아니 국가라는 것이 내 안에서 산산이 부서지면서 진공상태에 빠졌다. 그 낯선 시간을 버티려면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에 시청광장과 광화문과 <노란테이블>을 배회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목소리가 철통같은 지배층의 성벽을 털끝만큼도 균열시킬 수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면서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분노는 결국 나는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문제로 귀착했다. 결국 그날 이후의 날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민낯에 오롯이 투영된 나의 민낯을 고통스럽게 마주해야만 하는 날들이기도 했다.
그날들은 그동안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국가(혹은 사회)’라는 것이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주었다. 예전엔 이런 질문들은 민주화운동세대나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갖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나 학교 시험 문제에서나 접할 수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나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국가는 일상적으로 잘 체험되지 않는다. 그날은 국가가 나의 삶의 영역에 깊숙하고도 전면적으로 들어온 첫 경험이었던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린 강
제된 경험의 충격과 파장은 크고 깊었고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날이 지리멸렬하게 반복되고 있던 어느 날, 광주에 사는 후배로부터 우연히 ‘광주시민상주모임’에 대해 들었다. 그날 이후 동네별로 모여 삼년상을 지내자는 자발적인 주민모임들이 광주 전역에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문득 점점 더 깊게 파여 넓게 퍼져가고 있는 파장이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넋 놓고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각자 손에 쥔 작은 돌멩이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국 곳곳에서 연일 일어났던 크고 작은 촛불들,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다는 시민행동프로그램 <노란테이블>, SNS를 통해 생산되고 확산됐던 시민의 움직임들이 잔잔한 호수에 끊임없이 진동을 만들어낸다면, 지금 당장 어떤 변화를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분명 오늘과 다를 것이다.
이번 희망제작소의 세월호 기억 캠페인 <0416 잊지않았습니다>도 작은 돌멩이로 진동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이다. 끊어지지 않도록 누군가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와 효율과 완결이 아니다. 옆 사람과의 소통과 공감과 연대이며 무엇보다 긴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근육이다.
글_ 이은주 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artenju@makehope.org
Comments
“[칼럼] 그날의 파장” 에 하나의 답글